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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셉 열전(7) 감방에서 받은 선물(창세기 39:19~23)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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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열전(7)

감방에서 받은 선물

창세기 39장 19~23절

서론

제주도에 있는 ‘도깨비도로’에 다녀오셨나요? 제주시내에서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내리막길에 세워둔 자동차가 저절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고 하여 일명(一名) 도깨비도로라고 합니다. 1981년 신혼부부가 주변경치가 좋아 택시에서 내려 사진 찍는데 정차해둔 차가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거예요. 기어를 중립에 놓고 브레이크를 풀면 아래로 내려가야 정상이잖아요? 페트병 물을 쏟아놓아도 위로 흘러갑니다. (강단 용어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귀신이 곡(哭)할 노릇입니다. 왜 그럴까요? 착시(錯視) 현상입니다. 원래는 오르막길로 보이는 쪽이 경사 3도 가량의 내리막길인데 주변의 지형 때문에 오르막길로 보이는 것입니다.


본문의 요셉도 착시현상을 만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객지에 잘 적응하면서 열심히 일해 가정총무로 인정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여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요셉의 트레이드마크가 경건과 정직입니다. 그러니 참 억울하잖아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상(賞)을 주어야 하지요? 상(賞)은커녕 옥에 갇히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내 인생이 참 불행하게 보입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착시현상입니다. 요셉이 모함 당하고 옥에 갇히는 것은 불행처럼 보이지만 불행이 아닙니다. 여주인에게 모함 당할 것을 알면서도 죄짓지 않는 요셉에게 하나님이 상을 주신 것입니다. 감옥행이 아주 잘 된 일인데 불행으로 보입니다. 착시현상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감방에서 은사 발견 상(賞)을 주셨습니다. 

20절, 요셉은 친위대장의 옥(獄)에 갇힙니다.

 

이 옥(獄)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정치범이나 고관들의 죄를 가리는 수용소입니다. 고대에는 중대범죄가 발생하면 즉형에 처하거나 배상을 물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즉시 처단하지 않고 미결수로 처리한 것은, 요셉의 성실한 품행과 가정에 끼친 공로를 기억했고 평소 품행이 단정치 않은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무죄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내의 명예,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요셉을 감옥에 가둡니다. 즉결처분하지 않고 미결수로 감옥에 가둔 것만도 보디발이 요셉을 크게 생각한 것입니다. 

 

요셉이 갇힌 옥(獄)은 땅속에 굴을 깊이 파서 만든 토굴감옥입니다. 또 구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기가 막힐 일이잖아요? 구덩이는 바닥입니다. 최악입니다. 아버지가 입혀준 채색 옷이 형들의 손으로 벗겨진 것을 시작으로 지금 몇 번째입니까? 지금도 너무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황당하잖습니까? 그러면 대부분 무너집니다. 토굴 감옥이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오죽했으면 신창원도 감옥살이가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하겠어요?   


요셉은 토굴 감옥에서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랬더니,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22절, 다시 총무가 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 감옥에서도 총무를 합니다. 나중에는 국가의 총무-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총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는 대접을 받으려 일한 것이 아니라 쓰임 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니 가는 곳마다 일하는 총무가 된 것입니다. 결재나 하고 남들 시키는 일이나 좋아하지 마세요! 열심히 일을 하는 총무가 되세요! 그럴 때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토굴 감옥에서 열심히 일해 간수장 눈에 들고 총무가 된 것은 자기 힘이 아닙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23절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입니다, 그래서 시리즈설교의 제목이 자수성가 요셉도 아니고 부수성가 요셉도 아니고 신수성가 요셉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대안(代案) 없는 비난을 일삼지 않는 요셉을 붙들어 성가(成家)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서의 그의 축복은 총무가 아닙니다. 총무자리였다면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나았지요! 하나님께서 굳이 보디발의 가정총무 자리에서 빼내어 감옥 총무로 옮긴 것은 또 다른 축복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처절하게 실망했고 더 아팠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기도하며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억울함을 주시는지… 많은 시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사를 크게 받습니다. 자기 은사를 발견한 것입니다.

