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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좋은 밭 만들기] 당신의 마음 밭은 옥토입니까?(2)(사도행전 2:42~4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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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밭 만들기 설교]

 

당신의 마음 밭은 옥토입니까?(2)

사도행전 2장 42~47절

 

 

서론

 

우리는 지금 ‘옥토 만들기’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갈아엎음의 원리, 수용의 원리(수분 함유)에 대해 전했습니다.

 

오늘은 배수의 원리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8만 4천 개의 감성(感性)이 작동을 멈추고, 10만개의 두뇌를 움직이는 생각들이 부정(否定)으로 움직이고 마음 밭이 그만큼 딱딱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 부족해서 보다는 외부를 향하여 흘러가고 사랑하고 교제하던 우리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흘러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많이 일어납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20세기의 위대한 상담자이며 정신의학자입니다. 상담자라면 얼마나 개방적이고 열려있는 사람입니까? 상담자가 폐쇄적이고 닫혀있다면 유능한 상담자가 될 수 없고 정신의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지 말고 인격을 치료하라. 왜냐하면 모든 질병은 비뚤어진 인격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폴 투르니에는 태어난 지 석 달만에 아버지를,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이와 함께 알코올 중독자인 외삼촌댁에 맡겨졌는데 숙모도 과대망상이란 정신질환과 심장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숨막힐 듯한 환경에서 투르니에는 자폐아 증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취미와 즐거움은 고목 타기와 사냥개와 노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신앙심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잘 감당하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좋은 스승을 만나 치료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다가와서 던진 “너 고아라며?” 라는 그 한마디로 와르르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 벽을 쌓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숨어살던 투루니에는 대학에서 신앙을 회복합니다.

 

대학 신앙부흥운동에 참여했다가 폴란드 출신 경제학자를 만났는데 첫 만남에도 투르니에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날의 상처와 슬픔, 좌절 등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런 고백을 하다니…’

 

투르니에는 자기도 모르게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고독과 고통, 번민과 아픔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부모가 자기들을 버리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래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 생각하고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날 밤 투르니에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원래 고아들은 울지 않습니다. 특히 영아원의 아기들은 울지 않습니다. 울어보아도 달래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무의식 가운데 터득하기 때문입니다.

투르니에도 울지 않았습니다. 울어보아야 술주정뱅이 외삼촌은 야단을 쳤고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숙모는 더 징신이상을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실컷 울었으면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울지 못했기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제 울고 나니 돌덩이가 부서지고 마음 밭은 갈아엎어지고 옥토작업의 첫 출발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로 자신을 열어 보이며 여러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사람을 돕는 상담치료자로 자기 인생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급속히 치료를 받습니다. 남을 도울 때 남이 치료를 받는 것만큼 자신도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옥토 만들기’ 세 번째 작업인 배수의 원리입니다.

굳은 땅이 옥토가 되려면 쟁기로 갈아엎어야 하고, 물을 받아들여 그 물을 잘 저장해야 합니다. 물이 촉촉이 스며들면서 땅은 부드러워지고 옥토가 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물 공급이 좋아도 계속 고여있으면 씨앗이 썩고 뿌리가 썩어버립니다. 땅에 물이 어느 정도 고이면 적당량만 놓아두고 옆으로 아래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시골의 우리 땅이 있었습니다. 곡식농사를 하기에는 아주 위치가 좋습니다. 그래서 과수원을 했다가 영 재미를 못 보았습니다. 땅도 좋고 바람막이도 잘 되었는데 왜 과수원으로서는 부적격했을까요? 땅속에 물이 많았습니다. 나무 사이에 깊게 고랑을 팠지만 계속 땅속에 물이 고여있고 흥건한 물이 감귤나무의 뿌리를 썩게 해서 결국 실패한 과수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것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땅이라는 게 물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물이 있으면 때를 따라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땅이 옥토가 되고 생산성이 높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 태동기부터 배수의 원리가 잘 되어있는 옥토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여기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새롭게 조성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1등 씨앗(종자)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심으신 것은 ‘유통’을 위함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세상에 유통시키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계획을 유통시키고 복을 유통시키고, 천국을 유통시키고… 이런 유통 민족으로 세웠습니다. 유통은 흘러가는 배수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유통이 막혀버리고 독점체제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독점하고 축복을 독점하고… 너희들이 정 하나님을 믿고 그 백성이 되고 싶으면 유대인으로 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끼리끼리’가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 그 안에서도 사마리아, 남자와 여자, 건강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의인과 죄인-서로끼리는 엄청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배수가 잘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색깔이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 하는 것만 아니라 배척했습니다.

