



토끼가 주는 신앙의 교훈
레위기 11장 6절
서론
한 세기를 마감하는 금년은 토끼의 해입니다. 저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는 유일한 동물이 하나 있습니다. 토끼입니다.
몇 년 전에 집에서 토끼를 키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줄 과자 한 봉지 사오지 못하는 사람이 시장에서 배추를 주워 온다고 핀잔도 받으면서 토끼를 좋아했는데 비누로 목욕을 잘 시켰다가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토끼를 키울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퇴하고 나면 꼭 토끼를 키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토끼는 별로 좋게 나오지 않습니다. 토끼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될 부정한 짐승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다"고(잠 16:4) 했다면 토끼도 그 씌움에 적당한 게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토끼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나누겠습니다.
1. 반쪽 신앙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과 먹지 못할 음식을 정해주십니다.
2, 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새김질과 굽이 갈라진 것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되지 않으면 그 동물을 식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규정을 주셨을까요?
*유대인들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민족들과 가까이 교제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성결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생을 생각한 것입니다. - 돼지고기는 탈이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품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풀만 먹는 것들로서 비교적 착하고 온순한 짐승들입니다. 아무래도 풀을 먹고 자란 사람이 짐승고기를 먹고 자란 사람들보다는 온순하겠지요.
이런 규정대로 토끼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6절,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에게 의하면, 토끼는 실상 먹은 것을 토하여 다시 되새김질하는 일은 못한다고 합니다. 토끼가 계속 입을 움직이는 것은 이빨을 갈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토끼를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표현한 것은 입과 턱의 움직임이 새김질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전문가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하고 있기에 입의 모양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위의 구조 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끼가 그 입 모양 때문에 되새김질하는 동물로 규정되기는 했어도 정결한 짐승으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쪽, 굽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의 기고문을 보니까, 토끼는 제 똥을 먹는대요! 세상에! 토끼는 엄청 풀을 많이 먹는데 풀에 있는 섬유소를 토끼의 능력만으로는 분해할 수 없습니다. 몸집이 큰 소(牛)는 섬유소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들어 있는 커다란 위(胃) 속에서 단단한 섬유소를 소화시키고, 말(馬)은 맹장에서 이 과정을 거칩니다. 토끼는 대장(大腸)에서 미생물을 이용해 섬유소를 분해합니다. 그런데 먹이가 대장(大腸)에서 대부분 소화되다 보니 일부 영양분은 흡수되지만 비타민 B와 같이 중요한 영양소는 똥으로 배설되고 맙니다.
결국 토끼는 이 영양소를 얻기 위해 자신의 똥을 다시 먹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토끼가 모든 똥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토끼는 영양분이 거의 없는 진짜 똥과 대장에서 갓 소화되어 영양이 많은 부드러운 똥을 눕니다. 부드러운 똥은 토끼들이 휴식을 취할 때 굴속에서 눕니다. 누자마자 토끼가 제 똥을 먹어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는 똥은 딱딱한 똥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토끼를 되새김질을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와! 대단한 성경입니다.-2011년 1월 9일 설교 참조 바랍니다. >
반쪽의 조건은 채워졌지만 다른 반쪽의 조건이 채워지지 못해서 정결한 짐승의 부류에 들지 못한 토끼를 보면서 어떤 영적 교훈을 얻어야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적당주의, 타협주의, 세속화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중심의 성별이 요구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구별된 의식을 고수했기에 지금까지 민족성과 종교성을 지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적당한 것을 원합니다. 적당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적당히 넘어가야 할 것을 지나치게 따지고 엄격함으로 피차간의 신뢰가 깨어지고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위배되는 게 아니라면 "적당히"가 좋습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특히 하나님을 섬김에는 어떤 분명한 자세가 요구됩니다. 하나님 편을 따를 것인가? 그래서 삶의 어려움들을 견디어낼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오는 풍성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적당히 야합하며 신앙도 절반의 신앙으로 만족할 것인가? 그래서 믿음의 확신도 없고 믿음으로 오는 기쁨과 평화도 없이 살 것인가?
