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 하나님 편으로 정하다!
다니엘 1장 8~15절
서론
2026년 병오년 새 날이 밝았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요한 사도가 가이오 장로에게 기원했던 것처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요3 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 첫 날, 첫 주일은 소원을 빌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한국 교회가 사랑하는 송구영신예배는 지난해를 정리하고 첫 시간을 깨어서 하나님에게 첫 소원을 빌고 새해 결심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참석합니다.
언제부터 새해 초하루에 소원을 빌고 결심을 하기 시작했을까요?
기록에는, 기원전 2천 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이지요, 바벨론 사람들은 새해 축제를 열면서 결심을 나눴는데 주로 ‘꿔간 돈을 갚겠다’는 내용이 많았답니다. 이후, 기독교 국가에서는 새해 초에 믿음생활을 잘 하겠다, 기도생활을 잘하겠다, 주일을 성수하겠다…는 종교적인 결심이 주를 이뤘습니다. 17세기 스코틀랜드 작가 앤 핼킷은 1월 1일 일기에 ‘남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적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결심입니다.
요즘은 어떤 내용들이 많을까요? ‘운동을 해서 건강해지겠다’ ‘살을 빼겠다’ ‘아껴 쓰고 저축을 하겠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어도 새해 첫날, 첫 주일에 하는 결심은 좋은 일입니다. 짐승은 새해 결심이 없기에 제자리가 아닐까요? 그만큼 결심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만, 매일 2㎞씩 달리는 사람들 중 40% 이상이 1월 1일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답니다. 결심의 중요성입니다. 여러분들도 새해에 멋진 결심으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소원을 빌고 어떤 결심이 좋을까요? 다니엘에게서 유익한 결심을 살펴봅니다.
본문은 주전 586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해서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시작한 초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바벨론은 유대민족을 포로 신세로 끌어오기는 했지만 이 소수민족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굽에서 430년을 종노릇했지만 망하지 않고 돌아와서 다윗왕국, 솔로몬왕국이라는 대단한 문명을 일으킨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것이 동화정책(同化政策)입니다. 동화정책은 식민지를 경영하는 나라가 식민지 원주민의 고유한 언어, 문화, 생활양식… 등을 없애고 자국의 것을 강요하여 동화시키려는 정책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정책은 조선을 강제로 병합시키면서 이 동화정책을 씁니다. 1910년대의 무단정치와 3·1운동이후 1920년대의 문화정치를 거쳐 1930년대로 들어가면서 한민족의 문화전통을 말살하여 일본문화에 동화시키고자 하는 민족말살정책 동화정책을 전개했습니다. 일본말 강요, 천황 숭배, 창씨개명… 등은 식민지국가를 다스리는 제국 국가들의 패권주의입니다.
바벨론이 민족말살정치 동화정책을 썼습니다.
