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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부활 이후 40일이 준 선물(3)(요한복음 21:15~1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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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이후 40일이 준 선물(3)

요한복음 21:15~18

 

서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40일을 승천을 미루면서 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여인들에게는 빈둥지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가셨습니다. 풀지 않으면 한에 눌려 일을 못해요!

-제자들에게는 비겁함에 대한 수치심을 치료,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자신감결여는 일 못해요!

 

2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부활 전에는 대부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선두그룹입니다.

부활 후에는 세베대의 두 아들은 4번으로 밀려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요한의 기록입니다. 늘 하던 대로 하지 않고 제자들의 순서를 변경한 데에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와 도마를 특별 관리하셨다 합니다.

베드로:세 번이나 모른다!

 

도마:만져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

나다나엘이 3번으로 오르는데 학자들은 그가 제자 바돌로매라고 합니다. 그는 유식한 랍비수준입니다.

주님께서 세 사람을 특별 관리하신 것은 베드로에게는 변함없는 신뢰를! 도마에게는 확신을! 나다나엘에게는 40일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논리를 세워주셨을 것입니다. 4복음서가 누가만을 제외하고는 세 권이 제자들의 작품인데 책의 기틀을 잡아주는 데는 나다나엘 같은 학자풍 제자가 필요하지 않았나, 그래서 자료들을 꼼꼼히 챙기는 기회를 주셨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어떻든,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했었던 것은, 사역 시작 전에 준비기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전에 열 재앙 통해 여호와 신앙을 새롭게 했고 히브리정체성을 일깨웠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에 사흘을 유숙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도록 했습니다.

제자들도 그래요! 제자들은 지금 엉망진창입니다. 실수도 했지만 그로 인한 수치심, 죄책감, 제자들 간의 분열, 그래서 서로에 대한 불신, 자신감 결여 ()가 빠진 것입니다. 이런 패배주의로 사명을 주신다 해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자들에게는 일이 아니라 반성이 필요합니다! 반성은 두 방향입니다.

하나는 자기 성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도보로 걸어오면서 많이 반성하게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과입니다. 사과하지 않고 맨날 반성만 하면 행동과 인격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로 무슨 일을 합니까? 제대로 사과해야 새로운 기운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 성추행, 학교 폭력,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사과와 사죄하는 일이 많습니다. 사과(謝過)는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과도 제대로 해야지 어설픈 사과는 오히려 화를 더 키워 후폭풍을 몰고 옵니다. 사과에도 기술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론 라자르 박사는 사과(謝過) 전문가입니다. 이분이 다양한 임상 경험과 사례를 모아 사과에 대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사과 덕목은

 

-상대방이 몹시 기분 상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입니다. “이건 내 잘못이라고 확실히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기분 나빴다면(또는 불쾌했다면), 내가 사과할게라는 식의 멘트는 여전히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들리기 쉽습니다.

-잘못 인정도 내용이 구체적이어야지 두리뭉실 그냥 잘못했다고만 하면 상대방은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어제 내가 화낸 거 미안해라고 말하기보다 어제 저녁 당신의 말을 말마다 자르고, 소리를 크게 질러 화낸 것에 내가 잘못 했고 미안해라고 말해야 상대방이 뭘 사과하는 알고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것에 후회를 말하고, 보상이 필요하면 현실적인 보상책을 말해야 합니다.

-재발 방지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덧붙여야 합니다.

이 같은 사과의 기술이 진정한 화해를 낳고, 더 좋은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과할 일을 안 만드는 게 가장 좋겠지만 살다보면 어찌 그렇게만 살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기성찰과 사과입니다. 

갈릴리로 오면서는 자기를 성찰하고 예수님께서 식사에 초대했을 때는 밥 먹으면서 무슨 말을 했을까, 당연히 사과입니다. 사과하지 않고 그냥 있다는 것은 고름을 빼지 않고 위에 약 바르고 붕대 감는 격입니다.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사과를 받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잘못인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0일을 함께 하면서 자기성찰과 사과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이걸 잘했어요. 형들이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돌려보내면서 시므온을 인질로 삼습니다. 2차에서는 베냐민을 인질로 잡으려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형들이 저희들끼리 눈물을 흘리며 반성을 합니다(42).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요셉이 왜 이러고 있을까요? 앙갚음일까요? 그래서 뺑뺑이를 돌리며 즐기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형제들이 묻어두었던 죄들을 꺼내고 죄들을 도려내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셉의 머리에는 형제들이 곧 입()애굽합니다. 여기에서도 12형제가 네 명 어머니로 갈려 반목하고 대립하고 싸우면 어떻게 외국에서 살아남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민족이 되겠습니까?

