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생명나무의 성령열매⑩-절제(切除)(갈라디아서 5:19~2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27.
반응형

절판. 중고서적에서

생명나무의 성령열매⑩-절제(切除)

갈라디아서 5장 19~24절

 

서론

이번 여름에 예수생명나무에 열리는 성령의 열매를 가꾸는 농부의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철 농사는 여름에 달려있습니다. 여름무더위가 덥다고 게을러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과일은 상품가치가 떨어져서 만원 받을 거, 5천원 밖에 못 받습니다. 아무리 과일을 잘 관리해도 늦여름에 태풍을 맞으면 작황(作況. 농작물이 잘되고 못된 상황)입니다. 

 

성령 열매의 중점관리는 인생의 여름, 40대~70이전입니다. 이때 집중적으로 성품을 잘 관리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물론 70대 후에도 열매를 만들어 가지만 그것이 성령의 열매인지 돈 떨어지고 힘 떨어져서 고분고분해지는, 성깔이 죽어서 나오는 성품인지⋯ 설령 그것이 성숙되는 인품의 열매라 해도 노년에 맺어지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성깔이 있을 때 24절,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예수님의 인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예수쟁이로 인정을 받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생명나무에 열리는 아홉 번째 성령의 열매,‘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마지막을 왜 절제로 매듭짓고 있을까요? 농사를 잘 지어놓고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느 것도 과하면 탈이 납니다. 한자성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이런 덕목들도 지나치면 탈이 납니다. 교회도 서로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데 도가 지나치면 판단력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 무조건 편들고⋯ 그 사람 입장에만 서다보면 외눈박이 신앙이 되고 맙니다. 정도(正道)를 지키는 중용이 좋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마지막을 절제로 마감해서 다른 열매들을 잘 관리함으로 좋은 상품열매를 맺도록 하지 않았나, 합니다. 

1. 절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죄(罪)는 무절제라 보면 됩니다. 절제하지 못해서 죄가 됩니다. 천사의 교만은 자기 포지션을 절제하지 못함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과 겨루는 욕망! 절제가 제로였지요. 첫 사람 아담하와를 보세요! 선악과 따먹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음에도, 선악과 보는 순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어떻게 했어요?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은지라”(창 3:6)

 

절제하지 못함이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는 무절제라는 DNA가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욕심, 욕망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전셋집만 있어도 행복하다던 사람들이 20평 아파트를 원하고, 40평⋯ 60평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속담에 “말 타면 경마(牽馬) 잡히고 싶어 한다.” 사람이 걷다 말을 얻어 타게 되면, 욕심이 한이 없어 누가 앞에서 끌어주기를 또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한없는 욕심입니다. 이런 욕심이 있으니까 내가 성장하고 문명이 발달하기도 하지만, 과유(過猶), 지나친 무절제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몸과 인품, 믿음을 지켜주는 데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 절제는‘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하는 것’입니다.

 

밥솥의 온도를 높인다고 빨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도 불을 쌔게 피운다고 빨리 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꼬들밥이 되고 고기가 타버립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뜸 들이고 구워야 맛있는 밥과 갈비가 됩니다. 이것이 절제하는 힘입니다.

 

㈁ 절제는 지켜야 할 한계선을 아는 것입니다.

 

부모의 한계선, 남편-아내의 한계선, 목회자, 교회 직분자로서의 한계선이 있습니다. 한계선을 넘으면 사단이 납니다. 대통령감이 아닌데 대통령 되려고 과욕하면 나도 힘들고⋯ 인덕(人德)이 없는 사람 대통령 되면 국민들이 고생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고 다 하지 말고/갈 수 있다고 다 가지 말고/쓸 수 있다고 다 쓰지 말라!” 우리가 자기 한계선을 알고 그걸 지켜낼 때 절제의 미덕이 있습니다.

 

교육전도사 시절 유능한 부목사님이 오셨어요. 못하는 게 없어요! 그러다보니 과시가 있어요. 사회 보다 내려와서 찬양대 지휘하고⋯ 다시 강단에서 설교합니다. 실력 있는 목사님이라 좋아했는데 몇 번 계속되니 자기 과시로 보였습니다. 인정은 받았지만 존경은 받지 못했습니다. 실력은 있으나 무절제가 교회를 여러 번 옮겼습니다. 바울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합니다. 왜 지식이 교만으로 빠질까? 자기절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은“헛된 이름을 쫓지 마라.” 절제를 말합니다.  

