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은 왜?
요한계시록 21장 7, 8절
서론
어떤 사람이 꿈에 지옥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옥의 사람들이 오물통에 고개만 내밀고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지옥은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지옥의 사자가 나오더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잠시 휴식 끝! 이틀 동안 잠수 시작!"
어떤 사람이 지옥 관광을 떠났습니다. 지옥에 가보니 땀을 벌벌 흘리며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라면…?'
그런데 관광안내원이 말했습니다.
"여긴 관광객들을 위한 코스예요"
저는 우스갯소리로 지옥을 말했지만 지옥은 농담할 곳이 아닙니다. 그곳의 실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누가 작성한다면 세상은 어느 정도 밝아질 것입니다.
지옥은?
-풀무물
-지옥.지하 감옥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곳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못하는 곳
-영원히 계속되는 곳-
6,70년의 삶도 이렇게 힘들거늘!그것이 지옥 사람들을 더욱 절망케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옥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심리 속에 지옥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지옥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살려합니다. 제 형제들이 아직도 불신이고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느 존재와는 달리 영혼이 있기에 영혼의 문제인 지옥 이야기는 회피할 수 없습니다.
지옥은 왜 있을까요?
이 문제는 누구나 한 두 번씩은 품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더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옥을 만들어 내셨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모든 이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분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국을?'
이런 질문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지옥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언제 생겼을까요?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까요? 하나님 외에는`처음'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계셨던 우주에는 지옥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있는 곳에는 죄가 없었기에 지옥의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지옥도 창조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옥은 언제 창조되었을까요?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천사들이 창조될 때 지옥도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천사들은 여섯째 날 중 어느 한날에 창조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천사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천사들 중의3분의1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나섰을 때 그들은 불순종의 값을 치러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의 대가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옥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마25:4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사람을 위한 감옥이 아닙니다. 지옥은 천사들을 가두어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창조보다 지옥은 먼저 창조되었습니다.
인생이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쥐를 잡기 위해 쥐덫을 놓았습니다. 그 쥐가 얼마나 영민 한지 그것을 갖고 놀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스런 강아지가 쥐덫에 걸렸습니다 .쥐덫은 강아지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그 런데 강아지가 걸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옥은 타락한 천사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아담이 지옥에 빠졌습니다.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은 죄 성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고 지옥을 지향하는 속성이 생겼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을 위한 감옥은 그의 수하가 되어버린 인간들에게도 해당되었습니다.
지옥과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지옥을 만드신 게 아닙니다.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왜 지옥을 만드셨나?"라는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경고하시기 위해, 만약 천사들이 타락할 경우 그들에게 벌주시기 위해 지옥을 만드신 것까지 우리가 항의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옥의 덫에 걸린 사람들!그들은 영영한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주의 나라에서 영원히 신음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를 갈며 후회하며 증오할 것입니다. 지옥은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변해있었고 음성이 잔득 쉬어있었습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귀할멈과 같은 목소리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니?"
"너무 힘들어서"
여러분! 너무 힘들다고 하여 항상 얼굴을 찡그리지 맙시다.얼굴의 근육이 굳어집니다.
마귀가 여기에 온다면 마귀는 누구를1차적으로 택할까요? 얼굴을 찡그린 사람을 찍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굴도 펴십시오.얼굴을 펴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지옥은 죄지은 천사들을 위한 것인데 사람이 그만 덜컥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
지옥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천사를 위해 지옥을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이 뱀과 놀다가 쥐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는 누구든지 그 공의의 법안에서 처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천사들에게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쥐덫에 빠진 인간을 구원시키려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더 크십니다. 우리는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신 그 희생적인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지옥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그 자체는 바로 지옥과 같은 것입니다. 그분은 지옥과 같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는 곳이고 전혀 죄를 모르는 성자 예수님에게는 죄의 모양조차도 모욕적인 것입니다.
아랍 사람들은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그 음식에 이상한 향을 뿌렸는데 그것 때문에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라 자체가 구역질이 올라오게 합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김치냄새,마늘냄새로 그렇겠지요.
예수님의 입장이 그런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시던33년은 그분에게는 그 자체가 고생이었고 모욕이었고 구역질이었습니다. 육체 속에 갇혀 사셨고 시기와 질투, 2죄와 투기와 살인....등등.
예수님은 십자가의 틀에 달렸습니다.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하는 사단의 요구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준 것입니다.
십자가는 쥐틀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달려 그 육신을 사단의 요구에 내어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사단에 의해 갈가리 찢어지고 모욕당하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쥐틀 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키셨습니다.
인류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열린 것입니다. 지옥의 공포는 극복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오클라호마 시의 동물원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탈출했다.온 동네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호랑이는 숲에 있다가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한 사람이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작은 양을 한 마리 준비하여 우리 덫의 문 앞에다 두었습니다. 호랑이가 그 양을 보았을 때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호랑이에게 양은 햄버거와 같습니다. 호랑이가 그 양을 덮쳤을 때 우리의 문이 내려왔습니다. 양은 희생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그런 것입니다.예수님은 마귀를 잡으러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죄들을 둘러쓰고 마귀에게 서셨습니다. 마귀는 죄를 좋아합니다. 죄를 먹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를 십자가로 유인하여 죽였습니다. 이제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던 성질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결론
미국 남부도시.장성한 네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임종을 맞았습니다. 아들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엄마는 영원히 죽는 게 아니야.잠시 잠을 자는 거란다. 그러니 엄마에게 굳나잇 키스를 해다오"
어머니의 요청대로 아들들은 "엄마,잘 자요 굳나잇!"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막내아들 엔디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불량배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임종 소식을 듣고 겨우 달려온 것입니다.
"앤디야,엄마에게 굳바이 키스를 해다오"
"엄마,왜 저에게는 그런 인사를?"
"형들은 만날 거야,그러나 너는 주님을 버렸으니 영영한 이별이다"
그 말을 들은 앤디는 엄마의 품속으로 얼굴을 묻으며 절규했습니다.
"어머니! 안돼요! 저에게도 굳나잇 키스를 하게 해주세요. 저도 형들과 같은 인사를 하겠어요. 사랑스런 우리 어머니,굳나잇!"
"그래,내 아들 앤디야, 굳나잇!"
지옥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옥은 타락한 천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락하였고 지옥은 사람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단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지옥은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죽음은 지옥행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한 개찰구입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납시다. 지옥의 공포에서 벗어납시다.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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