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닷컴] 타인의 책표지를 올려놓은 것이 '로봇'검색에 걸리는지 확인 될때까지 참고도서 표지게재는 중단합니다.
이에 대해 아시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새드(sad)에서 해피엔딩으로!
룻기 1장 19~22절
서론
2019년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1년을 사느라 고생들 많았습니다. 사는데 연연하다보니 지쳐서 정작 자신들에게 공을 들이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새해 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2020년은 내가 들어가서 살아야 할 땅이기에 나를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도닥일 것은 도닥여주고 반성하고 위로하는 자기 성찰 및 격려의 시간이 바로 오늘입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1850-1919)의 시에 ‘당신은 어느 쪽인가?’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죠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어요
죄인과 성자는 아니에요 좋은 이에게도 나쁜 점이 나쁜 이에게도 착한 구석이 있으니까.
부자와 가난뱅이도 아니죠. 재산을 평가하려면 몸과 마음도 건강한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뻐기면서 사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며
산다 하겠어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에요 흐르는 물처럼 살다 보면 저마다
웃을 때도 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잖아요
내가 말하는 두 부류란 짐을 덜어주는 사람과 짐을 지우는 사람입니다 (중략)
당신은 어느 쪽이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힘든 길을 가는 이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
인가요? 아니면 짐을 지우는 사람인가요? 남에게 당신 몫을 짐 지우고 걱정과 근심을
끼치는 사람인가요?(짐 지우는 사람이 스물이라면 짐 덜어주는 사람은 한 사람뿐!)
어때요? 나 때문에 누군가 힘이 들었나요? 내가 져야할 짐을 남에게 넘긴 것은 없나요? 잘 가는 사람, 한 마디 말로 넘어뜨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았던 한 해는 아닌가요? 아니면 남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 한 마디 말로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워주었던 한 해였던가요?
윌콕스의 말을 빌어 묻습니다. 당신은, 남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이었나요? 남에게 짐을 지우는 사람이었나요?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습니까?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19절, 그 두 사람이….
18절 나오미와 룻이고 고부(姑婦)지간입니다.
나오미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엘리멜렉의 부인입니다. 장로, 권사 직분 정도는 될 것 같아요!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믿음에 이상이 생겼음을 보여줍니다.
앞 장 사사기 21장 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자기 소견대로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자기 소견은 자기 결정권입니다. 뭔가 결정하는 데 하나님이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만 염려했지 믿음생활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두 직분자의 신앙 포기에 해당됩니다.
모압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 행진을 방해했으며 여인들을 보내서 부도덕과 무질서로 이스라엘을 망치려 했던 백성입니다. 모압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흐리게 하는 곳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그 민족과 상종하지 말라, 경고하셨습니다. 엘리멜렉이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주했다는 것은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계기판에 고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모압 여인과의 결혼을 금지합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23:3)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얻은 것은 교회 중직자 가정의 고장 난 영적계기판을 보여줍니다.
빌 하이벨스는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운전석에는 세 가지 계기판이 놓여 있다고 합니다.
*육체적 계기판-과로나 무리로 육체의 계기판은 계속 올라가다 터져 버립니다.
*영적 계기판-믿음이 떨어지다 영적인 면이 부실하게 된다면 믿음이 파산됩니다.
*감정적 계기판-사람의 감정은 어느 정도에서 터져 버리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엘리멜렉은 영적계기판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도 두 아들도 죽습니다. 인생의 다이얼을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세상과 맞춰버린 사람들의 말로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에게서는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기에 룻기는 고부의 문제, 효성이 지극한 룻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맞추었던 다이얼을 놓친 사람의 망가진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기 소견대로 살아버렸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주장, 자기관점… 그러기에 그들의 결정과 선택, 그들의 편든 곳에서는 하나님이 빠져버렸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평화,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상 신들과 상황, 돈과 재미와 편의주의, 힐링~ 힐링~ 에만 다이얼을 맞추었습니다. 좋은 소리가 나왔습니까? 나오미!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좋은 소리, 행복한 웃음소리가 나옵니까?
우리의 1년은 어떻습니까? 누구에게 다이얼을 맞췄나요? 부부간, 동료들 간, 성도간의 다이얼이 잘 맞았습니까? 아니면 지직거리는 해였습니까? 계획이 틀어져 지직~ 사업이 틀어져 지직~ 아이들이 틀어져 지직…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는데 국민들이 어찌 행복했겠습니까?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그래요! 새해를 출발하면서 얼마나 풍족하게 나갔습니까? 비록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꿈은 풍족했습니다. 회사 계획서도, 자녀들에게 대한 기대감도 풍족했습니다. 건강도 풍족했습니다. 그만큼 희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 해는 행복한 음악으로 가득 찰 줄 알았습니다. 잘 되는 한 해가 되리라 풍족한 기대감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많은 분들은 지금 나오미와 같은 고백으로 여기에 앉아있을 것입니다.
21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내게 비어… 인생이 탈탈 털렸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떠나버린 자리가 비었고 결혼까지 시켜서 집안이 풍성하기를 기대했는데 아버지의 뒤를 따라 훌렁 떠나버린 두 자식의 비어있는 자리는 얼마나 컸겠어요? 기가 막힌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바로 어느 해의 나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그제야 자리를 살펴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환경이 나빠서? 운이 나빠서? 모압의 경기가 나빠서? 아닙니다! 하나님과 다이얼을 맞추지 못하면서 잡음(雜音)이 나오고 인생이 망가져 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나오미는 상황 판단이 정확했습니다. 문제 해결은 진단이 확실해야 합니다. 의사도 병을 고치려면 진단이 정확해야 합니다. 중병인데 감기약 위장약만 준다면 문제는 갈수록 심각합니다.
