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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찌꺼기를 떨어내다!(잠언 25: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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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고서적에서

찌꺼기를 떨어내다!

잠언 25장 4절

서론

제가 다니는 목욕탕 때밀이실 입구에 이런 표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때밀어보지 못하면 천국 가서도 후회한다!>

 

대단한 자신감과 자부심입니다. 설교를 하면서 늘 그 구호를 생각합니다.

 

내 설교에서 은혜 받지 못하면 아무 곳에서도 은혜 받지 못한다!”

 

암만 해도 그런 자신감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목욕탕에는 왜 갑니까? 몸의 피로를 풀고 때를 닦아내기 위해 갑니다. 목욕탕 물에 낚시질 하러 간다면 어떤 사람입니까?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왜 갑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갑니다. ‘예배라는 헬라어는 종이 제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 맞추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유일한 예배 대상 하나님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을 가지고 그 높으심과 은총을 찬양하며, 섬기는 거룩한 봉사하는 엄숙한 행위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가르쳤습니다( 4:20). 왜냐? 예배의 대상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배하면 마음이 거룩으로 달구어집니다. 마치 호수에 산과 들이 들어오듯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복사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되고 그걸 떨어내기 위해 죄인됨을 회개하고 성결한 삶을 향해 나갈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 가는 것은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몸과 마음과 생각과 정신 속에 달라붙은 찌꺼기들을 떼어내기 위함입니다. 그 찌꺼기, 불순물을 계속 달고 교회 다니면 횟수는 느는데 세속화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게 됩니다, 그걸 떨어내야 성장-성숙하는데 요즘 교회가 번영신학에 빠져 죄에 대한 몸부림이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살면서 죄를 가볍게 여기고 심상히 여기다니 결과는 영성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먼지투성이에서 삽니다. 미세먼지가 건강을 해칩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오면 샤워를 하고 아이들을 깨끗하게 닦아줍니다. 집안청소에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죄의 문제는 무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세상의 성공과 축복, 성도들 간의 교제, 사역이나 하려하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죄에 대해서는 무심합니다.

 

불교계의 큰스승이라 일컫는 성철스님이 자기 죄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미산을 덮은 죄업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그러면서 성철 승려는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반평생을 고요한 산사(山寺)에서 살아온 고명한 승려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겠어요? 매일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스님이 우리보다 죄가 더 많겠어요? 마음이 깨끗하기에 더욱 죄에 예민하고 구세주가 없이 자력구원을 원했기에 죄 앞에서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그 죄는 외부유입이 아니라 마음 안에 들어있고 마음에서 발산되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죄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죄이고 죄의 문화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구원에 방해가 되는 원죄는 예수님을 구제수로 영접할 때 이미 끝장났습니다.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가 속함받았습니다. 문제는 영혼을 더럽히고 성화를 가로막는 생활 죄들은 계속해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들이 누적되면 마음이 여호와를 향하지 못하고 눈과 귀가 하나님에 대해 막혀버립니다.

 

나는 수염이 많아 매일 전기면도기를 사용합니다. 한 달 정도 되어 열어보면 수염이 마치 흙처럼 채워져 있습니다. 그걸 숫자로 계산하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우리는 매일 내 수염의 숫자만큼이나 죄를 짓고 수염이 자라는 만큼 그 죄들이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깎아주어야 하고 전기면도기를 청소해 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면도기로 깎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날의 죄는 그날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고 교회에 나올 때는 더욱 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와 직면하고 그 죄의 용서를 구하며 상한 심령이 될 때 정결함을 회복하게 되고 성화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하며 은혜를 받는 일에만 연연하고 죄에 무관심하다보니 죄가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금처럼 빛나던 믿음~ 은과 같이 순수하던 믿음이 불순물로 변질됩니다. 종교의 찌꺼기가 너무 많이 달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본인만 잘 모를 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죄로 망해버린 예루살렘 성터를 바라보면서 애가(哀歌)로 탄식합니다.

