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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요셉 열전(4) 웅덩이에서...(창세기 37:25~2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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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품절. 중고서적에서

 

요셉 열전(4)

웅덩이에서...

창세기 37장 25~28절

서론

신수성가(神手成家)-하나님의 손의 도움으로 성공한 인물 요셉의 생애를 살피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요셉의 3단계 생애,

두 번째는 유전과 환경이 개인의 성품에 미치는 영향…

 

지난 시간에는 채색 옷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꿈을 잘못 해석해서 채색옷을 해 입혔다!

㈁ 형들은 요셉의 꿈을 오해해서 채색옷을 벗겨버렸다!

㈂ 요셉은 채색옷을 벗기고 나서야 비전의 옷을 입었다!

 

그래요! 내 손으로 아무리 좋은 채색 옷을 입어도… 자식에게 명예의 채색옷, 학벌의 채색옷, 건강의 채색옷, 물질의 채색옷…을 입혀도 하나님께서 벗겨버리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채색옷을 입어야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진짜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설교로 ‘웅덩이’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웅덩이에 빠집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만 웅덩이에 빠지고, 캄캄한 밤길에만 웅덩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얼음장 위를 걷는 것 같아 언제 얼음장이 쨍~ 하고 깨지면 누구나 웅덩이에 빠집니다.

 

인생의 웅덩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왜 형통의 대로(大路)를 주시지 않고 웅덩이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까요? 요셉의 일생에서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웅덩이에서 바닥으로 근력을 키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웅덩이에서 요셉의 근력을 키워내십니다. 근력(筋力)은 근육(筋肉)의 힘. 상황을 감당해내는 의지력입니다. 이런 힘이 있어야 체력이 건강하고 상황을 견디어 냅니다.

사람은 50~70세에 이르면 근력의 30%는 잃게 되는데 근력이 떨어지면 근육이 위축되어 키가 작아지고 왜소해 집니다. 여성들은 근력이 없으면 몸의 탄력이 없어집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힘은 육체의 근력도 있지만 정신적인 힘-의지력이 필요합니다. 정신력이 강해야 성공하고 믿음의 근력이 강해야 믿음의 성공자가 됩니다. 정신이건 믿음이건 근력이 약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근력을 키워야 합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입니다(3절). 30세에 얻은 아들과 91세에 얻은 아들은 건강세포가 좀 다르지 않을까요?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애정결핍도 있고 아버지가 채색 옷을 해 입히며 너무 감쌌기에 ‘마마보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형들은 세겜 들판에서 양을 치는데 열일곱 요셉은 집에 있습니다. 그만한 나이라면 형들과 양을 칠 건장한 청년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랑의 이름으로 과잉보호를 했고 이것이 아들의 근력-정신력, 의지력을 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자녀들 이야기 아닙니까?

 

요셉이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면 부수성가(父手成家)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수성가로 이룬 성공이라면 이를 시기한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콩가루 집안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면 조기성공은 하지만 언약을 이루는 위대한 인물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는 옛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인간의 세 가지 불행을 말합니다.

 

첫째는 소년등과(少年登科)입니다. 일찍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너무 이른 성취로 학업을 멀리했기에 자기 향상이 없게 되니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 덕으로 큰 벼슬에 오르는 일입니다. 애쓰지 않고 남이 못 가진 것을 누리다 보니,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자리인지 몰라 함부로 굴다 제풀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재주가 좋은데 글까지 잘 쓰는 것입니다. 거칠 것이 없고 꿀릴 데가 없습니다. 실패를 모르고 득의양양하다가 한순간에 나락에 굴러 떨어집니다.

 

사실 이 세 가지는 누구나 선망하는 것인데 선인들은 오히려 이를 경계했습니다. 차도 넘치지 않고, 높아도 위태롭지 않으려면 자신을 낮추고 숙이는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맞는 말입니다. 요셉이 조기성공을 했어도 근력을 키우지 못하면 12명 형제의 부족장이 될 수 없습니다. 부족의 지도자가 되려면 근력을 키워야 합니다. 근력은 채색 옷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특별한 편애를 통해 생긴 것도 아닙니다. 13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근력-의지력은 바로 웅덩이에서 살려고 바동거리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요셉의 근력학교는 왕자로 살던 집이 아니라 웅덩이였습니다.

 

웅덩이는 정화(淨化)되는 근력을 키워냅니다. 사람이 바닥까지 내려가면 마음을 비웁니다. 절망의 바닥에서 욕심을 버리게 되고 마음이 정화됩니다. 요셉은 웅덩이에서 경배 받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비움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자 근력이 생깁니다.

 

바닥은 솟아오르는 힘을 줍니다. 바닥은 절망의 자리면서 치고 일어나는 희망의 장소입니다. 요셉은 바닥을 쳐 보았기에 더 이상 절망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바닥의 힘을 체험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련으로 사랑하는 자의 근력을 키웁니다.

