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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기(누가복음 15:11~2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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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을 알아가기      

누가복음 15장 11~24절

서론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제 어버이날, 오늘은 어버이주일, 다음 세기에도 어버이주일, 어버이날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다음세대의 아이들 중에는 복제인간들도 나오고 시험관 아기들도 나오고 소의 난자나 돼지의 난자에서 인간이 출생하기도 할 것입니다. 남자들이 출산하는 암소를 보면서 여보, 힘내요!” 하거나 소()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버이날에 외양간으로 꽃 사들고 가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시대입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청소년 의식조사에 의하면, 26% 결혼 후 생활비를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85%가 결혼비용을 부모가 감당해야 하며, 집 값전세 값도 부모가 내야한다는 응답이 73%에 달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효도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50, 60대는 부모를 버리고 도회지로 올라온 첫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50, 60대는 나름대로 부모공경을 했지만 자녀들에게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어버이주일 설교를 하게 됩니다.

1. 어버이-끝까지 나를 사랑해주는 이름입니다.

본문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실 탕자는 조연입니다. 주연은 아버지입니다.

본문에,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의 마음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입니까? 자식에 대해서는 논리도 이성도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불효자식이라도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은 병적입니다.

 

본문의 아버지-그 아들이 얼마나 불효자입니까?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습니까탕진하고 타락하고 금의환향이 아니라 거지꼴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아들의 행동과 관계없이 변함없이 아들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고 집을 나가서 웃고 떠들고 돈 쓰고 아버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음에도 그 아들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논리나 이성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형제이지만 동생이 돌아왔을 때 형은 반감을 품었습니다. 형이 옹졸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은 반듯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행동은 옳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듯 대듭니다. 그것은 논리적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논리적으로 보면 아들은 탕자이고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느냐고 등돌려야 하는 것이 논리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춤추며 환영하며 잔치를 베풉니다. 이성있는 아버지, 논리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부모가 그리운 것입니까? 부모만 생각하면 가슴이 따듯해지고 보고 싶은 것입니까? 나를 논리로 대해주지 않으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논리나 이성으로 보면, 나는 똑똑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나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없습니다

 

인디언 설화에, 평원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 코요테가 아들을 찾아다니며 물었습니다

 

우리 아기는 무척 예뻐요! 털가죽은 아름답게 윤기가 돌고 반짝거리는 코를 가졌어요. 눈은 빛나고 힘이 세 보이며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졌어요.”

 

아무도 그렇게 예쁜 코요테를 못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계곡에 죽어있는 코요테를 보았는데 못 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럴 것이 엄마가 찾는 예쁜 고요테가 아니라 엄청 못생긴 코요테였습니다. 그러나 엄마 코요테에게는 제 눈에 안경이라고,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엄마에게 자식은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왜 우리가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것입니까? 어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신 분은 없습니다. 탕자가 돌아갈 수 있는 동기는 바로 어버이의 그 비논리성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비웃어도 아버지는 나를 받아주실 것이다, 받아주셔도 사랑스럽게 너그럽게 받아주실 것이다, 라는 그 비논리성이 아들의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어버이에 대한 효도는 바로 비논리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최고의 것을 가져다주신, 많은 유산을 남겨주신 어버이만 효도 받아야 하고 존경받아야 한다면, 자격을 갖춘 어버이들만 효도를 받는다는 바로 그런 논리라면 어버이날에 효도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저는 부모에게 효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효도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제게 어버이날이 되어도 꽃 한 송이 없다면 섭섭합니다. ? 효도에는 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해도 자식들에게 효도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것은 효의 비논리성 때문입니다

 

1984, 당시 20세였던 미국 청년 테리 월리스는 자동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교통사고로 3개월 간 완전한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후 가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눈을 깜빡이거나 신음소리를 내는 수준이었고 19년 간 재활센터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 부모와 아내, 사고 당시 생후 6주이던 딸(엠버)이 식물인간을 살려내기 위해 보인 노력과 수고는 초인적인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19년 간 식물인간인 테리를 주말마다 집으로 데려갔고 집안 행사가 있으면 휠체어에 앉혀 참여시켰습니다. 그러다가 19년만에 의식을 되찾고 가족들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깨어났을 때 대통령은 여전히 로널드 레이건, 주지사는 빌 클린턴이었습니다

 

테리가 19년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맨 처음 한 말은 아내도 딸도, 그 어떤 문장도 아니고 엄마!”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입에서 엄마!”란 말을 듣는 순간 기절해 버렸습니다. 엄마! 어머니란 이름은 참 위대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비논리성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는 논리적이지만 자식에게만은 논리적이 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여기에서 위대한 마음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 속에 부처가 들어있고 자식 속에 앙칼이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통장을 맡겨놓은 것처럼 너무 당당히 요구합니다. 정말 부당한 요구입니다. 그래도 그 부당함이, 그 비논리가 통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입니다.  

2. 어버이-나를 위해 희생해 주는 이름입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희생합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로 인해 재산을 잃고 명예도 잃었습니다. 그러고도 자식이 돌아왔을 때 더 많은 재산을 소비합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재산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가시고기-소설로도 나온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컷은 우리를 만들 것을 물어옵니다. 암컷은 우리 안에 알을 낳아놓고 집을 나갑니다. 수컷은 부화가 되도록 날개를 퍼덕이며 보살펴줍니다. 새끼들이 부화되고 우리 밖으로 나가려면 아직 때가 아니라면서 우리 안으로 밀어 넣다가 새끼들이 다 크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집을 떠납니다.