저들은 총명하고 똑똑한 유대인을 골라 왕궁 장학생으로 교육받게 하고 친바벨론 인사들을 만들어 그들 스스로 바벨론으로 병합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이런 프로그램의 왕궁 장학생입니다. 특별히 선택되어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된 그들은 바벨론 궁중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왕궁 장학생을 음식으로 먼저 마음을 열게 합니다. 코카콜라를 많이 마시다보면 입맛이 미국화가 되고 친(親)미국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5절,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왕의 음식은 일반 음식도 있지만 신전에 바쳤던 우상음식, 유대인의 율법에 어긋나는 음식들-돼지고기를 비롯한 소위 율법에 부정한 음식들입니다. 이것을 먹인다는 것은 음식문화로 바벨론 국민으로 길들이겠다는 것이고 유대인들의 율법정신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7절에는, 소위 창씨개명을 합니다. 일본의 창씨개명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40년 2월 11일부터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 씨명(氏名)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정책입니다. ‘창씨(創氏)’는 일본식 ‘씨(氏)’를 새로 만드는 것이고, ‘개명(改名)’은 이름을 바꾸는 일입니다. 창씨는 의무였고 개명은 선택이었으며, 창씨만 하고 개명은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바벨론식의 창씨개명 정책으로 다니엘과 세 친구도 개명을 합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음식과 이름은 한 국가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과 정체성입니다. 겉으로는 식민지 국민들에게 친화정책을 쓰고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음식에 깃들여지고 그 이름, 단어를 자주 사용하다보면 저항감이 사라집니다. 정체성이 자신도 모르게 모호해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도 이런 세속화 작업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술과 주초, 동성애, 신학사상, 주일성수 문제… 등은 처음부터 도전을 받지 않습니다. 외국물을 먹고 들어온 신학자, 목사, 진보적인 평신도 교수들이 조금씩 문제를 제기하고 동조자들을 얻으며 복음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동화되어 갑니다. 이렇게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세속화가 성도와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세속화는 원리, 원칙, 본질에 충실하기 보다는 “적당히”로 때우는 것입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양다리 작전입니다. 옛날에 그런 말을 많이 했잖습니까? 교회에 한 발 세상에 한 발… 이 표현이 가장 기초적인 세속화입니다. 세속화는 결국 믿음의 본질을 버리게 하는 변질된 신앙으로 무늬만 크리스천인 종교기독교인이 되게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세속화는 이단 중에서도 가장 영리한 이단이라고 봅니다. 이단은 모두가 경계하고 이단취급을 당하니까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데 세속화는 “조금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 “신식으로 믿는 사람” 이 정도로 끝나기에 세속화의 그 독성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단의 일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속화의 끝장은 결국 재림신앙의 실종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은 끝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아직도 저렇게 케케묵은 종교교리를 고수하는 목사도 있는가, 하겠지만 믿음은 성경에 나오는 것을 무식하게(?) 믿는 것입니다. 세속화는 신앙의 변질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바벨론제국은 이처럼 왕실장학생을 뽑아서 5절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3년을 교육할 계획입니다. 고대사가 플라톤(Plato)은 페르시아에서 궁중에 들어간 소년들은 14~17세까지 보통 3년 정도 교육시켰다 합니다. 바벨론도 페르시아식으로 식민지 소년들을 키우려 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바벨론의 물결에 편승해서 성공할 것인가? 그러면 모든 것이 편합니다. 바벨론 귀족처녀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바벨론국민으로 살면 만사가 편합니다. 성공과 출세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선택할 때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백성이 됩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모든 은총,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받는 모든 축복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참 어려운 결단의 순간들이 온 것이지요!
이때 다니엘은 어떤 결심을 합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마음을 굳혔다”는 뜻입니다. 어떤 마음을 굳혔습니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왕실 음식, 왕의 진미는 율법의 음식 규례(레11:2-8)에 어긋나는 피를 뿌려 잡은 고기(신 12:23, 24), 부정한 동물의 고기(레 11:10-12)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호 9:3;고전 10:27-29)으로 추측됩니다. 왕궁의 음식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9:2).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산 제사를 원하십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하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자신을 더럽히면 하나님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왕궁에서 우상에게 올렸던 음식을 먹는 것은 우상화요, 그런 오염된 자세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더럽히는 행위가 됩니다.
왕실의 독한 포도주에 취하면 행동이 문란해지고 분별력과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세상 것에 취하면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일행이 창씨개명은 받아들이고 바벨론식 이름만큼은 양보했지만 음식은 절대로 불가입니다. 이름개명은 민족의 얼에 관한 것이지만 부정한 음식은 율법에 대한 위법이며 여호와 종교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더럽히는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결단한 것입니다. 에스더 왕비가 보여주었던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결심, 하나님의 거룩성을 지키는 일이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대단한 결심입니다.
