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은 왜 망했는가?
창세기 12장 7~9절
서론
지난 주간에 평서노회 선교대회 차 선교위원장님과 함께 몽골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별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기에 몽골이 좋다, 나쁘다, 라고 설교 자리에서 말하기는 그래요. 대신에 몽골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통해 역사가 주는 교훈은 받고 돌아왔습니다.
몽골제국은 1206년 태무진이라는 징키스칸이 건국했습니다. 징기스칸과 그의 몽골제국은 10만 명을 이끌고 세계정복전쟁에 나섭니다. 손자 쿠빌라이 칸이 정복한 땅까지 합하면 중국 대륙, 러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인도, 페르샤(이란), 헝가리까지 진격합니다. 40여 국을 정복했으니 나폴레옹 알렉산더보다 대단합니다. 물론 알렉산더가 32세로 일찍 요절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알렉산더가 정복 왕이 되었겠지요!
몽골제국은 1231년 고려를 정복하고 100여년 가까이 고려를 복속시키는데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받은 곳이 제주도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몽골의 피가 많이 섞여있습니다. 제 모습 보면 몽골인이 보입니다. 특히 눈매주위가 틀림없는 몽골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몽골까지 가는 비행기가 3시간 30분,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비행기로 초이 발산까지 1시간 반입니다. 자동차로는 12시간입니다. 비행기로 가도 그렇게 걸리는데 제주도까지 기마병들이 앞장섰지만 보병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먼 길을 정복했다니, 굉장한 민족이요 징기스칸은 영웅 중의 영웅 아닙니까? 한 번도 남의 땅을 공격도 정복도 못했으면서도 약체국가를 숨기기 위해 남의 땅을 침범한 적이 없는, 흰옷 즐겨 입는 평화의 나라로 포장하는 한국에 비하면 징기스칸이 이룬 몽골제국은 역사에 길이 빛날 제국입니다.
이렇게도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1368년에 망합니다. 아니,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정복했던 몽골이 200년도 못 채우고 162년 만에 망합니까? 로마제국, 신라 천년, 조선도 500년, 이스라엘 왕국도 464년 지탱했는데 어찌 영웅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겨우 160년 만에 망했을까요?
저는 몽골제국의 역사나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에는 배울 점이 있습니다. 흥(興)한 역사는 흥한 대로 교훈이 있고 망(亡)한 역사조차도 나름대로 배울 바가 있습니다. 오늘 몽골제국을 설교하는 것은 그들의 망함을 통해 한국교회가, 아니 대한민국이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들의 망함을 반면교사로 삼아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점입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몽골제국의 멸망도 원인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론이기에 정당한 역사성이 있는 원인 규명은 아닙니다.
몽골제국이 망한 것은, 야성(野性)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유목민의 생활은 가혹한 편입니다. 초원이라고 하면 초목과 바람, 끝없이 높은 하늘을 떠올리겠지만 그런 기후는 1년 중 짧은 여름에 불과하며 남은 시기는 혹독한 추위에 갇힙니다. ‘눈에 방목된 소의 머리가 얼어서 깨지거나’ ‘쇠꼬리가 얼어붙어서 뚝 잘려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유목민들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성장합니다.
몽골인들은 10세에 성인식을 합니다. 눈보라가 치는 왕복 80K 길, 대략 우리교회(김포공항)에서 천안까지의 거리, 영하 40도가 넘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아버지는 아들을 내몹니다. 살아 돌아오면 내 아들이고 죽으면 자식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판단력과 단호한 행동력이 없으면 유목 생활을 해나갈 수 없기에 이렇게 키워낸 아들은 당연히 용사가 됩니다. 그들은 빠른 말, 강한 화살, 기습적인 공격으로 강력한 용사들이 됩니다. 용사들은 기마병이 되어 민첩함으로 10만 명의 군대가 100만 명 200만 명을 상대로 무적의 군대가 됩니다.
그러나 땅을 정복하고 전리품이 많으면서 야성(野性)은 사라집니다. 가진 것이 많으니까 욕심이 생기고 행동이 둔해지고 가진 것을 지키려다 보니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친 야성은 사라집니다. 장미꽃이 가시가 보기 싫다고 자르거나 선인장이 가시를 잘라버리면 장미는 쉬 시들어 버리고 선인장은 볼품없는 모습으로 말라갑니다.