 

애가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이사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죄를 향하여 탄식합니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1:22)

 

()이 찌꺼기가 되고 포도주에 물이 섞였다면 어찌 귀금속이 되겠으며 상등품 포도주입니까? 이건 소용가치가 없는 은이며 맥빠진 포주도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에 불과합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1:12) 있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에 무심한 저들은 여호와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며 화도 내리지 아니한다! 나와 웬 상관이냐 포도주에 가라앉은 찌꺼기 같아서 좋은 포도주를 나쁘게 만듭니다.

 

반짝반짝 빛나야할 은()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 거룩한 성민(聖民)이 되어야 할 선민들이 죄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119:119)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배하면서 거룩이 우리에게 투영되고 하나님이 내 안에 복사가 되어야 하는데 죄가 먼지처럼 쌓여있어 복사가 안 됩니다.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더 완고해지고 더 위선적이 됩니다. 죄의 먼지를 뒤집어 썼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은이 되려면 붙어있는 찌꺼기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해결을 제시합니다.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은 산출량이 많지 않고 그만큼 귀하기에 귀금속이라 합니다. 귀금속도 본래는 땅에 묻혀있습니다. 하찮은 금속이나 광물에 불과합니다. 이게 제대로 은이 되고 금이 되려면,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여러 과정의 제련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은 금에 비해 제련비가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금제련과 함께 행합니다. 이렇게 찌꺼기를 제거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장색의 쓸만한 그릇, 용도입니다. ()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전체 공급량의 약 15%가 화폐제조에 사용됩니다. 70% 이상은 가공성과 기계적 성질이 좋아 산업용으로 쓰입니다. 은도금, 베어링, 사진공업, 주방기기, 땜납, 치과용으로 넓게 활용됩니다. ()및 전기전도율이 금속 중 가장 높아 일반전선에는 경제적 이유로 구리를 사용하지만 정교한 기계장치에는 은()전선을 사용합니다. ()은 회백색 광택이 있고 공기나 물과 쉽게 반응하지 않고 빛을 잘 반사해 반짝거려 보석함이나 목걸이, 반지와 같은 장신구를 만드는 데 이용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귀한 귀금속이라 해도 찌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냥 값어치가 없는 금속(金屬)에 불과합니다. 얼마나 귀하게 변화되었으면 귀금속이라 합니까? 은이 귀금속이 될까, 땅속에 묻힌 금속으로 남을 것인가? 그것은 찌꺼기를 제거하는 제련과장에 있습니다. 혹독하게 거치면 귀금속이 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 소홀하면 자연산 무기물 광물로 남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수저, 은수저로 태어나도 사람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재산과 신분과 명예로는 금수저 은수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생각과 육신을 연마하면서 알게 모르게 붙어있는 불순물들을 떼어내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죄를 떼어내는 법! 죄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법! 두 인물을 소개합니다.

1. 다윗의 눈물

성경은 인간이 죄에서 태어난다, 합니다. 살아가는 어떤 과정에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작점인 어머니의 태가 죄인이니 양수에서 성장하다 양수찌꺼기에 범벅이 되어 출생하게 될 때는 방사선 오염처럼 100% 죄의 오염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악설이 나옵니다.

 

다윗이 자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을 깨달은 순간 뭐라고 고백하는가, 시편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어머니 태()속에서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조립되고 감정, 기질, 성향, 성격의 DNA가 새겨지듯이 죄조차도 내 지체의 한 염색체로 조성되었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짓는 죄는 단순히 충동적인 성향이나 아름다운 여인에 잠시 미혹되어 벌어진 실수가 아니라 본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절규합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는 박하과의 향기 좋은 약용식물로(12:22) 돌 틈이나 가옥의 담벽에서 자랍니다. 가지가 많고 줄기에 털이 많아 물을 잘 흡수합니다. 그래서 정결의식 때 물이나 피를 흠뻑 적셔 사람이나 물건에 뿌리는 정화의 도구, 정결도구로 사용했습니다(14:4,6; 19:6,18).

 

나병환자들이 완쾌되어 부정(不淨)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제 몸에 우슬초에 짐승의 피를 적셔 뿌리면서 이제는 부정이 아니라 정결하게 되었음을 감격적으로 선언합니다( 14:4).

