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 만들기 설교]
당신의 마음 밭은 옥토입니까?(3)
호세아 10장 12, 13 절
서론
주서택 목사와 김선화 사모는 <내 속에 있는 내가 울고 있어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목이 확실한 지…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해 주는 것처럼 사람은 밖에 있는 나와 속에 있는 내가 다릅니다. 남들이 보고 있는 나와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웃고 있지만 모든 조건을 갖고 있지만 내 속의 나는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옥토는 밖의 나, 남들이 보는 나를 꾸며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의 문제입니다. 내 속에 있는 내가 행복하지 못하고 울고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신앙인이고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하고 있다 하지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좋은 땅 만들기’에 대해 생각하겠습니다. 좋은 땅-옥토(沃土)는 하나님께서 주신 8만 4천 개의 감성이 잘 움직이는 땅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사람의 생각이 10만개라고 합니다. 이 생각을 바르게 잘 활용하는 것이 옥토입니다.
이런 옥토가 생산성이 높은 땅입니다. 씨도 중요하고 농부의 수고도 필요하지만 생산성이 높으려면 땅 자신이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다 해도 마음 밭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가지 마음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다른 밭 같지만 사실은 같은 성질의 밭이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걸어다녀서 길바닥이 되고 돌과 바위가 굴러 들어와서 돌밭이 되고 가시덤불로 쌓여서 덤불 밭이 되고 관리를 잘 해서 옥토가 되었을 뿐입니다.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버림받은 땅으로 만들려하는 외부의 세력과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자신을 계속 갈아 댈 때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 밭도 옥토는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옥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노력을 할까요? 옥토가 되는 마음을 연구 해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생활을 잘 할까, 봉사 잘 할까, 얼굴을 아름답게 꾸밀까? 그것도 연구하고 궁리해야 하지만 어떻게 하면 마음을 아름답게 꾸밀까? 내면의 장식-마음공부를 좀 해야합니다.
옥토 만들기-다섯 가지 원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갈아엎어짐의 원리-엎어져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묵은 땅을 기경하라!” 합니다. “기경”이란 말은 갈아엎으라는 말입니다.
굳은 땅, 돌밭, 가시덤불 밭-그냥 놓아두면 안 됩니다. 자주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 위에 씨를 뿌려보세요. 이런 땅에 씨를 뿌린다 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농사지을 때마다 갈아엎습니다. 갈아엎으면 땅의 영양분이 없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자주 갈아 엎어줄 수록 좋은 땅이 됩니다.
사람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층”을 형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층”은 노출을 두려워하는 마음,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마음을 꽁꽁 닫아버리고 숨겨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막을 형성하고 그 보호막 속에 자기를 숨깁니다. 이게 “층”입니다.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사람은 사람에게 “층”을 갖습니다. 어린 시절 남자에게서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남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층”을 갖습니다. 엄한 부모에게서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은 부모에 대한 “층”이 있습니다. 이런 “층”이 열리지 않는 한 부모 앞에서 하는 모든 것은 가면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층”을 만들어 버립니다. 더 이상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수 없다는 자기 방어가 단단한 “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층이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서로의 깊은 결속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층”이 있는 이런 사람들끼리 만나면 “층” 대 “층”이 만나게 됩니다.
이런 교제와 만남은 연인들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입맞춤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유리창의 입맞춤”이 있고 목사와 신자간에도 서로 층이 있으면 역시 “유리창의 입맞춤”이 됩니다.
이런 “층”의 교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안심하지만 실은 우리의 삶을 더욱 조이고 풍성한 삶이 아니라 자기에게만 집착하는 왜곡된 삶으로 운전합니다. 나중에서야 내가 왜 그렇게 살았나? 후회하지만 주어진 생애는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층”이 갈아엎어져야 합니다.
돌밭의 마음과 옥토 마음 밭의 차이점은? 한 번도 갈아엎어진 적이 없느냐, 자주 갈아엎어졌느냐? 그 차이입니다. 뒤집혀 진 땅-바로 그 땅이 옥토입니다. 아무리 좋은 땅도 엎어지지 않으면 좋은 땅이 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찔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날들을 회개하게 됩니다. 그 순간 마음이 갈아엎어집니다. 뒤집어집니다. 뒤집어진 땅이 옥토가 됩니다.
