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시절 갈렙의 위기, 세월
여호수아 14:6~12
서론
갈렙의 생애 자체에 위기가 아닌 때는 없었지만 특히 세 번의 위기를 맞습니다. 청년의 위기는 상황으로 오는 위기입니다. 거인 부족을 앞에 두고 다수 편이냐 소수 편에 설 것인가… 백성들의 소리를 두려워할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것인가, 내 관점이냐 하나님의 관점이냐? 거인들의 식용 메뚜기가 될 것인가, 거인들이 내 밥이 될 것인가? 이런 위기에서 10명은 잘못된 선택으로 죽고 60만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는데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아찔한 순간이고 경험입니다. 첫 번째 넘긴 청년 시절의 위기였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장년 시절에 왔습니다. 광야 40년 있는 둥 없는 둥 아웃사이더로 살아왔습니다. 여호수아가 승승장구한 것에 비하면 갈렙의 역할은 너무 미미했습니다. 상당히 실망했지만 서브 주연(sub主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으면 주인공 역할이 주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후계는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였습니다. 중 장년에 만나는 실패는 포기할 수도,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 애매한 연령대이기에 위기입니다. 그러나 12세 때 시력을 잃은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처럼 딱 한 시간 울고 일주일이면 복귀하는데 충분했습니다.
본문에서 갈렙은 세 번째 위기 앞에 섭니다. 10절, 갈렙은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85세라 나이를 밝힙니다. 세월에 장사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은퇴하고 10년 정도 살다 자연사로 죽었기에 늙음이 위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늙음은 조금 있으면 ‘고생 끝’이요 천국행입니다. 지금은 노년은 안식기, 휴식기가 아니라 자칫 삶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위험한 시기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라는 로날드 레이건은 치매에 걸림으로 강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겼습니다. 93세를 살다 보니 걸린 병입니다. ‘철의 여인’이라는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도 90가까이 사니 치매에 걸려 애처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노년에 찾아온 위기입니다.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공화국은 50세가 평균 연령, 노인 기간이 짧으니 어른으로 대접 받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평균 수명 자료에 의하면, 한국 남성은 80.5세, 여성은 86.5세입니다. 2070년에는 91.2세를 기록, 대표적인 장수 국가인 노르웨이와 핀란드, 일본, 캐나다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앞으로는 평균 연령이 100세는 거뜬합니다. 이게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이 은퇴하고도 30~40년 이상을 ‘오래’ 일거리 없이 살기에 위기도 ‘오래’ 지속됩니다. 오래 살면 오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잉여 인간 취급을 당하게 됩니다. 잉여는 ‘쓰고 난 후 남은 것’,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 필요성이 없는 인간이 잉여 인간입니다.
독일의 법학자 레오 로젠베르크는 치매에 대해 “처음엔 이름, 다음엔 얼굴을 잊는다. 이어 지퍼 올리는 것을 잊고, 다음엔 지퍼 내리는 것을 잊는다.”는, 노인들에게는 소름 돋게 하는 말을 합니다. 노년기에는 감당 못할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체적으로는 체력과 건강 상태가 저하되고 사회적으로 고립, 소중한 사람들과 사별로 인한 상실감 등 어려움을 겪습니다. 젊었을 때는 육체가 내 하인입니다. 아무 곳이라도 가자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상전입니다.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그러면 짜증이 나고 우울해집니다. 한국이 세계 1위의 자살국가라는 오명에는 뜻밖에도 노년 자살률이 결정적입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OECD 평균에 3~4배입니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위기의 세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갈렙이라고 노년이 평안했던 상황은 아닙니다.
유다 지파인 아간과 그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고 은퇴 나이를 훨씬 넘긴 85세가 되었지만 유다 지파에게 물려줄 땅을 아직도 얻지 못했습니다. 명분에서는 여호수아에 뒤지지 않는 지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2인자이면서도 1인자에게 충성하는 그의 행보는 모두에게 존경이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귀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부족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는 볼멘 목소리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좋은 땅들을 분배 받지 못하면 지파 사람들의 원성을 크게 받게 되고 생애가 구겨져 버릴 것입니다.
갈렙에게는 신체적인 상황도 위기의 요인입니다. 문관이 아니라 무관 출신으로 활동가입니다. 책만 읽던 사람들에게는 체력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활동가에는 체력이 자산입니다. 이제 그 체력이 고갈되면 무엇으로 견딜 것입니까.
갈렙은 주저앉거나 추억을 회상하는 노년으로 늙어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청합니다.
10, 11절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나는 85세다! 아직도 일할 수 있다! 나이에 당당합니다. 85세는 숫자에 불과할 뿐 나이에 대해 우울하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자신감을 보입니다. 그는 ‘젊은 늙은이’었습니다. 문학가 괴테는 “큰일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나이 들어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셋째로 평균 수명이 긴 홍콩은 노인을 ‘오래도록 젊다는 뜻’의 ‘장청인(長靑人)’이라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동창들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 때로는 죽음보다 더 나쁜 상태들이 있습니다. 요실금, 변실금,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것, 24시간 간병을 받으며 영양 공급, 호흡조절 튜브를 달고 사는 것, 24시간 숨만 붙어있는 착란 상태로 연명한다면 85세가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갈렙은 건강관리를 잘 해왔기에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약속에 대해 건강합니다.
12절,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85세였지만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있습니다. 그의 약속이 그의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장수하는 사람의 특징을 식단, 환경, 성격, 유전적 체질로 보았습니다. 행복하게 늙으려면 규칙적인 생활로 육체적 건강을, 성경읽기와 독서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신 건강을, 묵상과 자기 성찰과 기도생활로 내면 다지기로 신앙 건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찍 체력의 한계로 오는 위기를 늦출 수 있습니다.
