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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오늘도 임마누엘~(마태복음 1:18~2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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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고서적에서

오늘도 임마누엘~

마태복음 1장 18~25절

서론

엊그제(2017.12) 제천 사우나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며칠 전에는 이대목동병원에 입원했던 아기들이 열 달 동안 배속에서 키워준 엄마에게 엄마~ 라는 선물도 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사건사고에는 특별한 사연들이 있는데 제천 사우나 화재에도 특히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서울 사는 49세 민모씨가 대입 수능시험을 마친 19세 딸을 데리고 제천 친정을 찾았습니다. 80세 친정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사우나나 하자며 스포츠센터에 들렸는데 3대가 불에 타 숨졌습니다. 혼자 남은, 사위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 남자는 무슨 힘으로 견디며 살 것입니까? 살다 살다 어찌 이런 일이.

 

그야말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은 다사다난(多事多難)보다는 일 사(), 일도 많고, 죽을 사(), 죽음도 많은 다사다사(多事多死), 이런 해를 넘기면서 다사다행(多幸)이다, 안심하기에는 이웃들의 불행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위기와 죽음에서 보호 받는 것에 대한 감사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내일 아기 예수가 나신 성탄절!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했지만 평화의 도성이 되어야 할 예루살렘은 지금 시위와 테러, 화염병이 난무하고 대한민국은 평화가 아니라 불안과 죽음과 북핵의 위협으로 평화의 노래가 없습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답답하고 분노하고 애통하고 이럴 때,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는 아기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더니 여기에 또 다른 이름을 주면서 우리를 위로하고 대한민국을 위로합니다.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Immanuel)은 히브리어 합성어입니다. ‘ 함께’, ‘마누 우리와’, ‘ 하나님’(God), 합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23절 끝절,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여인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 구원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만 구원해 주시고 너희들 잘 믿거라! 그리고 천국에서 만나자!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구원을 위해 도우시며 보호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낳고 알아서 잘 커라! 그리고 나랑은 내 장례식 때 만나자, 이렇게 한다면 좋은 엄마입니까, 나쁜 엄마입니까?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엄마는 낳아주시는 분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기자녀들을 책임을 자고 먹이시며 보호하시며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로마가톨릭교회가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은 동상을 성당 입구에 전시해서 불교식의 인사를 하게 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기예수로 출발해도 그 분은 구원받은 백성과 교회를 끌어안으신 분입니다. 마리아도 끌어안으실 임마누엘입니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예수를 끌어안은 동상을 앞세우고 마리아의 신분을 너무 격상시키기에 천주교를 마리아교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오히려 구약에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표현해 주는 성경단어가 아크(ark)입니다. 아크는 상자, 궤짝입니다. 아크라는 단어가 성경에 몇 번 등장합니다.

임마누엘1. 노아의 방주

창세기 6장부터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아크입니다. 방주에 노아가족은 377일을 살았습니다. 대홍수는 하늘이 열려 물폭탄이 떨어지고 땅이 열어 물을 쏟아내고 그러니 엄청난 격랑과 파도와 혼돈과 무질서, 칠흑 같은 어두움, 태풍 노아의 방주가 감당하기에는 천지지변이 너무 엄청납니다. 아무리 단단한 노아 방주라고 해도 바위에 부딪치면 깨어지고 방주 안의 사람들과 짐승들은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 넓은 천지에 방주는 작은 돛단배에 불과합니다. 순식간에 침몰합니다. 그럼에도 방주가 대홍수와 대환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방주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하나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기억하사

 

개역성경은 권념하사’, 이는 돌보사’, ‘보호하사입니다. 노아는 두려움에서도 방주 안의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약속을 지키며 성취해 가시는 언약의 하나님, 그런 임마누엘 하나님 신앙이 있었기에 377일 아크(ark)속에 갇혔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 세월호 같은 대형 사건사고는 없었지만 바람 잘 날 없던 대한민국입니다. 올해도 보세요. 바다로 가면 바다에 죽음이 있고 터널을 통과하다 트럭에 받혀 불에 타고 살겠다고 갔는데 병원에서 죽고 몸을 풀려 사우나에 갔는데 잿더미가 되고, 세상은 좋아졌는데, 사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핵을 남한으로 공격하는 것도 두렵지만 북한이 계속적으로 핵을 개발하고 실험하다가 실수라도 해서 지하갱도가 무너지고 방사능이 유출되고, 그래서 남한으로 바람을 타서 넘어오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치매와 중풍에 대한 불안도 방주 안에 있습니다. ‘자니 윤 쇼로 유명한 코미디언 자니 윤(82)씨가 치매에 걸린 채 미국의 양로병원에서 홀로 생활 중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이름 정도만 겨우 기억하고 과거 화려했던 코미디언 생활이나 방송 경력을 거의 기억 못하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라는 기자 질문에 힘들게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건강을 어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그런 날들이 오게 된다면 그래서 치매나 중풍으로 노년을 보내게 된다면 장수무대가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이런 때 방주에 임했던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방주와 함께 한다는 확신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세주 예수가 우리 안에서 성장하며 우리 구원을 도덕적으로도 완성시켜 나갈 것입니다.

