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 하는 성질 죽이기
야고보서 3장 5~10절
서론
영국의 저널리스트 헨리 페얼리는 <현대인의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라는 책에서 “우리는 지금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 말합니다. 인생에 대해 분노, 운명에 대해 분노, 세상에 대해 분노, 모든 사람들에 대해 분노, 자신에 분노합니다.
문제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입니다. 옛날에는 화가 나도 생각하면서 분노하고 때와 장소를 잘 가려가면서 표출을 했는데 요즘은 욱! 하는 성질로 드러내기에 예방도 힘들고 걷잡을 수도 없기에 그 파장이 커지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다고 욱~ 하는 마음에 살인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욱~ 하는 마음에 살인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욱~ 하는 그 성질로 인간관계가 망가집니다.
그렇습니다! ‘욱’ 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분노 조절이 안 돼 자주 과도하게 표출하는 증상을 ‘분노조절장애’라 부릅니다. ‘간헐적 폭발장애’입니다. 부정적인 결과가 예측되는데도 분노를 반복적으로 과하게 분출할 때 분노조절장애라 진단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3년 4934명으로 5년 사이 32.6%나 증가했습니다. 분노조절장애가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양처럼 순하게만 살고 있을까요? 모세, 사울 왕, 심지어는 다윗
신약에 들어오면 베드로, 뜻밖에도 사도 요한까지 욱! 하는 성질이 있던 분들입니다. 사랑의 사도라고 별명이 붙은 요한도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체험을 하기 전에는 욱~ 하는 성질이었습니다(눅 9:51-56)
분노 종류
지금은(2019년) 어느 때보다도 화, 분노, 증오심…의 시대입니다. 화(火)는 위험한 것입니다. 영어의 화(Anger)는 위험(Danger)에서 앞의 한 글자를 뺀 것입니다. 화는 사실을 침소봉대-작은 것을 큰 것으로, 소소한 것을 대단한 것으로 만듭니다. 한문으로는 불 화(火)를 씁니다. 화가 무엇인가? 가슴 속에 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火)는 육체와 정신, 믿음을 약화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며 결국에는 파괴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Danger, 위험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정(性情)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2절에서는 그는 혀, 말에서는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건 쉽게 제어될 수 없고 한번 터졌다면 대형참사가 납니다.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욱~ 하는 말 한 마디로 인격이 스스로 더럽힘을 당하고, 생의 바퀴가 박살이 납니다.
8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 구절을 해석하면, 욕설은 길들일 사람이 없다, 쉬지 아니하는 악이여 습관성이다. 살인적이다! 이것이 바로 분노 조절장애입니다. 야고보는 신자 대상으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미국의 의학자 엘마 케이즈 박사는 실험을 통해 분노로 액체화된 숨결에는 무서운 독성이 있으며 동물에게 주사하였더니 5분을 넘기지 못해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1시간 분노할 때에 발생하는 독성의 분량을 측정해 본 결과 80명을 죽일 수 있는 분량이라 합니다. 두 사람이 닫힌 방에서 1시간 싸우면 160명을 죽일 독성이 방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독한 기운을 자기 안에 담고 산다 생각해 보세요! 그건 스스로를 죽이는 일입니다. 이걸 남에게 분출한다, 생각해보세요! 내 주변 사람이 그 독가스에 엄청 피해를 당합니다.
로널드 포터 에프론은 <욱하는 성질 죽이기>에서 분노를 여섯 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돌발성 분노-아무렇지 않다가 돌발적으로 욱! 하는 성격입니다.
잠재적 분노-그때그때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용암처럼 잠재해 있다고 욱~ 터집니다.
생존성 분노-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응책으로 발생하는 분노
체념성 분노-중요한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욱~ 하는 분노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모욕당했을 때 욱~ 하는 분노
버림받음에 비롯된 분노-사귀던 사람이 결별을 선언할 때,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을 때!
분노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맴돌며 우리를 망가뜨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하며 믿음의 인격을 훼상하기에 이에 대한 이해와 처방과 치료가 있어야 합니다.
분노 요인
분노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분노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나갑니다. 독재에 대한 분노, 거짓, 세상, 전쟁과 테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이런 분노가 없다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건전한 의분(義憤)은 우리 사회에 건강성을 가져옵니다.
