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 순서와 설교]
내 손은 어떤 손입니까?
마태복음 27장 24~26절
서론
사람의 신체기관 중에 손은 참 묘한 지체입니다. 히브리대학교의 유발 하라리는 인간 영장류의 하나의 종(種)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던 동물’에 불과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 영장류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원인으로 언어소통, 정보교환, 집단화… 등을 말합니다. 이와 함께 손, 팔의 용도에 둡니다. 네 발로 걷던 인간이 직립보행에 성공함으로써 걷는데 사용되던 팔이 돌을 던지거나 신호를 보내거나 도구를 만드는 다양한 일들을 해냄으로 네 발로 걷는 다른 인간 영장류를 제압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에 전부 찬동할 수는 없지만 자유롭게 손을 사용함으로써 인류문명을 탁월하게 발전시켰다는 주장은 적합한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손은 영장류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만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도구도 만들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남을 위해 한없이 좋은 일을 하고 타인의 재산이나 생명에 결정적인 손상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질도 되고 도닥이는 위로의 손도 됩니다. 그러므로 내 손이 어떤 손인가에 따라서 인생의 가치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복되다, 하면서 그 첫 복으로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했습니다(128:2).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다는 것은 건강을 말하고 기술과 노동력을 말하고 노력한 것 이상의 대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손이 복된 것을 잡고 복된 것을 위해 손을 펴면 올해 우리가 복된 사람들! 복된 가정들! 복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손을 항상 살피면서 복걸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던 마지막 주간, 성경은 3인의 손을 기록합니다. 공익성을 외면한 무책임한 손, 배신자를 끝까지 붙들어주려 했던 손, 스승의 사랑을 외면하는 손! 올해 내 손은 어떤 손이 되어야 할까? 한 해 계속해서 내 손을 주시하면 축복의 손이 될 줄 믿습니다.
1. 빌라도의 손은 책임 회피의 손입니다.
빌라도는 지방의 행정장관입니다. 행정장관은 최소한 27세가 되어야 했기에 빌라도는 그 이상은 되었고 결혼한 사람입니다. 야전지휘관을 지낸 사람이기에 용맹도 패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처신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았고 아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꿈을 꾸었고 무죄한 사람이라 말했지만 빌라도는 평소 유대인들과 관계가 좋지 못해 폭동을 염려했고 예루살렘 상수도 건설을 성전 재정에서 충당했기에 사업이 중단될까봐 결국은 난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책임을 회피해 버립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닙니까? 자신의 감정이나 자존심 때문에 내 책임은 없다며 발뺌하는 내 모습은 없습니까? 올해 축복의 해로 살려면 더욱 더 책임 있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2. 유다의 손은 배신의 손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 3년을 함께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신임을 얻었겠습니까? 예수가 왕위에 오르면 회계 일을 오래 보았기에 재무장관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배신을 꿈꿉니다. 슬슬 재정에서 돈을 빼내다가 탄로날까봐 은30에 스승을 팔아넘깁니다. 황소가 남의 노예를 죽였을 때 배상하는 금액입니다(출 21:32). 유다의 손은 배신의 손! 탐욕의 손입니다.
인간 세상에 이런 손들이 많습니다. 배신의 손, 남을 배신하고 골탕 먹이고 사기 치고 그래서 거두어 드리는 그 돈을 세고 있는 손, 남을 곤경에 빠뜨리고 돈을 세고 있는 손, 남을 십자가에 매달려놓고 돈을 세고 있는 손… 이런 손들이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손은 희생과 용서의 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30년을 목수 일로 굳어진 노동의 손입니다. 생계를 책임지고 노동하던 군살 박힌 손입니다. 떳떳한 손이요 부끄러움 없는 손입니다. 30세 공생애생활에 그 손은 쉴 틈 없었습니다. 넘어진 자, 외로운 자, 죄지은 자, 병든 자 고치시고 일으켜 세우던 손입니다. 그 손아래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얻었고 일어섰습니다. 참 아름다운 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손은 못에 박혀 고통당했고 피 흘렸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남을 위해 사시더니 마지막 순간조차 죄인들을 위해 피 흘리신 희생의 손이었습니다.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며 만져보라 하십니다. 의심 많은 도마를 붙들어 주신 손입니다.
세 번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을 확인하시며 양들을 맡기십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며 사명과 책임을 주신 격려의 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아름다운 손! 구원의 손! 다시 기회를 주시려고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1490년 대, 그림에 소질이 있는 동네 친구가 있었는데 제비뽑기로 이긴 사람이 노동해서 친구의 그림공부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알브레이드는 친구가 노동해서 보낸 돈으로 도시에서 공부하여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알브레이드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친구에게 “프랜츠, 그동안 고마웠네. 이제 자네가 그림공부를 하게나"라고 약속을 지켰지만 프랜츠의 손은 노동으로 굳어져서 더 이상 붓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프랜츠의 집에 들린 알브레이드는 친구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고 즉석에서 스케치하여 완성한 손이 그 유명한 ‘기도하는 손’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손, 주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 없다“(요15:13)하셨는데 프랜츠의 손이 아름다운 손입니다.
올 한 해, 선(善)을 행하는 아름다운 손으로 살아갑시다! 연약한 이를 붙들어주고 우는 이들의 어깨를 도닥여주는 위로의 선한 손길로 살아서 크게 복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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