 

가시고기는 새끼들을 먹이느라 보름동안 먹지도 못하고, 새끼들이 떠나갔지만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그만 죽고 맙니다. 새끼들이 돌아와서 아버지의 살을 뜯어먹으며 커갑니다.

자식들이 어버이 은혜를 모르는 것-여기에 비논리성이 있습니다. 한 어머니는 다섯 자녀를 키웠는데 잘 사는 다섯 자녀는 한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하는 것-여기에 비논리가 있습니다.

 

어버이는 논리를 떠나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자식들은 논리성 때문에 효도하지 못합니다. “장남이기는 하지만 아내와 성격차가 있어서 모실 수 없다!” “왜 내가 둘째인데 부모를 모셔야 하나?” “아이가 고3이 되어서 둘째네 집에서 살다 오세요!” 이것이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가 갈수록 효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버티칼 리미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등산할 때 사용하는 로프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녀와 함께 등산하던 아버지는 한 자녀의 줄이 끊어지면서 아버지의 줄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 줄은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맨 밑에 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로프를 끓어버립니다. 자식들은 줄을 끊으면 안 된다고 울부짖지만 아버지는 산을 타는 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이 기쁨이다!”라면서 목숨을 마감합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자식을 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할 때 어버이가 생각나고 실패할 때 어버이가 생각납니다. 그분들의 이름은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를 리모델링했을 때 가장 생각났던 분은 어머니입니다. 교회가 부흥되면 보이고 싶은 분은 어머니입니다.

 

이정환씨는 그의 시()에서 이렇게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꽃 속에 살 때는 당신을 잊다가 세상 가시 따가우면 왜 그리 그리운지요

 

세상 가시 따가우면 왜 그리 어머니가 그리울까! 세상가시를 주지 않는 유일한 존재 어머니! 세상 가시에 찔린 상한 마음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어머니! 나를 위해서는 음식도, 시간도, 뭐든지 내줄 수 있는 희생적인 어머니, 아버지-그래서 탈무드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들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주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비논리적인 어버이의 희생정신-그분들의 이름은 위대합니다.

3. 어버이-그 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고 불효한 것입니다. 나중에 거친 세상살이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귀향(歸鄕)으로 효도합니다.

 

그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성공한다고 큰소리쳤겠지만 빈털터리로 모든 것 다 털어먹고 왔습니다. 얼마나 괘씸한 아들입니까?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보면서 달려갑니다. 이제서야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를 품꾼으로라도 거두어 주십시오 그 말 한마디에 아버지의 마음은 천하를 얻은 것처럼 즐겁습니다. 그래서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자식들의 말 한마디에 원한도 분노도 섭섭함도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들의 말 한마디도 자식들에게는 위대하지만 자식들의 한마디 말도 최고의 효도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여기에 참된 효도가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어버이날이라고 꽃과 카드를 보냈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건강한 아들이 될 터이니 아빠도 몸 건강하시고 목회도 열정적으로 하는 목사님이 되세요

 

그 말 한 마디에 지난 세월 섭섭했던 것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들은 내 자식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부모에게는 자식의 한 마디 말로 아무런 앙금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빈말이어도 자식들의 말 한마디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부모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두 형제의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급해진 큰아들은 응급조치를 하면서 빨리 가서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동생이 늦어지자 형은 급한 나머지 도대체 이 놈이 죽은 거야, 산 거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의식이 돌아온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들의 말 한 마디에 죽을 수도 살수도 있는 게 부모입니다.      

 

큰아들-불효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효도한 적도 없습니다. 동생을 대환영하는 아버지에게 반감을 표시합니다. 그의 말은 정당합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생에 대해서는 그의 말이 정당했다 해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는 정당하지 못했습니다. 설령 아버지에 대한 그의 말은 논리적으로 타당해도 아버지에게는 효자가 아닙니다. 자식과의 사이에서는 논리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기-형제가 같았지만 둘째 아들은 나중에라도 알았습니다. 집을 떠나보니까 아버지 곁을 더나 살아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안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아들의 장래는 효도 그 자체일 것입니다

누가 효자입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들이 효자요 효녀입니다.

 결론

어떤 여론조사에서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효자아들을 두는 것은 모든 어머니들의 소망이지만 효자 남편을 둔 아내들은 속탄다.”

효자는 최악의 남편이다.”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인의 부모 효도, 어른 공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아름답고 훌륭한 풍습이군요. 효 사상과 경로사상, 그리고 가족제도를 영원히 보존하면서 서양에 와서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토인비가 당시 86세였는데,

 

나도 너무 외로워서 아들이 사는 요크셔로 이사갈 예정입니다. 같은 집에 안 살더라도 가까이 함께 있고 싶어요. 정말 인생이란, 아들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아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인가 봐요.” 

그런 고백을 한 것이 1970년대 초입니다.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상에 내놓을 효가 있을까요?    

 

어버이 살았을제 섬기기 다하여라, 어버이 세상 떠나시면 섬기고 싶어도 못 섬긴다 시조가 있습니다. 

인디언 속담에 가장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습니다. 

부모공경은 끝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더 효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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