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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나님께서 물으시되(2)(욥기 2:1~6)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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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물으시되(2)

욥기 2장 1~6절  

서론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물으시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실 세 가지 질문을 전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살다온 장소를 물으십니다. 무엇에 주목했느냐? 한 주간의 관심사를 물으십니다. 어디로 가느냐? 다짐과 결심을 물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구원 이후에 바르게 성장-성숙-성화하려면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어디서 왔느냐? 무엇에 주목하며 살았느냐? 예배 후에는 어디로 가겠느냐? 하나님의 질문에 천사와 사탄과 욥은 각각 어떤 대답을 했습니까? 좋은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면 더 좋은 천사가 되고 좋은 질문에 비딱한 답을 내놓으면 더 악한 사탄이 됩니다. 내 대답이 천사도 되고 사탄도 되고 하나님의 자랑거리도 됩니다. 좋은 대답이 성화 성도 됩니다.

 

오늘 설교도 “하나님께서 물으시되” 같은 제목입니다.

본문 2장은 1장 장면의 반복입니다.

1. 어디에서 왔느냐?

하나님께서 “어디서 왔느냐?” “무엇하다 왔느냐?” 물으셨다면 욥은 이런 대답을 했겠지요?

 

“죽을 고생 하다 왔습니다. 순간에 엉망진창입니다. 자식들 죽고⋯ 재산은 풍비박산⋯ 성실한 신앙생활의 결과가 이 정도냐? 조롱당합니다.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어디서 왔느냐?” “무엇하다 왔느냐?” 물으셨다면 이렇게 대답할까요?

 

“욥을 살피다 오는 중입니다. 참 안 됐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욥이 저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욥의 처지가 안 된 것을 보다 오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서 왔느냐?” “무엇하다 왔느냐?” 물으셨다면 사탄은 이런 대답을 했겠지요?

 

“욥에게 신나게 고춧가루를 뿌려주다 왔습니다. 자식들 잃고 울부짖는 것! 재산 몽땅 잃고 알거지 된 것! 보통 삼삼한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그런 일로 바쁘게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무엇 하다 왔느냐⋯ 우리들에게도 각각의 대답들이 있겠지요?

 

“얻어터지다 왔습니다. 고2아들딸이 세월호로 죽고⋯ 연로하신 부모님 메르스로 죽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말 한마디 없이 죽었어요! 외동아이는 마음을 잡지 못해 저리도 방황하네요! 세월호에서 20명 아이들 구조해 주었는데 누구하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네요! 지금 위암 4기에요! 이런저런 것 생각하니 너무 힘들어요! 내가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할까요?”

 

우리가 성장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어디 있다 왔느냐?” “무엇하다 왔느냐?” 이런 질문에 우리 사정을 말하고 힐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거룩-홀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홍익그리스도인 됩니다. 잘 믿어 남 주고 많이 믿어 남 주고⋯ 기도 잘해 남 잘 되게 하고 성경 많이 알아 남 행복하게 합니다. 이게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걸 위해 교회가 필요하고 설교가 유익하고 성도의 교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2. 무엇에 주목했느냐?

하나님께서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3절,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자식들이 죽을 때 욥은 어떻게 할까? 내게 원망할까? 가축과 재산 사라질 때 믿음도 사라질까? 하나님께서는 욥의 행동을 주목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욥의 믿음에 하나님은 기분이 좋습니다. 욥 때문에도 기분 좋지만 욥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떠나지 않으며 일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신 자신의 믿음이 정확했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절,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사탄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저도 눈이 있기에 다 보았습니다. 내가 그를 시험하고 고난에 넣었는데 왜 욥의 믿음을 모르겠습니까? 욥의 종교심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동기를 보셔야 합니다. 욥이 그냥 잘 믿을까요? 다 속셈이 있지요. 아직까지도 하나님께 얻어낼 것이 있기에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나올 거 없어 보세요, 욥은 절대로 믿음을 지키지 않습니다!

 

5절,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사탄의 관심사, 어떻게 저렇게 잘 믿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 장점을 발견하고 자랑할 수 있는가? 거기에 주목하고 한 수 배우고⋯ 그러면 사탄도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탄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아니라 오직 사람입니다. 그를 흥하게 만들고 칭찬하고 잘 되게 함이 관심이 아니라 남의 사업 망쳐놓고 못 살게 하고⋯ 망가뜨리게 하는 것이 사단의 관심사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 두루 바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욥. 너 참 힘들게 되었다! 그런 시련의 와중에서도 어떤 생각으로 앞장의 21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22절,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그럴 수가 있더냐?”