 

다윗은 자신의 범죄가 나병(癩病)과 다르지 않음을 자백하면서 '우슬초'를 언급합니다. 내 죄악은 나병처럼 매우 추하고 부정하고 심각한 상태이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절규한 것입니다. 윤리적인 죄만 아니라 속에 각인된 죄의 숙주를 벗겨 달라고, 도려내 달라고 울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상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후 다윗에게는 뚜렷한 죄가 없습니다. 성경은 밧세바의 일 외에는 하나님의 눈에 괘씸하게 보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왕상 15:5). 이런 과정을 거쳐 성군(聖君)이 됩니다. 태어나면서 금수저 성군이 아니라 태중에서 비롯된 죄 찌꺼기들을 날마다 털고 벗겨내고 긁어내면서 점점 성화되어가고 결국 성군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떨어냄

믿음의 조상이라면 대단한 인물인데 이외로 특출한 대단함이 없습니다. 기적도 없고 후세에 남길 교훈도 없고 성경 한 권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찬양도 없고 특별한 업적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 아브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온전히 헌신되지 못한 반쪽 헌신의 대명사입니다. 이외로 오래도록 갈지자걸음 처신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의 자리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애에 달라붙는 이물질을 떨어내는 제거작업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제거. 아브라함은 고향만 제대로 떠났을 뿐 아버지와의 결별에 미적거려 하란에서 15년가량 정지합니다. 죽음을 통해 아버지를 떨어냄으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친척 롯을 제거. 롯은 세속주의 인본주의를 대표합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이 들었을 때 급히 애굽 행을 선택한 것도 어떻게 보면 롯의 영향력입니다. 롯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온 사람이 아니라 삼촌이 얻을 축복에 달랑 붙어있는 찌꺼기였습니다. 아버지 데라는 죽음으로 떼어내더니 롯은 재물로 떨어버립니다. 롯은 떨어버려야 할 찌꺼기요 애물단지입니다.

 

살다보니 또 찌꺼기가 붙었습니다. 이스마엘 찌꺼기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불순종이 만들어 낸 불의의 열매입니다. 이스마엘이 약속의 집안에 있는 동안에는 순금 이삭을 자꾸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슴은 아프지만 이스마엘도 대민족이 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그에게서 벗겨내십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결국 성경의 인물들은 평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붙어오는 이물질, 찌꺼기들을 어떻게 벗겨내는가, 거기에 따라 성군도 하고 악인더 됩니다. 삼손은 모든 좋은 조건들은 다 갖고 태어났지만 찌꺼기들을 제대로 제때에 떼어내지 못했기에 인생 참 우습게 끝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 손에 붙어있는 것! 그것이 이삭인가요 이스마엘인가요? 이스마엘이라면 그건 찌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후퇴를 통해 얻어낸 애굽의 은금재물이라면 그것도 세상의 찌꺼기입니다. 롯이 아무리 내 혈육이라도 영적인 침체를 불러온다면 그도 찌꺼기입니다. 그거 떼어내야 합니다. 아프더라도 떼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지난주간에 니나 리그스의 이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를 읽었습니다. 38세에 암()에 걸립니다. 그때부터 일상을 돌아봅니다. 살아온 날들, 항암동기들과의 우정, 여행, 남편과의 소중한 추억들 어느 것 하나도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어요. 그는 40세에 죽으면서 모든 것을 사랑하며 품위있게 죽어갔습니다. 삶을 구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왜 설교내용과는 약간 동 떨어지는 책 이야기를 하는가, 내가 사랑해야 할 은()과 같이 빛나는 나의 인생, 남들에게 사랑 받아야 할 은()과 같이 빛나는 나의 인생,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은()과 같이 빛나는 나의 인생! 그런 인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은에 붙어있는 찌꺼기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평생 나를 괴롭히는 그 불순물, 찌꺼기들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걸 떼어내지 않는다면 오래 믿어도 귀금속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장(12)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즉 모든 찌꺼기들을 다 벗어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하자고 합니다(1).

 

내가 떨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 생각, 입에 붙어있는 찌꺼기들 평생 나를 괴롭히는 그 불순물, 찌꺼기들을 떼어내지 않으면 믿음은 답보상태이며 그것 때문에 귀금속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을 누리는데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배하러 교회에 올 때마다 붙어있는 찌꺼기들을 떼어내게 해달라고 내 안에 가라앉은 찌꺼기들을 호소하면서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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