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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셉 열전(8) 고난 속에 담긴 선물(창세기 48:15~2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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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열전(8)

고난 속에 담긴 선물

창세기 48장 15~20절

서론

하나님의 손으로 성공한 신수성가(神手成家) 요셉,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요셉은 드디어 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야곱 집안의 채색옷 왕자가 열일곱에 노예로 팔려 애굽에서 별의별 억울한 일을 당하더니 서른 살 약관으로 애굽제국의 총리로 화려하게 등극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생 역전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는 고난과 유혹이 그물처럼 엮입니다. 고난은 인생의 80%를 차지합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고 유혹을 이겨냄으로 인격이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요셉이 그렇게 살려고 애쓰니 하나님도 계속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오늘은 요셉 일생의 80%를 차지하는 고난의 문제입니다. 고난의 파도를 어떻게 넘었을까? 고난으로 힘들었지만 고난을 통해 요셉은 더욱 단단해졌고 위대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왜 고난이 올까?(고난의 이유)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만나지만 고난이 주는 원인과 결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이 왔을 때 믿음의 눈으로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이 고난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환란의 풍랑을 잠재울 수 있을까?’

 

‘고난을 졸업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상해 주실까?’

 

사업가들이 면밀히 사업을 검토하고 제조업자들이 자기 물건에 대해 연구하듯 크리스천들은 고난이 왔을 때 묵상으로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고난학교를 졸업하고 더 많이 유익한 것들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야곱과 요셉은 우리에게, 특히 고난학교 재학생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고 가르침을 제공해 줍니다.

 

야곱과 요셉, 부자(夫子) 관계면서 비슷한 유형을 살아왔습니다. 두 사람의 생애 모두 파란만장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청년시절에 부모슬하를 떠나고 평생을 전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20년 객지생활, 외삼촌에게 부당한 대우, 사랑했던 여인과의 사별, 이복자식들 간의 암투, 아들들에게 속임 당함, 장남 르으벤의 탈선, 외동딸의 성(性)폭행, 이웃과 적대적인 관계…

 

고난의 생애입니다. 오죽했으면 바로 왕 앞에서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아들 요셉도 역경인생이기는 동일했습니다. 17세 소년기에 이국땅에서 고난을 시작합니다. 채색 옷이 벗겨지고 구덩이에서 죽음 직전까지 갑니다. 형제들에게 팔리고 애굽에서 종살이,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 감옥에서 배신… 모든 사건들은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고난에 못지않게 아들도 고난당합니다. 그러나 고난은 같아도 고난의 이유는 다릅니다.


야곱은 자기 죄와 기질 때문에 평생을 쫓고 쫓기는 스트레스 삶을 살았습니다. 욕심, 거짓, 교활함, 경쟁심, 고집… 이런 것들로 어려움 당합니다. 지나친 욕심과 경쟁심이 없었다면 왜 야반도주를 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겠어요? 험악한 세월은 자신의 삶의 방식, 기질 때문에 온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어요. 내 죄로 오는 고난이고 환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 죄가 아니라 남의 죄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는 형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가 부른 희생입니다. 감옥도 여주인의 농간으로 인한 오해였습니다. 감옥에서도 술관원장의 배은망덕으로 2년을 보냅니다. 모두 이웃의 모함과 오해가 부른 것입니다. 요셉 자신의 죄가 아니라 남의 탓으로 억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난은 오랜 세월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17세기,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궁중음악가 안토니오 샬리에르는 독실한 신자로 불후의 찬미곡을 만들고 싶었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재적 영감과 은사를 믿음도 없고 천박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 부어주심에 분노합니다.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어떻게 악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는 고민입니다.

 

욥기는 하나님이 지면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한테 벌주시는 이유를 몰라 고민했다면 샬리에르는 하나님이 자격 미달의 애송이한테 상을 주시는 까닭을 놓고 고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상을 줄 사람에게는 고난을 주시고… 벌을 불 사람에게는 형통을 주시는가….