임마누엘2. 갈대상자

모세아기의 갈대상자가 아크입니다. 나일 강의 갈대상자에 누인 아기 모세, 석 달 밖에 안 됩니다. 언제 침몰할지 모릅니다. 넓은 나일강, 그 위의 떠있는 갈대상자는 작습니다. 갈대상자만 바라보면 모세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 앞에는 죽음과 불확실만이 남아있습니다. 방주는 죽음을 몇 시간 연장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는 다릅니다. 갈대상자가 영어로 아크(ark)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아크입니다.

 

모세부모가 무엇을 믿고 망망대해 같은 나일 강에 아기 상자를 떠내려 보일 수가 있습니까? 모세가 소리를 지릴 수 있습니까, 갈대상자를 운전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짐승들이 달려들 때 속수무책입니다. 갈대에라도 부딪쳐 넘어지면 끝장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부모가 갈대상자에 아들을 넣고 떠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들과 함께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갈대상자를 지켜줄 하나님의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갈대상자에 임한 임마누엘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했을 때 모세는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대목동병원. 미숙아라고 건강한 아기 만들어 달라고 병원에 맡기고 비싼 인큐베이터 비용을 댔는데 병원과 인큐베이터는 죽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세상이라는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잘난 사람, 실력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별의별 세상에 떠 있는 배는 요 내 자식이요 대한민국이기도 합니다. 언제 넘어지고 자취를 감춰버릴 작은 갈대상자-‘ark’입니다. 강대국의 세력싸움에서 대한민국의 ‘ark’는 너무 작습니다.

 

그러나 2017년 대한민국이라는 ‘ark’에 누가 있습니까?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ark’를 보호하시며 노를 저으시며 ‘ark’ 가운데 계셔서 험한 풍파를 헤쳐나가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녀들의 미래를 노 저어 갈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 대한 우리 불안도 그래요! 개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오늘 죽어도 이만하면 여한이 없어요!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안 계셨으니 얼마나 젊을 때 가신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는 70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상태라면 70까지는 걱정 없이 살 거예요! 70이 넘어서는 나이가 덤이니까 언제 죽어도 죽고 사는 데는 두려움이나 여한은 없어요!

 

문제는, 자녀들과 손자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이들을 잘 키워냈는데 어느 날 자살해 버리고 남의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무엇을 먹고 살까, 남들과 비교되면서 가진 것이 없어, 내놓을 것이 없어, 하도 잘 난 사람들이 많아서 기가 죽어 살지는 않을까, 무슨 병은 없을까,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부부간에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불안하고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 도움을 주겠지만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아이들을 돌봐줄까요? 그래서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부모의 마음은 참 불안합니다

 

이럴 때 무엇으로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까? 임마누엘 하나님! 자녀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도우시고 보호해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대물림으로 자녀들까지도 먹이시며 입히시며 보호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그들 곁에 계신 하나님! 이런 임마누엘 하나님에게 내 자녀들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부모로서 얼마나 안심되는 일입니까?

 

그래서 성탄의 아기는 예수라는 구세주 이름으로 족할 수 없습니다. 죄에서 구원해주실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평생을 지켜주신 임마누엘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탄은 제대로 우리에게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3. 법궤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막 가장 은밀한 곳에 있는 법궤가 임마누엘 하나님의 아크입니다.

