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서론
오늘 우리들은 성찬예식을 갖습니다. 성찬예식은 은혜의 방편입니다.
우리들은 이 예식을 통해 어떤 은혜들을 받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들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장은 예수님의 고별 설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날이면 체포될 것이고 더 이상 제자들과의 교제가 단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가르쳐왔던 것을 종합해서 장시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제사장적인 기도를 하십니다.
모든 말씀을 다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잘 아셨습니다. 그들이 스승의 말씀을 듣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십니다.
제자들의 신앙보전을 위해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본 장을 제사장의 기도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 중보적인 기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도움은 피차 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최고의 도움은 중보의 기도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마음들, 우리 한국인들은 이게 잘 안됩니다. 항상 서로가 기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기도로 제자됨을 나타내야 합니다.
탈무드에 "병든 사람이 남의 병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잘 받으시는 기도는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한 최고의 사랑은 중보의 기도입니다. 중보의 기도를 하면서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성찬예식을 하면서 오늘은 병든 자들, 가슴이 아픈 자들을 찾아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2. 하나가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제 각각 출신 성분이 달랐고 성격이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충동적이었고 안드레는 너무 그림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야고보는 야망이 넘쳤고 요한은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교만했고 도마는 의심의 눈길로 모두를 대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제자 그룹을 휘어잡을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다면 그렇게 자중지란을 겪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서로를 불신했고 누가 높은가로 불필요한 경쟁을 했습니다.
예수 사후에 하나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위기라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더군다나 제자 중에서 배신자가 나오고 하나는 끝까지 스승을 의심하고… 이런 일들 때문에 제자들은 불신과 반목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노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누이 부탁합니다.
하나되라고! 그리고 지금은 하나되게 하소서 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후에 제자들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자신들을 내보일 것입니다.
모두들 하루아침에 배신자가 되고 도망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다시 모여든다고 해도 이미 서로의 모습을 너무 깊이 알아버렸습니다. 예수님 체포 당시 서로가 보여주었던 그 비열한 모습은 아무도 존경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감싸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교회는 힘을 얻을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의 그룹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치된 한 몸입니다.
고슴도치들은 떨어지면 너무 춥고 서로 껴안으면 상대방을 찌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요.
떨어지면 아쉽고 가까이 있으면 늘 서로를 찌르고…
한국인들은 단결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3.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불신과 반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비판과 폭로전 일색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치가들은 정치가들 때로 정의를 내세우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경제의 어려움이 마치 한 두 사람 때문에 있고 그들로 인해 자신들이 어려워졌다고 생각되어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판과 폭로 전에도 정당성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무 이기적입니다. 항상 자기 중심족인 삶을 삽니다.
"남이 타협하면 야합, 내가 타협하면 양보
남이 가난하면 게으른 탓, 내가 가난하면 사회구조의 모순 탓,
남이 한 우물을 파면 우물안 개구리, 내가 한 우물을 파면 전문가
남이 좀 검으면 야만적, 내가 좀 검으면 야성적.
남의 빗나간 사랑은 스캔들,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
남이 말을 많이 하면 지성이 없는 수다,
내가 말을 많이 하면 다양한 화술
남이 나서면 교만, 내가 나서면 개성"
교회가 왜 하나되지 못합니까?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이 주범인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말 한마디가 화목을 깨고 나의 하찮은 행동이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며 그것이 결국은 교회의 단결을 해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수의 한 몸인 것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모든 게 나 자신의 탓인 줄 알고 나를 고치고 항상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배 아픈 것은 참아도 남이 잘 되는 것은 못 참습니다.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머리가 둘 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급을 주어야 하는 데 한 몫을 주어야 하나, 두 서람 몫을 주어야 하나? 그래서 다툼이 벌어졌다.
그들은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한쪽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 하나가 뜨거워하면 하나요, 뜨겁지 않으면 둘이다"
의미있는 탈무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가족들입니다.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형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방울뱀은 치명적인 송곳니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송곳니로 동족을 찌르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형제들을 위하여 서로 찌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하라, 기념하라, 전하라(고린도전서 11:23~27) (0) | 2023.04.05 |
---|---|
하나님의 딜레마(마태복음 27:45~50) (0) | 2023.04.05 |
십자가를 진 사람(마가복음 15:21~25) (0) | 2023.04.05 |
예수께서 하신 일(요한복음 10:9, 10) (0) | 2023.03.22 |
마음이 중요하다(요한복음 4:10~14) (0) | 202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