 

욥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죽은 자식들 볼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키운 아이들인데⋯ 성결을 위해 항상 번제를 드리며 정결하게 키운 아이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다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죽은 아이들의 시체에 주목했을 때 저도 죽고 싶었습니다. 알거지 비참한 신세에 자살하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知性)이며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씨(81세)가 하늘나라로 떠난 딸 이민아(1959∼2012) 목사의 3주기를 맞아 가슴에 묻어뒀던 사연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로 펴냈습니다. 인터뷰에서 “딸이 이혼하고 괴로워할 때, 피붙이를 잃고 넋이 나가 주저앉았을 때, 앞을 보지 못해 길을 더듬을 때, 암에 걸려 투병할 때도 사랑하는 딸 곁에 있지 않았다⋯그 수많은 날, 홀로 피눈물을 흘렸을 딸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먹먹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울먹입니다.

 

그러면서, 딸의 죽음 자체보다 어린 딸이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자랑하며 굿나잇 키스를 받고 싶었지만 글쓰기에 바빠서⋯ 일에 바빠서⋯ 사람들 만나기에 바빠서⋯ 짧은 순간, 고개 한 번 돌리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고 한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이어령에게 “무엇에 주목했느냐?” 물으신다면 일에⋯ 사람들에게⋯ 장관직에⋯ 주목했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런 것들 때문에 딸의 새잠옷에 주목하지 못했고 굿나잇~ 이라는 저녁인사를 받으러 왔다 시선도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서 슬퍼하며 돌아가 눈물을 흘렸을 어린 딸의 모습에…, 그 속상한 심정에 주목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답을 내놨을 것입니다. 그러면 평생 죄책감으로 괴롭게 살다가고 아버지의 인생도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물속에 빠져 죽어갔을 그 애처로운 눈망울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부모들이 국민들이 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요구조건이 많다고 느껴지는 일을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하는 것은⋯  네가 무엇에 주의하여 보았느냐⋯ 네, 우리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모의 심정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식들에게서 눈을 떼고 빼앗긴 가축들⋯ 파산된 사업장에서 눈을 떼고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하나님⋯ 원래 자식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 많은 재산들도 내 것이 아닙니다. 1:21,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오직 여기에만 주목했더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런 고백찬송이 따라 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주목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좋은 것에 주목하면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곳에 주목하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됩니다. 동의하십니까? 

3. 어디로 가려느냐?

참 끈질긴 사탄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욥을 삼키려고 주목합니다. 사탄의 눈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자비와 긍휼⋯ 이해심도 아량도 없습니다. 비방거리만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욥이 얼마나 아까운 사람입니까? 자식들 신앙까지 챙기는 사업가 아버지가 흔합니까? 사업을 하다보면 정직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는 동방에서 가장 훌륭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죽었는데⋯ 가산을 잃고 재산들을 빼앗겼는데도⋯ 주신 이도 여호와 가져가시는 이도 여호와⋯ 빼앗겼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고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사탄은 끝까지 욥을 잡아 끌어내리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힘듭니다.

 

7절, “사탄이⋯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사탄은 욥을 칩니다. 욥에게 죽을병이 왔습니다.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세월호에서 20명 건져낸 사람이 8개월 후 위암4기 판정을 받습니다. 목숨 걸고 구해 의인(義人)이라 추켜세웠는데 정부보상금은 530만원, 그마저 이런저런 제약에 걸려 아직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사람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인생 종기가 나야지요? 

 

우리에게 당한 현실만을 보면 억울할 때가 있지요? 하나님이 야속할 때가 있습니다. 욥이 얼마나 억울해요?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뺏겼다 생각하면 찬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재앙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차마 말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12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절,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귀한 자식 열 명이 죽고⋯ 사업은 무너져 거지가 되고⋯ 욥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무슨 위로가 있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저들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어요! 사랑의 하나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하나님을 결코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입을 다문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주목했어요! 자식들에게 눈을 거두어 하나님의 섭리를 구했어요! 그러니 무너진 현실에서도 찬송이 나왔지만 세 친구는 하나님을 주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어찌 이렇게 착하고 훌륭한 내 친구 욥에게⋯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3장에서 욥이 너무 힘들어 자기 생일을 저주하자 상황은 달라집니다. 침묵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독한 말로 공격하며 비난하는지⋯ 사탄의 대리인이 됩니다(계 12:10).