 

㈂ 절제는 자기 방어막입니다.

 

고대도시의 성벽은 방어시설입니다. 성벽이 없으면 도시는 쉽게 적에게 함락됩니다. 절제는 영혼을 삼키려고 쳐들어오는 욕망에 맞서는 방어막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분됨을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공격이 있습니다. 적(敵)들은 술집에나 뒷거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에도 동창회에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면 자기 방어막이 무너지고 신앙 균열현상이 일어납니다. 

 

㈃ 절제는 자기를 다스리는 힘입니다.

 

영어로는 self-control,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적인 힘입니다. 가슴 속의 불타는 정열과 욕망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성품의 힘이 바로 self-control, 절제입니다.

 

㈄ 절제는 건전한 마음과 건전한 판단입니다.

 

일종의 분별력이지요! 선악을 분별하고 무엇이 선(善)인가, 최고의 선(善)을 추려낼 수 있게 해줍니다. 건전한 판단은 생각을 조정하고 감정을 통제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교회가 이게 없다보니 좋을 때는 엎어져서 별 말들 하고 남들 흉보다 나중에 틀어지면 웬수가 됩니다. 무절제가 낳은 비극인 것입니다. 

2. 절제가 필요한 영역

㈀ 몸의 절제.

 

바울은 절제를 많이 말한 사람입니다. 특히 디도에게 절제를 많이 교훈합니다. 디도가 목회하는 그레데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성이,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그들은 절제의 성품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절제를 배우지 않으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회전을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몸의 욕망은, 탐식(貪食), 게으름, 도덕적인 불순물⋯ 들입니다.

 

㈁ 생각의 절제.

 

생각의 힘은 엄청납니다. 생각으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냉동차에 갇힌 사람은 온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생각 때문에 죽습니다. 그 냉동차는 플러그가 뽑힌 그냥 차였습니다. 그런데 얼어 죽었습니다. 생각이 그를 얼어 죽게 한 것입니다.

생각은 무수한 죄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까 죄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텔레비전, 특히 불륜 연속극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절제를 해야 합니다. 핸드폰, SNS… 이런 데서 절제해야 합니다. 온갖 세상 생각들이, 죄들이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정신적인 온실 같아서 한번 씨가 뿌려지면 행동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에서부터 좋은 생각, 긍정심리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잡초를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 밭의 잡초들, 사단도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생각을’넣었습니다(요13:2). 생각에서 절제하세요!

 

㈂ 감정의 절제.

 

절제될 필요가 있는 감정에는 화(火), 분노, 원한, 자기연민, 비통함입니다. 이런 감정들이 절제되지 못하면 경건한 삶에 큰 걸림돌이 되고 공회전 신앙이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유년시절부터 절친했던 클레토스라는 장군 친구가 있었습니다. 클레토스가 만취해 군사들 앞에서 대왕을 모욕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대왕은 분노로 군병의 창을 빼앗아 던졌습니다. 죽이려던 것은 아닌데 맞아 죽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행동에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습니다. 내 손으로 절친한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까지 하려했으나 사람들의 만류로 포기했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탄식할만큼 세계정복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데는 실패해 큰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원재훈은 <착한 책>에서“미운 사람 만나거든 다투지 말고 그냥 날씨 이야기만 하라”합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표정과 말투로 표현되고 절제가 힘들기에 방법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 언어의 절제. 예수님께서“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했어요.

말은 그 사람입니다. 말을 보면 사상을 알고 인품을 압니다. 대인과 소인도 말로 압니다.

“대인은 사상이야기를 하고 보통사람은 시사이야기를 하고 소인은 남의 이야기를 한다.”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본전도 못 찾는 것이 말이고 남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말입니다. 말 많은 교인들로 감정의 상처를 받습니다. 목회자는 감정의 노동자입니다. 말쟁이들이 말로 갑질을 해버리면 힘듭니다. 절제의 최우선 영역은 혀입니다. 혀의 절제가 없이는 아무리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져도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겉으로만 번지르르⋯ 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사람은 좋은데…. 말이 망친다는 것입니다. 말의 절제를 해야 성공합니다.  

