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이후 40일이 준 선물(1)
마태복음 27장 55, 56절
서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40일을 지내다 천국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왜 속히 승천하지 않고 지상에 40일이나 남아 미적되셨을까.
-신령한 영체가 되었으니 육체의 세상에 남을 수가 없지요. 마리아가 반가워서 만지려 하니 “나를 붙들지 마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다”(요20:17) 만류했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왜 여기에 계시나요?
-예수님은 오랫동안 하늘나라에 선재하셨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나라인지 아십니다.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40일이나 미련이라도 남은 것처럼 지체하셨을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구속에 필요한 대가를 완벽하게 다 치렀다, 는 선언입니다. 그러면 할 일이 이젠 없는 거지요! 왜 한 달이나 머물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을 남아있는 것은 100% 제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영광의 자리에 섰지만 제자들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입니다. 그대로 두고 훌쩍 떠나면 사도 노릇은커녕 신자노릇도 못합니다. 이들은 배신으로 인해 수치와 후회로 넉다운 상태입니다. 그냥 두면 자아가 상한 집단이 됩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비판하고 공격하고 자신감 결여로 이상한 종교 게토집단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이후 40일 동안은 오직 제자들만을 위해 시간을 보냈고 하나하나 치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부활 이후 제자들을 상대로 애프터서비스(after service)를 하신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여인들은 어떤 상처들을 받았을까요? 여인들의 면면을 봅시다.
55절,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 이들은 3년을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사랑했습니다. 많은 추억거리를 공유합니다. 여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오직 삶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루 이틀 만에 천국으로 가버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떠나간 빈둥지가 너무 큽니다. 그건 곧 상처입니다. 남편이 떠나고 아들이 떠나가 버린 심정입니다.
저들은 돌아갈래야 돌아갈 곳이 없는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허전함과 상처가 있으면 결국은 서로 애증만 쌓여갑니다. 상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6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여인입니다(막 16:9) 왜 귀신에 들렸나? 유대 전승에, 그녀는 빼어난 가버나움 미인이었답니다.
로마가 가버나움을 점령하면서 사령관이 술좌석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수청 들라는 것이지요. 수청 들지 않으면 마을 여자들을 욕보이겠다는 것입니다. 랍비들과 마을 원로들이 의논하다 막달라 마리아가 희생 제물로 선택됩니다.
이에 분노한 열심당들이 사령관을 화살로 쏘아죽입니다. 마을은 쑥밭이 되고 정치적 타협으로 마리아의 애인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마리아를 두 번 죽인거지요! 이방인에게 몸을 더럽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누명 씌워죽이고… 그래서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낮에는 방안에만 박혀 있다가 밤만 되면 애인을 찾아 울면서 돌아다닙니다. 폐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귀신 걸린 여인으로 알려집니다.
마침 예수님의 사역본부가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고쳐주었습니다. 여인의 한(恨)을 풀어준 것입니다. 그때부터 여인은 죽자 사자 예수님을 따라다닙니다. 다시 인간성을 회복해 주어서 감사하고 애인에게 갔던 사랑의 감정이 예수님에게로 갑니다. 혹시라도 주님을 떠나면 귀신이 다시 돌아올까 봐 바짝 그 옆에서 따르며 살아온 것입니다.
56절,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작은 야고보, 열심당원 출신이라 합니다. 열심당원은 유대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단도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언제 신분이 노출되어 십자가에서 처형당할지 모릅니다. 그 아들이 예수님을 만나 제자로 살아갑니다. 어머니로서 한시름 놓습니다. 그래서 아들뒷바라지도 할 겸 예수님의 추종자가 됩니다.
56절,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자매간으로 이모입니다. 예수님에게 두 아들을 위해 좌편과 우편의 자리를 요구했던 극성엄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은 했지만 어떤 제국도 만들지 못하고 떠났으니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당연히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님은 마리아를 보며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했으니 십자가 아래의 여인들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의 특징이 뭐냐? 예수님이 없으면 삶의 무의미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람 대접을 받아보았고 할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교훈과 기적들을 목격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자원봉사이지만 너무 행복했습니다. 귀신이 떠났고 아들은 예수님으로 마음을 잡아 칼을 버렸으며 두 아들은 제자그룹에서 베드로와 함께 선두그룹에 끼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55절,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난을 당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너무 안 되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33세의 나이로 엄마보다 먼저 죽은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우리 아들이 다시 단도를 드는 무장 열심당원으로 돌아갈까봐 겸겸 걱정되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렇게 가버리면 두 아들의 출세길은 끝났구나… 여인들은 십자가에서 축 늘어진 예수님을 허망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가슴을 쓸거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의 꿈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유대교의 뉴욕 회당의 랍비 쿠쉬너는 아들이 죽었을 때 “나는 삶의 상처를 입은 한 사람의 종교인이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이 여인들도 상처를 입은 신자들입니다.
