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요셉 열전(3) 꿈이 잘못 해석되다!(창세기 37:18~2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0.
반응형

 

요셉 열전(3)

꿈이 잘못 해석되다!

창세기 37장 18~28절

서론

미국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행상인(行商人)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소년도 아버지를 따라 떠돌이생활을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호텔도 못 가고… 여인숙 잠자리는 항상 불편했습니다. 때로는 야산에서 이슬을 맞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소년은 호텔을 꿈꿉니다. 품위가 있으면서 누구나 쉽게 잘 수 있는 호텔, 행상인의 아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 전세계에 가장 많은 체인망을 소유한 홀리데이인호텔입니다.

 

홀리데이인호텔을 창립한 빌 월튼의 꿈과 비전은 단순한 호텔창립과 돈벌이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누구나 우아하고 값이 싼 호텔에서 아늑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호텔, 이것이 꿈이고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리데이인호텔을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이 예화는 힐튼호텔 창립동기와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여름에 요샙의 생애를 살피고 있습니다.  요셉의 생애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꿈입니다. 열한 곡식단이 절을 하는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경배하는 꿈…, 요셉의 꿈은 비극의 출발점이기도 하면서 역경을 견디게 하는 희망입니다. 요셉의 꿈은  꿈을 잘못 해석한 사람들 때문에 요셉이 당하게 된 것입니다,

1. 아버지는 꿈을 잘못 해석해서 채색 옷을 입힙니다.

야곱은 12아들 중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발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입니다. 야곱 당시에는 귀인복장이고 나중에는 제사장들이 입던 아마포 옷입니다(출 28:4).

야곱은 12아들 모두에게 채색옷을 입힐 수 있는 거부(巨富)입니다. 그런데 왜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혔을까요? 3절, 요셉은 91세 노년에 얻은 아들입니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뒤늦게 본 아들인데다 생모(生母)마저 죽고 없었기에 애틋한 정이 더 갔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편애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3절, “그를 더 사랑하여”, 개역성경에는 “깊이 사랑하여”라고 나옵니다. 이는 어느 정도의 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선택적 사랑입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이 지낸 결과 가장 신앙적이고 효성스러운 요셉을 아버지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타고날 때부터 성품이 좋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잖아도 요셉을 총애하던 아버지 야곱은 아들이 꿈을 꾸자 11절, 그 말을 간직해 둡니다. 그렇지… 저 녀석은 훌륭한 위인이 될 거야, 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잘못된 꿈을 기대하고 채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의 내용, 소위 비전은 단지 성공과 명예가 아닙니다. 총리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총리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번성해지는 민족을 요셉을 통해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애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가 총리가 되고 집안이 애굽으로 이주시켜서 안정된 가운데 대민족을 이루고 그래서 여호와종교를 세계화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사명이 비전이자 보여주신 꿈이었는데 그 꿈을 듣는 순간 야곱은 집안의 부족장으로, 가나안 땅에서 대(大)민족이 되고 요셉을 통해 국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오해해서 채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결국 채색 옷은 요셉이 입고 싶었던 옷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입히셨던 옷도 아니고 아버지의 꿈과 기대와 욕심이 만들어 낸 옷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말하지만 우수한 대학진학과 하나님이 주신 꿈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출세와 성공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성공 자체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이루었다는 식으로 신앙을 오도(誤導)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이용해서 성공하려는 크리스천들은 많은데 세상에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을 올리는 존경받는 성공자들이 많지 않기에 한국교회는 야곱이 목회하는 교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기대감 속에서 입혀 준 옷은 형제들이 벗겨버렸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편애가 부른 옷 벗김이기에 아버지 야곱이 벗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벗겨버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내 자녀들에게 입혀주는 채색 옷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부모 욕심으로 입힌 옷입니까? 만약에 입신양명(立身揚名) 그 자체가 꿈과 비전이라면 우리는 자식에게 채색 옷을 입혀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벗겨질지도 모르는 채색옷을 말입니다.  

2. 형제들은 꿈을 잘못 해석해서 채색 옷을 벗깁니다.

