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62편 5-8절
서론
믿음이라는 씨앗은 어떤 조건 하에서 성장할까요?
광고지를 보면, 한 달만에 속성으로 영어회화를 완성한다, 기(氣) 수련을 통해서 신체 내부 속의 모든 잔병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석 달만에 몸무게를 10kg 이상 줄일 수 있다, 는 등등의 그럴 듯한 문구들이 보입니다.
믿음의 성장도 뭐 이런 게 없을까요? 믿음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제자훈련도 필요하고 성경공부도 좋고 봉사하는 일도 있고 새벽기도회도 믿음 성장의 좋은 수단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확실하게 성장시켜 나가는 데에는 좋지 않는 환경이 최고입니다. 좋은 조건에서는 성장이 더딥니다. 참 믿음은 좋지 않는 조건에서 성장합니다.
왜냐?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찾아오시며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도 가까이 다가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언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인가? 환경이 좋지 않을 때, 내 힘의 의지 없을 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양자간의 마음과 마음이, 시선과 시선이 마주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되고 하나님의 선함이 공급되고… 믿음의 체중, 믿음의 온도는 올라갑니다.
본문 시편 62편의 말씀은 그 사실을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1. 다윗은 인생의 고비를 만났습니다.
지난 시간에 왕국의 통일을 바라보며 흐뭇한 시편을 찬양하는 다윗을 보았습니다. 분열되었던 12 지파가 법궤의 예루살렘 성(城) 안치를 기점으로 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북쪽은 사울을 지지했고 남쪽 사람들은 다윗을 지지하면서 맹렬히 싸웠는데 사울 사후(死後)에 통일 왕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오르고 지파 감정, 지역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찬양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변합니다. 다윗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형제가 동거하는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고 개국 1등 공신들이 그 편에 선 것입니다.
아히도벨-견훤에게 왕건에게 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 사람이 압살롬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입장을 이렇게 탄식합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3절)
그냥 놔두어도 넘어질 터인 데 주변의 사람들은 더 넘어뜨리고 흔들어버리고, 다윗의 왕국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IMF 체제를 지나면서 경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되었습니다. 재계 1․2․3위는 현대, 삼성, 대우였지만 지금은 현대는 분열되었고 대우는 망했습니다. 그 대신 삼성이 1위로 올라섰고 LG가 2위 SK가 3위가 되었습니다. 그 뒤를 현대 자동차, 현대, 한진, 포항제철 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세반석과 같았던 현대가 넘어지는 담이 되고 흔들리는 울타리가 될 줄 누가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세계경영’을 내세우면서 무섭게 세계로 확장해 나가던 대우가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재계 8위에 링크되어 있는 세계적 전자회사 하이닉스 반도체도 중국 전자회사로 분활 매각될지도 모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조석으로 변해 가는 인심입니다. 잘 나갈 때에는 아부하고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고 온갖 아양을 떨던 사람들이 뭔가 회사가 흔들리고 정권이 흔들리는 것 같다, 하면 잽싸게 마음이 돌아서고 상대방의 편에 붙어 그러잖아도 흔들리는 담을 더 흔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무슨 게이트 하면서 온갖 추측과 말들이 무성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디에서 나왔나, 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야당에서 정보들이 나왔습니다. 정권이 흔들리는 것 같으니까 고위공무원들이 다음 정권에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고급 정보들을 빼돌려 야당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보를 뇌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인심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3절)
4절은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은총을 누구보다도 많이 입었던 너희들이 내가 이렇게 곤경을 당했다고 해서 왕의 지위에서 나를 떨어뜨리는 모함들을 하고, 내 앞에 와서는 축복하는 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저주하는 거짓 입술이 되었구나.”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잘 나갈 때가 있는가 하면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번영할 때도 자기 관리를 잘 해야겠지만 무너지는 담이 될 때, 흔들리는 울타리가 될 때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가져야 합니다.
왜? 너무 실망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게됩니다.
조금만 일에도 실망하고 예민해 져서 신경질이 늘게됩니다.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게됩니다. 그러면 인간성이 파괴됩니다.