성경에도 금송아지를 만든 것에 대한 모세의 분노, 성전을 장사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 근대사에서는 부패와 타락으로 점철되었던 로마 교황청에 대항해서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분노가 없었다면 세상은 어찌되었고 성전은 어찌되었을까요? 분노, 즉 의분(義憤)이 있었기에 세상이 그만큼 공의롭고 거룩해 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용기는 ‘잘 조절된 화’입니다. 링컨은 노예의 슬픈 얼굴에서 화가 났지만 자신의 화를 잘 조절했기에 용기가 되었고 위대한 해방자가 된 것입니다. 같은 화라도 잘 조절하면 용기가 되고 화(火)의 조절에 실패하면 분노가 됩니다. 그래서 조절되지 못한 분노로 인해 나쁜 영향과 결과를 가져와 주변을 태우고 인격이 망가져 버리는 것입니다.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은 생물학적, 사회·경제적, 문화·환경적 측면… 등 다양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트레스는 커진 반면 이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정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영화, 게임 등의 폭력적인 장면을 접하면서 분노 폭발을 학습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기에 분노는 항상 내 주변을 맴돌고 우리 속에 활화산으로 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분노 조절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극에 예민하면서 조급한 사람, 성격적으로 내재된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절제가 안 됩니다. 짜증이 나거나 자존심과 연결해 버립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화병 트렌드가 바뀌어 참는 화병에서 분노 표출형 화병 환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화를 무조건 참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분노는 억압이 아닌 조절의 대상이기 때문에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 오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데 한국인은 화를 내면 나쁜 사람이란 인식이 강해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잘 표현하지 않고 참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안 될 때는 중간단계가 없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자주 화를 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 등입니다. 공연히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며 오히려 그걸 배웁니다.
분노는 중독이 됩니다. 화를 내서 해결되는 경험을 맛보면 분노로 뭐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화부터 내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요인들로 인해 분노하는데 문제는 분노조절장애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 겁니다.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 폭발은 폭행부터 살인까지 심각한 사회 범죄로 이어져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줍니다. 보복운전, 데이트폭력, 아동학대… 등 그 유형도 다양합니다.
분노 대상
사울과 다윗의 분노를 보면 그 대상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보여줍니다. 대체적으로 가까운 가족, 교우, 이웃이 분노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노가 고약한 점입니다.
-가까운 가족에게 쉽게 분노합니다. 밖에서는 상당히 점잖은 분들이 집에만 들어오면 폭군으로 변합니다. 쉽게 아내에게 화내고 자녀들에게 분노합니다. 밖에서는 상냥한 여성들이 안에서는 히스테리 식(式) 화를 냅니다. 시댁에서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순종형 며느리인데 친정어머니만 만나면 엄청 화를 냅니다. 가족이니까 ‘믿어라’ 해서 화를 내는데 사실 상처는 가까운 가족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습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쉽게 분노합니다. 내가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 믿어라 하는 사람들, 고맙게 생각하는 친구들, 마음에 맞는 교우들…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 좋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빈도수가 높습니다. 받아주겠거니, 하기에 화내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교역자입니다. 때로, 목사는 동네북일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쉽게 분노합니다. 만만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분노해도 손해 볼 것 없고 그들이 날 좋아하기에 내게 큰 손해가 없는 아랫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사울은 위의 모든 사항에 해당됩니다. 그의 분노는 부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고마운 대상입니다. 사위가 되었으니 가족이고 가까운 이웃이고 다윗은 약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무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여론은 떠나가고… 그 분노함을 다윗에게 몽땅 쏟고 있습니다. 분노의 대상을 잘못 고른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삼상 25장에서, 다윗은 나발에게 욱~ 하고 화를 냅니다. 목축업 재벌 나발이 양털을 깎는 날에 군자금을 좀 달라 군사들을 보냈더니 아주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여기에서는 다윗은 군대 600명을 거느리고 출전합니다. 목축업자 상대하는데 무슨 600명 군대란 말입니까? 수치심으로부터 욱~ 하고 오는 분노였기에 응징이
분노 치료
분노는 빨리 다스려야 합니다. 중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화내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고 성질이 됩니다. 이걸 다스리지 못하면 분노가 결국은 나를 망치고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인 ‘사이코패스’까지 나갑니다. 그러기에 중독이 되기 전에 교정해야 합니다.