야곱의 일가는 유목민입니다. 그래서 열 아들은 세겜에서 양들을 치고 있습니다. 세겜은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기만적인 방법으로 세겜 성(城) 남자들을 몰살하고… 상당히 위험도가 높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세겜의 목초지가 너무 좋아서 아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풀이 좋은 이곳에서 양(羊)을 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안부가 염려되어 요셉을 보냅니다. 요셉을 보는 순간 형제들은 미운 생각이 일어납니다. 19절 꿈꾸는 자가 오도다… 꿈꾸는 자를 두고 빈정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줄 떡을 갖고 이스라엘의 별들을 보는 꿈을 꿀 때 열명의 형제들은 떡을 먹고 고기나 구워먹으면서 야곱집안의 헤게모니가 누구에게로 갈 것인가, 아버지의 후계권이 누구에게로 갈 것인가… 저 놈이 있으면 우리에게 불이익이다, 그것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는 꿈을 꾸는 자들이 있습니다. 현실에만 연연하고 있을 때 늘빛교회의 앞날을 꿈꾸는 자들이 있습니다. 꿈꾸는 자들을 빈정대지 마십시오! 함께 망합니다. 꿈꾸는 사람들의 대열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빛나는 꿈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형제들은 23절 채색 옷을 벗겨버립니다. 채색 옷을 벗김은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며 요셉을 형제로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꿈을 구덩이에 묻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형제들은 요셉의 꿈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열한 곡식단이 요셉을 향해 절을 하는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을 위해 경배하는 꿈…, 그 꿈은 요셉의 지위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번성해지는 민족을 요셉을 통해 이룬다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요셉을 통해 야곱부족은 큰민족이 되고 그들을 통해 여호와 종교는 세계화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꿈을 바르게 해석했다면 아우 요셉은 얼마나 귀한 사람입니까? 그를 통해 자기민족이 대(大) 민족이 되면 누가 혜택을 봅니까? 자신들은 열두 부족의 부족장이 되고, 자식들은 대민족을 이루는 중심족보가 됩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자기들의 수령이 된다는, 장자권 계승으로 꿈을 오해한 것입니다.


<야곱과 그의 형제들>을 쓴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그들 형제들 속에는 뽑으려야 뽑을 수 없는 가시가 박혀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가시는 분노와 질투의 가시입니다. 이게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질투심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맙니다.

 

이때의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요셉의 트레이드마크가 순종이라고 곱게 구덩이에 들어갔고 스데반처럼 순교의 자세로 기도하고 있을까요?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 앞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42:21)

 

요셉은 애걸했다고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죽이려면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알고나 죽자고… 그렇게 애걸했지만 시기와 질투는 귀를 막고 동정심을 차단했습니다. 요셉 때문에 손해고 앞으로도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꿈의 오해기 비행(非行)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연일 재벌들을 공격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공한 사람들이 그 성공을 목표로 삼아버린 나머지 자신의 성공을 세상에 나눠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富)와 성공 자체가 목표가 되었기에 주변 사람들을 이용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남의 것을 탈취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생겼기에 존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시기심도 문제입니다. 오죽했으면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나옵니까? 시기심과 질투라는 쓴뿌리,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꿈쟁이들이 정치계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싹이 잘립니다. 교회 안에서도 질투심 때문에 꿈들을 꺾어버립니다.

 

이왕이면 꿈쟁이들의 꿈을 성원해 주세요. 그래서 저는 누가 잘되면 현수막을 겁니다. 모두의 기쁨이기에… 우리는 한 형제들이기에… 우리 중에 누가 잘 되면 교회가 잘 되고 대한민국이 잘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부질없는 시기심으로 요셉의 꿈을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시기심으로 입으로 채색 옷을 벗겨서는 안 됩니다.

3. 요셉은 채색 옷을 벗기고 제대로 된 꿈을 꿉니다.

야곱 집안에 가장 큰 문제는 가장(家長)인 아버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열 아들도 아버지의 피해자입니다. 요셉의 고통스런 17년은 아버지의 편애가 낳은 비극입니다. 그렇다고 요셉이 완전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요셉의 흠으로 보이는 유일한 부분이 나옵니다. 2절,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사실보고였지만 요셉의 정직함이 형들에게는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4절)는 불편한 관계를 가져온 것입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셉은 고지식했습니다. 형들의 잘못된 태도를 아버지에게 고했습니다. 좋은 일이지만 형제간에는 숨겨주고 묻어주어야 하는 덕(悳)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용장보다는 덕장이 더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것입니다.

