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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감사 소리로 성전을 채우라!(시편 100:1~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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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설교]

감사 소리로 성전을 채우라!

시편 100편 1~5절

서론

요즘 웰빙(well-being)시대라고 합니다.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 3만 불이 되면 물질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먹느냐 양보다는 무엇을 먹을까 질을 찾습니다. 이것이 건강+행복하게 살자는 웰빙입니다. 그러다보니 웰빙시대에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장수비법이 난무합니다

 

어느 박사가 ‘1 2, 3의 건강 3대 비법을 소개했습니다.

1()-담배를 끊어라

2()-음식은 적게 먹고 술은 소량으로 마셔라!

3()-다동(많이 움직이고) 다휴(많이 쉬고) 다접(사람들을 많이 만나라.)

이 정도만 해도 오래는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치명적인 것이 빠졌습니다. 웰빙하려면 감사하라! 웰빙에 감사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감사가 있어야 기쁨도 있고 행복합니다. 감사는 천삼(天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해삼(海蔘), 산에는 산삼(山蔘), 하늘에는 천삼, 어느게 삼이 최고겠어요? 찬송도 감사가 있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도에도 감사가 있어야 들으시고 목회도 감사가 넘칠 때 행복한 목회입니다. 다른 건 좀 부족해도 감사에 성공하는 인삼(人蔘)과 같은 성도님들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매너, 친절, 배려를 보겠지만 중요한 것은 감사입니다. 피아노든 성악가이든 소리가 좋아야 음악성이 좋은 것처럼 감사가 배어있을 때 됨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나의 감사지수! 감사온도를 통해 나의 됨됨이, 성도로서의 됨됨이를 체크하는 용의검사날입니다. 그럼에도 감사절을 농산물을 중심한 추수감사로 알기에 시쿤둥합니다. 헌금이 부담스러운 것이지요! 많이 하지도 않으면서 헌금 이야기만 하면 왜 시쿤둥하지요? 지금의 추수는 농산물에 한한 것이 아닙니다. 살면서 얻는 소출은 매일매일 있습니다.

 

감사떡 봉지에 8명을 선정했습니다. 이분들만 감사의 내용을 추수했을까요? 1년에 손자 셋을 얻은 고집사님도! 이분들도 꼭 그것만 소출했을까요? 매일을 사고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 그렇게 11개월을 지내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요? 그러기에 감사절은 365일입니다.

 

기독교가 영생구원을 주는 복음을 잠시 잠재(潛在)하고서라도 감사키워드만 갖고도 기독교는 종교로서 믿을 만하고 교회는 다닐 만합니다. 유교는 충효를 말해요! 그러나 감사가 없이 의무감으로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얼마나 힘들어요? 불교는 최고 경지에 오르는 득도(得道)를 무념무상으로 보는 것 같아요. 108번뇌에서 무념무상! 그게 쉽겠어요? 기독교는 번뇌에서의 무념무상, 해탈보다는 아픔과 고통과 역경 가운에서도 감사하는 삶을 가르칩니다.

 

본문도 보세요!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네 번이 나옵니다.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감사하며 송축 이게 모두 감사의 개념들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에 들어올 때 나갈 때마다 어떻게 하라고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억울한 사연들! 속상한 일들 있나요? 예배당 밖에! 안에! 불편한 사람 있나요? 성전에서는 모두 내려놓고 감사만 꺼내고 감사만 생각하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제사 드리고 죄 사함을 받는 곳만이 아닙니다. 허구한 날 성전에 와서 죄만 고백하고 눈물이나 흐르고 있다면 기독교는 죄를 들이밀고 위협하고 처단하는 재판장소가 됩니다. 성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뜁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곳! 그래서 감사로 교제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억울함을 신원 해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곳입니다. 그거 알면 저절로 감사를 배우는 감사학교가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에 플라톤이라고 있어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입니다. 30여 편에 달하는 대화록을 남긴 굉장한 철학자인데 세 가지를 감사했습니다.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 한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희랍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 한다~”

철학자가 된 것을 감사 한다~”

 

이스라엘의 감사와 비슷하지만 이스라엘의 감사는 뛰어난 상수(上手) 감사요, 플라톤의 감사는 한 수 아래인 하수(下手) 감사입니다. 그의 감사에는 우월감이 보입니다! 짐승을 깔보고 이방인을 깔보고 철학자 아닌 사람들 깔보는 감사가 진짜 감사인가요? 이스라엘의 감사를 보세요!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 조건들이 네 가지 나옵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람으로 창조해 주셨다! 남자로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 이건 창조주에 대한 감사조건입니다.

