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열전(5)
요셉에게 임한 능력
창세기 39장 1~6절
서론
일본인들에게 존경받는 경영자 중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있습니다. 마쓰시타는 <내셔날> 상표로 잘 알려진 마쓰시타전기산업을 창업한 세계적인 기업가입니다. 마쓰시타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집안은 가난했고 몸도 허약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대기업의 창업주로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까지 되었을까? 기자들의 질문에 세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가난했기에 직공으로 출발, 밑바닥에서부터 인생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몸이 약했기에 운동을 부지런히 해서 튼튼해졌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했기에 세상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여기며 언제나 공부했다.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대표적인 성공사례입니다. 대단한 사람이지요.
요셉의 인생에 채색옷 특권만 있고 역경이 없다면 부수성가는 했겠지요. 아버지 손의 도움으로 얻은 성공과 부(富)는 형제들간의 대립을 낳는 정글의 성공자로 끝났을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 노예 신분이 아니었다면 영민함과 성실함으로 자수성가 했겠지요. 그러나 자수성가는 남에게 도움 못되고 혼자 성공하는 존경받지 못하는 성공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훗날 요셉이 나도 성공하고, 성공한 이후 너도 성공시키는, 그래서 존경받는 성공자가 된 것은 마쓰시타 고노스케처럼 역경과 고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기에 하나님의 손이 그를 붙잡아 성공시켰고 신수성가의 성공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만들어낸 성공자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채색 옷을 벗겨 하나님의 사명의 꿈을 입게 했습니다. 구덩에서는 근력을 키워서 12지파의 중심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노예 신분을 주셔서 어떤 유익을 주려 하실까요?
1. 하나님께서 과거청산 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했습니다.
지금 요셉은 어떤 신분입니까? 요셉은 애굽-타국살이를 시작하는 처지입니다. 채색 옷은 벌써 벗겨지고 노예복을 입었습니다. 일을 시키던 사람에게서 심부름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가나안의 왕자가 보디발 집안의 노예소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보디발 집안의 노예가 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세요. 요셉은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 노예시장에 팔려나왔을 것입니다. 거의 반라(半裸)의 전시물로 인간상품이 되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노예로 팔리기는 했지만 그 상황만 생각하면 울화가 터집니다. 형제들… 아버지의 편애…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조차 원망스럽습니다. 노예 신세를 생각하면 열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울화병으로 자살해도 시원치 않을 형편입니다.
노예 신분이 된 요셉에게 현실도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습니다. 노예 신분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그에게 있을 것은 과거영역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추억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절대적인 신임과 특권 속에서 살았던 지난 날, 채색 옷을 입고 동네를 거닐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경의를 표하고 형제들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스런 추억을 생각하고 있는 그 시간만큼은 요셉은 왕자였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일은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뒤로 자라나는 퇴보의 삶을 삽니다. 이것은 요셉을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현실이 더 무겁고 버겁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거나 도망을 갑니다. 과거의 영광을 극복해야 합니다.
다른 과거의 추억은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오는 상처(야반도주의 모습), 유년기에 어머니를 잃고 형제들의 어머니의 사랑을 보며 상처가 깊었습니다. 구덩이에서의 상처는 분노였습니다.
누구나 과거에 매여 있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빠집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단의 생각입니다. 사단은 과거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안 좋은 생각이나 추억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패배주의-열등의식-거짓된 자기우월감에 빠집니다. 그러면 울화병이 되고 자기에게만 몰두하기에 심리적으로는 자폐증 환자가 됩니다.
병중에서 처량한 게 상사병이고 무서운 게 화(火)병입니다. 모두 약이 없어요. 화병은 심한 우울증으로 열기, 답답함, 치밀어 오르는 느낌, 덩어리가 뭉치는 기분… 등으로 결국 분노입니다. 분노로 속 타고 열 받는 것이지요. 이게 머리로 가면 뇌가 터지고 가슴으로 가면 우울증이고 손과 발로 가면 분노로 폭발합니다. 이걸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 망치는 것입니다.