우리는 양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쪽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혼합입니다. 섞어서 짜는 것을 싫어하고 섞어서 씨를 뿌리는 것도 싫어하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방인들과의 잡혼, 혼혈을 멸시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 속에 거룩한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혼합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머스트라는 사람은 베트남 전쟁 당시 날마다 백악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반전 시위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했으나 때로는 혼자서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머스트씨. 당신이 밤에 혼자 촛불을 들고 이곳 백악관 앞에 서 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고 이 나라의 정책이 변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예요.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스트라는 사람이 미국정부의 제국주의 정책에 물들지 않기 위해 홀로 외로운 투쟁을 벌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도 절반의 신앙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의 삶을 위해 힘써야 하며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2.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는 우화를 아시지요? 토끼는 빠릅니다. 특히 거북이에 비하면 훨씬 빠릅니다. 그러나 우화 속에 나오는 토끼는 너무 자신을 과신하다가 거북이에게 패한 실패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토끼가 너무 지나치게 자신만만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패할 수 없는 경주입니다. 그런데도 꾀를 부리고 자만하다가 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손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특히 다윗은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기고만장하여 군사들을 전쟁터로 보내놓고 혼자 여유작작하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병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요 장군입니다. 장군에게는 `비번'이나 `휴식'이라는 게 없습니다. 지난날 아무리 승리했다 해도 단 한번의 패배로 공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군인들의 특성이요 왕의 운명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승승장구한다고 우쭐대다가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가지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가 중요합니다. "왕년에" 열심냈고 "왕년에" 새벽기도 했고 "왕년에" 봉사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계절에서 과거적인 용어인 "왕년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벌써 한 사람의 생애가 시들어간다는 것이며 지금은 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타이프라는 사람은 "믿음은 비행기와 같은 것, 멈추면 그 자리에서 떨어지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왕년에라는 말을 할 수만 있으면 삼가 해야 합니다.
지금 뛰는 토끼가 되어야 하고 지금 말없이 기어가고 달려가는 거북이와 같은 성실함들이 필요합니다. "왕년이" 아닌 "현재의 나"를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치 용어 중에 "중간평가"라는 게 있습니다. 대통령의 실적을 중간에 백성들에게 평가해보자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술수가 강한 이 단어는 정치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신앙적인 용어입니다.
"중간평가"
매일 자신을 중간평가 해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잘 달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자만에 빠져 침체인 것은 아닌가?
"중간평가"가 잘 내려져야 내 생애의 "마지막 평가"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토끼가 실컷 자다 일어나 보니 거북이가 벌써 저만큼 기어가고 있어요. 큰일났다 싶어 깡충깡충 기를 쓰고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신앙생활에 게으름 떨고 교회에서 심술 부리다가 늘그막에 열심히 해야지 할 때는 이미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세대차이도 있고 늦었어요. 그러니 바로 지금 이 설교를 들으면서, 이 한 주간에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 중간평가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브래나이스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모리 슈워츠 교수가 치명적인 신경계통의 병인 루게릭병(근육이 위측)에 걸려 자기 제자와 화요일마다 만나 인생과 종교와 죽음과 우정과 잡다한 생각들을 나눈 이야기입니다.
모리 교수는, 공황기 착취공장을 본 후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가르침의 길을 택해서 부끄럽지 않는 생애를 살아갑니다.
이 책에서 모리 교수는 죽음을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남은 프로젝트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살아있는 장례식'을 합니다. 죽음 이후의 듣지 못하는 조사가 아닌 살아있을 때의 조사를 듣기를 원한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평가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듣고 싶어한 것입니다.
좀 더 일찍 이런 조사를 듣게 된다면 더 열심히 뛰게 될 것이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토끼처럼 꾀를 부리는 신앙보다는 거북이처럼 성실함을 주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3. 번식력이 강합니다.
토끼는 한번에 여러 마리씩 새끼를 낳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그런 번식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어차피 부정한 것들이고 먹지 못할 것들입니다. 아무리 번식을 많이 해도 유익한 번식은 되지 못합니다. 불결한 짐승이기 때문이지요.
유대인들에게는 오히려 토끼와 같은 번식이 귀찮고 풀한 포기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팔레스틴에는 계속 입을 오물거리면서 뜯어 먹어치우는 토끼의 번식이 달가울 리가 없습니다.
토기의 번식은 토끼를 식용으로 하는 이방인들, 특히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유익한 것이기에 번식은 장려할만한 게 못되었습니다.
유목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소, 양, 염소 등이 번식해야 합니다. 풀을 뜯어먹고 털과 젖, 고기를 공급해 주는 정결한 짐승의 번식이 득이 되는 것이지 토끼 같은 부정한 짐승은 번식할 수록 손해를 끼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어떤 것이 번식해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번식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야 아무거나 다 번식하기를 원하지요. 돈도 많이 벌고 인간의 명예도 쌓아가고 권세도 얻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법으로 부를 얻고 명예를 얻고 잘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며 무익한 것이다(요3:6)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요 받으실만한 제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적인 열심, 육신적인 성공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거룩한 것의 번식, 남을 위한 유익된 사랑의 번식, 동정과 자비와 용서의 번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번식만이 인류를 복되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결론
토끼의 해입니다.
혼합이 아닌 순수해집시다.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에 살며 마지막에 좋은 평가를 남기며 살아갑시다.
좋은 면에서 계속 성장하며 부흥합시다.
하나님의 목적과 함께 하는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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