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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대림절 설교] 기다림은 길을 연다.(누가복음 2:25~33)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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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길을 연다.

누가복음 2장 25~33절

 

서론

12월 첫 주일입니다. 일반 달력은 12월이 한 해 끝입니다. 그래서 망년회(忘年會)를 엽니다. 한 해를 보내며 올해의 괴로움을 다 잊자는 모임입니다.

세상은 12월이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망년의 계절이지만 기독교는 기다림의 희망계절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앞둔 4주간을 대강절(待降節), 대림절(待臨節)이라 합니다. 아기 예수의 성탄과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희망절기입니다. 대림절은 4세기부터 서방교회에서 지켜왔습니다. 성탄절 네 주일 촛불을 하나씩 켜고 마지막 주일에는 네 개의 촛불이 켜집니다. 그러면 기다리던 성탄절이 옵니다. 묵상의 기다림 끝에 성탄의 기쁨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뿌리 이스라엘은 기다림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의 기본을 이루는 족장들 아브라함, 이삭, 요셉의 공통점이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 땅과 대민족, 복의 혈통이 되는 3대언약을 기다렸고 아들출생을 25년 내내 기다렸고 2천년 전에 멀리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메시아신앙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의 원조이면서 기다림의 원조입니다.

이삭은 40년 동안 아버지가 정해 줄 때까지 신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배신당하고 모함으로 옥에 갇혀 억울하고, 빼주기로 약속했던 술관원장의 배은망덕에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아브라함 패밀리의 유전자였습니다.

본문에 평생을 기다림으로 살았던 노인이 나옵니다. 25시므온…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았다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 받는 위로입니다광복절이겠지요!

히브리인처럼 수난을 겪은 민족은 없습니다. 400년 애굽의 노예생활, 광야 40년의 방황, 바벨론에서 70년 포로생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오랜 세월 동안 국가가 없었습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영적 흑암기에 기다리지 못해 친()로마파가 되어 아부하고 반()로마파가 되어 살인을 일삼았습니다. 바리새파는 기다리지 못해 종교로 도피했고 사두개파는 아예 세속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기다림에 실패한 경우입니다.

이런 침묵과 세속화의 시대에 시므온은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했습니다. 그랬더니 기다림의 결과는 그를 깊어지게 합니다. 오래 기다리면 많이 깊어집니다

현대인은 조급합니다. 그래서 인스턴트식품들이 개발됩니다. 

텔레비전 채널도 리모콘으로 돌리고 전등도 리모콘으로 작동합니다. 움직일 일이 없어요! 리모콘으로 5kg은 찔 거예요.

현대인들은 기다림이 짧기에 허물도 많고 실수도 많아졌습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되는 것을 너무 조급해서 상처도 많고 아픈 추억도 있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성격이 좀 급한 저도 목회하면서 그래요! 그래서 카프카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개 있으니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모든 죄는 여기에서 나온다.”

 

큰애를 보내면서 셋이 추억담을 나누었습니다. 아이들 추억 중에 아버지한테 맞은 이야기가 많아요. 맞은 사람은 기억하는데 때린 아버지는 기억 못합니다. 아버지는 때리면서 정당하다 생각해서 기억 못하고 맞는 아들은 부당하다 억울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안했습니다. 왜 때렸을까. 때려야 할 경우도 있었겠지요. 때리지 않았다면 지금은 더 후회했을 거예요! 그래도 왜 때렸을까? 내 눈높이로, 목사 수준으로 아이들을 기대한 거예요. 아이들은 목사 집안에 태어난 목사 자녀들이지 새끼목사는 아닌데 클 때를 기다렸어야 하는데 목사수준을 아이들에게 기대했기에 몽둥이를 들었던 것입니다.

 

기다림의 특성은 수동적입니다. 힘이 없어서 참고 방법이 없어 기다립니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큽니다. 기다림은 사람을 깊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의 오랜 기다림은 성령이 머물게 했습니다. 구약의 성령역사는 사람보다 사역에 임했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의 사역입니다. 사명이 끝나면 성령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에 임한 성령은 항상 머물렀습니다. 성령이 머물렀기에 오래 기다리면서 깊어갔습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시골 출신 요셉과 마리아의 아기를 보는 순간 시므온은 곧 메시야임을 알아봅니다. 오랜 기다림이 단번에 알아본 것입니다. 그만큼 시므온은 속이 깊고 눈이 깊고  믿음이 깊은 성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만 늘어간 것이 아니라 속이 깊어갔습니다.

기다림의 계절, 깊어졌으면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지 말고 생각하고 말하고 생각해보고 행동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더 깊어지고 깊은 장맛이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세계적인 체인망을 자랑하는 3() 대형 피자회사가 있습니다. '피자헛' '도미노피자', '리틀 시저스'입니다. 피자헛은 맛보다는 피자의 '다양성', 도미노는 '빠른 배달', 리틀 시저스는 '싼 값' 피자를 강조합니다.

그중 도미노피자의 성공비법은 빠른 배달, 신속함입니다. 손님을 기다리지 않게 한다! 주문전화가 오면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런 경영기법이 다국적 피자체인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빨리빨리 신속하니 돈을 벌었습니다. 돈은 좋습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주연배우급 소유진은 15세 연상의 요식업계의 큰 손과 결혼합니다. 말은 변함없는 자상함·소탈함에 반해 결혼한다고 밝혔지만 예비신랑의 연 매출액은 630억원입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속도, 주식이 올라가는 속도와 행복속도는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급함은 성품형성에 치명타입니다. 성품은 영혼이 만들고 마음이 만들어 내는 작품입니다.