한국교회가 너무 쉽게 “부득이하여”(삼상13:12)라는 핑계로 주일을 어기고 예배를 포기하는 이런 세상에 목숨 걸고 뜻을 정하고 마음을 하나님 쪽으로 굳힌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다니엘은 성공과 출세라는 실리(實利)를 좇을 것이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룩한 명분(名分)을 좇아 살 것이냐? 갈림길에서 실리가 아니라 명분을 따르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죽을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이 날은 시련의 시작점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어 총리의 길로 인도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잃고자 했더니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고 높은 데로 올려주셨습니다. 그의 성공과 출세는 이런 결심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말이 여기에 딱 해당됩니다.
다니엘 일행이 세상적인 성공을 마다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뜻을 정한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신앙교육, 민족교육, 성별교육, 율법교육 영향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해줍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율법에서 정하는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를 하는 일이다… 이런 가르침을 부모에게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왕의 진미를 먹는 일은 유대인의 정통성을 버리는 일이고 가장 반(反)민족적이고 하나님의 형벌을 자초하는 일임을 누누이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받은 교육이 있어왔기에 왕궁의 명령에 목숨 걸고 반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교회교육, 신앙교육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실컷 가르쳐 놓아도 가정에서 신앙적인 뒷받침을 해주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쉽게 뜻을 정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성별교육과 계명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유행을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성별교육이 있어야 여러 상황에서도 유리한 쪽, 편리한 쪽, 빠른 쪽이 아니라 하나님 쪽, 신앙원칙이 있는 사람, 바른 정도(正道)를 택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니엘이 처한 상황은 민족이 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유대청년들이 무너지면 유대공동체가 무너집니다. 그들은 일종의 시험대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겠다는 쪽으로 뜻을 정합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의 탁월한 믿음 때문입니까? 물론 믿음이 좋아요. 그렇지만 믿음만으로 쉽게 결심할 위기가 아닙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기에 인간의 믿음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이 하나님 편으로 뜻을 정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담력과 용기를 주시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은혜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점점 세속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믿음대로 버팅기고 내 믿음대로 결정하면 편한 쪽으로, 빠른 쪽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붙잡혀 있을 때만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죄인도 성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성자도 죄인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 안에 거하라” “은혜 안에서 자라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3:43).
우리도 이제 뜻을 정합시다. 우리가 이제 무슨 큰 업적을 남기겠습니까? 세상을 바꿀 결심, 직업을 바꾸는 선택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의 향상을 위해 작은 뜻들을 정합시다!
저는 아내를 5년을 간병할 때 세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는 성경보다 신문을 먼저 보지 않겠다! 저는 신문을 좋아해서 새벽기도회를 끝나면 신문을 먼저 읽고 나중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먼저 읽기로 나름 뜻을 정했고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때 결심한 성경우선주의가 2025년 12월 현재 구신약 206독 째입니다.(이건 자랑해도 되지요?)
두 번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겠다! 전에는 양반다리도 하고 편한 자세로 기도했는데 뭔가 하나님께 성의와 간절함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꼭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좋은 기도자세입니다. 그때 뜻을 정하지 않았다면 좋은 기도자세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 번 째는, 여기에서 할 이야기가 되지 않아 생략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유대청년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15절)
왕실 유대 장학생들의 얼굴은 더 아름다워지고 더 윤택해졌습니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는 “용모가 좋고”이며, “살이 윤택하여”는 “살이 찐”이란 뜻으로서,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상태임을 말해줍니다. 10절에 언급된 “초췌하여”와 대조를 이룹니다.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고수한 다니엘과 친구들의 승리가 드러난 것입니다. 만약 뜻을 정하지 않았다면 삶은 끝이었겠지요.
결론
전국 대학교수들이 202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꼽았습니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시대에 사람도 변하고 믿음도 변하고 교회도 변동의 물결을 타게 됩니다. 이런 시대이기에 2026년 올 한 해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기로 결심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일, 교회의 위신을 내려뜨리는 일…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 결심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성공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뜻을 정한 대로 살아가시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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