3. 어떻게 절제할까?

㈀ 예수님의 절제를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절제를 통해 인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신분이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능력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프고 목말랐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떡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얼마든지 내려올 수 있었지만 끝까지 달렸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려 겟세마네에서 기도했으나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정도를 걷는 길을 택했습니다. 무서운 절제의 힘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루었고 완성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부인이 절제입니다. 자기 절제가 없이는 제자도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절제되지 못한 나의 영역을 알아야 합니다.

대나무의 푸른빛을 죽이기 위해(殺) 대나무에 불을 쬐는 행위를 살청(殺靑)이라 합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대나무를 잘라 넓게 편 후 기록을 남겼습니다. 갓 자른 생(生) 대나무는 수분이 많아 필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나무에 벌레가 생기거나 또 심하면 햇빛에 갈라지는 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직접 불을 쬐는 작업을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대나무의 푸른빛이 죽는 살청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에도 죽여야 할 푸른빛 같은 악덕(惡德)이 있습니다. 그것을 살청으로 제거하지 않고 가슴에 담고 살아가면 타인보다 자신이 먼저 그 독소로 위험합니다. 특히 험담이라는 푸른빛을 살청하기. 험담의 뜻은‘맹수가 이빨로 물어 뜯는다’험담은 남의 인격을 물어뜯는 의도적인 이간질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남도 싫어하도록 선동하는 행위입니다.

 

사울이 자신을 13년이나 괴롭히다 죽자 다윗이 한 일은…, 정치적 보복인가, 베냐민지파에게 그의 신앙적 행위를 풀어놓는 험담인가? 다윗은 사울을 위해 애가(哀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지파가 그의 편이 됩니다.

험담은 삶의 하수(下手)가 선택하는 질 낮은 편법입니다. 누구를 험담하기보다 오히려 도닥거려주는 삶, 그것이 절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 절제는 성화의 큰 요소입니다.

모든 열매들이 성화를 돕지만 그 중에도 오래참음과 절제는 뼈를 깎는 아픔과 노력, 오랜 인고(忍苦)가 필요합니다. 너무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상대방에 대해 참아주지 못하면 우리 성화는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교황명이 프란체스코입니다. 교황명은 이탈리아 성자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수도사 프란체스코는 수도사 생활을 하기 전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수도사생활을 했지만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는 그 여인을 프란체스코 역시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눈 오는 날, 프란체스코는 여자 눈사람과 그 옆에 아이들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지워버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장례식을 집례합니다. 그걸 동료수도사가 본 것입니다. 이런 절제가 그로 하여금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만들어 냈고 청빈과 절제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성자(聖者) 칭호를 듣게 한 것입니다.

 

㈃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주도 하에 있지만 거의 100% 내 수고와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만들었는데 왜 성령열매라 하나요? 성령은 나와 예수님 사이를 계속 접붙입니다. 내가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려 할 때 성령님은 나를 감동시키면서 더 달라붙게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공급받도록 합니다. 열매는 내가 맺지만 열매 맺는 수분과 능력은 예수님 능력이고 중간사역을 성령님이 해주시기에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는 육체의 나무입니다. 육체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들은 19절 이하의 먹지 못하는 떫은 열매들뿐입니다. 예수 믿고서도… 그 성직이라는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평생을 육신의 자아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예수쟁이 이런 육체열매로 한국교회가 변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결론

한 여름 계속되었던 예수생명나무에 달리는 성령의 열매 설교를 마감합니다. 교회마다 특징이 있지요. 선교하는 교회, 구제하는 교회, 다음세대를 향한 교회, 치유하는 교회, 예배당 건물을 갖지 않겠다는 교회⋯. 우리 늘빛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제 목회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항상 여러분입니다. 예배당 짓기보다는 여러분을 짓는 것이 제 목회관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복음화하는 선교, 나의 볼 폼 없는 불쌍한 영혼을 구제해서 자존감 넘치는 사람,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성장하는 인물⋯ 그게 제가 내놓은 목회 작품들입니다.

 

여러분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제 목회성공은 없습니다. 무엇으로 성공시킵니까? 성품입니다. 그 좋은 성품이라는 기준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