이런 여인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부활하는 즉시 하늘나라가 좋다고 훌쩍 가버리면 여인들의 심정은 어찌되겠어요? 섭섭하고 야속하겠지요? 부활에 대해 실감이 나지 않겠지요? 우리는 허깨비를 본 것이 아닌가, 무엇에 홀렸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떤 심정들이 될까요?
-한(恨). 부활하시고 얼굴만 반짝 비추고 다음 날로 승천하셨다면 얼마나 마음이 허전하겠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남성제자들이 독점할 것이고 여인들은 주변에도 얼씬거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보냈다면 너무 속상해서 앞으로 제자그룹에서 더 이상 봉사는 못할 것입니다. 한(恨)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건 상처입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가 됩니다.
-폐쇄된 자아중심.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는데 그 분은 후딱 부활해서 혼자 올라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억압된 내면의 분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경우입니다. 두 아들을 좌우편에 부탁해 두었는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부활해서 후딱 달아나듯이 천국으로 가버립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살로메의 남편은 세베대입니다. 갈릴리에서 유력한 선주(船主)입니다. 두 아들은 갈릴리에서 나름 금수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떵떵거리고 삽니다. 그 두 아들을 불렀으면 명예롭고 돈벌이되는 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언니의 아들이니까 대놓고는 못하지만 마음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다만 억압되어 있을 뿐입니다.
-허위적인 체면의식.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습니다. 제자그룹과 교단을 이루고 공동체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 속에는 한이 있고 원망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 그런 척 합니다. 아프지 않는 척! 섭섭하지 않는 척! 허위적인 체면의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갈릴리 여인들의 이런 마음에는 병든 운전사가 핸들을 잡게 됩니다. 그러니 늘 불안합니다. 사고를 칩니다. 그러면서 남탓 합니다. 공동체에는 항상 말이 생기고 말썽이 생기고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성령을 받아도 문득문득 나오기에 건강한 공동체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자마자 40일을 함께 합니다. 40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 사이에 있었던 기간입니다. 보름이면 갈 수도 있는 거리를 하나님께서는 40년 걸리게 했습니다. 불순종도 원인이지만 사실은 교육시키는 기간입니다. 율법을 가르쳤고 국가로서 체계를 세웠습니다. 불평불만의 옛 세대를 정리하셨습니다.
40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주야로 금식하던 기간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주님은 공생애를 완수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시고 무덤에서 부활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만을, 여인들만을 위해 40일을 사용하십니다. 백성들에게 보였으면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실 텐데 영성체로 숨기시면서 제자들과는 40일을 함께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40일을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하면서 모자지간의 정을 새롭게 했습니다. 동생들과도 이때에 더욱 가까워졌지 않나, 생각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1호 부활목격자입니다. 주님이 부활한지도 모르고 무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천사가 어찌하여 우느냐?(요20:13) 예수님도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20:150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40일을 지내면서 더 이상 울지 않기로 작심했습니다.
작은 야고보 어머니. 40일을 함께 하면서 아들이 믿음이 단단해져서 다시는 열심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자공동체에 남아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 부활하신 예수님과 40일을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구세주 성격을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여기 이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것이 세상지위보다 낫다는 실감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40일이 준 선물입니다.
결론
베트남전쟁은 1960~1975년 15년 동안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 간에 벌인 전쟁입니다. 미군 5만 8220명이 전사했습니다. 한국은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32만 명이 넘는 전투 병력을 파병했고 5099명의 전사자를 포함해서 1만6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미군들의 경우, 본국에 돌아온 참전병사들은 각종 후유증에 시달려 병상생활을 했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 자살들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로 몇 시간 안에 본토로 돌아온 미군들은 전쟁 후유증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고 군함으로 수십 일에 걸쳐 귀국한 병사들은 훨씬 극복을 잘 했답니다. 그들은 배에서 자신들을 묵상하고 전쟁의 성격을 파악하고 본국에 적응할 힘을 키워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을 함께 하신 일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부활 즉시 승천해 버리면 너무 갑자기 되어버린 일이라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합니다. 그러나 얼른 떠나지 않고 부활 이후 40일을 함께 하면서 일종의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신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여인들과 40일을 함께 하면서 눈물을 닦으시며 주님과 기쁘게 이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따듯한 배려입니다. 그 여인들이 초대교회의 자양분이 됩니다.
부활절을 보내면서 부활의 주님의 만져주심 통해 건강한 자아상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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