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특강]
신약성경개론
마가복음 1:1
신약성경의 배경사
성경은 구약(舊約)과 신약(新約) 그리고 그 사이인 중간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은 천지창조에서부터 말라기 선지자의 활동까지 다룹니다. 신약은 예수님의 탄생, 세례요한의 활동부터 사도 요한의 요한계시록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구약과 신약 사이인 중간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정치적 배경, 유대교적 배경, 당파의 배경 등은 앞에서 이야기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유대인의 분산에 대한 내용만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적 분산
유대인들은 건국 이래로 수없이 많은 외침과 수난을 당했는데 왕국이 멸망당한 역사의 아픔이 두 번 씩이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비운(悲運)의 민족입니다. 다윗 왕가를 배반하고 나왔던 북방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제국에 망해 끌려갔고 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윗 왕가를 배반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앗수르는 그 점령 지역에 이방인들을 이주시켰는데 그들은 잔존해 있던 유대인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가 ‘사마리아인’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그들을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고 멸시했습니다.
남방 유다는 주전 588년에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애굽에서의 유대인운동
알렉산더대왕이 유대인을 애굽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알렉산더가 요절하면서 헬라제국은 4등분되었습니다. 그, 중 팔레스타인을 접수한 안티오쿠스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지만 그는 아들에게 독살 당했습니다. 바로 그 독살자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입니다. 그는 “미친놈”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잔인한 왕으로 유대인들을 박해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이 애굽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사연으로 당시 애굽에는 약 1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 아프리카 해안지역으로까지 유대인들은 흩어졌습니다.
로마로 이주함
B.C. 63년 경 로마 황제 폼페이우스는 유대인들을 로마로 쓸고 갔고 쥴리어스 시저는 유대인 지역이 생길 정도로 로마인들이 많이 유입되었습니다. 바울이 죄수로서 로마에 갔을 때 로마에는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행 28:17). 로마로 이주해 간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처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합쳐서 “유대인의 상술”이 되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앗수르, 애굽, 바벨론, 로마만 아니라 당시 세계적으로 분산되어 살았습니다. 하르낙이란 학자는 4백만~450만 명이 국외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유대인들은 본토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적으로 1500만 명 정도가 되는 데 이스라엘 땅에는 약 5백만 가량이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세계 분산
유대인들처럼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민족은 없습니다. 여기에 는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역사와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을까요? 그들을 택해서 여호와를 세계에 유통(流通) 시키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들은 세계에 흩어지고 여호와 종교를 예배하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전도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흩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강대국들을 수단으로 세계적인 분산 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흩어진 유대인(일명 ‘디아스포라’라고 함)들과 그들의 회당은 초대교회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약을 읽을 때 이런 역사적인 배경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리공부를 하는데 다양한 내용들을 제가 삽입하고 있습니다. 원래 신학교에서 교리(조직신학)공부를 할 때는 이런 내용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아주 다양하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출력해서 묶어놓으시면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기록 언어-헬라어
구약은 히브리어(語)로, 신약은 헬라어(語)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간혹 아람어(語)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구약과 신약 사이의 중간기에 유대 사회에 언어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포로지에서 아람어(語)를 사용하게 됩니다. 아람어는 시조(始祖)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사용하던 언어입니다. 아람어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사용 언어이기에 아람어가 유대인들의 언어였습니다(왕하 18:26). 그러다가 점차 자기들의 민족 언어인 히브리어를 만들고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그게 포로로 잡혀가면서 아람어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한 이후 계속해서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이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에 속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가 일본어를,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영어를, 미국의 점령지 필리핀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자연스럽게 생긴 이치와 같습니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합니다. 성경학자 70인이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70인역>이라고 합니다. 성경번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번역성경입니다. <70인> 번역성경은 헬라어로를 말하는 유대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만큼 헬라어는 유대사회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말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아람어와 헬라어를 공용했습니다. 히브리어는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필요한 학문언어, 고대언어로 물러났습니다.
신약성경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것도 있지만 헬라문화권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복음서에 중간 중간 아람어가 나오는 것은 사복음서의 수신인들인 유대인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약의 성경들
신약은 모두 27권의 성경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들이 서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신은 발송인, 수신인이라는 형식이 있습니다. 성경은 저자들이 어떤 종족(유대인이거나 이방인 성도 대상)이나 지역(로마서는 로마에 사는 성도,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에 사는 성도)에 보내는 서신서입니다. 개인 혹은 교회에 보낸 서신서가 성경이 된 것입니다.
이제 각권 별로 들어가 봅시다.