아둘러 심리학의 일본의 1인자 기시미 이치로는 ‘늙어갈 용기’에서 융통성 없는 노옹(老翁)은 되지 말자고 합니다. 동생과 모친의 요절,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친 간병, 본인 자신이 죽을병을 앓았고 대지진, 원전사고를 겪으며 위기 앞에 있었던 저자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늙어갈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나이듦’을 긍정하는 여유로움과 넉넉함, 늙음은 자연의 섭리이기에 그것을 따르면 두려울 리 없고 ‘나이듦의 종착역’인 죽음이란 ‘삶을 완성하는 기회’이니 기피의 대상이 아니다.… (노년에) 간절한 것은 ‘동안(童顏) 성형’ ‘노화 방지’ ‘연명 치료’와 같은 기술이 아니라 ‘멋지고 곱게 나이 들기 위한 용기’ 같은 ‘마음의 힘’일지 모른다. 자꾸 깊어지는 시간처럼 삶도 ‘나이 들 용기’로 깊어가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닌 채 흘러간다.>
갈렙은 늙어감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85세 나이에 당당해지고 나이 많음을 두렵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지치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정신적으로는 적극적인 사고였고 매사에 움직이는 활동가였기에 광야생활에 강인한 체력으로 만들어 지금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고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85세 인생에는 나이 때문에 겪게 되는 위기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지금’을 말합니다. 나이로 오는 낙심과 위기는 자꾸 과거에만 눈을 돌리게 합니다. 과거에 연연하게 되면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남들이 소외시킨다고 섭섭한 마음이 들고 섭섭병은 분노를 유발시킵니다. 그러면 잔소리나 심술궂은 노인이 됩니다. 젊은 날의 헌신을 까먹으면서 좋지 않은 인상과 흔적만 남기고 갑니다.
갈렙에게는 노인들이 흔히 쓰는 ‘왕년’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옛날에 어떤 사람인 줄 알아?” 과거의 성공에 안주한 나머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노년은 위기의 계절입니다. 갈렙은 요청했습니다. 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일찍이 가나안을 정탐할 때 보았던 헤브론의 산악 지대입니다. 정탐꾼들이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이 살고 있습니다. 성읍들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85세 노인이 욕심을 내기에는 과한 요새 성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좋은 땅 비옥한 땅을 원합니다. 산지 정복에 나섰다가85세에 포로가 되거나 군대를 희생시키면 쌓아올린 공적이 물거품입니다. 85세이면 가만히 있어도 그간의 일로 충분히 존경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산지를 정복하게 내달라! 놀라운 배짱이요 용기입니다. 45년 전의 40세 마인드를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아낙 자손들의 성읍이 크고 견고한 만큼 정복과정이 힘들겠지만 일단 손에 넣으면 수고하지 않고도 크고 견고한 성은 바로 내 재산이 됩니다! 거인이 클수록 밥덩이도 크다는 맥락과 같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족장들이 묻혀있는 성지입니다.
성경주석가 메튜 헨리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 성읍에 역사적인 문헌 등이 보관되어 있었거나, 헬라의 아테네처럼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장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갈렙이 특별히 이 성읍을 요구했던 것은 유다 지파 백성들로 하여금 발달된 가나안 땅의 학문을 교육받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호크마주석)
갈렙은 유다 지파의 후계자를 발굴하여 사역을 이어가게 합니다. 점령에 공을 세운 장수에게는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수 15:17)는 포상도 내걸었습니다. 여기에 도전한 자가 옷니엘입니다.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로(수 15:17) 갈렙에게는 조카입니다. 옷니엘은 기럇 세벨을 취함으로 악사를 아내로 얻게 되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최초의 사사, 1대 사사로 활약했고 사사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룹니다(삿 3:11).
훗날, 그 땅에서 다윗은 7년 정도 왕 노릇을 합니다(삼하 5:5). 헤브론이 없었다면 사울의 추격에서 쉽지 않았겠지요. 갈렙이 노년에 이룬 과업의 혜택을 같은 지파 다윗이 누린 것입니다. 갈렙의 삶은 노년에도 얼마든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과업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월은 싸워서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은 같이 흘러가야 합니다. 늙음과 죽음 역시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은혜롭게 늙고 은혜롭게 죽어야 합니다. 은혜롭게 늙는 것은 늙음에 대한 승리의 일종입니다. 은혜롭게 늙지 못하는 것은 노년의 비극이 아니라 생애의 비극입니다. 갈렙의 삶은 ‘좋은 죽음(well-dying)' ‘좋은 삶(well-being)'이었습니다. 좋은 죽음도 필요하지만 좋은 삶은 더 필요합니다. 생애를 우아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죽음 이전에 좋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런던대학교 생물학과 루이스 월퍼트 교수는 인생 보고서 ‘당신 참 좋아 보이네요’를 썼습니다. 80을 살아보니 행복의 절정은 80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주장합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과학자들이 2만1천 명을 대상으로 세대별로 느끼는 행복함을 조사했습니다. 20대는 삶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비교적 적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40대는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만족감이 최저입니다. 65세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는 법을 깨달아 다시 행복해지며, 80세는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만족도가 최고라는 결과입니다. 인생의 행복이 80세 즈음에 절정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월퍼트는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신 참, 좋아 보이십니다’라는 말을 한번이라도 들었다면,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보장합니다. 그게 노년이 주는 선물입니다! ‘좋은 죽음’ 이전에 ‘좋은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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