갈대상자 ‘ark’에서 살아난 모세는 훗날 80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고 광야생활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이동 성전-성막, 회막을 건축합니다. 이 성막이 영어로 아크’(ark)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모든 세상, 공간에 존재하시는 분이지만 이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거주하심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성막 아크로 상징화했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금년 10, <국민일보>는 한 해 문 닫는 교회가 3000곳이라 보도했습니다. 한 해 3000곳이면 주일을 빼고 대략 1 300, 하루에 10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몰락하는 영국교회를 말하면서 웨일즈지방만 해도 1주일에 두 군데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통계를 들이대며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했는데, 세상에~ 10여년 만에 한국교회가 그것도 하루에 열 개의 개척교회들이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읽게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장로교 통합 교단 산하 8843개 교회 중 교인수 100명 이하 교회가 6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60%의 교회교인들 모두 합쳐봐야 한국교회 안에서 7.5%,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하나만큼도 못합니다. 이런 교회들이 10년을 버티겠습니까? 10년이면 교회를 지탱하던 권사님 고령 신자들이 세상을 떠났고 교인 유입은 안 될 텐데. 그러면 1년에 3천 개 10년이면 3만개 교회가 없어지고 2만개 정도의 교회만이 남을 것입니다.

 

어제도 노회 목사님들과 만나 한국교회 미래에 대해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노회는 50명 미만의 교회들이 절반이 넘습니다. 10년 후에 자기네 교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감을 나타내는데 앞으로도 25, 30년을 일할 젊은 목회자들이기에 더 안쓰러웠습니다.

 

지금은 세계교회가 위기이면서 종교의 위기입니다.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책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의 무신론세력이 왜 무서운가, 그냥 기독교 박해가 아니라 아예 소멸을 목적으로 합니다. 기독교를 대적하는 프레임, 틀 자체를 교묘하게 이중화합니다.

그들은 지난 세월, 일방적으로 정부권력을 동원해서 기독교를 없애려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로마제국입니다. 기독교는 박해 가운데서 믿음을 지켜내었고 결국은 로마제국이 기독교화가 됩니다. 박해가 안 되자 이데올로기로 프레임을 변경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속화된 자본주의, 이걸로도 기독교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고상하게 작전을 바꿨습니다. 인권프레임으로 종교를 공격했습니다. 인간이 우선이다! 라는 인본주의, 여기에서 비롯되는 동성애 차별금지법 등을 통해 지식인들, 젊은 세대들,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기독교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영국에서는 마음 놓고 기독교를 전하지 못합니다. 전했다가는 차별금지법에 근거해서 처별을 받습니다. 동성애가 죄다,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구원을 받는다 이런 가르침은 차별금지법에 저촉됩니다. 내 자녀들이라고 마음대로 교회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아이들 선택권, 인권을 유린했다는 거지요. 자녀가 그런 사실을 고발하면 집에서 기도해 주는 것조차 법에 어긋납니다.

 

영국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성경말씀을 전했더니 즉시 신고가 들어갔고 교육위원회 경고를 받았습니다. 종교에 감염된 사람이니 특별교화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한때는 유럽의 기독교 종주국 영국에서 그러니 한국도 역시 교묘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음해하고 여기에서 우리 자녀들이 믿음을 사수할 수 있을까요? 순교정신이 아니면 감당을 못할 텐데,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나타나면 종교는 대혼란을 겪습니다. 그래서 불안해요.

 

이런 때 성탄의 아기 예수 이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성탄 아기의 이름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세상 끝까지 우리 생애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 그 이름이 우리를 안심하게 합니다.

성탄절 이야기는 임마누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는 희망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이루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

너무 익숙한 이야기로 설교를 마칩니다어느 신자가 사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날도 설치다 잠이 들었는데 모래 위에 어지러운 발자국이 있습니다. 꿈속에 하나님이 나타났기에 하소연합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그래 안다. 그래도 내가 함께 했잖니? 모래 위의 발자국 중 두 개는 네 것이고 두 개는 내 것이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했단다.

 

조금 갔더니 모래 위에 발자국 두 개가 사라지고 두 개만 남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신자가 섭섭한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내 발자국만 보이지 하나님의 발자국은 없어요! 그래? 자세히 살펴봐라! 저 두 개는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다~! 설마요 그러면 내 발자국은 어디에 갔습니까? 네가 너무 힘들어 하기에 내가 업고 갔단다! 오 하나님!!!

 

이제 자식들의 미래도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맡깁시다. 건강도 맡겨버립시다. 사업도 맡겨버립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며 공급해주시며 힘을 주실 것입니다. 사방이 무너지고 어둠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을 발견하고 희망을 보았던 노아처럼,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임마누엘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절망했지만 예루살렘을 새롭게 디자인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을 포착합니다
. 그리고 예루살렘에 관해 다른 이름을 얻습니다.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에 거시다!( 48:35)

 

오늘로서 금년도 주일 제 설교는 공식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2017년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2018년 먼저 건너 가 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통해 새해 성읍이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립시다~(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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