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음에서 위대함으로~
여호수아 2장 8~14절
서론
예수님의 족보에 5명의 여인들이 나옵니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 하나 같이 하찮은 여인들입니다. 그 중 3명은 하찮음을 떠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다말은 자식을 얻으려 신분을 감추고 시부(媤父)와 행음했고, 라합은 기생 출신이요, 밧세바는 왕의 유혹을 받았거나 유혹했거나 상당히 능동적으로 나쁘게 행동해서 남편 죽음에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그 중에도 기생 출신 라합은 거룩한 혈통 선민(選民) 히브리민족으로의 진입은 상상도 못할 천한 신분입니다.
<메시지성경>은 ‘여리고성의 창녀 라합은…’으로 번역합니다. 창녀는 기생보다 훨씬 더 천박한 직업이자 신분입니다. 그럼에도 라합은 어엿이 예수님 족보에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이스라엘 믿음 영웅들 반열에 등재됩니다. 라합은 하찮은 사람, 존재감 없는 신분에도 천함을 극복하고 믿음의 전당에 오른, ‘하나님 은혜’의 표상입니다.
오늘은, 기생 라합의 천함 극복기, 하찮음 극복기를 살펴봅니다. 하찮음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이 약한 거지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별로 도움이 안 돼, 있으나마나한 존재야…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기 역할을 무시해버림이 ‘자기하찮음’입니다. 열등감과는 다릅니다. 열등감은 자격지심이지만 하찮음은 낮은 자존감입니다. 열등감은 부정적인 부분이 강하고 하찮음은 긍정적인 부분이 약합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하찮음이 열등감보다는 좀 낫습니다.
우리 믿음생활에 열등감이나 하찮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종교소꿉놀이’나 합니다. 요즘 자기계발 붐이 일어나고 잠재된 소질을 계발해서 성공하겠다고 야단인데 정작 하나님의 형상이요 자녀의 신분된 우리가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면 남들도 하찮게 여기는 고약한 신자들이 됩니다.
오늘 기생 라합으로 하여금 하찮음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라합, 거룩한 백성을 영접함으로 하찮음을 극복하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마감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입성합니다. 첫 관문 여리고 성문을 열고 정복해야 가나안정복이 제대로 시작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읍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두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라합은 여럿을 상대하는 직업이기에 대번에 알아봅니다.
오래 전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분이 목사님 같네요~ 그래서 잔돈 다 주고 내렸습니다. 운전기사들은 하루 종일 손님들만 상대하다보니 외모만 보아도 누구인지 대충 알아봅니다. 그래서 인상(人相)을 많이 보다보면 통계학적으로 데이터가 나오고 그 데이터를 통해 그가 누구인가, 어떤 일을 하면 괜찮겠다, 이런 게 나와서 밥벌이 관상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라합도 한 눈에 정탐꾼을 알아보았습니다. 외모가 가나안주민들과 조금 다릅니다. 유대인은 가나안에서 살았지만 원래 조상은 갈대아 우르, 수메르문화 혈통입니다. 라합은 외모만 아니라 그들 민족의 역사, 광야 40년의 기적의 역사를 알았습니다. 물론 주워들은 소문입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것을 내가 아노라…
10절, 이는 너희가…
12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선대’는 구약의 중심을 이루는 ‘헤세드’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한 자발적인 친절’, ‘은혜 베풂’입니다. 지금 누가 강자입니까? 손님에게는 라합이 약자, 을(乙)입니다. 그들은 돈을 갖고 있고 선택권이 있습니다. 정탐꾼들과는 반대입니다. 아무도 그들 편이 없고 힘이 없습니다. 스파이신분을 알아본 라합, 신고하면 당장 조국을 구한 영웅이 됩니다. 기생이라는 신분을 뛰어넘을 절호의 찬스, 행운을 잡을 기회입니다! 살면서 이런 행운이 몇 번 오겠어요?
그러나 라합은 은혜-헤세드를 베풉니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정탐꾼을 6절, 지붕의 삼대에 숨겼고… 15절, 창문에 줄을 달아내려 성 밖으로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걸리면 처형됩니다. 혼자만 아니라 집안이 멸족하고 매국노 불명예를 얻습니다. 그럼에도 라합은 히브리민족 편에 섰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영접하도록 감동시킨 것입니다. 한쪽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게 하신 성령께서 일찍이 라합도 감동시켜 히브리민족을 받아들이게 역사합니다. 바로 그런 선택이 기생 신분, 가나안 거민이라는 혈통을 극복합니다. 히브리민족을 선택했기에 이스라엘 사회로 편입이 된 것입니다.