요셉이 과거의 영광에 연연했다면 내면의 성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현실도피자가 되고 우울증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상처받은 지도자, 분노하는 총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권세를 통해 복수를 하느라 피비린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신수성가의 삶이 아닙니다. 요셉은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고 청산한 것입니다.
이북출신들을 보면 아주 잘 살던지 아주 못 살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잘 사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이북에서 못 살고 이남에서 못사는 분들은 북한에서 잘 살던 분들입니다. 왜 처지가 바뀌었나요? 과거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 부자된 사람들은 이북생활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고향과 재산 빼앗겨 억울하고 분하지만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부자로 살던 사람들은 과거를 놓지 못합니다. 1년이면 갈 텐데… 언제 내가 장사하고 돈을 벌어서 이북 재산만큼 모으나… 기다리지… 이렇게 이북에 연연하다보니 세월은 가고 통일은 안 되고 분노만 일어나고 울화병만 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과거의 신분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채색옷을 입었던 “왕년에…”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냥 오늘에 충실합니다. 과거로부터 분노와 증오심을 극복합니다. 모두가 내 인생에 플러스를 주는 선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현실에 충실하도록 했고 현실에 충실했기에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지요. 이런 은혜를 입을 때 신수성가의 생애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하목사는 성경인물 중 요셉을 가장 많이 닮았다”면서 “하 목사는 인리치(in reach)의 사람이었다. 평생 세계 선교를 위해 아웃리치(out reach) 활동을 했지만 그의 내면엔 인리치, 즉 샘 곁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웃리치(out reach)는 이웃에 대한 봉사이고 인리치(in reach)는 자기 내면관리입니다. 밖의 활동에 너무 연연하다 내면을 가꾸는 일에 실패하게 되거나 자기에만 몰두한 나머지 남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무대응 하는 종교적 자폐증환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마세요! 특히 좋지 않던 과거의 상처에 달팽이처럼 집을 짓고 숨지 마세요! 성인아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교회에 연연하지 마세요! 돌아가지도 못할 것, 새교회에 충성하세요! 그것이 성공하는 비결이 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께서 현실적응 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호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호위대장은 경호실장이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 총무=집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벼락출세입니다. 5년에서 10년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짧은 기간에 이룬 것도 그렇지만 노예신분에서 관리자가 되었다는 것이 대단한 일입니다. 우연일까요? 3절,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기에… 가정총무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뛰어난 현실적응능력을 봅니다. 요셉이 적응능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매일 과거를 그리워하며 구덩이에서 나를 건져달라고 눈물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눈물기도는 도단들 구덩이에서 끝을 내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향해 눈물 흘리고 기도했으면 지금은 눈물을 버리고 내 처지에 맞게 당당하게 맞서고 살아갈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피해의식만 있지 극복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처지가 낮아지면 조그만 말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당신 왜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가 당신 보기에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내가 못산다고… 내가 못 배웠다고… 내가 지금 이렇게 되었다고… 혼자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현실도피처로 삽니다. 허구한 날 웁니다. 징… 징… 징… 징… 하나님도 질려버립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도 달아나고(?) 싶어요.
요셉은 상황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을까? 그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책임감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실 노예는 수동적이고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월급도 없고 이윤을 남겨도 인센티브도 없습니다. 자기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매사에 열심이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비결은 영성에 있습니다. 영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느끼는 성령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았기에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보디발은 그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직업관입니다. 내 직분이 좋지 않다고… 내가 한 것만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들을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해주십니다.
김제에 가면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조덕삼이라는 부자가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사랑방에 모여 선교사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멀리 경상도 청년 이자익이 머슴을 자청하고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 있게 일을 잘 하는지… 주인이 크게 신임을 했습니다. 그에게 후하게 대해주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자익이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사랑방 문밖에 앉아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흥미로 듣다가 그 말씀에 빠져서 예수님을 믿게되었습니다.
조덕삼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느 정도 교인들이 늘어나니까 장로를 뽑게되었는데 주인과 머슴이 경합을 했는데 머슴이 당선되었습니다.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그 결과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머슴 이자익을 깍듯하게 섬겼습니다. 이자익이 열심히 성실하게 책임감있게 일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본 것입니다. 나중에는 이자익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는 일체의 경비를 도왔습니다. 목사가 되었을 때 금산교회 당회장으로 청빙을 하는 일에 앞장을 섰고 끝까지 잘 섬겼습니다.