꿈에 관한 내용. 요셉인들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은 아닙니다.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자기 형들에게, 그것도 두 번씩이나 들으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자기에게만 채색 옷을 입히는 형제들의 불만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도 가려서 할 줄을 알아야 했습니다. 형제들의 시기심에 불을 붙인 것은 요셉의 책임도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자기 성공과 출세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형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인가? 나는 형제들보다 성공한다… 나는 왜 형제들보다 성공할 것인가… 그 다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성공만 말하니까 형제들에게 건방져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을 오해하게 되고 그를 죽이면 자기들 꿈이 살아날 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걸 요셉의 잘못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의 미성숙입니다. 언제부터 성장을 시작했을까요? 채색 옷이 벗기는 순간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채색 옷이 벗겨지는 순간,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든 특혜가 사라지는 순간 기존의 꿈을 내려놓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짜 꿈을 품기 시작합니다. 이후 고난의 과정을 통해 꿈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서 하나님과 아버지가 요셉을 성공시키는 방법이 다릅니다.  야곱은 편애의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요셉을 조기성공-소년등과(少年登科)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옛사람들은 인간의 3대불행 중의 하나로 소년등과(少年登科)를 꼽습니다. 너무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내려올 일만 남았고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를 이어 가문이나 번영시킬 성공자를 기대했기에 소년등과를 기대하고 채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삭은 아예 눈이 멀었고 아버지 야곱은 영적인 근시인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채색 옷을 벗깁니다. 형제들의 시기심을 선용해서 채색 옷을 벗기고 광야로 보냅니다. 진짜 사랑하니까 광야로 보냅니다.


“진짜 사랑하니까 광야로 보낸다”

이 구절은 전병욱 목사님의 <다시 시작하는 힘>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이 글을 쓸 때 전 목사님은 소위 조기성공한 목사였습니다. 온 세상이 성공한 목사라고 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지금 그는 교회를 사임하고 광야에 있습니다. 리더십도 있고 말씀의 능력도 있는데 너무 설익어서…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는 상태에서 너무 큰 성공을 일찍 거두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인으로 만드시려고 광야로 보낸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꿈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알리고… 인간적인 성공의 꿈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붙잡으라고… 채색 옷을 벗기시고 광야로 보낸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비전을 제대로 보았기에 용서와 축복의 장년과 노년을 보낼 수 있고 성공 이후에 더 큰 성공을 거둔 사명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수성가의 인물입니다.  

결론

어느 대학교 의대생들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 지금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3명의 의대생이 동기여대생이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하고…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신체를 촬영한 혐의도 받은 혐의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성공의 상징이며 의대생은 성공예비생들입니다. 의사 가운을 입히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애를 썼으며 본인들이 얼마나 수고했겠어요? 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의대생이라는 옷을 벗기게 되었습니다. 의사 가운은 실습실에서나 입어보고 벗기게 되었지요.

 

이제 그들은 실패한 사람일까요? 의사를 목표로 삼았다면 분명 꿈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되어 좋은 일을 하려는 비전이 있었다면 의사라는 채색 옷은 벗겨졌지만 광야에서 제대로 된 비전을 발견하고 다른 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입혀주는 존경의 채색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독(毒)이지만 약(藥)이 되는 것입니다.


A. W(에이든 윌슨) 토저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 먼저 깊이 상처받게 하시고 위대하게 쓰신다.”

 

그래요! 우리가 크게 쓰임을 받기위해서는 때로는 채색 옷을 벗어야 합니다. 사장이라는 채색 옷, 과장이라는 채색 옷… 무엇이라는 채색 옷… 지금 벗겨졌습니까? 옷 벗김을 당해보았습니까? 그때 우리는 당황하고 부끄럽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니까 광야로 보낸다! 사랑하니까 채색 옷을 벗긴다! 더 좋은 총리의 옷으로 입히기 위해서… 더 좋은 여호와종교의 세계화라는 사명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벗기신 것입니다. 부수성가라는 딱지를 떼어 가나안에서나 성공한 작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그것을 알았을 때 요셉은 성실함과 용서라는 신수성가(神手成家)의 믿음이 되고 성공이후에 더 큰 성공을 이룬 진정한 꿈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무쪼록 신수성가하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