왜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는 일에 더딜까요? 희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고백과 찬양은 희생을 감수하겠노라 외치지만 불편한 크리스천의 생활생활은 원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대가를 치르는 일을 귀찮아하기에 하찮은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큐리어스 왕이라 고백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왕이라 고백하는 일은 죽음을 각오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는 나의 큐리어스(황제)요… 고백해서 반석이 됩니다. 그만큼 희생을 각오했고 왕의 신민으로서의 희생을 자처한 것입니다.
일본인들의 사무라이 정신은 예수를 믿으면 절대 복종합니다. 한번 믿으면 철저히 끝까지 갑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고 0.3% 안팎의 신자지만 수준 높은 일본기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나 오게… 믿으면 축복이네~ 이 말만 믿고 주님에게 나올 때의 위험은 무릅쓰지 않습니다. 내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맞바꾸기 위해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습니다. 갈수록 편한 기독교를 원하고 귀찮은 일은 싫어합니다.
카터 콜론은 <두려움에 속지 말라>에서 장차는 ‘느낌이 좋은 종교’가 인류의 대표종교가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느낌이 좋은 종교? 포시스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라>에서 ‘십자가의 메시지가 삭제되고 정답고 다정한 종교’라고 합니다. 이런 종교들의 특징은 죄를 지적하지 않고 죄를 변명하고 변호합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습니다. 편하게~ 더 편하게~ 그 대신에 헌신이 없고 희생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좋은 것만을 희생 없이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귀찮음이 위대한 기독교신앙을 소꿉놀이로 만들고 결국에는 하찮은 인생으로 남게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신분으로 나가 천함과 하찮음을 극복하려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나를 희생하는 마음, 대가를 지불하는 행동이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냅니다.
2. 라합,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하찮음을 극복하다.
라합은 가나안 신관 소유자입니다. 가나안 신관은 바알 신앙+아스다롯 부부신관, 음란문화입니다. 두 남신과 여신은 부부 신(神)으로 흥분하면 비를 내립니다. 이 흥분을 누가 유도하는가? 신전에서 남여사제들과 몸을 섞으면서 종교행위를 합니다. 술에 취하고 색(色)에 취하는 것만큼의 흥분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가나안종교는 ‘스와핑’을 만들어 냈습니다. 스와핑은 부부들끼로 교환하면서 서로의 육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음란행위가 신전 안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거기에 전념할수록 종교심이 강한 것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라합은 이런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기생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돈벌이가 좋았습니다. 단체신자들이 많아 여사제가 딸리면 라합도 여사제가 되어 섹스 파트너 일도 했겠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여인에게 바른 하나님관이 성립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11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리라…
개역성경에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 지금까지 여호와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알려진바 없습니다. 라합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바른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본 첫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거룩한 이름으로 여깁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않고 글을 쓸 때도 깨끗한 몸과 붓으로 쓸 정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거룩성을 엄청 높입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신(神)을 흥분이나 시켜주면 비나 내려주는, 음란하고도 사소한 하찮은 신으로 섬길 때 유대인들은 거룩이라는 단어로 그들 신을 최상으로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거룩한 백성이 되어갔습니다. 거룩한 그 이름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방 여인 라합의 입에서 거룩하신 여호와의 이름이 나옵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안다는 것은 체험입니다. 남들에게는 ‘홍해가 열렸다 하더라’ ‘요단강이 열렸다 하더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고 보호한다 하더라’는 ‘카더라’ 방송 정도였지만 라합은 진짜 내 눈으로 보고 내 입으로 만나를 먹어보고 내 손으로 메추라기를 손질해 보는… 체험적 앎을 가졌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을 접하다보니 광야 40년 이스라엘에 관한 정보를 듣고 주시했고… 결론은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 그 하나님은 오직 유일신이다,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라합은 창기입니다. 급하면 여사제로 섹스 파트너 ‘알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나안종교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종교를 가장한 스와핑… 술을 팔고 웃음을 팔았지만 가나안 종교는 내 운명을 맡길 신들이 아닙니다. 나도 하찮은 존재인데 내 미래도 하찮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찮은 내 운명 하찮은 신들에게 맡긴다면 나와 자손들도 하찮음을 면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하찮음과는 반대되는 창조주, 유일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400년이나 지켜주고 광야 40년 유랑생활에서 완벽하게 보호-인도하신 굉장하신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거룩하신 여호와를 부르는 거룩한 백성, 선택을 받은 선민이 됩니다. 기생이라는 하찮은 신분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굉장한 신분 변화입니다. 스파이를 고발해서 여리고성의 영웅이 되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의 백성들 편에 서게 되니 하찮은 여자가 굉장한 여인이 된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메시야시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욜 2:32) 했는데 이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고 구원 받은 자들은 거룩해 진다는 보장입니다. 왜? 여호와는 거룩한 분이니까! 우리는 라합에게서 그 말씀의 성취를 봅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을 날마다 부르며 신비한 연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맙다고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도 하는 사람에게도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을 사용하셔서 인생을 놀랍도록 변화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목격합니다. 그 증인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라합, 고귀한 신분과의 결혼으로 하찮음을 극복하다.
