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 눌리면 영성도 눌린다!
출애굽기 4장1~7절
서론
미국의 한 기관이 “당신의 외모에 만족하나?”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남자응답자 28%가 만족, 여자들의 만족도는 13%에 불과했습니다. 외모를 바꾸고 싶다, 남자가 94%, 여자가 99%였습니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자기 외모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작년 통계에, 우리나라 여중고생 10명 중 6명은 화장을 합니다. 화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뻐 보이려고'… 화장연령은 대부분 중학생 때부터 시작합니다. 빈도는 매일이 36.9%(116명)로 가장 많았으며, 주 3회 이상 하는 학생도 26.4%(83명)나 됐습니다.
성형의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60.1%, 그러니 한국에서 시행되는 미용 성형시술 종류가 130여 개에 달합니다. 세계 최고 성형공화국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중생들의 이른 화장이나 성형을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화장하는 학생들은 얼굴에 대한 만족감이 높을수록 자아수용, 긍정적 대인관계, 자율성, 개인적 성장… 등 심리적 안녕감이 높게 나옵니다. 물론 성형수술을 하고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잘 나와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화장, 마음의 성형까지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화장과 성형이 안 되는 부분이 열등감입니다. 열등감(劣等感)은 타인에 비해 나는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 감정 또는 의식입니다. 일종의 자격지심입니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낮은 자존감’(Low self-esteem), 부정적인 자아의식입니다.
우리가 영성을 갈구하고 성령 충만해도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치료받지 못하면 충만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성령 충만이 잘못된 은사나 종교적 열정으로 자기충만이라는 왜곡된 종교중독을 불러옵니다. 영성을 유지하려면 열등감을 떨어내야합니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돌에 눌려 덤불에 갇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열등감에 눌리면 영성도 눌립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불행하게 살고 열등감이 있었기에 위대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열등감은 방치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제대로 관리하면 보물단지가 됩니다. 위대한 인물은 애물단지를 보물단지로 만들어 낸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실제사례입니다.
1. 모세의 열등감
모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도 열등감 요소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왕자입니다. 왕 순위 1위 공주의 양자(養子)로 왕이나 총리가 될 인물입니다. 애굽 학문을 두루 익힌 1등 정치인, 신랑감입니다. 자만심으로 거드름 부릴 실력자입니다.
이런 모세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공주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요 히브리인입니다. 공식적으로는 부모도 친인척도 없습니다. 정통파 왕자가 아니니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고 견제 대상입니다. 학문에 능해도 주류에 끼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였습니다. 모세가 그걸 압니다. 그러니 나름대로의 열등감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살인하고 달아난 후에는 장기적 열등감에 빠집니다.
결혼생활-미모도 교양도 없는 양치기 여인 십보라. 한 때는 애굽제국 신랑감후보 1번이 양치기여인과 결혼했으니 클레오파트라를 배출한 애굽 여인들을 생각하면 왜 갑갑하지 않겠어요!
그는 미디안목자가 됩니다. 혹자는 모세가 군대 지휘관으로 많은 공적을 쌓았다고 해요! 그러던 그가 지금은 양에게나 호령하는 목자가 되었으니 대장부에서 졸장부신세가 된 것이지요!
그의 손에는 칼이나 지휘봉이 아니라 2절, 지팡이를 쥐었으니 자존감이 있겠어요? 40년을 그런 생활을 했으니 무슨 자긍심이나 자존감이 남아있겠어요?
2. 열등감의 원인
모세에게도 이렇게 열등감의 요소가 있듯이 모든 열등감에도 나름대로 원인이 있습니다.
신체적 열등감. 열등감의 근본입니다. 기형이나 병에 의한 장애, 외모 콤플렉스에서 옵니다.
정신적 열등감. 학교성적이 나쁘거나 사랑 받지 못한다, 어릴 때 무시는 자신감 결여입니다.
사회적 열등감. 학력, 인종이나 신분에 의한 차별, 언어, 가난⋯ 등입니다.
종교적 열등감. 교회 안에서 특별한 은사가 없고 영적인 진보가 없기에 낮은 자존감입니다.
신학적 열등감. 잘못된 죄인의식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벌레만도 못하다.” 자신을 한없이 정죄합니다.
하나님 형상을 받은 새로운 자녀신분을 상실하고 맨날 죄인으로 취급하고, 타락한 존재로 자처합니다. 그걸 겸손으로 착각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사랑받는 사람이다! 기뻐하면서 남도 높입니다. 늘상 나는 못났다, 무시는 자기 학대입니다.
신체적 정신적 열등감은 잘못된 사고를 갖게 되면서 형성되고 사회적 열등감은 그릇된 비교의식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종교-신학적 열등감은 왜곡된 성경해석, 잘못된 교리에서 나옵니다.
모세가 그랬어요! 1절 “모세가 대답하여⋯ 아니하며⋯ 아니하고⋯ 아니하셨다⋯”
낮은 자존감, 왜곡된 자아상, 삐딱한 심리상태, 자기 부정! 왜 이런 열등감이 왔나요?
