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주간 기도회3]
매달려서 본 십자가;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장 8-10절
이번 고난주간에는 “십자가의 영성”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본 십자가”라는 큰 제목 하에,
제1일에는 “밑에서 본 십자가”입니다. 골고다 언덕에 높이 세워진 중앙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를 밑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십자가로 보였을까요? 죄인의 십자가입니다. 죄인, 죄수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사형수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동안 하나님의 아들이다, 메시아이다 하는 말로 혹세무민(惑世誣民)했고, 지금은 초라한 죄수의 몸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행인들과 대제사장 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꼴이 우습고 미련하고 사기꾼의 가련한 신세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좀 더 주의 깊게 올려다 본다면 하나님의 역발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지요!
제2일에는 “위에서 내려다본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드리기 위해 죄없는 신분이면서 죄인으로 자처하시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드리려고 달려있는 십자가입니다.
오늘 제3일에는 “매달려서 본 십자가”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는 십자가입니다. 여기에는 외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정오가 되면서 하늘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건 예수님을 향하던 사랑의 시선을 하나님께서 거두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천상에서 성자하나님 신분으로 계셨을 때 성부와 성령과 사랑의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인간 구원을 위해 성자의 특권을 잠시 내려놓고 육신으로 거했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 “내가 그 안에 있고 그 분이 내 안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시선을 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뒤집어쓰신 죄에서의 외면, 거룩하지 못한 것에서의 외면이지만 결국은 예수님에 대한 외면으로 다가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울면서 “제발 이 잔을 피하게 해주소서.” 부르짖던 그 “잔”이 십자가에서의 육신적 고통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외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순간은 철저히 죄인으로 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은 십자가에 달린 오물투성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가 여기에 한꺼번에 몰려있으니 그 죄는 얼마나 크고 추악하고 냄새가 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면해 버리신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고,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옛정을 보아서라도 한번만 봐줄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냉정하게 외면하시고 사랑을 거두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절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절규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1. 매달려서 십자가를 바라보니,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궁한 인간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달리신 십자가에는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니 그 사랑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직 죄인되었을 때… 지금 죄인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원수 같은 죄인입니다. 그들을 사랑할 의무도, 필요도, 조건도,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원수들을 위해 아들까지 희생시키면서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입니다.
아들을 죽인 그 원수들을 양자로 입적하셨던 손양원 목사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입니다.
2. 매달려서 십자가를 바라보니,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궁한 독생자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식을 강한 용사로 키우는 부모는 자식의 눈물에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식이 그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외면하고 모른척합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 역시 자녀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모른 척 못 본 척 외면해야 합니다. 안쓰럽다고 일으켜 세워주고 편을 들어두면 그 자식은 장애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모른 척 못 본척 하는 것이 더 큰 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을 피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에 알았다, 하고 십자가의 고난, 하나님의 외면을 철회했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3년의 고생,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난이 의미 없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예수님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외면합니다. 인간적인 표현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외면합니다.
2004년에 상영되었던 멜 깁슨 감독의 “패선 오브 크라이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화면을 집중시키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이 지진을 일으키는 장면입니다. 일명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골고다 사건은 단지 인간 예수의 고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픔 그 자체였음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였겠지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버림을 받고 있다는 이 비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인정하시고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10절 11절을 읽읍시다.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딜레마를 해소해 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를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사랑을 목도하시고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심하는 심정으로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죽음까지도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맡기는 사랑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시련 가운데서도 독생자까지 희생시키면서 우리의 일생을 사랑해주시고 사랑해 주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견디며 이기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설교는 라원기 목사님께서 쓰신 《다시 보는 십자가》(생명의말씀사)를 참고해서 작성되었습니다. 특히 제목들은 그 책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뼈대만 올려놓았기에 여러분이 살을 붙이고 다듬어서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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