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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아버지는 행복했다!(창세기 45:28~3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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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행복했다!

창세기 45장 28~30절

서론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난 다음에)

지난 4일, 사천경찰서는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33세 아들과 35세 딸을 구속했습니다. 아들이 마당에 있는 아버지(68)를 전기충격기로 넘어뜨리고 가스분사기를 얼굴에 분사한 뒤 각목과 철근 등으로 때렸습니다. 아버지가 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딸은 수면제와 농약을 샀습니다. 의붓자식이 아니라 친 자식들입니다.

61세 어머니도 남편 살해에 가담했지만 그래도 살아온 정(情)이 있어 범행을 만류하고 경찰에 신고함으로 아버지는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중상을 입고 치료 중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부모들은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버이를 공경하라!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하라! 가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 는 말로 받습니다. 어버이날 설교를 들은 어느 권사님이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목사님! 부모 공경은 바라지도 않아요. 공격만 당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쉬고 싶은데 손주를 맡겨놓습니다. 그리고 자기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공격합니다. 부모가 봉입니다. 자식들에게 공격당하니 몸과 마음이 너무 힘이 듭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나요, 공격을 당하고 있나요? 어버이주일입니다. 

1. 아버지는 힘들다.

오늘은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야곱도 아니고 동생 야곱도 아니고 남편 야곱도 아닙니다. 아버지 야곱, 힘들었던 아버지로서의 야곱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자식으로 살 때는 별로 고생 안하던 사람입니다. 아들로서는 사랑 받으며 행복했습니다. 그는 종용한 사람입니다(창 25:27). 종용한 사람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온 도련님시절을 말합니다.

 

야곱의 힘든 세월은 아버지가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네 아내에게서 12아들과 외동딸을 거느린 대가족의 아버지입니다. 열 두 아들 키우다보니 별의별 일들을 당했습니다. 이복형제들끼리 불화, 아버지 명예에 먹칠을 한 장남,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 요셉의 실종, 외동딸의 성폭행, 유다가 며느리에게 임신시켜 두 아들 낳아 집안망신, 기근을 당해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보냈다 시므온-베냐민까지 인질이 되는 기막힌 일…. 이런 자식들이 있는데 아버지로서의 야곱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참 힘들었습니다.

 

“부모는 가장 불행한 자식만큼만 행복하다.”

 

전에 사역했던 교회의 장로님은 서울대학교 상대, 권사님은 서울대학교 영문과, 대단한 부부입니다. 그런데 장남이 뇌성마비입니다. 밑으로 셋을 더 낳아 네 남매가 되었지만 아래로 낳은 세 아이들은 부모의 불행과 행복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뇌성마비 장남, 부모는 그 아들만큼만 행복한 것입니다. 뇌성마비 아들로 그 엘리트부부는 웃음을 잃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닥치는 불행으로 아버지로서의 야곱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실종당한 아들이 있고 성폭행을 당한 아들이 있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넷째 아들 유다가 있는데 아버지 야곱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로 사는 것이 참 힘듭니다. 그래서 훗날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내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47:9).

 

대한민국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은 어려운 시절에 부모 노릇을 했습니다. 배고팠던 보릿고개 시절, 일본의 압제, 6.25 전쟁, 이산(離散)의 고통, 독재정권… 이런 고통을 견디어낸 세대입니다. 한국이 번영해서 살만하니 웬 병들은 그리 많고, 사망률이 높아 자식들 먼저 보내고 자식들의 이혼율도 높고 장수무대가 되니 고마움의 자리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느낌, 아버지라는 자리가 참 버겁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영화 <국제시장>이잖아요? 덕수의 꿈, 대한민국이 번영하던 산업화시대에 원양어선 선장이 되고 싶었지만 자식과 동생들을 위해 선장을 포기하고 독일 광부로 베트남 파병용사가 되어 자식들을 키워내지만 아버지의 고생과 수고를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보다는 지금 시대를 더 닮아버렸기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들은 묻는 것입니다. 너는 누구니? 꿈이 많던 덕수는 어디로 가고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노인네만 여기에 있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다 정작 내 인생은 놓치고 말았던 아버지들의 탄식입니다.

