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염려를 계속하되, 주님께 맡기라(베드로전서 5: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10. 12.
반응형

 

염려를 계속하되, 주님께 맡기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서론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1위가 스트레스(stress)라는 단어입니다(2019년). 그만큼 한국인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이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원인이 되어 발병하거나 관계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다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을 진보시킵니다. 그러기에 스트레스는 억지로 없애려 하면 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잘 관리하면 좋은 스트레스로 삶을 향상시킵니다

 

스트레스의 중심에 염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염려에 대해 내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그날의 수고는 그 날로 끝내라(6:34) 하십니다. 그래서 누구는 성경에 염려라는 단어가 365회 나온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1 365일 매일매일 당일의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의 속성은 모기와 파리 같아서 쫓아도 날아오고 쫓아도 날아옵니다. 모기, 파리가 치명적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밤새 잠 설치게 괴롭히는 것처럼 헛된 염려는 기쁨과 평안에 타격을 주는 과 같습니다. 잽도 자꾸 맞으면 힘 빠집니다. 그러기에 작은 염려들을 잘 처리하지 못해 어렵게 쌓아올린 믿음들을 잃어버리는 손해를 막아야 합니다.

정의:염려는 무엇일까요?

보험회사에서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건강문제, 경제문제, 노후문제 순으로 대답했습니다. 염려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심신 나약자들, 소심증 성격에만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상적인 상황이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모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분들이 나약한 사람들입니까?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영웅도 두려웠다는 것은 염려는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종의 정신질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삶의 무거운 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 베드로도 염려하지 말라 바울도 빌립보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합니다. 그만큼 염려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일상적인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염려는 마음을 놓지 못함’ ‘걱정함입니다. 염려는 본래 목을 조르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성경적 의미로는 두 마음으로 나뉘는 것”, 분열하다, 찢어지다’, 결국 염려는 인간의 마음을 찢어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염려라는 단어 자체는 일어나는 상황보다 마음의 상태 쪽에 더 큰 비중이 있습니다. 실제 일어나지도 않는 상황인데 지레 걱정하는 것-지나친 해석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오는 두 마음을 염려라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에게도 염려는 신앙 때문에 발생하는 두려움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공직에서 쫓겨났고 추방당했습니다. 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순교까지 각오해야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부모들은? 배교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었습니다. 염려는 번식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한번 염려하기 시작하면 계속 자랍니다. 작은 염려가 큰 염려가 되고 나중에는 염려라는 바위에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쉽니다. 그래서 몸에도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교인들에게 베드로는 염려를 맡기라고 합니다. 믿음이 좋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염려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위협할 만큼 염려는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에게는 대부분 종교적인 것보다는 생활적인 염려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본다면 지금 우리의 염려는 그야말로 걱정도 팔자다!” 수준입니다. 우리는 그런 수준에서도 그 염려들을 놓지 못하고 염려에 끌려다니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단:염려는 왜 생길까요?

염려는 선천적으로 심신의 나약한 사람들, 예민한 사람에게 옵니다. 신경성 질환입니다. 집을 나올 때 가스 불 껐던가?’에서부터 목에 멍울 하나만 잡혀도 암()이겠거니 착각하고 울고불고 합니다. 너무 소심하고 예민해서 항상 마음을 놓고 살지 못합니다.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염려하는 쥐가 있었습니다. 마법사가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된 쥐는 개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개로 변신시켜주니 호랑이가 무서워졌습니다. 호랑이로 변신시켜 주었더니 사냥꾼이 무섭습니다. 마법사가 말했습니다.

다시 쥐가 되어라! 쥐의 심장밖에 가질 수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매사에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인간을 꾸짖고 있는 인디언 설화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은 눈앞에 발생하는 염려 때문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으로 염려합니다. 쥐의 심장을 가진 이런 사람들은 평생 염려를 놓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 생기고 자살까지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 키울 수 있느냐?”

 

염려하지 말라! 목석(木石)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염려 중심의 삶을 살지 말라! 염려로 에너지를 뺏기지 말라! 염려로 자기를 해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지나쳐서 하나님에게서 분리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잘못된 정보에서도 옵니다. 인터넷에서 각종 의학상식을 찾아냅니다. 거기에 지금의 건강 상태를 대입해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결론 내리고 죽네 사네! 염려합니다.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면서 생겨나는 것이 건강염려증입니다.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렸다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하는 상태입니다. 대체로 꼼꼼하고, 고집이 센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주위에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 의학 관련 책, 매체 등을 통해서 의학지식을 얻으며 자신의 신체적 증세나 건강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식은땀, 기침, 체한 것 등 가벼운 증세를 확대해석하여 악성종양, 심장병 등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며, 이로 인해 불안하고 공포심을 갖습니다. 스스로 의학적 지식으로, 검사결과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오진이거나 심각한 질병이라 의사가 사실을 숨긴다, 짐작합니다. 건강염려증에 걸리면 쉽게 염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염려는 상황을 과장되게 함으로 옵니다.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언제나 확대하며 과장합니다. 상상에 상상을 더합니다. 그래서 염려에 묻혀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를 현미경으로 보게 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문제가 엄청 크게 보입니다.

 

초대교인들에게 당장 자식들이 붙들려 갈 것 같고 자기들이 고문당할 것 같고 순교할 것 같고 자녀들은 모두 고아로 살아갈 것 같고 이런 상황들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문제는 하나님을 안 보이게 만듭니다. 불신자들처럼 우왕좌왕하고 염려가 믿음을 먹어버립니다.