야성(野性)을 잃은 몽골인들은 다음 단계가 안일함입니다. 유목민은 정착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땅을 중심으로 정착하지 않고 풀 따라 꼴 찾아 물을 찾아 계속 이동합니다. 그래서 유목민입니다. 유목민들은 소유가 간편합니다, 한 곳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언제라도 풀을 찾아 떠나려면 집에서 살 수가 없고 정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게르’라는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몽골인들의 주택문화는 게르가 아닙니다. 사방팔방에서 볼 수 있는 게르는 관광 상품이고 거의 주택수준입니다. 그들의 게르-천막은 30분이면 세우고 또 정리해서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편한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살림살이가 단출하니 소유도 없고 탐욕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으로 여인들을 얻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전쟁터에 다닐 수가 없습니다. 서서히 마을이 형성되고 주택을 건축했습니다. 고대광실 으리으리한 집들입니다.
그러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생명이 아까웠습니다. 생명이 아까우니 전투력이 상실됩니다. 목숨을 던지려는 자들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안일함에 빠졌고 약체(弱體) 군대가 되었습니다. 용맹성이 빠진 군대는 더 이상 정복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서서히 망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몽골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투에 나서면 항상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용장이 있었습니다. 전쟁터에 나선 왕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왕은 그의 용기가 가상해서 불렀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전쟁터에서 앞장서느냐?”
그제야 병사는 자기의 형편을 말합니다.
“폐하, 소인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어차피 죽을 몸, 조국을 위해 폐하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는 영광을 얻고 싶습니다!”
왕은 그의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가상도 해서 의원을 불러 돌봐주도록 했습니다. 최고의 치료를 받은 병사는 병이 나았습니다. 왕은 건강해진 그에게 장군직을 하사했습니다. 문제는 다음부터입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충성해야 하는데 전쟁터에서 자꾸 뒤꽁무니만 칩니다. 왕이 괘씸한 생각이 들어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너는 병이 들었을 때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을 서더니만 지금은 건강해졌는데 어찌 앞장서지를 않는 것이냐?”
장군은 무릎을 꿇으며 울먹였습니다.
“목숨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죽여주옵소서, 폐하!”
몽골의 장군들이 그랬습니다. 소유가 많으니 전쟁이 싫어지고 가진 것이 많으니 출정을 꺼렸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후방에서만 맴 돌았습니다.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는 저하되었고 천하무적의 몽골군은 무너진 것입니다.
또한, 몽골제국이 망한 것은 단명(短命)으로 노련한 지혜들이 축적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몽골 국민은 312만 명 정도, 절반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살고 나머지는 세 개의 주요도시에 흩어져 있습니다, 3백만 인구 중에서 29세까지가 60%이고 64세 이상이 10%입니다. 나머지 30%는 청장년 세대입니다.
이런 인구 비율은 800년 전인 그때도 거의 비슷했을 것입니다. 일찍 조기사망해서 국가에 원로들이, 집안에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단명했을까요? 몽골인들의 식문화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채소와 과일들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빵과 소나 양고기가 주식입니다. 널려있는 것이 양(羊)이고 소입니다. 채소는 왜 먹지 않는가? 1년에 춥지 않는 계절은 3,4개월 정도, 그래서 채소가 부족하지만, 양과 소가 풀을 뜯어먹고 그 양고기 먹고 있으니 채소는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가 주식이다 보니 단명(短命)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로들이 없으니, 전투만 할 줄 알지 100년 대계의 계획이 없고 청사진이 없습니다. 젊은 병사들은 밥만 먹으면 전투하러 나갔습니다. 문화가 없고 노하우가 없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으니 단명 국가로 끝나는 것은 정해진 순서입니다.
다음으로, 정복전쟁은 잘했지만 정복한 땅에 대한 내치(內治)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작은 인구로 멀리 헝가리까지 정복했습니다. 로마제국은 총독제도를 통해 정복지를 잘 관리했습니다. 로마제국에 저항하지 않는 한 고유민족 특성의 문화와 관습과 종교를 너그럽게 모두 인정했습니다. 관용정책을 베푼 것입니다.