 

꿈을 해석하는 은사입니다. 지금까지 요셉이 버틴 것은 아버지 집에서 꾸었던 꿈입니다. 요셉은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덩이에서도 노예신분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꿈의 힘이 일어나게 했고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옥에서는 꿈을 해몽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꿈을 이루게 한 것은 자수성가도 아니고 부수성가도 아니고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은사였습니다. 이 은사로 술관원장의 꿈을 해석했고… 왕의 꿈을 해석했기에 하루아침에 총리자리로 인생역전을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수성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감방에서 만남의 상(賞)을 주셨습니다.

요셉의 꿈은 사람들로 깨졌습니다. 채색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빠지는 일은 형제들로 왔습니다. 남들보다 못한 못된 형제들입니다. 이스마엘 상인들로 인간상품 신세가 됩니다. 그들이 귀한 집 도련님 요셉을 은 20짜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보디발의 잘 나가던 형통에서는 여주인 때문에 성추행범의 누명을 씁니다. 감옥에서 그의 꿈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누구 때문에?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같은 성(姓)을 쓰는 혈육에게 배신당했고 자기를 정말 사랑한다는 여성에게서도 배신당했습니다. 자기를 믿어주어야 하는 보디발은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요셉의 진실을 알면서도 미결수로 옥에 가둡니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배신감. 믿었던 사람일수록, 마음 주었던 사람일수록 배신감은 크고 인생의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대인기피증이 됩니다. 사람들이 싫어지고 무서워집니다. 그래서 피하게 되고… 실어증이 생기고 고립되고 폐인(廢人)이 됩니다.

 

요셉은 대인기피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내용입니다. 경배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감옥에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를 받을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기피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렸습니다.  

요셉은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경계성 대인관계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감옥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모두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억울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40장 6절, 두 환관장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왕을 대하는 환관장은 표정관리가 잘 훈련된 사람입니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 빛을 알아냈다는 것은 요셉이 얼마나 타인 중심입니까? 그래서 그들의 꿈의 내막을 듣게 되고 감옥에서 받은 꿈풀이은사를 통해 꿈을 해몽해 줍니다. 그곳에서 만난 술관원장을 통해 결국은 왕의 꿈을 풀어주게 되고 순식간에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서 왕의 감옥으로 옮기게 하신 것, 보디발의 가정총무에서 감옥의 총무로 옮기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고위공직자, 술관원장을 만나려고 한 것입니다. 술관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실력으로… 인맥(人脈)으로 왕을 만나려면 20년 30년이 걸려도 힘들 일입니다, 그때가 되면 11형제들은 흩어졌을 것이고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12지파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그의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죄수들이 우글거리는 감옥으로 나를 보내다니…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여인의 유혹을 뿌리친 나에게 상은 주지 못하고 감옥 형벌을 주시다니… 하나님은 무심하시지… 그건 아니었어요. 그것이 바로 착시현상입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특별한 사람을 만나도록 하기위해서… 그의 성공가도의 가장 짧은 지름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에 얼마동안은 착시현상으로 괴로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제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 보디발의 보금자리를 흩으시고 감옥으로 내쫓으셨는지… 제대로 눈이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우리 주변에서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십시오! 관심을 가지면 보입니다. 저 사람이 기뻐하고 있구나… 그러면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저 사람이 슬퍼하고 있구나… 같이 슬퍼해 주십시오! 내가 어려울 때일수록 내게 집중하지 말고 타인에게 주목하세요!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의 격려를 보이세요! 그러면 또 누가 나를 바닥에서 일어나도록 당겨주는 힘으로 돌아오게 될지 모릅니다. 그걸 신수성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감방에서 하바라기 상(賞)을 주셨습니다.

‘하바라기’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신수성가의 생애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요셉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편애(偏愛)를 받으면서 부수성가를 꿈꾸었습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큰형 르으벤의 도움을 기대했습니다. 자기가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 보디발 대장의 신뢰를 믿었습니다.