 

교회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띄게 몇 사람과만 함께 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한 사람의 이해 관계가 같은 그룹을 이루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대적(對敵)이 된다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건강한 교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배수의 원리-흘러가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인사가 흘러가고 관심과 사랑이 흘러가는 유통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한 교회에 오래 있는 사람도 그렇고 새로 온 사람도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면 흘러가는 폭이 넣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에게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배수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주님의 물은 누구에게나 흘러갔습니다. 종족이나 죄성(罪性)이나 실패자나 가리지 않고 흘러가면서 그들의 심령을 적셔주었습니다. 십자가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사함과 은혜의 유통이 되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흘러 넘치게 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과 들음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니 가능했습니다. 제자들이 ‘끼리끼리’를 이루며 살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고 능력 있는 설교를 주기 전에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음을 갈아엎고 누구나 수용하고 수용할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 있던 지난날의 ‘나'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누구나 어떤 사람이나 복음 전도의 대상이고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을 고문하고 협박했던 사람들,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음식을 싸들고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들은 유통되지 못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배수가 잘 되는 옥토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혼자만의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곳에 나도 함께 하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 주마”

 

두 세 사람-사람 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배수의 원리입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유통의 원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마다 반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너희에게”-“너희 가운데” 개인 가운데가 아닙니다. 너희 가운데! 은혜를 받으려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너희 가운데! 능력을 받으려면? 성령 충만하려면? “너희 가운데!”

초대교회가 이걸 잘 한 것입니다.

 

42절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44절 “다 함께 있어” “서로 통용하고”

45절 “나눠주고”

46절 “마음을 같이하여”

47절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7절의 “칭송을 받으며 구원의 수가 더해 가는 교회”-이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결국 건강한 교회는 옥토가 되는 교회이고 옥토교회는 배수의 원리입니다. 서로 물이 흐르고 물을 공급해 주는 파이프 역할을 하는 유통의 교회는 건강한 교회, 건강한 마음이 되지만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마음은 굳은 마음이며 생산성이 부족한 땅입니다.

 

교회는 독점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종의 컨소시엄입니다. 컨소시엄은 여러 기업들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지분을 갖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방송국도 컨소시엄으로 운영되고 황금알을 낳는 새로운 업종들은 대부분 정부에 의해서 컨소시엄의 형태로 출발하게 됩니다.

 

교회는 개인의 독과점이 아닙니다. 교회는 컨소시엄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믿음과 열정과 시간과 희생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회가 좋은 컨소시엄을 이루려면 배수의 원리-서로 유통하는 마음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서 막혀버리면 막힌 땅은 굳어지거나 썩어버립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서로의 마음들이 돌고 돌아야 하며 나눠주고 나눔을 받기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옥토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100군데의 도움과 나눔-이것이 우리 교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38군데의 10만원 도움, 6명의 꿈나무 지원, 15명의 중식비-59군데, 이것이 늘빛교회의 기쁨입니다. 교회 건물을 확장하고 단장하는 것은 남을 돕는 기회를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저와 우리 장로님들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 돈, 재능-이것은 남에게 가도록 우리는 유통의 역할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을 교훈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가 치료자로 흘러가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8년 짧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순전히 울지 않아서! 남자는 시시하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유교 문화의 가르침에 종속되어 남자들은 그 가슴에 눈물이 없었고 그 눈물이 마음을 메마르게 만들고 여성보다 단명(短命)하게 됩니다.

 

비둘기 세계는 그 반대입니다. 수컷보다는 암컷이 더 일찍 죽습니다. 소설가 은희경은 그의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 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 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 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 건 상대를 죽이는 짓이야.”

 

내가 계속 받기만을 고집한다면 마음 밭은 사막이 됩니다. 한 쪽이 사막이 되면 다른 한 쪽도 사막이 됩니다. 공허한 마음을 타인에게서 공급받으려 하기에 부부문제가 생깁니다.

 

배수의 원리, 유통의 원리-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생명과 피와 사랑을 올려보냅니다. 억지가 아니라 그 사랑에 감격되면 아무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주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아끼랴!

 

하나님께로 마음을 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들이 쏟아집니다. 그것은 흘러 넘치게 되고 이웃에게로 흘러갑니다. 이웃들이 치료를 받습니다. 내가 치료를 받습니다. 우리는 옥토가 되어갑니다.    

 

 

결론

 

헨리 나우웬은 <영적 발돋음>에서 제자와의 깊고 진실한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스승과 교제를 나눈 제자는 침묵 속에 있다 감동 어린 표정으로 말합니다.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마치 그리스도를 뵙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나우웬은 부인하지 않고 겸손히 대답합니다.

 

“그래, 자네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일세.”

 

제자는 “맞습니다. 정말로 그 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군요!” 하면서 더욱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배수의 원리는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흘러보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피차간에 서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간의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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