㉠ 자꾸 화가 나는 원인을 찾으십시오!
분노는 함부로 억압하거나 때마다 폭발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신앙의 KS마크가 있던 다윗도 나발에게만큼 분노합니다. 그것도 엄청 쎄게 분노합니다. 다윗은 왜 그리도 분노했을까요? 6백 명을 부양하는 스트레스로 짐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부당한 사울에게서 도망 다니느라 긴장되고 예민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언어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저 인간도 나를 우습게 알아? 그래서 파리채로 잡으면 되는 것을 대포를 동원하는 식으로 군대를 동원합니다.
세네카는 “분노를 없앨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분노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 건설적인 분출방법을 찾으십시오.
다윗의 분노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면 나발이 훨씬 잘못했습니다. 다윗이 화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정도의 화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화병, 속병을 앓습니다. 목사들이 스트레스로 오래 못 삽니다.
참는다고 전부는 아닙니다. 밖으로 화를 내되 건설적인 방법들을 찾으십시오. 산책을 하던지… 여행을 하던지… 사람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어보던지… 푹 자는 것도 방법입니다.
㉢ 분노를 조절하십시오.
사울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의로운 동기에서 분노했지만 나중에 후회할 말이나 행동으로 그 분노를 쏟아내기보다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자기의 분노를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강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표현은 지혜롭게 조절되었습니다.
다윗은 미워하면서 불같은 사울의 분노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는 조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 일을 낼 사람처럼 불같은 화를 내고 만 것입니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분노가 일어나서 정점에 도달하는 데는 15초가 걸리고 그 가운데 3초가 분노와 짜증을 증폭시킬지, 혹은 잠재울지 결정하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불과 3초 안에 분노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확 타오르기도 하고 채 불이 붙지 않고 꺼지기도 합니다. 그 3초를 잘 넘기면 분노는 조절됩니다.
㉣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좋은 조언자들을 두는 것입니다.
격앙되어 있는 다윗의 군대를 막는 것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입니다. 온유함과 지혜로운 여성입니다. 홧김에 나발을 죽여 얻는 이익보다는 잃게 되는 손해가 더 크다는 말로 다윗을 달랩니다. 다윗 자손의 명예를 하찮은 일로 훼손하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다윗의 화가 누그러집니다. 그래서 군대를 돌립니다. 욱! 하는 성질에 망신당할 것을 아비가일이 막아주었습니다. 그녀는 분노를 바르게 처리하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조언자들이 옆에 있으면 상당히 큰도움을 받습니다.
㉤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욱!~ 하는 성질을 두면 성화가 올라가다 떨어지고 올라가다 떨어지고 반복됩니다. 이거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내면의 화를 인정하십시오. 주님에게 고백하십시오. 십자가에 맡기십시오! 지속적으로 주님의 온유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남을 긍휼이 여기는 법을 자꾸 훈련하십시오! 그러면 화를 극복할 수 있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사 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결론
미국의 논픽션 작가 러시 도지어 주니어는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가 품고 있는 ‘증오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핵무기”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과 뇌에 살고 있는 원시동물”이라고 했습니다.
내 속에 분노가 있으면 그건 핵폭탄입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터질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은 원시적인 행동이 나옵니다. 내 인격도 박살이 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상처를 받습니다. 주님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주님만이 진정한 의사요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를 주님의 온유함으로, '잘 조절된 화'로 만들어 더 힘있고 생산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하나님 편이시다!(여호수아 5:13~15) (0) | 2023.09.28 |
---|---|
은혜 안에 거하라!(사도행전 13:42) (3) | 2023.09.28 |
조각목도 금궤, 성궤, 법궤가 된다!(출애굽기 37:1~9) (2) | 2023.09.27 |
동행하라, 주님과(창세기 5:21~24) (0) | 2023.09.27 |
다른 불, 다른 제사(레위기 10:1~7) (2) | 2023.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