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새로운 피조물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19절
서론
우리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1월 1일 0시에 소원기도를 드렸지만 사실 1월 1일 날짜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1초가 지났다고 어제를 ‘옛 해’ ‘묵은 해’ ‘지난 해’라 하고 오늘부터 새해의 날 새해다? 그래봤자 하늘도 산천도 그대로요 새해가 되었다고 어제보다 불쑥 자란 것도 아니고 늙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해 아래에 새 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전1:9)이 맞습니다.
“정체성 확립”;부전승(不戰勝)
바울이 우리 강단에서 설교했다면, 2026년 첫 주일(혹은…00주일)이라고 “묵은 해” “새해”… 이런 식으로 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이전에, 그리스도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해, 그리스도 밖에 있던 해… 이렇게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설교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순간 부모로부터 온 생명과는 전혀 다른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는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타락한 항구도시의 영향을 받아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교회들마다 나름대로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고린도교회에는 문제점들이 종합세트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고 교회는 출석했어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엉터리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엉터리 신자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전혀 다른 피조물이 되었는데 왜 지난날의 피조물로 아직도 그 모양으로 살고 있느냐” 책망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창조물, 새로운 신분,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말과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어제나 오늘에나 어찌 변함이 없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우리의 신분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 복구가 불가능한 고장 난 상태였다는 말입니다. 자동차라면, 어떻게 고쳐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 망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겉모양은 놔두고 100% 다른 엔진으로 교환합니다. 일종의 하이브리드(hybrid) 인간 자동차가 된 셈입니다. 하이브리드는, 성능이나 효용성을 높이려 성질이 다른 둘 이상의 요소나 기능을 섞은 것입니다. 휘발유, 경유, 가스 따위의 연료와 전기 에너지를 함께 동력원으로 운행하는 자동차로 변신했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수리’가 아니라 완전히 새 차입니다.
여기서 “살리셨다”는 것은 죽어 고장 난 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 인간 하이브리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완전히 부패해서 죽은 뜻이 있는 우리들을 새롭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고치거나 “수리”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비록 내 영혼은 죽어 있지만 아직도 육체적으로는 존재하는 나를 가지고 다시 만드셨는데 이는 재창조보다 첫 창조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의 개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고린도신자들은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 믿음도 점점 나아지겠거니, 했더니 나아지기는커녕 문제 교회, 문제 신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것,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새해가 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신분도 아닙니다. 새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들어서는 순간 공짜로 100%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됩니다. 공짜로… 그래서 구원은 “부전승”으로 출발합니다. 부전승(不戰勝)은 상대팀의 기권이나 징계로 경기를 치루지 않고 승리하는 경우, 공짜 우승이지요! 우리의 구원도 공짜 구원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신분도 공짜, 부전승으로 주어졌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이 구원을 받았으니 부전승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값없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믿음의 출발은, 나는 “벌써”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정체성이 바로 되어 있어야 자존감도 높아지면서 아름다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은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최유진이라는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천민 아들로 아버지는 맞아죽고 어머니는 정절을 지키려고 우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올 때 조국에 대한 증오, 원수에 대한 보복심으로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뿌리처럼 내린 자아상이 있습니다. 조선에 있을 때 자신을 구해준 요셉 선교사는 항상 그에게 ‘위대하고 존귀한 사람 유진, 나의 아들’이라고 불러줍니다.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도 편지마다 그렇게 불러줍니다. 이런 정체성이 최유진에게 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여염집 규수를 만납니다. 왕의 스승인 대감집 손녀입니다. 천민과 양반가문!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입니다. 그러나 최유진은 ‘위대하고 존귀한 사람’이라는 선교사의 말에 자신감을 갖고 고애신에게 다가갑니다. 그는 자신의 천민신분을 밝히면서 또한 신분의 차이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여인에게 ‘차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 세상에 차이는 분명 존재하오. 힘의 차이. 견해 차이. 신분의 차이.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물론 나의 잘못도 아니고.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진 것뿐이오.”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한 여인의 불꽃을 피워주기 위해, 증오하던 나라 조선의 독립이라는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 천민신분이지만 그걸 뛰어넘은 위대하고 존귀한 사람! 한 선교사가 만들어준 정체성입니다. 그 정체성에 맞게 션사인(sunshine), 찬란한 햇빛으로, 한 여인에게 사랑을 보여줌으로 스스로도 햇살처럼 빛났던 사람, 정체성이 만든 션~사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 자신의 자아상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너희는 누구인가? 그냥 교회에 나오는 종교인이 아니다! 예수가 너희 속에 있는 굉장한 션~사인이다! 믿음의 부전승으로 션~사인이 된 새 패조물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 해를 새 피조물이라는 션~사인 정체성으로 출발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전 것 보내기”;복기(復棋)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이어서 말합니다.
17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과거이기에 흘러 보내버리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서도 신분의 변화를 누리지 못하고 옛 피조물 자아로 사는 것은 “이전 것”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영광에 연연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내지 못하고 어떤 분들은 이전의 고난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라 망가진 피조물로, 시간이 흘러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2026년이라는 새 땅에 들어왔습니다. 1년에 한 번, 송구영신예배나 신년주일에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선포가 아니라 매일 매일 새로운 피조물됨을 선언하고 새 피조물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전 것, 지난 것, 과거의 상처와 실패, 아픈 기억을 흘러 보내야 합니다.
