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이긴다(5)
하나님의 속성에 은혜가 있다!
창세기 1장 31절, 2장 18절
<서론>
지난 주간(2021. 9.14)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님께서 86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마 기독교 2천년에 목회자로서는 최고였지 싶습니다. 가족의 일로 인격과 업적이 많이 오해되고 손상 받았지만 이번에 제가 출판사 부탁으로 조용기 목사님 일대기를 쓰다 보니 이분이 살아온 궤적이 한마디로 대단한 ‘위인’(偉人)입니다. 기성교단들은 이분의 긍정마인드, 방언 중심의 은사… 이로 인해 파생되는 성장신학, 번영신학을 비판하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대한민국의 그 시대에는 그런 복음도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분의 설교를 보면 상당히 예수님 중심이고 말씀 중심입니다. 그분만큼 예수님의 보혈을 강조한 설교자들도 드물 것입니다.
조목사님은 65년을 목회하는 동안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신자 70만 명(조금 허수?)을 이루었고 복음을 위해 지구를 120바퀴 돌았고 71개국에서 해외 성회를 인도하며 15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국내 개척교회 522개, 해외개척교회 1194개, 선교사 673명 파송, 한글저서 265권, 영문저서 31권… 어린이 심장병환자 4704명에게 무료시술, 순복음교인 10만 50명이 헌혈을 했습니다. 누가 이런 생애를 살았습니까? 우리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지 나와 신학이 맞지 않다고,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는 진짜뉴스, 가짜뉴스에 한 사람의 헌신된 일생을 제멋대로 각색하고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바깥 활동보다는 성당 안에 은거(隱居)하면서 한두 마디씩 어른으로 말씀하신 것, 독재 권력에서 자유 민주를 외치다 공권력을 피해 성당으로 피신해온 사람들을 숨겨준 일… 외에는 그렇게 큰 족적이 없습니다. 그 분을 결코 폄하하거나 왜곡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 사제들에게는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높여주고 기독교목사들에게는 선행은 숨기고 악행은 드러내는, 이번 조목사님 장례식을 보도하는 공영방송 KBS는 과(過)에만 맞추어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를 대적하는 어떤 프레임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면서 여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음이 보입니다. 기독교가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자기들 편에 서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 삶은 모두 은혜의 선물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가 308장도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보오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뿐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주의 은혜 크시니 골고다의 언덕길 주님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교회 설립 기념주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교회 이야기를 해야 하고 조용기 목사님 이야기가 아니라 담임은 제 간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내 삶은 모두 은혜의 선물이었다!” 이 문장 하나를 위해 조목사님의 생애를 장황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그래요! 오늘 우리교회가 교회 설립 37주년을 맞습니다. 우리 늘빛교회의 역사는 모두 은혜의 선물입니다! 지난 37년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1984년 9월 29일 화곡1동 359-6번지 3층 상가건물에서 시작된 교회가 오늘은 이렇게 멋진 예배당과 강화도 수양관, 정말로 좋은 신자들로 늘빛가족을 이루며 큰 분란 없이 살아왔음은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동참과 봉사가 없었다면, 늘빛교회는 이만한 걸음으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헌금들이 이리 위대하게 쓰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창립 37주년을 맞으며 어떤 교회, 어떤 성도들이 되어야 할까, 오늘은 생일이고 잔칫날이기에 덕담적인 설교를 해야 하는데 만 37세를 먹었으니까 이빨이 좋아 잘 씹을 수 있을 줄 믿고 조금 딱딱한 설교를 합니다.
오늘의 설교 포인트는 31절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이겁니다! 늘빛교회는 사람이 보기에도 좋아야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면 사람들 보기에도 좋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늘빛교회성도님들은 사람이 보기에도 좋아야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면 사람들 보기에도 좋은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많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창조가 압권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보시기에 좋았을까요? 사람이 아름다워도 꽃보다 더 고우며 공작새 날개보다 아름다울까요? 사자보다 호랑이보다 더 늠름할까요?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시속 110km 전후인 치타보다 빠르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왜 아름답고 늠름한 피조물들을 제끼고 사람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베리 굿’(Very good)이라 하셨을까요? 아시는 것처럼 27절이 해답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형상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그 뜻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타락 이후에 주신 것이 아니라 창조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속성과 상대적인 속성입니다.
절대적 속성은, 하나님만의 고유한 성질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같은 인격체가 되면서도 참된 절대자인 것은 비공유적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질은 인간에게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같이 공유하지 않는 성품이라고 해서 비(非)공유적 속성입니다.
자존성(自存性).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입니다. 출생이 없기에 죽음이라는 끝도 없지요.