머슴 이자익이 성실하게 현실에 적응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쁨들이 서로 간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잘 적응하는 능력이 주인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앞길이 펴진 것입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요셉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자기 신분을 인정했습니다. 노예로서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 이전에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일을 잘해서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제대로 사람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걸 보고 주인은 더 큰 일을 맡긴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능력을 높게 삽니다. 그래서 일을 잘 하면 데려다 쓰고 고액의 연봉을 줍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능력의 시대가 아니라 성품의 시대입니다. 그가 어떤 일을 잘 하는가, 보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게 중요합니다. 세상도 이제 그런 사람들을 쓰는데 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늘 주목하십니다. 현실적응능력이 뛰어난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미래희망 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했습니다.
요셉은 유전학상 울화병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망각의 은사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잘 잊어버렸습니다. 특히 안 좋은 추억을 잘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제사장 딸과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습니다. 큰 아들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의 이름은 “잊어버림”입니다. 형들이 내게 한 일… 보디발부부가 내게 한 일… 술관원장이 내게 한 일… 원수 갚는 일을 잊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공유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 탓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성실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당했나, 생각하지 않고 왜 하나님께서 성공시켜 주었나? 성공을 나눠줄 사람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요셉의 조화로운 삶을 봅니다. 그가 미래에 대한 희망, 비전이 없었다면 세속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현실에 충실하고 성실하지 못했다면 그의 꿈은 일장춘몽,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이상주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항상 현실에서 충실했기에 그의 비전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았기에 그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이면서 미래주의자이고 미래주의자이면서도 현실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자기의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경배를 하는 꿈… 그것은 형제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만날 때 그들이 자기에게 경배함을 말해줍니다. 그 기미를 보디발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보디발은 권력자입니다. 거기에서 총무가 되고 계산하는 법, 정리하는 법, 노예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법… 전체를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언젠가는 이것을 더 크게 사용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성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중 두 번째-대민족을 이뤄주신다는 언약의 장소가 애굽임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구체적이었고 애굽 땅에서 꿈의 열매를 맺기 위해 성실함을 다합니다. 그러니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울화병에 빠지지 않고 항상 그의 손과 발은 현실에 있으면서 눈과 이상은 미래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보디발의 집에서 대강 시간을 때웠을 것이고 도망 갈 궁리만 했겠지요. 여주인과 불륜에 빠졌겠지요. 그의 인생은 그만큼 누수가 되었겠지요.
요셉은 자기 일에 충실했습니다. 언약의 말씀을 붙잡았고 그 말씀들이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향해 나가는 꿈꾸는 노예가 된 것입니다. 꿈은 쓸데없는 과거는 망각하게 만들고 꿈이 현실에 충실하게 했고 꿈이 그를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을 꾸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점입니다. 언제나 밖을 향하면서 내면을 가꾸는 것입니다.
결론
영국태생인 존 윌턴은 26세 때에 믿음생활을 시작하면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라고 하여도 옮길 것이요.” 라는 성경말씀을 들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이 없다… 작은 믿음만 있어도 성공의 기회는 있다.’
윌턴은 겨자씨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작은 겨자씨를 보면서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실업가로 성공하고 71세에 은퇴할 때에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爵位)를 받았습니다. 그때도 주머니에는 겨자씨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항상 겨자씨를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까?”
“좌절 때마다 겨자씨를 꺼내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씀을 상기합니다. 힘들 때마다 내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가?’ 살펴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보디발 집안의 요셉에게 세 가지 겨자씨 능력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과거청산 겨자씨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하게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현실적응 겨자씨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하게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미래희망 겨자씨능력을 주셔서 신수성가를 하게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세 가지 겨자씨 능력을 주셨습니다. 계속 키워나갑시다. 그래서 야곱처럼 나 혼자만 성공하겠다는 정글의 성공자가 아니라 요셉처럼 성공을 모두에게 나눠주겠다는, 성공이후에 더 큰 성공을 이루는 신수성가의 성공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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