여러분, 고난 자체만 보지 말고 왜 고난이 왔는가? 내 삶이 왜 이처럼 힘든가? 내가 왜 이렇게 안 되는가? 그 원인을  찾으세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들여다보는 안경이 있는 것처럼 고난도 그 원인을 살필 수 있는 안경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고난당합니다. 거친 성질, 지나치게 깐깐한 성격, 이기심, 욕심, 자아(自我)… 이런 것들로 고난을 자초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죄와 관계없이 오는 고난도 많습니다. 야곱의 고난이 자기 죄 때문이라면 요셉의 고난은 남들의 죄 때문이고 욥의 고난은 사탄의 개입에서 비롯됩니다. 그러기에 남의 고난에 함부로 간섭하여 내가 결론을 내리고 정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의 원인을 빨리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을 멈출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고난의 원인을 남들에게 돌렸기에 계속 얻어터졌고 인생이 험악했으며 욥은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에게 올렸기에 믿음이 성장했으며 요셉은 고난의 원인을 알았기에 고난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위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는 신수성가(神手成家)입니다.  

2. 고난을 어떻게 해결하나?(고난의 해결방법)

의사들은 환자의 병명이나 상태에 따라 처방을 다르게 합니다. 감기환자는 감기약을, 결핵환자는 결핵약을 줍니다. 진단을 잘못하면 병을 키웁니다. 기침이 나서 감기약만 먹었는데 폐암입니다. 일찍 처방만 바르게 내렸다면 생명의 위협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리통증이 심한 할머니가 통증을 참지 못해 <나은통증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왼쪽 다리가 쑤시는데 도저히 못 참겠어요. 혹시 몹쓸 병은 아닌지…"

원장 남 집사님이 왼쪽다리 오른쪽다리를 진찰해보고 진단을 내립니다.

"할머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이가 들면 다 이런 증상이 오는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사선생님! 아프지 않은 오른쪽 다리도 나이는 동갑이야!!!"

 

우리 홈피에 나와 있는 유머를 <나은통증의학과>로 각색한 것입니다. 동갑다리라고 왼쪽다리가 아프면 오른쪽 다리도 아프고… 그게 아닙니다. 왼쪽 다리가 아픈 원인이 있습니다. 그걸 치료하면 되는 것이지 오른쪽 다리도 치료해 달라고 떼를 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처방도 다릅니다. 야곱의 고난은 적당하게 때우고 넘어갈 요령이 없습니다. 빨리 회개하고 성질을 고쳐야 합니다. 못된 기질이 남아있는 한 계속 몽둥이감입니다. 자기 기질을 놓아둔 채 열심 낸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요나를 태우고 다시스로 가던 배의 승객들은 왜 풍랑을 만났습니까? 요나의 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선장은 선원들을 닦달했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짐으로 고난을 해결하려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나요? 풍랑이 잔잔해졌나요? 계속 배 안의 생명들을 위협했습니다. 요나는 이 환란이 어디에서 온 줄을 알았습니다. 나 때문에 온 것입니다. 내 불순종 때문에! 

 

“풍랑을 만난 것은 나의 연고라. 나를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잠잠해 질 것이다”

 

선장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계속 인간적 노력과 신들에게 기도하라 합니다. 안됩니다. 회개 없이 산(山) 기도 하고 회개 없이 열심 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나를 던져야 합니다. 나를 죽이고자 하는 자기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선장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요나 때문에 힘들었던 배안의 승객들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내 죄 때문에 모두 힘들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3일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요나도 살고 니느웨백성이 모두 살았습니다.

내 죄 때문에, 내 기질 때문에 오는 고난은 믿음만 갖고 안 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다독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내 자아가 깨어지고 내 중심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풍랑이 잔잔합니다.


욥의 고난은 누구 때문에 온 것입니까? 사단의 시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러니 욥은 남을 탓할 필요도 없고 내 탓 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돈독히 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욥의 세 친구들은 회개를 강요합니다. 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웁니다. 이것이 욥기입니다. 욥의 고난은 회개도 아니고 인내도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서 구세주 중보자에 대한 믿음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이 멈춥니다. 

 

요셉의 고난은 누구 때문에 왔습니까? 나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남들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고난은 회개로 풀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욥처럼 고난의 이유를 항변할 필요도 없습니다.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입니다. 욥의 고난에 대하여… 욥이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는가에 대해 듣고 알았을까요? 요셉은 욥보다 더 성숙된 자세를 택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원망도 할 것 없습니다. 애굽에 팔려가 종이 되어서도, 여주인에게 농락당하면서도, 감옥에 들어가 앉아서도 인내했습니다.