 

자녀노릇보다 부모 노릇은 더 힘듭니다. 부모노릇 중에서도 아버지 노릇이 더 힘듭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부모, 하면 어머니 사랑이 앞섭니다. 8대 2비율이 될까요? 어머니는 잔잔한 사랑이 있고 아버지는 애정표현이 약합니다. 어머니의 돌봄과 사랑은 집안에서 눈앞에 있고 아버지의 희생과 수고는 집밖에서, 눈 밖에서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자식이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집니다.

 

그러다가 은퇴이후에는 거의 애물단지는 아니어도 구박덩어리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자조의 대상이 됩니다. 밥을 달라고 했다고 때리고, 아내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고 때리고, 아직도 살아있느냐고 때리고… 거기에 이식(二食)이니 삼식(三食)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처량해 집니다. 돈을 내가 벌고 내가 내 밥을 먹는데, 생산성이 떨어지면 마치 얻어먹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요즘 아버지는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거기다 자식들에게 어머니에게 잘 해 드리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기가 막힙니다. 힘든 아버지!

 

교회만이라도 남편들 기를 세워주고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자조 섞이고 자학적인 우스개에서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야곱도 힘들지만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듭니다. 그 아버지들을 교회가 응원해야 합니다.              

2. 아버지는 미안하다.

자식들에게 상처를 받는 말을 들으면 아버지들은 분노해야 하는데 그런 말조차도 참 미안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합니다. 남들처럼 해주지 못해서… 남들처럼 때깔 나는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해서… 그래서 대한민국 아버지들은 늘 자식에게 미안하고 설 자리가 없습니다. 모든 걸 다주고도 미안해하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야곱은 어땠을까요?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교활한’‘간사한’‘비열한’-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아들로는 이삭과 리브가에게 불효자! 아버지로도 존경받을 게 없는 사람입니다.

레아 아들들에게 어머니는 평생 한(恨)으로 살았던 여인입니다. 어머니는 둘째어머니에게 사랑을 빼앗기고 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자식들도 한(恨)이 대물림됩니다. 장남 르으벤에 서모의 침상에 올라 아버지의 명예를 짓밟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자기 어머니가 라헬이모에게 당하는 앙갚음으로 라헬의 여종 출신 빌하를 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 자기 탓이고 얼마나 미안해요?

 

라헬의 아들 요셉과 베냐민은 일찍 어머니를 잃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는 감사했지만 만삭(滿朔)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고 강행군했던 아버지에게 왜 섭섭한 감정이 없겠어요? 아들이 실종되었을 때 야곱이 얼마나 찾아 헤맸나요?

 

경부선을 탈 때마다 눈에 띄는 현수막이 있습니다. <송혜희를 찾아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딸, 16년 전의 일입니다. 그 딸을 찾아 전국에 전단만 200만장을 뿌리고, 현수막은 4천장을 걸었답니다. 딸한테서 전화가 올까 딸이 사 준 016 번호도 바꾸지 못한답니다. 그 아버지의 가훈은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입니다. 

야곱은 이런 일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총리가 된 요셉을 바라보며 얼마나 미안해요. 저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아로 이국땅에서 머슴도 되고 누명을 써서 감옥에도 갇히고… 아버지가 가장 필요했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게 얼마나 미안했겠어요?   

 

아들이 보낸 꽃마차를 보았을 때, 그것을 타고 가면서 아버지는 기쁨보다는 미안하다~

여종 출신의 실바와 빌하 자식들은 더 적대적인 아버지상(像)입니다. 그들은 형제이면서도 종이었고 서자(庶子)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들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종들의 자식이니까…. 생각해보면 아버지로 얼마나 미안합니까?

 

열 두 아들, 아버지에 대해 얼마든지 대적하며 반항하며 탈선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처럼 무책임하며 비정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불효자 집에 불효자가 나오고 무정했던 아버지에게는 무정한 자식들이 나와야 하는 것이 세상이치가 아닙니까? 그런데, 부모에게 혜택을 많이 받은 자식이 불효하고 아무 것도 받지 못했던 자식이 오히려 효도합니다. 

