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를 통한 구원
열왕기하 7장 3~10절
서론
북한 잠수정이 동해 앞 바다에 들어왔다가 꽁치그물에 걸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70톤급 잠수정이라면 명태나 대구를 잡는 큰 그물에 걸려도 그럴 판인데 손바닥만한 꽁치그물에 걸려 잠수정이 오도 가도 못했다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잠수정을 잡은 것은 해군의 군함도 아닌 동해의 한 어부요, 명태나 대구잡이 그물도 아닌 작은 꽁치그물입니다.
저는 이번의 사건을 보면서, 나라를 지키는 자들은 목소리만 큰 정치권이나 이익집단들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들, 남들이 보기에는 빽도 없고 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세금 한번 포탈한 적이 없이 꼬박꼬박 내는 사람들, 소위 소시민, 꽁치그물과 같은 사람들-그들로 우리 나라가 지탱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본문은, 꽁치그물과 같은 작은 것으로 70톤짜리 잠수정을 포박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약한 것들을 들어 강한 것들을 물리치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1. 이스라엘은 국가적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은 항상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서 고침을 받고 돌아간 후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장군이 고침 받았지 왕이 고침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성은 고립되고 물자는 딸려서 결국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6:25, 나귀 머리 하나에 은80세겔, 합분태(콩의 일종)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지금 시세로 돼지고기 한 근에 100만원,밀가루 한 포에1천만 원 정도로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28절,여인들이 자기들의 아이를 잡아먹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자식을 먹는다는 것은 정신착란증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왕이 그 사실을 듣고 30절, "자기 옷을 찢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성의 위기요, 민족의 위기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같은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가가 치솟아 오르고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납니다. 앞으로는 더욱 돈의 가치가 없어지고 물가는 고가로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빈민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사회는 혼란해지고 범죄율이 증가됩니다. 정신착란이 일어나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벌어집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부모들의 손에 의해 죽어 가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는 붕괴될 것입니다.
이런 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지난 세월,교회는 우리 민족의 위기를 지키는 데 앞장 서왔습니다.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글에,목사님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 지리산 주지스님의 차가 논에 빠진 것을 보았습니다.목사님들이 내려서 차를 빼내어 주었습니다.한 목사님 왈,
"부처님이 빠지셨는데 예수님이 건져주셨다".
그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신라에서 시작된 불교는 고려 시대까지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그러나 호국불교가 점차 부패하여 절에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빈농들을 착취했습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유교를 새로운 통치원리로 도입했습니다. 유교는 허위의식의 양반문화를 양산했고 우리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 싸우고 배척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때 기독교가 들어와서 사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문맹퇴치운동
*일제에 저항-3.1운동으로 체포된 목사,장로의 수가134명.당시 양자의 숫자가1029명. 13%.(손봉호의`고상한 이기주의')
*공산치하에서 나라를 지킴
한국교회는 이처럼 불교와 유교에 빠져있었던 이 민족을 구해내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왕과 장관은 구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위기 시대에 사람들은 왕과 세력을 가진 이들에게 기대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성의 위기 속에 왕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성안의 여인들이 도와달라는 요청에 왕은
6장 27절, "내가 무엇으로 도우랴,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포도즙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왕은 여인들의 말을 듣고 옷을 찢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왕을 가까이 모시는 장관조차
7장 2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하면서 속수무책입니다.
왕과 장관은 힘이 있는 사람들이고 엘리트들입니다. 그 사회의 모범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공부를 해보면 그 시대가 병들고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모범생을 써서 역사를 바로잡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힘이 있었고 능력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그들은 항상 내 뿔은 내가 취하지 아니하였더냐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뽐내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소영웅주의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큰 그물만 던지려는 사람들입니다. 명예심과 업적주의가 있기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표를 의식하는 사람은 나라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큰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1%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움직입니다. 1%의 교회는1년 예산이 수십 억 에서 수백 억 입니다.