사복음서(4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사복음서(4 福音書)라 합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과 사역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다” 라는 메시아성(性)에 있습니다. 사복음서 중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공관(共觀)은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복음서는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말하고 있지만 세 복음서와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외부적인 사역과 교훈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이 완성되고 20년 후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내적인 모습에 치중합니다.
공관복음서의 총 주제는 왕(King)과 그의 왕국(His Kingdom)입니다.
마태복음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왕으로 오신 메시아-예수님은 조상들이 기다렸고 다윗이 말했던 메시야였다는 것, 그리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려는 천국-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국가냐? 하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기록목적입니다. 그러다보니 족보이야기가 장황하게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족보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베드로의 제자였던 마가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입니다(A.D. 67-70년 사이). 대상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당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노예출신들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전합니다. 로마의 노예들이 수난 당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섬김으로 구원하려 하셨기에 종의 신분으로 사시며 엄청나게 수난 받으심을 전하면서 복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데오빌로라는 유력한 사람을 전도(혹은 양육) 대상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사복음서 중에 예수의 행적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대표적인 책인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죄인들을 향해서 연민의 정을 갖고 있는 완전한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사도행전과 한권에 해당되는 책입니다. 같은 저자-누가가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의사 출신입니다.
요한복음
요한은 공관복음에서 누락된 내용들을 보충함과 아울러 성령의 풍성한 계시를 더욱 밝히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더 깊은 신앙이 요구되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역사서(1권)
사도행전-초대교회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도행전의 중심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확장되어 갔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달하는 그 생생한 전도의 현장, 교회 성장의 현장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교회가 시작되고 성장하는 데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결국 성령께서 어떻게 강림하셨고 교회를 확장시키는 일에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 1장~12장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까지 어떻게 교회가 성장해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 베드로가 있습니다.
㉡ 13장~28장까지는 안디옥에서부터 로마까지 흘러가는 복음의 전달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중심에 바울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두 사람은 초대교회의 양대(兩大) 산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행동가이고 바울은 이론가입니다. 베드로의 성령충만이 외부적이었고 능력(기적)적이었다면 바울의 성령충만은 내부적이고 교육과 관계 전도였습니다.
바울서신(13권, 혹은 14권)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마 구약에서 모세가 차지하는 비중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유대교 최고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가말리엘문하는 최고의 학부였고 학벌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정통파 유대인이고 바리새파에 속한 가문 좋은 출신입니다. 그는 초대기독교를 엄청 핍박했습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나고 회심을 하면서 오히려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경기록자이고 복음을 신학적으로 교리화, 체계화해 놓은 신학자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는 바울의 종교라고 할 정도입니다. 바울은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행동하는 전도자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로부터 시작하여 빌레몬서에 이르기까지 13권의 성경을 썼는데 이를 <바울서신>이라고 합니다. 이 서신들은 바울이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각지에 설립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단순한 안부편지가 아니라 편지형식을 빌린 교리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교리가 있고 바울의 숭고한 인격과 사상과 종교적 경험들이 있습니다. 서신은 4복음서를 해석, 삶에 적용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로마서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독교이며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 믿음조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의로움은 율법을 행함이나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만 가능함을 말합니다. 로마서는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의 초석을 이루고 있는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당시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 분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비도덕적인 일들을 통렬히 지적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별한 삶을 유지할 것을 호소합니다. 신앙상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공중예배와 관련된 몇 가지 교리적인 문제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사도 바울과 그의 전도사역에 관한 해명성 서신입니다. 율법주의자(복음주의 반대자)들의 사주를 받은 일부 교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바울의 사도직 의심에 대해서 명쾌히 해명해주려고 펜을 들었기에 어느 서신보다도 더 바울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교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바로 잡아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보내진 서신입니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문장 문장마다 로마서에 필적(筆跡)되는 기독교의 진수(眞髓)가 담겨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바울의 교회관을 다룬 것으로 교회는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세워져 가야하는 가를 말해줍니다.
빌립보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쁨을 다룹니다. 곤경에 처해있는 빌립보교인들에게 기쁨을 생산해내시는 하나님으로 기뻐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만유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절대성, 혹은 충족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을 떠나면서 ‘고상한 지식’을 가져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이상야릇한 사상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뛰어나심, 완전하심, 충족하심에 대해 말해주면서 이단 사상에 현혹되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새신자들을 격려하는 차원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할 것과 그러기에 더 성결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전서를 기록하고 난 몇 달 후에 다시 보낸 서신입니다.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성도의 인내를 다룹니다. 특히 본서는 재림 이전에 나타날 여러 전조들을 구체적으로 예시함으로써 성도들이 그릇된 종말론에 휩쓸려 양극단적인 삶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판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상한 종말론에 쉽게 현혹되는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성경입니다.