그것은 무너지는 담보다 흔들리는 울타리보다도 더 위기입니다. 담이야 무너져도 다시 쌓을 수 있고 흔들리던 울타리는 다시 견고하게 쌓아나갈 수 있지만 파괴되어진 내 인격은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운전사가 난폭 운전사가 되고 음주 운전자가 되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되어도 삶은 회복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간이 사정없이 흔들리게 되면 믿음도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앞의 것만 보이며 그럴 때에 신앙적인 결단과 선택보다는 인간 중심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어둠 속에서 믿음의 빛이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피난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었지만 저주를 고스란히 수용했습니다. 스스로의 교만을 참회하며 고난을 자성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의 반란은 결국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는 징계였습니다. 밧세바와의 일이 결국은 집안의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포학을 의지했을 것이며(10절) 고난 중에서 믿음의 성숙을 도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바라본 것도 아니고 아히도벨이나 시므이를 바라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만을 바라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릅니다.
1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5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6절, 반석이여 구원이여 산성이 되었습니다. 그는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최고의 부자는 전설적인 석유 재벌 록펠러입니다. 12개 종합대학을 세워서 미국에 헌납했습니다(시카고대학). 4, 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헌금 요청이 들어오면 그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돈은 나의 돈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건물 어디에도 내 이름을 쓰거나 내가 헌금해서 지었다는 이야기는 쓰지 마십시오!”
그는 원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습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독실했던 부모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너를 데리고 다녔다. 이제부터는 너 혼자서 교회에 다니도록 하라. 용돈은 1주일에 20센트씩 주겠다!”
그가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어머니가 손을 붙잡았습니다.
“돈 중의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이야. 그러니 오늘부터 십일조생활을 하거라.”
그가 도시로 나가게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는 십일 주머니, 하나는 이웃을 위한 자선의 주머니였습니다.
록펠러는 말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엄청난 유산을 내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대학 구내에 기념교회를 지어 헌당했습니다. 그때 <시카고트리뷴>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이었고, 자신의 신앙을 몇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앞의 세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 십일조생활-지금까지 십일조의 기회를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십일조만을 계산하기 위한 직원으로 40명을 채용했습니다.
㉡ 앞자리에 앉기-그가 다니던 교회의 출석은 800며 정도. 그를 구경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800명=1600명이 출석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40분 정도 일찍 나와서 항상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바쁜 양반이 왜 이렇게 일찍 나오느냐고 했더니 ‘앞자리를 놓칠까봐서요!“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앞자리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나? 그대만 해도 록펠러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현대물리학이 발전하면서 그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설교할 때 엄청난 영적 파장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중보 기도할 때도 임신 가능성이 배로 많아진다고 하잖아요.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영적 파장은 거리에 비례하기 때문에 앞자리에는 소나기처럼 강하게, 중간자리에는 보통으로, 뒷자리는 이슬비처럼 약하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즉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은혜의 소나기를 맞고 있어도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슬비 정도를 맞는 셈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때도 영적 파장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화분이나 나무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식물도 자기를 살아하는 사람이 다가올 때는 춤을 추면서 기쁨의 파장을 쏟아내고 괴롭히는 사람이 다가오면 두려움의 파장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두 개의 양파를 각각 담아서 하나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하나는 시선이 머무는 곳에 놓아둡니다. 날마다 “양파야 너를 사랑해!” 라고 사랑을 속삭여 주면 가까이에 있는 양파는 세배 정도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농부가 밭에 가서 매일 기도를 드렸더니 다른 농지보다 농사가 더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우울증 환자를 교회의 앞자리에 8개월 정도 계속 앉혀놓으니까 우울증이 깨끗이 나았다는 임상 실험도 보고되었습니다.
㉢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그는 대부호이면서 앞장서서 순종하는 미덕을 보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목사와 등을 지고 사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업수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미경과 확대경으로 사업을 들여다보았고 날마다 교회에서 받은 영적 파장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3. 요동하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다윗은 주변 사람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바라보면 흔들리며 요동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 앞에 마음을 토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시므이를 용서했고 므비보셋의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성군(聖君))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바라보지 않았다면 보복 정치를 했을 것입니다.
록펠러의 부모들은 그의 마음 속에 좋은 운전사를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는 난폭한 운전사가 아니라 좋은 운전사였습니다.
결론
미국에서 사냥개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강동만 집사를 분의 이야기인데 그는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사냥개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뛰어갔습니다. 엄청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 달려갔더니 나무를 향해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위에 있어서 얼떨결에 쏘아서 잡았습니다. 사냥개가 호랑이를 쫓아? “내 뒤에는 천하무적의 주인이 있다!”는 믿음이 사냥개 주제에 호랑이를 쫓았고 그 기백에 눌러 호랑이가 소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빽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들을 쌓아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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