로마는 법(法)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그들이 정복지의 통치자로 관리자로 파견되어 일사분란하게 로마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몽골도 나름대로 여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샤머니즘 신봉자였던 징기스칸은 그 당시 군주들에게는 보기 드물게 신앙의 자유를 주는 관용도 베풉니다. 부인이 포로로 붙잡혀서 남의 자식을 출생한 아이를 아들로 입적할 만큼 너그럽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부족은 강하게 탄압했지만 복종한 부족들은 차별 없이 대하고 평등하게 지낼 수 있게 했습니다.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에서는 어떤 범죄도 일어나지 않도록, 강한 법을 만들어 이를 지키게 했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더 활발해지도록 실크로드도 정비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단시일에 정복전쟁을 치르다보니 전투에만 이겼지 광활한 정복지를 온전한 몽골화로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앞문은 열어놓아 초신자들은 오는데 뒷문을 막지 못해 계속 빠져나가는 교회처럼 몽골제국은, 40개 국가의 정복지 등을 관리하려다보니 힘이 분산되고 군대가 분산되어 정작 몽골 자체를 방어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같은 몽골부족 중에서도 계속 반역을 일으키면서 몽골은 자중지란으로 힘이 빠져버리고 맙니다.
칭기즈칸은 위대한 장군이자 뛰어난 전략가인 수부타이와 함께 중앙아시아를 휩쓴 뒤, 1227년경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죽기 전 여러 속국과 본토까지 합한 대영토를 아들들과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후에는 네 개의 한국(칸국)으로 나뉘고 손자 쿠빌라이칸은 1271년에 원나라를 세우고 8년 뒤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몽골제국은 200년도 채우지 못하고 망한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뉴욕 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이요 <포춘>에서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CEO들이 뽑은 밀레니엄 최고의 리더’요, <워싱턴 포스트>에서 선정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역사에서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재됩니다.
그만큼 위대한 영웅이고 그가 이룬 제국은 거대했지만, 제국이 파괴한 것은 그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징기스칸을 ‘무자비한 파괴자, 정복자’라는 악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몽골제국은 왜 망했으며 징기스칸은 그가 이룬 제국보다 그가 파괴한 것이 더 많다는 혹독한 비판을 왜 받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유목민은 유목민처럼 살라!”
징기스칸은 이걸 놓치고 만 것입니다. 유목민은 소유가 많아서는 안 됩니다. 한 곳에 정착해서도 안 되고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풀을 찾아 물을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의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전투는 더 안 됩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어야 합니다. 무기를 들어야 한다면 공격이 아니라 방어용이고 수호하는 무기입니다.
징기스칸은 정복의 무기를 들었습니다. 유목민들을 병사로 만들고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한 것이 아니라 정복에 대한 쾌감과 피 냄새에 굶주린 살륙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찬사에도 불구하고 몽골제국은 200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는 냉혹한 학살자 파괴자라는 악명도 얻습니다.
“유목민은 유목민답게 살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라! 그래서 자기 신분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야 하는 유목민의 삶을 팽개치고 단풍잎을 먹고 살려고 남의 삶을 살았던 몽골제국은 오늘 GDP 3500불이라는 초라한 후진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아브라함이라는 유목민이 나옵니다. 그는 끝까지 유목민으로 남았습니다.
9절, 남방으로 이동했더라.
계속적인 이동입니다. 그런 이동을 위해 8절, 장막을 치니… 천막, 게르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도 318명이 되는 사병들이 있었습니다(창14:14). 그러나 그 사병은 정복을 위한 병사들이 아니라 가족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예비군입니다. 평소에는 목동으로, 목자로 일하다가 누군가 쳐들어오면 군사로 활약하는 향토예비군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만들어 예배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그는 손해를 보면 보았지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3대 경영대학원에 속하는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앤테이크>,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그런 성공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끝까지 목자의 신분을 지켜가며 유목민의 지팡이 하나 들고 살았지만 그의 나라와 자손은 3,500년 동안이나 건재하며 세계 곳곳에 유랑민으로 살면서도 노벨상의 상당수를 차지할 만큼 세계에 공헌하는 민족으로 혈통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목민은 유목민답게 살라”는 철칙을 지켜낸 사람과 지켜내지 못한 사람의 비교되는 생애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여기에서 ‘우리’를 말함은 크게는 대한민국이요 한국교회요 좁게는 우리 늘빛교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 때는 똘똘 뭉쳤습니다. 동포의식이 강했습니다. 먹고 살만하다 보니 서로 싸우고 게으르고 귀찮아하고 ‘3D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라가 흥(興)하겠습니까, 기울어지겠습니까? 우리는 가난은 극복했지만 부(富)함은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나그네입니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짐들을 줄여야 하고 소유를 줄여야 하고 명예들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유목민들인 우리가 징기스칸처럼 유목민을 버리고 정복전쟁에 나섰고 경쟁사회에서 아귀(餓鬼)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흥하겠습니까, 기울어지겠습니까?
유목민은 유목민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신자는 신자답게! 그러한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처럼 영원하다는 것을 몽골제국과 이스라엘 역사는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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