권선징악 프레임으로 욥을 공격하니 큰 쌈질이 벌어집니다. 어느 정도 싸우는가, 4장~31장까지, 그것도 3대 1로 싸웁니다. 욥도 같이 맞받아치면서 친구들끼리 대판 싸움이 벌어졌어요!

 

욥을 주목하시는 하나님⋯ 민망하지요! 천사들? 몸 둘 바 모르지요! 사탄만 신납니다. 친구들끼리 진리라는 미명하에 사탄만 즐겁게 하는 일을 해주고 있지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고 했는데 그 짝이 될 판입니다.

 

욥과 세 친구와의 싸움, 1대 3. 그것도 병자와 건강한 사람⋯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자식이 잘 되는 사람과 자식이 죽은 사람⋯ 누가 더 이해심과 아량이 깊어야 합니까?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세 친구들은 참 독하게 말을 합니다. 자기의(義)에 사로잡혀 있어 그래요! 니체가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고⋯ 꼭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누구 손을 들어주었습니까? 욥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바른 말은 친구들이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말만 찾아 공격했습니다. 욥은 억지도 부리고 불평도 하고 저주도 했습니다. 당연히 욥이 야단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상황에만 주목했습니다. 그러니 권선징악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욥을 동정했는데 욥이 저주, 불평, 원망 발언을 듣다 욥을 악인으로 규정짓습니다. 하나님의 의중과는 관계없는 프레임입니다.

 

욥은 자기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권선징악 프레임은 믿지만 자신에게 이런 프레임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비난하자 욥은 하나님께로 가져간다고 합니다. 13장!

 

3절,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이것이 욥의 프레임입니다. 욥과 친구들 누구도 틀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권선징악이라는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권선징악은 완벽한 진리가 아니라 절반의 진리입니다. 세상에는 벌(罰)로 보답 받는 의인도 있고 상(賞)으로 대접받는 악인들이 있습니다.

 

세 친구들은 의인이라면 어떻게 고난이 오는가? 그 쪽에 매달려 욥을 정죄했고 이에 맞서 욥은 하나님께서 왜 죄인들에게 상을 주시는가? 그 관점에서 맞대응합니다. 각자 프레임에서 반쪽 진리들끼리 부딪치며 결론없이 치고 박습니다. 반쪽진리와 반쪽진리가 부딪치면서 큰 진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친구들은 욥에게만 매달립니다. 사탄이 욥에게 하는 일에만 주목합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진리는 사탄을 따라 추락하고 맙니다.

 

욥은 반쪽 진리들끼리 계속 부딪치는 힘겨운 싸움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갑니다. 하나님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역사에 주목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친구에게 물으십니다. 어디로 가려느냐? 친구들은 욥의 허물로 갑니다. 사탄의 공작으로 갑니다. 사탄의 대변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으십니다. 어디로 가려느냐? 욥은 대답합니다. 23장 10절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만이 아시지요! 지금은 모르지만 미래는 알겠습니다! 동기는 모르지만 고난의 결과는 알겠습니다! 고난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결과는,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섬기는 정금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옳으심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어령씨는 말합니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묻어두는 것만은 아니다. 죽음은 씨앗과도 같다. 슬픔의 자리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우리 삶을 더 푸르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추임새로 돌아온다.”

결론

어디에서 왔느냐? 교회는 이런 질문에 하나님으로 올라가는 답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망가지고 무너졌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주목하며 견디다 왔습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를 보여주십시오!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 편을 들게 해주십시오!

 

이제 어디로 가겠느냐? 오늘 예배드리고⋯ 설교 듣고 어떤 마음으로 가겠느냐?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싸우던 싸움 계속 싸우러 가겠느냐? 너를 울게 하던 상황, 다시 울려고 가려느냐? 땅의 아픔을 보러 가겠느냐? 하늘 소망을 보며 살려고 가려느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떤 요일을 만들려고 가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항상 좋은 대답을 준비하시고 그 대답에 맞는 삶을 산다면 우리도 그만큼 큰진리를 이루며 크게 성화되는, 동방사람 중에 가장 훌륭했던 욥의 흉내는 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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