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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교육의 두 수레바퀴(사무엘상 3:1~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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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두 수레바퀴

사무엘상 3장 1~4절

서론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좁은 골목을 지나다 청년을 만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팡이로 길을 가로막고 청년에게 묻습니다.

신발을 만드는 집이 어디 있소?”

청년은 신발 만드는 집을 알려주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집은? 무기를 만드는 집은? 어런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청년은 대답을 잘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묻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집은 어디 있소?”

청년은 여기에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집? 청년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날 따라 오라!”며 그 청년을 데리고 갔습니다. 이 청년이 나중에 유명한 제자 크세노픈이 됩니다.

1.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집입니다.  

물론 학교가 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지식도 전수해야 하고 인간관계도 개발해 주어야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이 무엇입니까? 홍익인간!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 세계 인류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람-바로 그런 사람을 만드는 집이 학교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 사람을 만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들기는커녕 1년에 학교를 자퇴하고 학교 현장을 떠나는 학생들이 수 천 명씩 이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에 절망한 많은 사람들, 학교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빠져나가는 유학비가 46억 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학교 자체가, 좁게는 교사들 자신들이 학교 현장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이 다르기에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만, 전교조. 물론 전교조가 나오게 된 배경이 있고 우리 사회에 기여도 했습니다. 그래도 스승들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머리에 띠를 띠고 문제가 있는 곳이면 남의 학교이든, 학생들 앞이건 정문에 몰려가서 구호를 외치고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이고 어떻게 교육이 될 수 있는지, 제가 대학에서 기독교교육과를 나왔지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교사상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교사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 물건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이익과 이윤을 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사는 사람을 찍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어 내는 스승들입니다. 학교는 사람이라는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진리의 전당입니다.   

 

교사는 세상에 있는 많은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삵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지금 학교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학교 시스템, 대학제도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교사 자신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위험 수위에 올라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선생님들은 스승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스승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국민들의 눈에 보이는 교사상은 부정적인 평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사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선생 노릇하기가 힘들 때도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우습게 여기고 교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요즈음에는 전교조의 눈치도 보아야 하고 여론 도마 위에 올라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교사로서의 보람, 자긍심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들어 내는 학교가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교사들만의 탓일까요? 아니지요. 교사들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교육관입니다. 내 자식 귀한 줄은 알고 스승 귀한 줄은 모르는 세태가 오늘의 학교 현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학교는 사람을 만든 곳이다! 강소천 작사, 권길상 작곡의 <스승의 노래>에도 그런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참되거라! 바르거라! 이게 학교가 아닙니까? 지식 전달과 성적 올리기는 그 다음이 아닙니까? 학교에서 사람을 바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어버이들이 학교를 지식 창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됨됨이보다는 수학 공식 몇 개 더 외우고 영어 단어를 더 암기하고 성적이 좋으면 훌륭한 학생으로 압니다. 스승의 노래에 어디 수학 잘하거라, 영어 단어 잘 외우거라! 그렇게 한 게 있습니까? 선생님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주 임무입니다

  

본문의 상황도 학교(회막)는 파탄 지경이었습니다. 학교 현장에 이상(異像)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스승도 권위가 상실되고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량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그룹,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때문에 법궤는 빼앗기고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학교에서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학생이 배출되었습니다. 무너진 학교 현장에서 이처럼 한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인물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사회는 두 톱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무엘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교사, 가정과 학교, 교회와 가정-이런 두 수레바퀴가 사무엘로 하여금 바른길을 가게 했습니다.

지금 학교 현장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두 톱 체제로 되어야 나라가 바로 됩니다.

2. 교사와 같은 부모들이 있어야 합니다.

한나는 자식을 회막(학교)에 맡겨 놓고 팔짱을 끼지 않았습니다. 지식 전달이나 성공을 위한 교육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서원을 따라서 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국가를 먼저 생각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생각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서원을 지킨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의 방패를 세웠습니다.-이것이 사무엘을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훈계가 있었습니다.-두 제사장의 비위 사실을 알리고 그들과 함께 하지 말기를 교훈 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바탕에 있었습니다.-엘리 선생이 실력도 없고 영성도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이며 제사장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아이를 맡기고 전적으로 위임을 했습니다.

 

교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식 전달자가 아닙니다. 교사는 스승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월리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이란 학생에게 지식을 가르쳐 줄뿐만 아니라 그가 고난에 빠져있을 때 진정한 도움이 되어주며 그가 나쁜 길로 들어설 때 그를 옳은 길로 인도해 주는 훌륭한 분이다

 

교사의 특수 사명을 바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한나는 제대로 교육을 본 것입니다. 이런 훌륭한 부모, 학부모가 있었기에 무너진 학교 현장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사무엘은 교사와 같은 부모가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정보가 더 많습니다. 13세 이하의 84.7%가 스팸메일을 받습니다. 인터넷 이용자 100%가 매일 음란사이트를 경험합니다. 스팸메일이 전체 메일의 10-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욕하는 것을 배웁니다.

 

선생님들이 그 역할까지 못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됨됨이, 인성교육은 부모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가 만들어 낸 아이가 아닙니다. 한나라는 교육어머니가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지식에 매달려 있는 부모들이 될 것입니까?

3. 부모와 같은 교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는 사무엘의 선생님입니다. 엘리는 부모로서는 실패했습니다. 자식들이 불량배가 되고 그들로 인해 전쟁은 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에게만은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스승이자 부모였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자식처럼 여기며 키웠습니다.

 

두 아들에게 실망한 엘리는 한나가 낳은 남의 아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걸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능력하고 정년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고, 요즘말로 수학 공식도, 영어 발음도 시원치 않고 컴퓨터도 할 수 없는 무능한 교사 같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훌륭한 교사 자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무엘 학생을 대할 때 돈을 위해서, 노동자로 대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이 아이를 키워낸 것입니다.

 

<플르타크 영웅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얻게되고 선생님으로부터는 그 생명을 보람 있게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사무엘은 학교에서 부모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실력있는 교사보다는 실력이 없지만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독이며 삶을 가르치고 믿음을 가르치고 바른 인간상을 보여주는 아버지 같은 스승에게서 사무엘은 인간됨됨이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스승이 좋은 스승입니까? 어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훌륭한 교사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노래는,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어버이는 지식 전수자가 아닙니다. 편애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내용과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이런 교사에게서 사무엘이 나왔습니다.  

결론

한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는 한 마을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주지 않으면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교사와 같은 부모, 부모와 같은 교사-두 톱 체제가 될 때 학교는 잘 달릴 것입니다.

 

우리 교회 주일학교 교사는 50명입니다. 성인 교인의 20% 가까이가 교사입니다. 교육하는 목회를 꿈꾸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교육현장을 탓하고 있을 수만 없습니다. 교회가 교육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대한민국의 미래, 늘빛교회의 미래는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교사 여러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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