디모데전서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새내기 목회자들이 감당해할 목회 지침서로 목회자의 경건과 책임을 아들에게 목회에게 목회를 가르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디모데는 몸도 약했지만 심성도 여린 사람입니다. 심성이 여린 것은 지도자로서의 장점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 두려워하는 디모데에게 선배 목회자로 목회자의 고난과 인내를 강조합니다.
디도서
디도 역시 바울이 디모데만큼이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요 목회자입니다. 그레데섬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에게 “바른 교훈을 전파하라”는 내용의 서신입니다. 그리고 교회 일꾼을 세울 때 명심해야 할 지침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빌레몬서
빌레몬은 소아시아에 살고 있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수하에 있던 노예가 도망 갔다가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서신으로 화해와 용서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상이 바울이 쓴 열 세권의 성경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불분명하나 바울의 열네 번째의 서신으로 보는 성경학자들이 많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하늘의 소망으로 모든 핍박과 환난을 극복해 나가라는 위로와 격려와 경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동서신(7권)
야고보서~유다서까지의 7권은 공동서신으로 일반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권면의 편지로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기록한 것으로 신앙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베드로전서
베드로의 서신으로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고난에 대한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후서
핍박과 고난의 종교적 가치를 인정하여 이것이 고상한 인격과 신앙의 향상에 이바지한다고 주장합니다.
요한1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교제와 실천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이단 중에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라는 게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육체가 참 육체가 아니라 가현(假現-그냥 눈에 보임. 유령 같은 존재)이었다는 사상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예수님은 곧 참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우리와 동일한 육체로 보내실 정도라는 것, 교회 분열에 대해서 사랑을 실천함으로 막아내야 함을 촉구한 것이 요한1서입니다.
요한2서
본서는 요한1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도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리를 행하며 성도들 간에 서로 참된 교제를 나누라고 합니다. 그리고 참된 교제는 이단과의 단호한 단절을 통해서 이루어져야함을 말합니다.
요한3서
본서는 여러 성도들에게 보내는 앞의 두 서신과는 달리 가이오라는 특정인을 수신인으로 합니다. 당시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가이오의 선행을 칭찬하면서 반대로 전도자들을 오히려 배척하는 디오드레베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의 저작들인 1․2․3서들은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진실한 사랑의 행동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우리가 사랑을 받고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 등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다서
베드로서와 비슷한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쓴 편지입니다. 본서는 초대교회 당시 최대 이단이던 영지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들이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단의 정체를 파악한 반면 유다서는 주로 현실에 나타난 이단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헤치며 이단방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계시록(1권)
사도 요한의 마지막 작품인 요한계시록은 세상 끝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승리를 알려주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의 앞 성경인 유다서까지 성경 65권이 모두 언젠가 세상의 역사는 끝날 것이며 영원한 새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적 말씀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요한계시록은 상세하게 세상 끝 날의 징조와 그 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은유와 비유들이 많아 신비스럽고 쉽게 이해․해석되지 않는 성경이기에 해석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계시록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사이비들이 많습니다. 천국에 대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나오기에 상당히 소망적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금광
지금까지 성경 66권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무궁무진한 지혜와 자원이 들어있는 금맥(金脈)과 같은 것입니다. 창세기는 금광(金鑛)을 여는 책이고 요한계시록은 금광(金鑛)을 닫는 책입니다. 천지창조로 성경의 문을 열고 들어가 성경의 금맥을 섭렵하다 계시록의 문을 닫으므로 나오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으시는지요?
미국의 대통령을 지닌 두 분의 일화로 성경론을 마치겠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럼 링컨은 일찍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산으로 물려 준 성경을 일생동안 250독(讀)을 했습니다. 와! 굉장하지요?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여 마침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인기 있는 인물을 들라면 첫째 둘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아담스도 성경을 매일 읽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은 지식과 덕의 무한한 금광이다.”
무한한 지식과 덕! 유대인들은 세계의 모든 지혜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20% 이상을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대학교에는 노벨상 수상자들보다 머리가 더 뛰어나고 박식한 지혜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이 그들을 지혜롭게,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교학자이면서 토라 해석가인 코헨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말씀은 머리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피로 흘러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성경말씀을 함께 읽으며 쓰며 기도하는 것은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울 뿐만 아니라 위인으로 만드는 데도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해서 성경론에 관한 교리는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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