2장에 등장했던 라합은 6장에서 구원받는 것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구원사에서만 사라졌을 뿐이지 이스라엘 족보에는 계속됩니다. 라합의 이름이 재등장하는 것은 1500년 후 예수님의 족보에서입니다.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룻기에, 그 보아스는 ‘유력한 자’-부자, 실력자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라합의 아들이고 라합 대(代)에 그 집안은 벌써 유력해졌습니다. 라합은 가나안입성을 도운 공헌자로 구국인사가 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살몬과의 결혼이 진행되었겠지요. 유력한 남자와의 결혼은 천한 여인의 과거를 도말하고 고귀한 신분이 되게 했습니다. 그녀는 천함을 극복한 것입니다.
라합이 이스라엘과 섞여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선민 민족성이 강합니까? 이방인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정통파 유대남자들은 감사기도를 할 때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감사’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아 감사’ ‘노예로 태어나지 않아 감사’합니다.
이런 꽉 막힌 민족들과 가산을 정리하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기생이라는 직업으로써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라합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신앙으로 들어가고 그 민족들과 연합하면 나는 힘들고 어려워도 훗날 내 자손들에게서 선민의 피가 흐르고 언젠가는 온전한 히브리인이 되겠지, 라는 희망적 생각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이스라엘 편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멀리 시간을 볼 것도 없어요! 당장에 최고의 남편감을 주었어요! 살몬이라는 남자… 나손의 아들입니다. 나손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을 세울 때 유다지파의 족장으로 성소에서 제1일에 예물을 드렸던 자입니다(민7:12). 나손의 아버지가 암미나답(아미나답), 대제사장 아론의 장인입니다(출 6:23). 그러니까 아론의 아들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과는 고종형제지간입니다. 이런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부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신분상승이 친가 쪽은 유대족장, 사돈 쪽은 아론대제사장 집안! 유대사회에서는 최고의 명문가문입니다. 라합은 기생딱지를 벗고 순간적으로 상류층이 된 것입니다.
그녀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에게서 또 한 번의 라합의 일생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압 자손들과는 상종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멸시가 심한 유대사회로 따라왔다 보아스를 만납니다. 라합의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심정을 알고 이방여인을 따듯하게 받아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려를 아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룻을 아내로 맞았고 하찮았던 여인은 다윗의 할머니요 메시아의 조상할머니라는 굉장한 신분을 얻습니다. 믿는 사람, 믿는 백성과 결혼을 잘 해서 얻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시어머니 라합과 며느리 룻, 2대에 걸친 이방여인들의 눈물의 스토리는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하찮은 자들이 귀한 자들로, 귀찮은 자들이 괜찮은 자들이 될 수 있나, 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이화학당 첫 졸업생 답사자는 언년이라는 백정의 딸입니다. 백정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절, 아버지는 가슴에 백정 표지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가에 끌려가고, 어머니는 읍내 소학교운동회에서 ‘백정각시 타고달리기’에 끌려가 소처럼 학부모를 태우고 기어 다닙니다. 그것이 너무 수치스러워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고종 시의(侍醫)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에비슨에게 치료 받고 예수를 믿습니다. 두 아들(박서양)은 의사와 세브란스 교수가 됩니다. 언년이는 양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 최초로 산부인과의원을 개설한 신필호와 결혼합니다. 승동교회 1대 장로 백정 박성춘의 인생역전 스토리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찮은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성경인물들은 하찮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천함을 극복했습니다. 자기희생이라는 결단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안에서 천한 자가 귀한 자가 되고 하찮은 괜찮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결론
다음주일에 장로 3인 선거를 합니다. 임직 선거 때마다 목사는 늘 ‘마음앓이’를 합니다. 교회 임직이 일꾼 선출인데 항존적-종신직이 되다보니 명예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투표를 신앙인격에 대한 인기투표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되면 자칫 스스로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임직자가 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분들도 생기고 안 된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하찮은 존재였나, 낙심하게 됩니다.
내 감정과 내 기분으로 믿음생활 교회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기분이야 좋고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하찮은 것입니다. 정말 귀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거룩한 백성들과 연합되어 행복하게 교회생활 하면서, 나는 소중한 존재구나… 행복한 자존감으로 살아감이 중요합니다. 풀처럼 꽃처럼 시들어버릴 직분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 설교들은 굳이 첫째 대지 둘째 대지… 로 구분된 것은 아닙니다. 암기 쉽게 단락을 나누었다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물 흐르듯 설교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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