 

참는 것처럼 힘든 게 없습니다. 참지 않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그들의 장(臟)은 깨끗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참아낸 사람들,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는 지도자들은 내장이 새까맣게 탔을 것입니다. 목회비결은 없습니다. 참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아홉 번 참다 한 번 화를 내면 누구를 탓하는 줄 아십니까? 목회자를 비난합니다. 평소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게 되고 참게되다 보니 스트레스성 질병이 쌓이는 것입니다. (이미자 노래)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목사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도 못하고…

 

참고 또 참으면 해결됩니다.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 힘든 일이고 높은 인격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골병듭니다.

 

요셉의 생에는 참는 생애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어주시고 그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닥을 드러내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는 신수성가(神手成家)입니다.

3. 어떤 결과가 왔을까?(고난의 결과)

야곱과 요셉과 욥, 세 사람의 고난을 그치게 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고집쟁이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누구도 그의 삶을 다스릴 수 없고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집(我執)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참 의사이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처방대로 야곱을 고쳐나갔습니다.

 

야곱에게는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그래야 살고 만민의 아버지가 될 그릇인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를 회개시키려면 달리 방법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계속 두들겨 팹니다. 그래서 억지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야반도주, 적수인 라반을 만남, 아내의 죽음, 아들들의 사기, 외동딸의 불행… 결국에는 얍복 강나루에서 환도뼈까지 두들겨 맞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계속 버티다가는 생명까지도 치시겠다 싶으니까 겁이 났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시켜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요셉의 일로 스스로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런 사람이 회개하면 무섭게 합니다. 독한 기질, 모진 기질이 있거든요. 내가 새 삶을 살아야겠다 싶으니까 엄청나게 매달립니다. 축복의 매달림이 아니라 “살려 달라!”는 회개의 매달림입니다. 이런 모진 기질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에서를 젖히시고 야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의 회개의 결과, 성화에 이르렀습니다. 성화는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을 보세요. 임종 직전 12아들을 앉혀 놓고 축복기도를 하는 저 거룩한 노인을 보세요. 누가 저 노인의 인생을 죄를 벗 삼아 험악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상상하겠습니까? 그는 거룩한 어른으로, 성자처럼 축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죄인이 회개하면 성화의 단계를 거쳐 성자(聖者)에 이릅니다. 성자가 참회록을 쓴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철저히 회개의 삶을 시작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성화의 단계로 올리셨습니다. 죄인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회개는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욥은 자기의 환란에 사람들에게 변명하고 하나님에게 항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을 지켰고 행동을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구약시대에 살면서도 중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얼마나 큰 신령한 축복입니까? 


요셉은 환란에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누가 이래도 참고 누가 저렇게 해를 끼쳐도 참았습니다. 별의별 말을 다 들어도 꾹꾹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영화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는 국무총리가 되었고 가나안의 부족을 세계화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니까 세상에 걸리는 게 없어요. 애굽에서는 근본조차 없는 출신인데 당시 세계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보통 영화-영광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삶을 예표해 줍니다.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수없이 당했지만 참았습니다.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더니 하나님은 보좌 오른편으로 다시 올려 주셨고 심판주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셉을 구약의 예수님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고 자신을 지켜내었더니 총리가 되었다! 그래서 요셉의 생애는 신수성가(神手成家)입니다. 

결론

우리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하는 일마다 안 됩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합니까? 내 인생에 환란이 많습니까? 어떤 환란인지 진단하세요.

 

*야곱의 환란-자기 죄 때문입니다. 환란을 그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남 탓이 아니라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삶을 통해 성화시켜 주십니다. 회개하세요!

 

*욥의 환란-사단의 시기 때문입니다. 환란을 그치려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 정금 같이 만드시고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신령한 축복을 주십니다.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높여가세요!

 

*요셉의 환란-남들의 죄 때문에 당한 것입니다. 환란을 그치려면 참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참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내를 통해 영화의 자리에 오르게 하십니다. 끝까지 참으세요!

이것이 바로 신수성가(神手成家) 요셉의 생애입니다. 모두 신수성가(神手成家)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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