그 1%의 교회는 소위 성공한 목사님들, 유명한 목사님들입니다. 그들은 어머어마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1%의 교회가 한국교회의 영적인 지도자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자본주의 경쟁체제로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믿음의 힘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교회는 점점 비대해져갑니다.수십 억짜리 오르간 들여오고 종탑 하나 세우는 데 수억씩 들고…1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예배당에 수백 억 씩 들여 공사를 합니다.그러면서도 정작 한국교회는 힘을 잃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도덕적 힘을 잃고 영성과 야성이 날로 쇠하여집니다. 그 대신 인위적 권위와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종교인들로 득실거립니다. 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밟히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한 시대를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왕과 장관처럼 한 시대를 향하여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벽돌 쌓는 일에만 돈을 투자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시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비가 셉니다. 예배 중에 비 올까, 걱정도 되고 누구는 새로 오는 분들에게 창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쌓아놓고 고치지 않는다면 창피한 일이지만 남을 도와주면서 정작 우리 예배당이 비세고 있다면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대궐 같은 예배당에서 편안하게 예배하는 것을 오히려 창피하게 여겨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들어 쓰십니다.
그 성밖에 다섯 명의 나환자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성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약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꽁치그물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꽁치그물. 명태나 대구를 잡는 그물, 고래를 잡기 위해 펼쳐놓은 그물에 비하면 꽁치그물은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수정을 잡은 것은 큰 그물이 아니라 그물코가 촘촘한 꽁치잡이 그물이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왕도 있었고 장관도 있었습니다. 성안에는 유능한 여러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람 군대의 포위 앞애 속수무책이었습니다.양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다섯 명의 나병환자들.그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그 사회의 낙제생들입니다. 그들은 굶다가 의논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들어가 봐야 받아주지도 않고 먹을 것도 없다.이왕 여기에서 죽을 거라면 아람 진에 가보자"(7:4, 5절)
그들이 아람 진을 향해 가는 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큰 군대의 소리로 들리게 한 것입니다. 아람 군사들은 모든 걸 놓아두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람진에는 먹을 것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사실을 성에 전갈했고 성읍사람들은 그 양식으로 죽음을 극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들만을 들어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무디 선생.영국의 스펄젼.빌리그레함-학벌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박사학위로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박사가운을 입고 설교를 합니다. 서너 명을 놓고서도 가운을 입고 설교합니다. 설교의 능력은 가운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설교의 능력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으로 나옵니다.
교회는 그 동안 지나치게 소영웅주의에 빠져왔습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기독교 부흥의 계기가 되려고 애써왔습니다. 차범근 선수를 지나치게 미화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어떤 구청장이 성경 놓고 선서했다고 하여 기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큰 그물로 한국교회는 무엇을 잡았습니까? 오히려 교회의 성장은 이름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약한 자들로 인해 복음이 전해졌고 부흥해 왔습니다.
애드리언 로저스 목사는<챔피언주간>을 가졌습니다.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유명 스타들을 초청하여 간증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최고의 스타는 폴 앤더슨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유명했었습니다. 그는 간증했습니다.
"나처럼 힘센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필요합니다."
그 날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며칠 후 그를 심방 했을 때 물었습니다.
"앤더슨의 어떤 내용이 당신의 가슴에 와 닿던가요?"
그러자 젊은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앤더슨 때문에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저는 조지 윌슨이 간증 때문입니다"
`조지 윌슨?누구였더라?'
처음에는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식모임이 끝나고 자유롭게 나눔을 갖는 시간에 간증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전신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순서에도 들어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얼굴로 주님의 기쁨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 젊은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조지 윌슨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보았을 때 만일 하나님께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내게도 분명 굉장한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합니다. 약함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아주 적당한 사람들입니다.
결론
잠수정을 잡은 꽁치그물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거창한 계획으로 백성들을 들뜨게 하다가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던지는 큰 그물에 큰 것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빈 그물로 백성들을 허탈하게 합니다.
아이엠에프가 오기 전에 우리나라가OECD에 가입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이 국제기구는 선진국 클럽입니다.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입니까? 재정도 넉넉해야 하지만 문화가 있어야 하고 시민의 질서수준이 있어야 하고 도덕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재정적인 것만 가지고 까불고 허풍떨다가 아이엠에프를 만나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꽁치철학을 가지고 경제를 지켰다면 이 어려움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축복을 찾으려는 이들의 모임이 아니고 명예를 얻으려는 설교가들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벽돌 투자가들로 교회가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꽁치그물처럼 촘촘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상냥하게 만들고 남을 이해하고, 자동차 운전 하나에도 예의가 있고, 조금은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교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되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약자를 들어 사용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꽁치그물들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고 이 교회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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