 

요셉의 꿈해몽처럼 떡관원장은 3일 후에 죽었고 술관원장은 3일 후에 사면(赦免)되고 다시 복직했습니다. 그가 감방을 떠나기 전에 요셉은 신신부탁합니다. 40장 14절 당신이 잘 되거든… 나를 생각해 주세요… 15절, 나는 옥에 갇힐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술관원장은 당연히 그러겠다고 약속해 주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은덕을 베푼 것입니까? 이제라도 저제라도 좋은 소식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요셉조차도 하나님의 손보다는 사람의 도움에 더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3절 술맡은 관원장이 그를 잊었습니다! 언제까지 만 2년! 긴 세월입니다. 다시 한번 사람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잊은 것입니다. 다시 착시현상에 빠졌던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술관원장의 승승장구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도 덜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도도 떨어졌을 것입니다. 누가 슬픈 빛을 띠는지 기쁜 얼굴이 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술관원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꿈을 해몽해준 나의 술관원장에게서로다… 아마도 요셉의 기도, 요셉의 믿음이 가장 떨어졌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6개월… 그제야 알았습니다. 사람에게 또 한 번 배신당했다는 것을… 요셉은 이런 상황에서 술관원장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회개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언제 내가 사람의 손으로 살았습니까? 사람이 도와주어서 내가 여기까지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노예 신분에서 총무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이라도 신수성가했는데 제가 눈이 어둡고 마음이 멀어서 사람을 기대했고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하며 더 이상 사람을 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해결만을 기대하는 하바라기가 됩니다. 해바라기가 해만을 바라보듯이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와 의존의 신앙을 업그레이드됩니다.

 

다시 왕의 앞에 섰을 때 당당히 하나님을 앞세웁니다. 41:25 여호와 하나님만이 해석해 주십니다… 그가 왕 앞에 나섰을 때 혹시 술관원장은 히브리인이라는 신분을 숨기라고 권유했을지 모릅니다. 요셉이 사람을 의지하는 요령을 부렸다면 꿈해석의 재능이 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비밀을 숨기려고 얼마나 거짓된 이중 얼굴로 살았겠어요?


그는 당당히 하나님만이 해석자가 되심을 알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의 원칙은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술관원장을 비롯한 보디발과 그 아내… 나중에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마음까지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이곳으로 온 것 같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신수성가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그의 믿음은 바로 감방에서 나온 신앙이자 신념입니다.  

 

감방에서 더 이상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사람은 경배의 대상도 아니고 미움과 보복의 대상도 아니다. 그냥 사랑의 대상이고 이해의 대상이고 용서의 대상일 뿐이다… 라는 감방철학이 그로 하여금 그를 해롭게 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축복해 주는 성공 이후에 더 큰 성공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착시현상에 벗겨지니 보이더라 이 말입니다.   

결론

다시 제주도 도깨비도로로 돌아갑니다. 자동차가 시동을 끈 상태에서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것, 페트병의 물을 쏟았는데 저절로 높은 곳으로 흘러 오르는 도깨비도로는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런 도로는 아예 없습니다. 그럼에도 엄연하게 그런 도로는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도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현상일 뿐입니다. 착시(錯視) 현상입니다.

 

우리도 착시현상에 빠져있지 않습니까? 하는 일마다 잘 된다고… 성공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진정 형통한 것이며 성공한 것입니까? 반대로, 내 눈에 불행으로 보이고 실패로 보인다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서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까? 착시현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 눈이 제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성공궁궐이 불행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감옥이 형통이라는 감방철학을 터득해야 합니다.   


요셉은 구덩이에서 자빠지고 난 다음에 착시현상이 교정되었습니다. 돼지는 죽을 때까지 주둥이로 땅바닥이나 파다 갑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구름도 못 보고 아름다운 세상도 보지 못하고 갑니다. 언제 봅니까? 자빠져야 합니다. 뒤집어져야 봅니다. 자빠지니까 하늘을 봅니다. 구름이 흘러가고 태양과 별들이 보이고… 넓은 세상을 돼지는 봅니다. 자빠지는 것이 돼지에게 유익입니다. 자빠져야 제대로 하나님을 본다! 이것이 신수성가 요셉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만 있으면 땅만 보고 성공만 봅니다. 구덩이에서 뒤집어져야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건강이 위태하고, 직장에서 퇴출당하고 감원 대상이 되는 인생의 감방에서 그제야 우리 인생이 뒤집어지고 하늘을 봅니다.

“하나님 큰일 났습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

이런 눈물의 감방철학이 우리를 살려줍니다. 인생살이에서 부질없는 착시현상에 빠지지 말고 뒤집어졌을 때 은사를 발견하고 뒤집어졌을 때 좋은 사람들 만나고 뒤집어졌을 때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쌓으면 우리도 신수성가합니다. 아멘입니까?
이제 우리의 실패도 원망도 눈물까지도 거두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셉처럼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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