 

야곱의 경우입니다. 야곱은 눈 먼 아버지를 속였던 불효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효자들을 얻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예뻐서가 아니라 야곱의 자손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번창해야겠기에 효자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열 두 아들 모두 효자였습니다. 배가 다른 형제들끼리는 서로 반목하면서 암투를 계속했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속담에 “비둘기에게는 3지의 예(禮)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반포의 효(孝)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을 때 어미 새보다 3단 아래의 가지에 앉아 예(禮)를 표하고, 까마귀는 늙어 어미 까마귀를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랬습니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던 장자 르으벤조차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애굽에 쌀을 구하러 갔다 인질이 되어 요셉 앞에서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효성들을 생각해보세요. 요셉이 베냐민을 인질로 삼자 아들들이 하나 같이“이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 죽습니다”(24:31) 하면서 제발 아버지를 생각해서 동생을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들은 먼저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얼마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입니까? 불효자 아버지 밑에서 하나 같이 효자들만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효자가 아니었지만 아들들은 효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이기는 해도 이런 효도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훗날, 요셉이 총리가 되고 금마차로 모시러 왔을 때 야곱은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초등학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담임이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니?”

“제가 꿈이 있거든요”

“무슨 꿈인데?”

“재벌 2세가 되는 꿈이에요!”

“그런데, 뭐가 문제냐?”

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가 노력을 너무 안 해요!”

 

아버지가 재벌이 되어야 자기가 2세가 되는데 아버지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아버지를 탓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먹여 살리며 희생하고 있는데 재벌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탓하고 있다면 아버지들은 화가 나야 하는데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어머니보다 더 감정을 표현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버지들이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3. 아버지는 행복하다!

야곱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에게 잘못했고 내게 해도 너무 한 아버지였지만 공격하지 않고 공경했습니다. 아버지 공경은 아버지의 말년에 성화(聖化)를 가져왔습니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성화를 도운 것입니다. 아들들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기들에게 했던 행동에 공격했다면 아버지도 더 완악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재산 분쟁이 일어나고 일부의 자식들에게나 효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에게 효도합니다. 아버지는 요셉을 만나기 직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족하도다”(창 46:30)

 

아들이 총리가 되어서 여한이 없다는 것인가요?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야곱의 마음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요셉이 총리가 됨으로 별처럼 모래알처럼 많아지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승계되고 아들 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너무 잘 큰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잘 컸는가? 이국땅에서 언약믿음을 지키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형제들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냥 용서가 아니라 언약신앙에서 용서한 것입니다. 잡신들의 나라 애굽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좋아요!

 

24절도 보세요.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이건 형이 할 말입니다.

 

그러나 형은 제 노릇을 못했어요! 형도 가해자입니다. 그러니 형제들의 갈등은 피해자가 풀어야 해요. 그래서 요셉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다 들었을 때 아버지는 말합니다.

 

“이제 죽어도 족하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행복한 아버지! 열두 아들이 한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린 것입니다.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미안함을 행복으로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송혜의 아버지 송길용씨(62세)는 언젠가는 딸 송혜를 만날까요?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송혜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찾아주지 못해 미안해~ 딸은 뭐라고 말할게요! 아버지의 수고 다 알아요! 16년을 찾아 헤맨 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엄마는 견디지 못해 자살했는데… 아빠는 끝까지 저를 찾았잖아요? 그 한 마디 말에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어버이날에 두 아들이 편지와 문자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같은 말을 썼어요?

 

“아버지가 있어 행복해요!”

 

그러면 제가 미안하면서도 행복하지요! 이게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공경이지요!

결론

비영어권 102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조사했더니? 1위 mother(마더), 2위 passion(열정), 3위 smile(미소), 4위 love(사랑)… father(아버지)는 70번까지도 없었어요!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자리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성모(聖母)자리를 얻었지만 요셉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냥 목수의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부재, 그게 요셉입니다. 그 아버지를 예수님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할까요? 우리 식이라면 이런 죄송함을 표했겠지요?

 

“미안해요 아버지!”

 

아버지 요셉은 어땠을까요? 성모를 아내로 살아온 것이 너무 힘들었겠지요? 하나님을 아들로 데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오히려 요셉은 늘 미안합니다. 아들아~! 미안해!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서… 하나님 아들! 제가 변변치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요셉은 행복했을 거예요! 당신의 아버지로서 살았던 세월로 행복했습니다.

그런 행복한 고백을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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