엘리멜렉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가장(家長)으로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감으로만 가득 찼지, 그래서 처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만 했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려의 대상에 놓지 않았습니다. 모압 땅에서 살려면 사돈 덕분, 아들들은 처갓집 덕분을 기대했기에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았습니다. 나오미 역시 남편이 죽고, 아들들이 죽어가는 데에도 진단에 실패했습니다. 모두 죽게되었을 때야 바른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아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구나! 이 상황을 주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21절,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나오미’라는 히브리어는 ‘감미로운’ ‘은혜로운’ ‘사랑스러운’ 그 뜻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살았을 때 나오미의 인생은 감미로웠고 은혜로웠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행복한 아내였고 다복한 엄마였습니다. 행복한 권사(?)였습니다.
그녀가 돌아오자 베들레헴 여인들은 아주 귀향이 아니라 모압에서 성공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잠시 고향나들이를 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 희락, 즐거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행색에서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 것 같아요. 반색하면서도 나오미 정말 맞냐? 그리 물은 것입니다. 나오미가 답합니다.
20절,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당신네들이 알았던 행복한 여인 나오미는 이제 없다! 지난 세월의 마나님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나오미 권사는 이제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기에 나오미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으니 그리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냐?
20절, “…나를 마라라 부르라…”
마라…. 고통이라는 말로 인생이 쓰다, 는 심정 표현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동네여인들이 네가 진정 나오미냐? 라고 물어볼 만큼 초라한 몰골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스럽다는 나오미의 이름이 무색해진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 마음고생이 심해서 어쩌면 머리카락조차 하얗게 되어버려서 동네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혼자된 여인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이방여인을 며느리로 삼았다는 것 때문에 율법적으로도 눌렸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데 산목숨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늘 두려움과 불안으로 살았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아마 순식간에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고생을 하면 하루아침에 검은 머리가 온통 하얗게 되는 경우가 있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이 독약을 먹고 사형당할 때 순식간에 머리가 희고 얼굴에 주름이 짙어 노인 같았다고 전합니다.
2차대전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소식에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해버린 일본문학가도 있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자 스트레스로 20여일 몸살을 앓다 일어났는데 반백발이 되어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그는 30대 중반입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현상을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 합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혁명이 일어났고, 왕비에게 사형 선고와 함께 투옥됩니다. 이 감옥은 대혁명 당시 수천 명의 사형수가 수감됐다 죽은 곳이라 ‘죽음의 집’이라 불렸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스트레스로 왕비는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백발이 됩니다. 이후, 이런 현상을 ‘마리 앙투아네트 신드롬’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명확한 이유 없이 며칠, 몇 달 사이에 갑자기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나오미는 이렇게 되물었을까요, 머리가 왜 이리 흰 머리 된 줄 아는가?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한 몰골이 된 줄 아는가? 그건 21절,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그 결과로, 앞부분 “내가 풍족하게 나갔다가 이젠 빈 손으로 돌아왔다!”
처절한 참회록이자 인생 실패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느 해보다 어려운 일을 겪은 분들에게는 오늘 제 설교가, 나오미의 이야기가 고통에 고통을 얹어주는 설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고통이 어찌 우리 죄 때문만이며, 내 잘못으로만 오는 것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남아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오늘의 이야기는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해당되고 기준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자기 생각, 자기 마음, 하나님 편이 아니라 사람 편으로 움직였던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오미의 인생은 슬픈 종말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나아갑니다. 비록 빈손이지만 다시 하나님에게로 다이얼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2장 12절!
12절,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응답이고 축복의 보증입니다.
13절,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나오미의 인생은 이방인 며느리와 살아가면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왔습니다. 꼴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계속 다이얼을 맞추고 율법과 다이얼을 맞춥니다. 그러자 제대로 소리가 들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율법에 ‘계대결혼법’ 고엘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소생이 없이 죽으면 형제가 아니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결혼해서 대를 잇게 해준다는 사회법입니다. 이 법에 근거해서 룻은 베들레헴의 유력한 남자 보아스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데 그 아이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노래합니다. 4장 14절, 15절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여인들의 노래는 결국은 나오미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녀의 입에서 죽음의 소리가 아니라 생산의 소리가, 탄식의 소리가 아니라 행복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악기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축복 받은 여인이 됩니다.
룻기는 단순히 효부(孝婦)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다이얼을 돌려버린 사람의 비극, 다시 하나님에게 다이얼을 맞춘 사람의 회복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에게 다이얼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살길 주시고 지혜 주시고 용서와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현재를 소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나태주 시인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시에서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을 말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중략)
아내는 그 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은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하루의 저녁, 1년의 마지막 주간은 내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세상에 맞추었던 다이얼을 돌려 하나님께로 맞추는 시간입니다.
한번 깨진 항아리도 돌아가고 네 번 깨진 항아리도 주님에게 다이얼을 맞춘다면 멈추었던 아름다운 음악들이 흘러나오며 우리 인생은 새드엔딩(sad ending)이 아니라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1년 동안도 제 설교를 경청해 주시고 들은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주신 성도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사랑의 복원사(요한복음 13:34, 35) (2) | 2023.11.03 |
---|---|
어떤 춤을 추어야 할까?(요한복음 12:1~8, 12, 13) (1) | 2023.11.03 |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누가복음 2:8~14) (3) | 2023.10.31 |
구유 탄생이 주는 의미(누가복음 2:1~7) (1) | 2023.10.31 |
하나님의 약속과 열심(이사야 9:1~7) (1) | 2023.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