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약속하셨다!
이사야 41장 8~11절
서론
지금 우리사회가 가상화폐(假想貨幣) 광풍으로 난리입니다. 가상화폐를 비트코인(bitcoin)이라 합니다. 디지털 단위 ‘비트(bit)’와 ‘동전’이라는 코인(coin)을 합친 용어입니다. 비트코인은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형태가 없는 일종의 디지털화폐, 전자화폐, 온라인화폐입니다. 달러나 엔화(貨), 한화(貨)에 대한 불안이 2009년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노동의 가치를 버리고 가상화폐에 빠지고 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 내 꿈은 건물주가 되는거다. 그러나 내 연봉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비트코인은, 나를 건물주로 올려줄 꿈의 사다리다.”
바트코인 시장을 떠받치는 20~30대는 자신들의 생애를 ‘이생망’이라 합니다. “이번 생애는 망했다~” 이번 생은 틀렸다며 절망했는데, 비트코인에서 ‘생애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주부들도 합세하고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투자하고 중고등학생들까지 손쉽게 돈을 만질 수 있는 유혹에 빠지지만 남의 돈 먹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날 잡아봐라~ 손짓하지만 대부분은 흙수저에서 그나마 있던 숟가락조차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비트코인에 손을 대려니 신앙적으로 꺼림칙하고, 이런 사회 현상을 외면하며 살려니 나만 손해를 보고 뒤저지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남유다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아람, 앗수르, 애굽…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바벨론, 페르시아 등의 공격과 점령⋯ 위기마다 열강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할 때에 이사야는 ‘오직 여호와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굳세 서서 흔들리지 말라’ 격려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여러 모양으로 닮은꼴입니다. 평창올림픽으로 세계가 온통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우러러보는 것 같고 우리가 뭐 세계에 평화를 봉송(封送)하는 대단한 민족 같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편이 없습니다. 저 북한의 으스대는 꼴들 보세요! 자기네들이 평창에 오면 동계올림픽이 성공하고 자기들이 빠지면 올림픽도 실패할 것이니 “알아서 기라~”는 식의 거드름을 부리는 모습에 어이도 없고 울화도 터집니다.
여기에다 대한민국을 두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강(强)의 보이는 힘겨루기는 누가 진짜 우리 편인가, 의문입니다. 그래서 한림대학교 총장을 지낸 이상우 박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대한제국이 망할 때와 거의 똑같아 보인다고 말합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이런 위기에 놓여서 삽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넘어지는 울타리 옆에는 서지 않습니다. 잘되는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안 되는 집은 거지조차 찾아오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 안 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 옆에 있다가 같이 무너질 텐데⋯.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40장 27절!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원통하다는 것입니다. 억울한 내 사정이 숨겨졌고, 하나님께 호소했지만 하나님도 외면하신다는 거예요. 어려움에 처하니 도움 줄 이도, 하나님조차도 나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런 원통함과 고통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두려움에 빠졌고 놀라움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제국에 망하고 지금 남유다도 바벨론제국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 신세입니다. 어쩔꼬~ 선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함께 하겠다”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장소, 누구와도 함께 한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앙망하는 사람들과는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주신다는 겁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임재는 제한적입니다. 장소로는 예루살렘, 그 안에서도 성전, 그 안에서도 지성소에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부패했을 때도 성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람들도 소수의 선별된 사람들! 왕, 제사장, 선지자들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만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이사야는 앞으로 될 일을 예언합니다. 메시야시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성육신하신다, 그때는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사실을 멀리 바라보면서 ‘지금’ 자기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금’ 붙들고 ‘지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가 요셉에 말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이것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희망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은 미련 없이 떠나지만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꾸가 쓴 <침묵>은 17세기 일본 천주교인들의 수난을 다룬 소설입니다. 천황 숭배에 반대하는 신자들이 무자비하게 순교당하는 것을 보며 33년 동안 일본선교사로 활동한 페레이라 주교신부는 흔들립니다. 일본에서 하나님을 믿고 치루는 대가들이 너무 혹독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 컸기에 차라리 배교를 권합니다. 자신 역시 배교의 길을 갑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순교당하고 박해를 당할 때에 왜 침묵하십니까?”
그래서 제목이 ‘침묵’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대답하십니다.
“나는 외면하거나 침묵하고 있던 게 아니다. 내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단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페레이라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일본신자들을 버린 일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함께 고통의 중심에 있었는데, 떠나신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떠났다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페레이라 신부는 하나님에 대한 배교를 철회합니다.