불변성(不變性). 존재 자체가 영원히 동일한 성품을 가지셨기에 그의 존재, 완전성, 목적성, 약속에 있어서 변화하지 않고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언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약속은 언제나 불변입니다. 그 불변의 언약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무한성(無限性). 하나님의 지혜, 지식, 사랑 등에서 무한하시며 완전하십니다.
단순성(單純性).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과점 속성은 남겨둔 채 일부의 또 다른 속성들을 우리에게 나눠주셨습니다. 27절에서 자기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 당신 성품 중의 일부를 인간과 공유-나눠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유적 성품은 절대적이 아니기에 상대적입니다.
지식(知識). 하나님께서는 육체에 두뇌, 지식을 주셨습니다. 지식이 있어 불→전기→자동차→텔레비전→컴퓨터와 같은 엄청난 과학문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 지식은 사물에 대한 ‘앎’, 지혜는 지식을 선하게 활용하고,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거룩하심. 인간에게 하나님의 거룩(聖)이 있기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며 죄와 분리됩니다.
선하심. 선(善)은 타인에게 관대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가짐이며, 애정입니다.
의(義). 정의로움입니다. 에덴의 관리자로서 필요한 자세입니다.
사랑. 남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짐승에게는 없습니다.
진실(眞實). 정직하고 신실한 마음입니다.
주권(主權). 다스리는 통치술이며 일종의 리더십입니다.
이상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지 않으신 네 속성이며, 나눠가지신 여덟 속성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교회로 남을 것이며 성도들이 될 것인가요? 두 속성을 바로 이해하고 순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니신 절대적인 속성 앞에서는 순종과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움을 넘봐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어찌되든 절대적인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와 공유해주신 속성들 지식, 지혜, 거룩, 선하심, 의(義), 사랑, 진실, 주권(리더십)… 이런 것들은 계속 계발하며 활용하며 점점 성장하면서 하나님 속성 쪽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성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더 아름다운 교회, 더 아름다운 신자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세월, 우리교회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자부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두 선교사님을 파송해서 인도 뱅갈로 말루르와 일본 오사카에 교회를 설립했으며, 14명 협력선교사, 농어촌교회 등 24개 처에 매월 10만원씩, 통일을 기대하며 3개처 교회건축비 적립, 세계빈곤아동 11명, 관내 6명의 아동 후원, 경노당과 동네 방역사업, 매년 3~4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모든 영광 올려드립니다. 함께 해 오신 늘빛가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성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 또한 그걸 넘보고자 하는 교만이나 유혹에 휘둘리지 말면서 다른 여덟 가지의 속성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는 그런 위기도 항상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그 세상에 처음으로 보기에 좋지 않는 것이 보였습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좋지 아니하니… 이건 창조의 결함보다는 더 나은 쪽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와를 짝지어주심으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마음에 손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아니하니…는 이후에 벌어집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절대적 속성을 넘본 것입니다. 피조물 신세가 선악과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인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유일성에 도전한 것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에 맞서려다 추방당한 천사장의 꾐에 넘어가 자신도 신이 됨으로 하나님을 상대적 신분으로 내리려 하다가 형벌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넘보면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자 하나님께서 주신 공유적 속성도 바이러스를 먹어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지식, 지혜, 거룩, 선, 의, 사랑, 진실, 통치권이 무너지면서 인간관계 자연관계 부부관계…가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린 첫 사람의 모습이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인간들의 현실입니다.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들에게, 과학문명에 그런 속성이 있는 것으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의 존재와 절대적 속성을 아예 무시하는 무신론주의가 강세입니다.
인간이 최고라며 바벨탑을 쌓아가는 인본주의가 사방팔방에서 기독교를 조롱합니다.
인간이 구원받는다면 한 길이 아니고 여러 길이 있다는 다원주의가 여론을 얻습니다.
세상이 이런 지경까지 와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유일성을 양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성도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되고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인 것입니다.
조직신학 인간론에서 인간을 셋으로 분류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인간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철저히 인정하고 분리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절대 명심하면서 하나님만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이라는 영역에 조금이라도 도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겸손하게 영광을 올립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나눠주신 공유적 속성 여덟 가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식과 지혜가 날마다 자라면서 더욱 거룩하고 진실하고 사랑으로 충만해지면서 세상의 청지기로서 맡겨주신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교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신자가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교회가 지향하는 신학이요 신앙이요 비전입니다.
결국
감사하게도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신의 성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후서1:1,4) 은혜를 입었다고 축하합니다. 청장년답게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굳게 믿고 수호하며 그분 편에 서야 합니다. 절대적인 속성을 넘보는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어찌되든 하나님의 유일성을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표식입니다.
또한 여덟 가지 공유적 속성은 계발해 나가야 합니다. 생일에 맞는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믿음을 강조했던 바울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촉구합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약 3:17, 18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의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만하면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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