 

사탄은 언제나 현실의 위기를 과장합니다. 심리적으로 약한 사람들, 예민한 사람들, 항상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보다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확대합니다. 눈앞의 확대된 거짓문제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사탄은 더욱 신이 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 자주 접근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을 잃게 만듭니다.

 

염려는 욕심에서부터 옵니다. 욕심은 자기중심적인 얕은 믿음층을 형성합니다. 그러니 상황에 대한 지구력(持久力)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합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에 대해 지나친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남들보다 앞서고자 하는 일에 열심하다 보면 염려가 됩니다. 남의 자식과 비교하다보면 그것도 걱정이 되고 근심거리가 됩니다.

여기서 염려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으로 지나친 근심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 쪽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맡기지 못하고 내 마음이 왔다 갔다 나뉘는 것이 염려입니다. 물질적인 문제 때문에 마음이 분열되어 영적인 문제를 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내가 붙들고 있을 때 염려는 나를 한없이 나약하게 비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늘 염려가 있기에 평안도 기쁨도 없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사단에게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것이 염려가 주는 해악성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염려가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염려 30%,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염려 22%,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염려 4%, 나머지 걱정의 4%만이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결국 96%의 쓸데없는 염려 때문에 인생의 기쁨을 쏟아버리며 살다가는 것입니다.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이런 경우를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라 합니다. 차라리 모르고 살면 넘어갈 문제도 아는 게 많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분들, 아는 것이 많은 분들, 시간 많은 분들이 더 염려합니다. 남들이 보면 신세가 편한 염려입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염려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은 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치료:염려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염려에 대한 바른 해석을 하십시오. 무엇이 염려이고 무엇이 고민인가, 그걸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생각하고 고민하는 삶이 아니면 실수하게 되고 자기성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헛된 염려인가, 문제를 잘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인가, 그걸 구분하고 잘 판단해야 합니다.

 

염려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도 되고 사탄이 던져주는 미끼도 됩니다. 염려를 대하는 생각과 관점에 따라 행복도 되고 불행이 됩니다. 거름이 잘 썩으면 약이 되지만 썩지 않으면 나무를 죽이는 것처럼 염려를 잘 활용하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어차피 염려와는 벗으로 살아갑니다. 그럴 바에는 염려를 선용하면서 성장의 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질없는 염려를 주님께 버리는 훈련을 하도록 합시다. 염려는 상당히 유해성이 있습니다. 염려를 키우면 우울증에 걸리고 우울증은 인생을 어둔 색으로 칠하게 만듭니다. 염려를 작게 모으세요. 염려를 자꾸 털어내세요! 남은 부분은 하나님에게 맡기십시오.

 

맡겨 버리라! 명령어로 던져버리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던질까요? 하나님에게 던지던지, 세상에 던지던지 끌어안고 끙끙거리다 쓰러지지 말고 던져버리세요! 세상으로 던지면 돌아옵니다. 술 먹고 망각에 던지면, 취미생활로 던지면 집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주님에게 던지세요!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고하시리라- 권고(勸告) 돌보다”, “관심을 갖다”, 하나님께서 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는데요.

 

이 단어를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염려가 그에게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염려를 맡기면 염려는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염려가 염려가 아닙니다. 그 분은 나의 모든 생애를 알고 계시니까! 일어날 일과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아시기에 염려가 하나님에게 가면 그것은 지나가는 하찮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어떤 상담자가 목사에게 찾아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다음 날 그가 전화를 걸어 감사를 전했습니다. “목사님, 말하고 났더니 시원합니다. 오랜만에 잠을 잘 잤습니다.” 그랬더니, 목사가 전화를 끊고 나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못 잤는데 이것이 인간의 약함입니다. 인간은 권고해 줄 능력이 없습니다. 함께 걱정해줄 뿐입니다. 그러기에 목사가 염려가 가장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염려 없이 사는 것은 던지는 법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이것 못하면 볼링을 통해 푼답니다! 염려-하나님에게 맡기는 법을 훈련하십시오.

 

염려를 불러들이는 상태와 환경을 정리하세요! 똥파리는 똥을 찾아왔습니다. 똥이 없으면 오지 않습니다. 염려를 불러 모으는 상태나 환경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염려는 왜 생길까요? 하는 것들을 반대상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를 쫓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태나 상황을 없애지 않고 쫓으면 밀물처럼 다시 찾아옵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염려는 평생을 찾아오고 달라붙습니다. 원인을 잘 살피고 제거해야 합니다.

 

간구와 기도로 나가세요.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염려를 중단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 걱정이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기도' '간구'입니다. “기도는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내며 간구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감사함으로라는 양념을 치라고 합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 거룩한 영이 임재할 것이며 거룩한 영이 임재할 때 우리 마음은 평안과 평화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염려는 저절로 물러가고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반복되면 하찮은 염려는 하지도 않는 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결론

조이현씨는 염려는 이제 그만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오랜 전에 슬픔은 이제 그만이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책을 써야할까요? 염려를 버린다고 버려지고 슬픔을 잊는다고 잊어지나요? 그건 평생 모기떼처럼 파리떼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텐데요!

염려는 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성격처럼 평생 같이 가야 합니다. 그걸 줄이고, 감당할 수 있는 내성을 키우고, 너무 무거우면 주님에게 넘기고 염려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염려 중에 있는 이웃들에 염려에 공감하면서 함께 하면 그게 우리를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고난이 넘친 것처럼 위로에도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고후1:4,5). 우리의 염려가 있어 오히려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위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일의 것까지 걱정하지 말고 오늘의 염려만 하고 내일의 염려는 내일에 맡깁시다! 그러면 염려의 분량을 줄이게 되고 염려를 이기는 내성(耐性)이 강해집니다. 염려에서 오히려 믿음을 키우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