-오랜 세월 하나님이 돌보지 않았다는 섭한 감정.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곧 위대한 역사를 진행할 줄 알았어요! 나는 옳은 일을 했으니까! 그런데 10년 20년… 부르심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신 거예요! 백성들에게도 소식이 없어요! 백성들도 잊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은 얼씬도 하지 않지요, 찾아오는 이들은 없고 양치기 십보라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고 여섯 명의 처제들과 조카들을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휘어집니다! 그러니 무슨 희망과 자존감이 있겠어요? 섭섭한 거지요! 하나님께도 섭섭, 동족들에게도 섭섭하고… 열등감입니다.
-비교의식. 다른 왕자들은 어떤 명예를 얻었을까? 누구와 결혼했을까? 나보다 다 못하던 놈들이 출세하고 나는 뭔가… 무명의 양치기가 되다니… 더 속상한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향평준화. 그는 목자신분으로 마인드가 고착된 것입니다. 발목을 잡는 처가식구들은 애물단지들입니다. 그러니 행복이 없습니다. 열등감에 빠져버리니 우울하고 짜증만 납니다.
-나이 80.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입니다. 모든 걸 접어야 하는 나이가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내게 있는 가능성을 눌러버립니다. 자신감 결여로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 안 된다, 실패한다… 결론 냅니다. 그러니 잠재력이 발휘될 기회가 없고 왜소한 인간이 되는 거지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불가능을 제기하는 직원들에게 야단치는 말이 “해봤어?”랍니다. 열등감에 빠지면 매사에 자신 없기에 의욕이 없습니다.
열등감은 하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됩니다. ‘나는 못한다.’ ‘나 같은 것이 무슨 일을 하겠나’ 주저합니다. 열등감은 교만입니다. 할 수 있다 없다, 내가 결정을 짓는 교만입니다. 자신감 결여는 낮은 자아로 꽉 뭉쳐진 교만입니다. 이런 열등감이 내 운전석에 앉아있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남도 안 되고 나도 안 되는 참 피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열등감은 치명적인 병입니다.
3. 하나님의 개입
이때 하나님께서 40년 만에 나타나신 거예요! 그리고 3:10 애굽으로 파송한다는 거예요!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모세가 네! 하겠어요? 자존감은 사라지고 열등감으로 뭉쳐있고 섭섭한 감정으로 모든게 짜증, 불만, 우울증에 걸렸는데⋯ 여태껏 무소식이다 이제 와서 애굽에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 참 이기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겠어요? 부정 언어가 쏟아집니다.
3:11, 내가 누구이기에…
3:13, 누구세요? 400년 이스라엘을 잊어버린 당신, 40년 나를 잊어버렸던 당신… 누구세요?
4:1, 동족들이 나를 믿겠어요?
10절, 나는 말을 못해요! (대변인을 세워준다고 하는데도)
13절, 나는 못해요!
부정적 언어사용을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오랜 열등감에 ‘못해요!’ 입에 붙었어요. 계속해서 제 길 제가 막고 인생의 발등을 제가 찍고 기회를 제가 막는 거지요! 원수가 ‘나’에요!
미국의 리더십 강사 맥스웰이 꿈을 꾸었는데 복면 쓴 사람이 길을 막고 계속 방해합니다. 그 사람이 너무도 자신을 괴롭히고 약을 올립니다. 그 사람과 싸워서 복면한 얼굴을 벗겨 보니 내 얼굴입니다. 내 인생을 방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안 좋은 운전사가 내 운전석에 앉습니다. 자동차가 어디로 가겠어요? 결과가 뻔하지요!
하나님께서 참다가 14절, 버럭 화를 내셨어요! 열등감, 자격지심, 낮은 자존감에 화를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만 화를 내시지 않고 자격지심의 장소에서 나오지 못할 때 화를 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내면에 있는 교만을 보신 것입니다. 교만은 겸손으로 가장해도 내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겸손한 말도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단치며 17절, 지팡이를 들려주니까⋯ 어떤 지팡이? 뱀도 되고 지팡이도 되는 이적의 지팡이를 들려주니 그제야 부르심에 응하고 애굽으로 갑니다.
4. 열등감을 이기는 법
열등감은 어느 질병보다 악성(惡性)입니다. 치유받지 못하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악성 종양은 근심하면서도 나를 평생 불행하게 하는 열등감은 방치합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이 즐거움이 없고 교회에 왔다가 기분만 나쁘고 돌아갑니다. 사단만 좋아할 일입니다. 어떻게 열등감을 치유할까요?