말씀 앞에서 참된 회개를 체험한 사람들만이 옥토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의 씨앗을 심어놓으면 누가 자라는가? 예수가 자랍니다. 뒤집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반듯하게 신앙생활하고 교회를 잘 섬기는 것 같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 앞에서 뒤집어진 심령이 아니기에 ‘예수나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열매를 맺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뒤집어진 적이 있습니까? 사업이 뒤집어지고 가정이 뒤집어지고 교회가 뒤집어지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갈아엎어진 적이 있는가? 아직도 뻣뻣한 자세인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겹겹이 쌓인 “층”, 자기 보호적인 “층”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고 마음을 주지 않는 그런 “층”들이 갈아엎어지기를 원하는가?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할 때마다 회중들의 마음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입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쟁기로 갈아엎어지는 심령들을 봅니다. 그러나 딴딴해서 내 쟁기가 들지 않을 때 갈아엎어지지 않을 때 “층”들이 견고할 때, 설교자로서 너무 공허하고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쟁기 앞에서 엎어지고 씨앗이 돋아나는 모습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층”들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서로 간에 결속하는 변화되는 모습을 보았기에 때문입니다.
마음의 묵은땅을 기경(起耕)하세요. “층”들을 둘러엎으세요. “층”들이 쌓여있으면 고독합니다. 마음에서 아름다움들이 흘러나와야 하는데 막혀 있으면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지 못합니다. 묵은땅에는 행복의 열매, 기쁨의 열매가 없습니다. 엎으세요! “층”들을 벗겨내세요. 삶이 달라집니다. 대인관계, 부부관계가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언제나 문제를 내 자신에게서 찾는 법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층”들이 벗겨집니다. 그래야 우리가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수분, 즉 함유의 원리입니다.
옥토와 박토(薄土)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수분이 있느냐, 없는냐?로 결정됩니다.
이집트가 점점 사막화가 되어간다고 합니다. 왜? 물 공급이 안 되어서. 이스라엘 땅은 좋은 땅들입니다. 그곳의 과일들을 보면 정말 탐스럽고 침이 잘잘 흐릅니다. 너머의 땅들은 사막입니다. 그 차이는? 물입니다. 갈릴리바다의 물이 있고 파이프로 물을 끌어다 사막을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좋은 땅이 되려면 수분이 적당히 함유되어야 합니다. 수분을 함유하려면 흡수해야 합니다. 땅을 쟁기로 가는 일은 땅을 엎는 일이고 땅을 열어 비와 수분으로 채움을 뜻합니다. 좋은 땅도 물 공급이 안 되면 사막이 되어버립니다. 사막이 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7:6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며”
떨기나무-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나무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나요? 수분 공급을 못해서. 열매도 없고 그늘도 없습니다. 나무로도 쓸데가 없습니다.
옥토가 되려면 받아들임,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은 건강한 마음입니다.
결혼생활 초기에 갈등이 많습니다. 왜? 수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두 개의 작은 시내가 만나 큰 강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그 지점이 가장 물살이 셀 수 있습니다.
서로 간의 집안의 전통이 있고 문화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라온 배경이 다릅니다. 외동아들출신인 남편과 여러 오빠들 사이에서 자라난 부인이 쉽게 결속될 수 없습니다. 시끌벅적한 누이들과 살아왔던 남자가 조용한 여자와 갑자기 살게되었을 때 마찰과 갈등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양식을 좋아하는 여성과 삽겹살을 좋아하는 뚝배기 같은 남자가 서로 만났을 때 결혼초기는 심한 물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딱딱하고 굳은 땅이 되거나 큰 바윗돌에 눌린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갈라서가나 그럴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평생을 눌려서, 서로 웬수가 되면서 살아갑니다. 체면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우리 연속극이 허구헌말 이런 류의 연속극인 것은 우리의 자아상, 한국 가정의 자아상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한 세상을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떡딱한 땅을 쟁기가 갈아엎을 때에는 수용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 촉촉이 땅이 채워지고 땅 속에 있는 미생물들이 활동하고 생명력이 왕성해지라고 갈아엎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땅은 물라버리고 나중에서는 사막이 되어버립니다. 땅에만 사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사막이 있습니다.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은 수용성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수용해 낼 수 있는 사람, 어떤 형편에서나 남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런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정태기 교수는 그의 책에서 자신의 상담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루는 젊은 부부집사가 찾아왔습니다. 13개월 동안 부부싸움으로 바람잘 날 없는 부부입니다. 이들의 격렬한 부부싸움은 하찮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갔다 오던 부부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남편이 예쁜 여성에게 눈이 돌아갔다고 사람들이 보던 말던 한 쪽에는 성경책 든 손으로 멱살을 잡고 악다구니를 퍼부었습니다.