그의 백성이니 혈통적로는 아브라함의 백성 언약으로는 선민! 조상에 대한 감사조건입니다.

또한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요 기른다는 것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줍니까? 부모입니다. 그러니 이건 부모에 대한 감사조건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은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창조주 조상님 부모님! 여호와!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알라! 감사의 대상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을 너희는 알지어다! 이걸 알면 저절로 감사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공자도 감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공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을 말합니다.

첫째,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이며

둘째, 윗사람을 헐뜯는 자 곧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유교의 충성과 효도의 중심에도 감사가 있습니다. 왕에게 감사, 부모에게 감사가 없으면서 하는 효도는 거짓입니다. 문제는, 참 마음에서 감사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나 부모는 조건부 감사입니다. 백정부모나 노비자식이라면 감사가 나옵니까? 나를 낳아주었다 해도 버리고 가면 감사가 나옵니까? 왕이 선정을 베풀어 먹고 살게 해주었다 해도 왕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평등하게 잘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으로부터 오는 감사 부모로부터 오는 감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조건부 감사! 반쪽짜리 감사가 될 수밖에요!

 

하나님의 감사는 다릅니다.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선택과 구속과 보호와 인도하심과 위로가 있는 분입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용기를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라! 알라, 는 것은 지식개념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걸 알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입술만 아니라 온 몸으로 항상 감사 범사에 감사 쉬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감사를 뼈에 새기고 피와 몸에 감사라는 문신을 새겨놓으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 예루살렘 채석장에서 돌을 캐오지 않았습니다. 멀리 레바논에서 돌을 캐고 깎고 치석(治石)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운반했습니다(왕상 5:17) 성전 건축 동안에는 현장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도록 주의했습니다(왕상 6:7).

 

이 사실은 성전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 가를 말해줍니다. 성전은 감사의 소리로 채워야 하는 곳! 감사의 영향을 받고 가야할 곳입니다. 성전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잠잠하고 조용해야 할 곳입니다. 성전에서 감사가 사라지고 서로 정죄하기 바쁘고 이기심의 종교가 된다면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는 인간 종교집합소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무리 신앙적으로 요란스러움을 내도 감사가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외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3:20)

 

하박국 선지자는 왜? 를 연발하던 선지자입니다. 조국이 망하고 악인들의 형통을 견디지 못해 성전에서 따지며 원망하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들은 회복시키고 악인들은 망하게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용하라! 스스로에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게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감사의 소리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날마다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사소한 감사들을 만들어 내는 곳! 감사의 영향을 받고, 감사의 온도를 높이는 곳! 이것이 쌓여가며 감사대장들을 양육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미국의학협회지에 운동효과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뚱보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4~6개월간 매일 운동을 시켰습니다. 한 그룹은 조깅, 자전거타기, 에어로빅 등 유산소운동을 시켰고 다른 그룹은 가급적 일상생활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게 했습니다. 많이 걷게 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사용하고 원격조정기 보다는 손으로 가서 켜도록 했습니다. 연구결과, 뜻밖에도 조금씩 움직이는 그룹에서 운동 효과가 좋게 나타났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 조건이 생겼을 때 요란스럽게 감사하는 것보다는 항상 감사 범사에 감사! 쉬지 않는 감사 체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걸 성전에서 배우고 터득해야 합니다.

 

청교도 신학자 오웬은 말합니다.

평범한 성도는 최대한의 일에만 감사하고 탁월한 성도는 최소한의 일에도 감사한다.”