오늘 신년예배를 드리면서도 지난 과거들을 끌고 온 것은 아닙니까?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실패한 끈, 질병의 끈, 불행의 끈을 잡고 있진 않습니까?
한 농부가 시장에서 끈을 발견합니다. 쓸 데가 있을까봐 끈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하필 그 시간, 누가 지갑이 없어졌고 농부가 무언가를 집어넣었다는 목격자의 말로 농부는 경찰에 연행됩니다. 다행히 지갑은 발견되고, 석방됩니다. 그 뒤, 농부는 자신이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불평과 자신에게 혐의를 씌운 사람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다녔습니다.
“이 끈이 어떤 끈인 줄 알아요? 이것 때문에 내가 망신당했죠. 말도 안 되는 도둑 누명을 썼다니까요.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 ….”
농부의 마음에는 오직 한 가닥의 끈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끈에 옭아 매여, 농사짓는 일도 가족도 잊은 채, 자기 연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자기 연민의 독(毒)은 서서히 그를 파괴하였고 최후 순간까지 분노를 삭이지 못하다 죽었습니다. 모파상의 단편소설 <끈>의 내용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2025년도의 끈, 인생에서 억울했던 끈을 들고 다니면서 억울함과 분노를 성토하느라 또 한 해를 낭비할지도 모릅니다. 실수를 저질렀던 어느 해의 수치스런 끈을 들고 다니면서 수치감으로 새해를 낭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는 2026년에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자아상으로 끊어내야 합니다. 나를 망치는 원수는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있는 편견, 의심, 분노, 수치… 자신감 상실 이런 것들이 성공을 가로막고 행복을 짓밟습니다.
그렇다고 이전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되짚어보는 정리가 필요합니다. 바둑에서는 이를 “복기”라고 합니다. 복기(復棋)는 한 번 두고 난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기 위하여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행위입니다. 실수도 돌아보고 좋은 판단도 돌아보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살릴 것은 살림으로 다음에는 승리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믿음에도, 특히 한 해를 보내면서도 자기성찰과 반성, 버리고 끊을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반성하고 회개하고 잘못된 것들을 버리고 새롭게 일어서야 하는데 울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야단을 맞으면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징징 눈물만 짜냈습니다. 이게 버릇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이 걸핏하면 눈물로 때우던 땅이 “보김”, “우는 자들”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삿 2:5). “아멘은 있어도 아멘 이후가 없는” 말로만의 신자들을 겨냥한 조롱의 이름입니다. 우리도 성찰과 회개 없이 이전 것을 떠나보내고 잊어버린다면 그 때마다 변명이나 하고 적당히 넘기려는 옛 피조물로 끝납니다. 한 해를 떠나보내면서 이전 것을 잘 정리하고 흘러 보내야지 안 그러면 돌아옵니다.
“화목의 경기”;쾌승(快勝)
바울은 16절에서 고린도교회 신자들의 “이전 것” 청산과 이에 대한 목표설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우선,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그건 바울 자신의 과거행적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사렛의 인간예수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가짜 종교인으로 생각했고 신자들을 잡아 처형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잘못된 종교 열정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이제는 예수님을 이전처럼 알지 않는다! 어떤 분으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까?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나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 그 분의 죽음으로 나의 죄가 처리되고 살아나심으로 내가 의의 신분을 얻었다(롬4:25)!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이 신분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자신이 선언하고 있는 새 피조물 신분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제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그리스도가 하신 일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죄를 위해 십지가의 죽음의 속죄물로 내어주시고 피 묻은 그 손으로 죄인된 인간의 더러운 손을 잡았다! 이제는 화해하자는 제스처, 용서한다는 악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부탁했다고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그 일을 대신해달라는 부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의 신분이 된 신자들에게만 요청하셨습니다!
새피조물 신분이 된 우리에게 주어진 직책, 미션은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사이좋은 우리끼리, 오늘 만나도 반갑고 내일 만나도 반가울 우리끼리 화목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 상처가 되고, 심지어는 원수 같은 그 인간(?)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준 대상입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얼굴도 보기 싫은데, 손을 내밀라니, 그것도 먼저!
이전의 피조물 신분으로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린 새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영이 있는 새로운 피조물 신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예수의 영이 나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원수 같았던 하나님과 인간화목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우리의 화목도 때로는 실패도 하고 어렵게 신승(辛勝)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쾌승(快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세상을 이기셨던 분입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이 우리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이기는 상상력을 가지세요!
결론
미국 성인은 3분의 1이 새해에 ‘돈 모으기’ ‘행복해지기’ ‘운동하기’ 등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30세 미만은 과반(52%)이 새해결심을 했지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율이 줄었는데 65세 이상에서는 18%만이 새해 결심을 했습니다. 결심해봐야 소용없다는 아는 연령이지요.
한국인은 반대입니다. 조선일보 조사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새해 결심을 더 많이 했습니다. 50대는 ‘운동’, 40대는 ‘저축’, 30대는 ‘다이어트’, 20대는 ‘공부’를 1순위 결심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20대든 50대든 80대든 매일 매일 눈을 뜨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자라나는 사람도 새로운 피조물이요, 늙어가는 사람도 새 피조물입니다. 오늘도 새피조물로 눈 뜬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화목사”라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화목의 홍보대사요 실천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이제 갓 태어난 우리들! 일단은 우리끼리 화목하며 살아봅시다! 아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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