-열등감을 부정하거나 속상해 하지 말고 열등감의 원인을 찾아서 마주해야 합니다. 열등감이라고 다 잘못된 콤플렉스가 아닙니다. 성인병의 주범 콜레스톨에도 좋은 콜레스톨이 있고 나쁜 콜레스톨이 있습니다. 열등감도 좋은 쪽으로 잘 활용만하면 성공인자가 됩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에 피나게 노력해서 세리장으로 성공했어요! 에훗이 오른손이 장애였기에 왼손잡이로 사사가 되고(삿 3:15) 모압 왕 에글론을 죽여 승리사사가 되었어요!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단점이 없었다면 성공도 없었겠지요!
모세는 40년 미디안광야에서 살면서 애굽 언어도 잊어버리고 히브리언어도 잊어버려 말을 능숙히 못했기에 하나님의 능력에 더 몰두했고 대중연설에 서툴렀기에 모세오경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시력이 좋지 않고 말을 못하는 열등의식이 알게 모르게 존재했기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대중 설교가보다는 13권의 성경저작자로 큰 공헌을 남겼습니다. 내 안의 열등의식이 반대급부를 파고들면 오히려 열등감 없는 사람들보다 성공률이 높습니다.
-나의 긍정적 부분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해야 합니다. 모세는 양치기 옷을 벗고 구출자 신분으로 애굽으로 갑니다. 살인자 망명자로서는 두려웠지만 구원자는 당당하고 희망적입니다.
나와 함께 평생 갈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가 나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행복하게 가는데 낮은 자존감은 자기를 싫어합니다. 가장 좋아해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미움을 받기에 당연히 인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나약하게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데 내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행복할 리가 없지요. 이런 부정적 자아상,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을 떼 내지 못하면 평생 스스로를 괴롭히다 갑니다.
그러기에 ‘완벽한 나’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추구하며 만족감을 얻어야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나’를 찾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칭찬하고 격려한다면 열등감이 아니라 자기만족 지수가 높아지고 그만큼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있는 것으로 일해야 합니다.
17절,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적을 행하라!
그야말로 마른 막대기입니다. 모세는 당장 눈에 보이는 더 큰 능력을 원했습니다. 대중연설가의 언어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팡이, 지금 네 손에 있는 것으로 일하라고 합니다. 양들이나 돌보던 지팡이가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고 홍해를 가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으로 일해야 합니다. 작은 것을 멸시하지 말고 그걸 수단으로 일하면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의 능력도 5천명을 먹이는 대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만큼 행복합니다.
-공동체의식.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을 극복할 대안으로 공동체 의식을 역설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베푸는 삶입니다. 내가 남을 돕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면 열등감을 이겨내고 ‘더 행복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럿이 함께 해야 합니다.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성공사냥의 확률은 80%입니다. 비둘기가 10마리와 함께 있으면 60%, 5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10% 이하로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현대인의 사망요인 1위는 암(癌)이 아니라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우울증이 되고 우울증은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합니다.
-불이 붙어야 해요! 호렙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모세에게 붙었어요! 나도 저렇게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불이 붙으면! 불이 그의 열등감을 깡그리 태웠어요!
모세는 2백만 명과 함께 하면서 애굽의 왕자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모함하고 거역한 백성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동족이요 선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별강화에서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33:29) 행복한 자존감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애굽왕자로 있었다면 우울증 열등감으로 끝났을 텐데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했던 고난의 세월에 만족감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신분변화요 의식변화요 행복의 비결입니다. 십자가에서 신분변화를 거칠 때 내 약함이 강하게 되고 열등감은 능력의 지팡이로 변합니다. 그래서 모세 120년을 3분화합니다! 애굽 궁궐 40년은, 나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미디안 목자 40년은 나는 아무 것도 못한다! 광야 40년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쓰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 고백으로 나뉩니다. 완전히 열등감이 치료된 모세입니다.
결론
저는 자신감 결여라는 청소년-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신학생이 되고 교육전도사가 되었지만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총회사무국에서 행정목사 내지는 문서선교 목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안수 받고 9개월을 실업자 목사가 되었습니다. 친구목사가 부평 송내에서 개척교회를 하는데 어릴 때 수술자국으로 목과 얼굴에 혐오의 흉터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 10여명 모였나,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눈에 흉한 외면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만 보였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가릴 것은 눈가려주고 좋은 점은 눈 밝혀주시는구나⋯ 그래서 개척했고 오늘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아직도 역부족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은 열등감의 요인이 아니라 기도의 장소가 되고 영성의 장소가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른 지팡이 하나를 들고 여러분 앞에 섭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십니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는 이적의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열등감에 눌리면 영성도 눌립니다. 자꾸 훈련하고 독서와 좋은 교제를 통해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가시는 행복한 늘빛가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도제(徒弟)교육(누가복음 14:25~33) (0) | 2023.08.12 |
---|---|
모세나무에 불이 붙다!(출애굽기 3:1~5) (0) | 2023.08.12 |
하찮음에서 위대함으로~(여호수아 2:8~14) (0) | 2023.08.12 |
베다니가(家)의 영성(요한복음 12:1~8) (0) | 2023.08.11 |
제사장의 축복 기원(祈願)(민수기 6:22~27) (0) | 202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