대민족은 혈통으로는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지 않으면 대민족이 되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무조건 뭉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숨겨두었던 죄들을 꺼내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 하고 받아야 서로 간에 용서하고 용서를 받아야 제대로 된 신뢰가 구축됩니다(45).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아버지 사후에는 뭐라고 합니까?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1)

 

진정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사과를 하고 난 다음에야 형제공동체는 회복되었고 애굽생활은 활력을 얻어 순식간에 소수민족에서 대민족으로 일어납니다. 만약 자기 성찰과 사과가 없었다면 12지파부족은 피터지게 싸우느라 출애굽과 가나안왕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2000 5. 부모(계부)를 잔인하게 살인한 S대학교 이아무개군, 아빠는 군인. 엄마는 대통령의 꿈을 가졌던 여인. 군인 남편 선택. 진급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히스테릭한 엄마가 되었습니다. 은석 군은 얌전. 엄마가 오페라를 좋아해서 미리 보고 와서 엄마에게 권하고 함께 관람할 정도의 가정적인 아이였습니다. 키는 163. 3까지 계속 자살. 결국 부모를 11토막으로 살인하게 되었습니다. 의 성장일기가 책으로 나왔는데 제목이 이것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을 맡기면 성령을 받아도 능력이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0일을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이 충분히 자기반성과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주 만나고 식사하면서 제자들의 사과의 진정성을 알게 되자 그제야 사역을 맡깁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은 일을 맡기시기 전에 수장 격인 베드로에게 세 차례 같은 이름을 사용하십니다.

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왜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느닷없이 3년 전의 본명일까요? ‘베드로 반석입니다. ‘시몬은 조약돌입니다. 베드로의 반석 같은 고백에 교회를 세운다고 했는데 그 반석은 어떤 반석? 깨어진 반석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는 깨어지기 쉬운 시몬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날마다 믿음을 키워 제대로 된 반석이 되거라!” 그런 마음으로 시몬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또한 일을 맡기시기 전에 사랑을 확인합니다.

15,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7,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지 않는 사랑 고백은 면피(免避)용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자기성찰과 진정한 사과라는 자기반성이 결여되었기에 믿음이 제자리에서 공회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물으셨습니다. 세 번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 번을 부인한 것에 대해 상기시키는 부분도 있고 히브리어법에서 세 번은 완전 강조법입니다.  18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다시 이르노니. 그러니까 거듭 물으신 것은 베드로의 주님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거냐? 나를 놓지 않을거냐? 나를 배신하지 않을거냐? 베드로는 처음 두 번은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5, 16)

 

그러다 세 번째 다시 물으시니 뭔가 주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17,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은 이처럼 사랑을 확인하신 다음에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예수님은 3년을 함께 하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을 만들었고 40일 동안 함께 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헌신은 위험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어떤 사랑을 기대하십니까?

끝까지의 사랑입니다. 일편단심의 사랑입니다(13:1.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이처럼 사랑입니다.(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희생의 사랑입니다.

아직 사랑입니다.(5:8, 아직 죄인되었을 때.)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목숨을 건 사랑입니다. 그건 이익과 관계없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이런 사랑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음에는 도망가지 말고 주님에 대한 이런 사랑으로 양들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양들도 그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특별 관리대상인 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페르시아, 중국, 인도까지 복음을 전했다 합니다. 인도에는 도마교회가 있고 예배당 안에 도마의 손가락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살과 뼈를 만졌다는 바로 그 손가락입니다.(믿거나 말거나!) 마지막 남긴 말은 주님이시여! 내가 당신을 예배하나이다!”

나다나엘 바돌로매는 예수님의 제자로 성실하게 사역을 하다 칼로 살갗을 벗겨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시체는 자루에 놓은 후 바다에 던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자기성찰과 사과가 만들어 낸 인물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님 사랑하기를 죽기까지 했습니다. 코로나시대는 교인들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제자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은 아시잖아요?” 그리 고백을 해보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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