 

어때요? 떡 봉지를 돌린 분들은 최대의 감사제목이지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걸로 끝난다면 평범한 성도입니다. 최소한의 일에 감사할 때 탁월한 성도가 되고 아름다운 신앙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잡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고요하게 신축합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이니까 건축조차 성스럽게 했습니다. 교회 리모델링할 때 담배 피우면서 공사하면 속상합니다. 그렇다고 주의를 주면 못 하나라도 덜 박기에 모른척은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이해가 됩니다. 성전이 거룩한 신전(神殿)보다 작업장이기에 담배 도 피우고 핸드폰으로 별의별 험담도 합니다. 성도들은 성전에서 그러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소리도 나지 않게 성스럽게 건축했던 대성전! 하박국이 조용하라! 했던 그 성전이 1천년을 채우지 못하고 예수님 당시에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장사터가 되어 요란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 잡소리만 들렸습니다. 장사꾼들끼리 싸우고, 물건 값 흥정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싸게 팔아 화가 나고 비싸게 사서 불평하고 감사가 실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을 강도의 굴혈’, 강도의 소굴로 단정합니다. 교회 안에서 강도를 목격한 예수님은 충격이었습니다. 충격은 충격요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사람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무감사! 불평을 내쫓은 것입니다.

 

한국교회, 우리교회는 어때요? 감사가 넘치나요? 예배하는 소리! 축복소리로 가득하나요? 교회가 소음으로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말들이 많아졌습니다. 쓸 만한 말들이면 좀 좋겠습니까? 교회 칭찬하고 남을 칭찬하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흉보고 원망하는 일에는 앞장을 섭니다. 교회의 맛은 덮어줌인데 교회는 정죄로 소란합니다. 교회에서 감사를 배우지 못하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감사공화국이 아니라 불평공화국입니다. 헬조선은 불평조선입니다.

 

이규태씨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에서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은 감사 결핍증이라 지적합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에게 대부분 감사합니다 대신에 또 오세요 장삿속 인사를 하고 장난감 사주면 고맙습니다 말 대신에 신난다!” 가 앞섭니다.

 

서양인이 일상용어 50개 중 28개가 감사하다입니다. 옷 한 벌, 신문 한 장을 사고 팔 때에도 감사하다 땡큐 유~ 라고 합니다. “싫어요 하는 말에도 노 땡큐!” 땡큐가 들어갑니다. 감사가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수십 년간은 흑자(黑字) 나라가 될거예요. 감사가 없고 계급투쟁으로만 무장된 중국은 죽었다 깨어나도 미국을 추월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감사를 근간으로 하는 동안에는! 감사하는 민족을 감사 없는 민족이 어떻게 추월하겠어요?

 

교회에서 감사의 힘! 감사로 성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감사(感謝), ‘고맙게 여김’, 또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만이 아니라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입니다.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듯이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법, 말로 표현하고 물질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배워가면서 감사교회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교회는 예배당이 아닙니다. 10년 이상 피터지게 싸우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성전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우리는 고마우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도 최고의 위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남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좋은 예배당에서 믿음생활하며 인생의 어려운 환난 가운데서 교회를 통해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도 어려움 당할 때 늘 내 곁에 있어준 사람은, 있어줄 사람은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모두가 은혜요 고마움입니다. 이런 고마운 교회로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감사민국으로 세워야 합니다.

결론

1700년대 영국의 로버트 로빈슨은 25세에 목사가 되어 설교도 목회도 잘했습니다. 스퍼젼이 비할 정도입니다. 제일침례교회에 부임해서 크게 부흥을 일으켰는데 언제부터인가 영적 기운이 소진해져 결국은 교회를 사임하고 낭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부인이 기쁜 얼굴로 책을 읽고 있다가 책을 권해요. 보니 찬송 시()입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읽어나가던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부인. 이 시는 제가 쓴 것입니다!”

 

로빈슨은 유창한 설교로 장래가 촉망되는 목회자였지만 시험에 들고 감사가 없어 교회를 떠났다가 지금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빈슨은 회복할 것입니다. 3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며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모든 문제해결은 감사입니다. 감사저수지에 물이 채워지면 배도 뜨고 고기도 들어오게 됩니다. 메마른 감사저수지에 잘 가라~ 작별을 고하시고 내년 감사절에 가득 채워질 마음의 저수지를 기대하며 감사절을 보내도록 합시다! 여러분들로 1년이 다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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