 

오늘 웅덩이에 있습니까? 아프지만 근력을 키우는 훈련소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바닥입니까? 바닥의 정화하게 하는 힘을 믿으십시오! 바닥의 솟아오르게 하는 힘을 믿으십시오! 그래야 우리에게 근력이 생기고 의지력이 생기고 제대로 신수성가의 생애를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웅덩이에서 기도로 근력을 키우십니다.

요셉은 느닷없이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웅덩이 속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구했을까요? 큰어머니 레아 아들들, 특히 큰형에게 도움을 구했겠지요? 살려달라고… 어머니의 여종 빌하의 아들-단과 납달리에게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훗날 요셉 앞에 선 형제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 42:21)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애걸과 괴로움, 듣지 아니하는 무정한 형제들… 아버지 집이었으면 무엇이나 들은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기도다운 기도, 목숨을 건 열정의 기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웅덩이에서 기도를 시킵니다.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형들은 자기를 구원해 주지 않습니다. 형들은 채색 옷을 벗겼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묵과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만약 요셉이 살아 돌아가면 아버지가 아들들을 그냥 두겠어요? 아들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도 매정한 사람임을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살의(殺意)를 보는 순간 더 이상 형제들의 도움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서남북이 문이 닫혔을 때 요셉은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형제들의 도움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구합니다. 그것은 결사적인 기도였고 근력이 생기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형제들이 음식을 먹다가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후손들의 미디안 대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기에 그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이복 큰 할아버지의 후손입니다. 아주 남남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길을 요셉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요셉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가 이끄는 곳으로 방향을 돌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웅덩이의 근력의 기도가 가는 곳마다 그를 붙들어 주었고 그의 꿈이 시들어질 때마다 그의 기도는 꿈을 다시 날게 하는 연료가 된 것입니다.


요셉의 기도는 눈물의 기도입니다. 눈물은 힘이 셉니다. 눈물은 형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지만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드리는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하갈이 아브라함 집에서 추방당해 방성대곡하니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창 21:17)

 

어떤 소리를 들으십니까? 우는 소리! 눈물의 기도소리!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방성대곡하는 눈물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훗날, 형제들을 대하는 용서의 힘은 단지 형제애나 언약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울어본 사람이기에 지금 형제들이 당황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애절한 심정, 후회막심의 그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굽 시종들을 물리치고 형들 앞에서 방성대곡합니다. 내가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판 요셉입니다…

 

그 말은 이미 당신들을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울었습니다. 우니까 용서가 됩니다. 용서의 힘은 무릎에서 나온 것이며 웅덩이에서 흘렸던 눈물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도의 힘, 눈물의 힘은 이렇게 13년 동안의 증오와 미움을 씻어버리는 위대한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웅덩이에 있습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에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웅덩이에 빠졌나요? 요셉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웅덩이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우는 법을 배웠고 눈물도 힘이 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웅덩이에서 눈물의 힘을 배워야 합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우리의 근력을 강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동서남북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요셉처럼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까? 우리는 그곳에서 거듭난 사람들이기에 거기만이 아버지의 집이고 아버지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처럼 센 무기도 없습니다. 그걸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신수성가가 됩니다. 

3. 하나님은 웅덩이에서 말씀으로 근력을 키우십니다.

요셉은 일찍 두 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을 말씀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좇아 번영신학의 성공관을 가졌을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성공한다… 왜 성공하냐? 하나님께서 왜 성공시킬까? 성공이후의 비전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꿈이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의 찬란했던 꿈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나 웅덩이에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에게 생사를 맡기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니까… 웅덩이에서 구출되고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제야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창 15:13~16)


요셉은 17세가 될 때까지 부수성가의 힘으로 성공하고 있는 ‘소년등과’입니다. 그러나 웅덩이에서 눈물의 기도를 통해 그는 거듭납니다.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대상들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기기 막힌 인생하락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 안에서 꿈을 제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은 단순히 자수성가나 부수성가로 오는 부족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으로 가게 되고 대민족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놓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말씀을 통해 꿈을 제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자 내 꿈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 하나님 꿈이 세워지는 미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의 도움에만 의지하는 신수성가의 믿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웅덩이에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웅덩이에 빠졌나요? 요셉은 말씀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상황을 말씀 안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자 힘이 생깁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들은 하나님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러자 용기가 솟아나고 신수성가의 아멘신앙이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이요 지혜의 힘입니다.

 

우리도 웅덩이에서 말씀의 힘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말씀은 우리의 근력은 강화되고 신수성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요셉은 웅덩이에서 근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웅덩이에서 바닥의 힘을 체험함으로 의지력이 강해졌습니다. 웅덩이에서 기도를 통해 눈물의 힘-감성의 남자가 되었습니다. 웅덩이에서 나온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언약을 깨닫고 말씀중심의 지식의 남자가 됩니다.

요셉은 지정의(知情意)가 균형 잡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낸 부수성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웅덩이에서 만드신 신수성가의 멋진 남자입니다. 요셉에게서 가장 균형 잡힌 남자, 예수님을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도 웅덩이의 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신수성가, 하나님의 손의 도움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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