“이 놈아!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야? 나 하나도 제대로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에 한 눈을 팔아! 너 죽고 나 죽자!”
그 날 저녁 밥상 앞에서 부인은 다시 시작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 눈을 파는 이런 인간을 위해 지금까지 지성정성으로 밥상 만들어주고 지금도 남편이라고 밥상 만들어 바친 것이 억울한 것입니다. 실컷 먹여놓으면 또 어느 여자에게 한 눈을 팔까, 그러니 속이 확 뒤집어지면서 다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멱살을 잡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탄식으로 나옵니다.
“아이고 억울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분하고 억울해.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그런 나를 옆에 두고 딴 년에게 눈길을 돌려? 당신은 나 죽으면 한 달도 못되어 딴 여자 찾아갈 사람이야! 아이고 억울해, 난 못 살아…”
다음 날 출근할 때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합니다.
“이 놈아, 오늘은 어떤 년한테 눈을 팔거야?”
그 여자와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한 눈을 판 것이 죽자고 덤빌 문제입니까? 그래도 여성들은 안 그렇습니다. 그런 일에 목숨을 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성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마누라가 연속극을 보면서 낄낄거립니다. 가만히 보았더니, 멋진 남자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정말 잘 생겼다! 그치 여보!”
남자가 은근히 질투가 납니다. 그래서 나온다는 말이, “뭐가 잘 생겼냐? 꼭 기생오라비 같이! 나를 만나 다행이지 저런 남자를 걸렸다면 당신 인생 쪽박 찼어? 여자들이라는 게 참 유치해” 여기서부터 일은 시작됩니다.
“내가 왜 유치해? 내가 뭐가 유치하냐고?”
그 다음부터는 고래쩍 이야기부터 나오고 사돈에 팔촌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부부싸움의 심각성은 한 가지만을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전의 일까지 고구마 캐듯 들고 나오니 복잡해집니다. “당신 옛날에도 어쩌구 저쩌구…”
수용성이 약한 사람은 매사에 이렇습니다. 조금만 수용성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눈이 돌아가는 것은 남자가 젊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에게도 그만큼 여성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임을 말합니다. 늙어봐요! 돌아가라고 돌려놔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요.
수용성이 있는 부인들은 이럴 것입니다.
“당신 아직도 여자들을 보니까 눈이 돌아가네! 당신 멋져! 나도 멋있는 남자들을 보면 눈이 돌아가더라!”
그러면 남자들, 더 조심합니다. 마누라 있을 때만이라도!
여성들이 연속극의 남자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아직도 내 아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저 남자 멋있지? 그래도 나만큼은 멋있지 않아, 왜? 저 남자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나는 사랑하잖아! 그러니 누가 멋져?”
이러면 머리 좋은 여자들은 알아차립니다. 우리 남편이 아직도 나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결국 수용성이 갈등의 요소를 없애고 진정한 부부간의 결속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수용성이 없다면 “층”을 이루게 될 것이고 오히려 더 힘든 부부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용성은 굳은 땅속에 물기가 있음을 뜻합니다. 부부간에 항상 서로에 대한 애틋함, 한 남자에 대한 고마움, 물기가 묻어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마른 마음이 아니라 물기가 묻어있어야 하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친구 목사가 장로님 세상을 떠나서 내가 위로하니까 “다 죽는 일인데 뭐…” 너무 심드렁하니까 참 이상하더라고요! 물기가 없는 마음-그것은 우리의 행복을 말라버리게 합니다.
결론
프로이드 심리학의 핵심포인트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 같아도 심리 속에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50대 이상의 상담은 무용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상당하려면 50년을 상담해하는 데 그 사람 100살까지 살지도 못하는 데 상담이 소용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령님과 함께 하면 달라집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상담자”입니다. 결에 있는 분입니다. 그 분과 상담하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그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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