평생토록 함께 하자 약속했던 결혼도 성격이 맞지 않아, 여러 사정으로 헤어집니다. 든든하게 여겼던 성공의 조건들도 떠납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그 충격들을 감당해야 합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항상 함께 하십니다. 잘 맞는 신발처럼 발을 힘 있게 하시는 분! 고난 중에서도 사슴처럼 뛰게 하시는 하나님~ 금년 한 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형편입니까? 14절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개역성경에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나옵니다. 지렁이는 어떤 존재입니까? 아무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공격무기나 방어무기가 없습니다. 보호색도 없습니다. 빨리 달릴 수나 있습니까? 날아갈 수나 있습니까? 밟히면 밟히고 뭉개면 뭉갬을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존재입니다. 동맹군도 도와줄 이웃도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공포 그 자체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망하면 나라가 거덜 납니다. 적병들에게 유린과 약탈, 가정 해체, 부부사이가 남이 됩니다. 평생을 노예생활⋯ 얼마나 두렵고 놀랄 일입니까? 그러니 지렁이 같은 심정이 되어 떨고 있습니다.
이런 연약함에 있는 백성들에게 선지자는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해 줄테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도 15절, 날카로운 타작기계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합니다.
지렁이도 산속을 뚫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더딥니다. 이런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강력한 타작기계가 됩니다. 불도저가 됩니다. 그 불도저로 산을 깎고 밀어버리면 산들은 흩어지고 작은 산들은 겨들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사방의 공격 가운데서, 국가의 위기 앞에서 졸아들 때로 졸아 있는 백성들에게 선지자의 메시지는 희망메시지입니다. 희망과 높은 기대와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성경인물들은 특출한 영웅들이 아닙니다. 지렁이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생에 함께 할 때 영웅적인 생애를 살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미디안 족속의 공격을 피해 밀 타작을 포도즙 틀에서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하고 부릅니다. 조롱에 찬 호칭으로 들리지만 결코 조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삿 6:12)는 말로 큰 용사가 될 것을 말했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큰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힘이십니까?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
세상을 이긴 힘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다!” 임마누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과 함께 하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세상을 다 이기지는 못해도 적어도 세상이 그를 이기지 못하도록, 은 합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면서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능력 있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능력의 하나님과 하나가 되십시오! 그 분에게 삶을 맡기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더욱 굳세어질 것입니다.
10절,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힘들면 놓아버립니다. 환자 자신이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는 권리 존엄사 이야기도 나옵니다. 너무 힘들면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악어가 한 번 물면 놓지 않듯이, 진돗개가 물면 놓지 않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잡아주시면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실패에도 하나님은 놓지 않으십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동행하겠다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것이냐… 라는 질문과 함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선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이자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회사 일이 힘들면 놓아버립니다. 부부도 힘들면 한 쪽이 놓아버립니다. 병들었다고, 가난했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놓아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놓지 않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는 장군과 그의 조카 타냐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타냐는 혁명 중에 불길이 치솟고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진짜 이유는 무엇이냐고… 소녀는 매우 주저하다가 대답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버렸어요.”
이때 장군은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아버지라고 알고 있던 코마노프는 네 아버지가 아니야. 네 아버지는 닥터 지바고다. 코마노프가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불나고 혁명의 와중에 있어도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은혜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전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제가 책을 좋아합니다. 목사님들은 대부분 신학서적-주해서적, 목회실용서를 읽는데 저는 좀 다양합니다. 특히 인문서적, 미래세계에 대한 책들을 즐겨 읽습니다. 읽으면서 많이 두려워요.
몇 달 안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유대인이면서도 종교의 기능은 끝났다고 합니다. 과학과 의술이 발달해서 사람이 죽지 않는데 무슨 천국이냐는 것입니다.
댄 브라운의 <오리진>은 인류 시작이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어 신심이 약한 독자들의 믿음을 흔들려 목적합니다. 인간을 종교도그마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박영숙-제롬 글렌의 <세계미래보고서 2018> <2055>년을 읽으면 엄청나게 변화될 인간 생태계에 전율합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가상현실, 인공로봇기술⋯ 로봇이 수술하고 알파고가 설교원고를 작성합니다. 인공 자궁에서 아이들이 출생합니다. 자신이 복제인간인 줄 모르고 신앙생활하다 알게 되었을 때 갖게 되는 신앙혼돈, 복제인간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을 때⋯ 기후 변화, 물 부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으로 지구가 사막화가 된다면⋯.
이런 책들을 읽으면 참 두려워요! 교회는 물론 종교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 현실화될 것 같아요. 한국교회에만 해도 한 해 3천개 교회가 문을 닫습니다. 10년 후에 우리교회도 생존은 하겠지만 개척교회 수준으로 내려앉을 수 있고 그것을 우리 시대에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참 두렵고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때 이사야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래요! 우리가 힘들과 지치고 실패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날마다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안에서 강한 자가 되고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며 승리하는 금년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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