맑은 영혼과 자연으로 오는 깊은 지식을 소유한 민족은 인디언입니다. 지금 인디언은 박물관 인간으로 치부되지만 지혜는 깊습니다. 대학이라는 지식이 돈과 명예를 얻고 유대인 지혜가 처세술에 뛰어나다면 인디언의 지혜는 영혼을 맑은 거울처럼 닦아놓은 영성입니다.

백인사냥꾼이 인디언과 사냥을 나섰습니다. 짐승을 좇아 앞서가던 인디언이 멈춰 기다립니다. 백인사냥꾼을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옆에 와도 계속 기다립니다. “빨리 가자” “나는 당신을 기다린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을 기다리고 있다, 내 육체가 영혼보다 더 빨리 달리면 영혼이 나를 찾을 수 없고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영혼을 잃으면 조상도 잃어버리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영혼을 기다렸다 같이 가겠다.”

 

이것이 기다림입니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시므온은 25, 점점 의롭고 경건하여 갔습니다. 기다리면서 탐욕스럽고 기다리면서 세속화되고 기다리면서 성품이 나빠져 간다면 잘못된 대상과 잘못된 목표를 기다린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사람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 패밀리 중에 특이한 경우입니다. 참 욕심이 많습니다. 그는 언약집안에서 장자에게 대물림되는 축복권을 사모했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와 함께 어머니 태() 안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분명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고 그 사실은 장막에서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습니다.

잠잠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면 언약의 축복이 야곱에게 오고 아브라함 계보를 잇는 장자의 축복을 얻습니다. 언약을 신뢰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야곱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손에 넣습니다. 기다림에 실패해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고 하나밖에 없는 형과는 남남처럼 살았습니다. 결국 자기 입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합니다. 잘못된 기다림이 인격을 파탄 나게 만들었고 자기가 자기를 험악한 생애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검승부는 결국 성품입니다. 성품 성화가 우리의 본질입니다. 

성화는 기다림에서 나옵니다.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 성화가 됩니다. 조급함은 성화를 방해합니다. 성급해서 되는 성화는 없습니다. 청소년들이 너무 조급해서 탈선합니다. 조급함으로 성화가 훼방을 받지 않으려면 육체의 기질보다 영혼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줘야 합니다. 달려가다 힘들고 넘어지고 쓰러진 이들에게 말씀의 에너지로 다시 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병들었을 때 치유와 회복을 도와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이 있습니다. 영혼이 빨리 달리도록 돕는 것이 교회 임무입니다. 빨리빨리 경쟁하며 달려가며 영혼이 저만치 쳐져있는데 계속 달려가기만 한다면 세속화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영혼을 생각합니다. 영혼을 기다립니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고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남들도 잘 달리도록 상생하도록 만드는 것이 예배입니다.

영혼이 나를 이끌어 가도록 영혼을 앞세우세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구하지 않아도 다 주신다는 말씀은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앞세우면 영혼은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통해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걸 얻지 못하면 참 억울한 일입니다. 인격에 신앙승부를 거세요!

  

오늘 제목은 강준만 목사님의 책제목입니다. 기다림은 길을 연다! 그 제목을 보는 순간 시므온 노인이 생각났고 설교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왜 기다림에 실패할까요? 길이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일찍 애굽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왕자로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공주가 아닌 것은 어려서부터 알았지만 자기가 히브리인이고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모(乳母)라고 생각했던 친모에게서 히브리역사를 배웠습니다. 히브리인들은 400년 만에 출애굽하도록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바깥출입을 했다가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분노가 치솟아 올라 애굽인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모래 속에 파묻었습니다. 그러면 히브리동족들이 자기를 영웅으로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음에 동족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말렸더니 그 중 하나가 네가 우리 재판관이냐 애굽인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 하느냐? 항의합니다. 그 길로 광야로 도망갑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닙니다. 모세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 팔팔한 성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려다가는 모두 죽이고 맙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불순종하며 거역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로 보냈고 40년을 썩힙니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목자생활을 하면서도 오래 기다렸더니 때가 되매 길이 열립니다. 기다림을 통해 모세는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었고 별의별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가 만나고 그 때에 부르실 때까지 답답하지만 기다린 것입니다. 기다림은 길을 열었고 기다림이 그를 성숙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다림의 달인입니다. 30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랜 세월 묵묵히 기다렸더니 하나님의 때가 되어 공생애에 나섰고 40일 금식기간 후에 찾아온 사단의 시험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견딤의 길이가 쓰임의 길이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 노인. 26,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언질을 들었습니다. 기다려도 메시아는 오지 않습니다. 조급합니다. 그래서 성전 밖으로 나가 여기에 메시아가 있다, 저기에 메시아가 있다 할 때에 거기에서 위로를 들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성전에서 기다렸습니다. 성전 안에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에 길이 열렸습니다. 아기 예수가 마리아의 품에 안겨 성전 문 안으로 들어옵니다. 시므온과 같은 기다림이 있었기에 메시아가 들어오고 시므온 같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우리 시대에 많아야 재림의 주님이 오시는 길이 열립니다.

삶에서 조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에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조급하다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을 얻는 실수를 합니다. 어떤 일에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다가 실패합니다. 기다림의 양을 채워야 합니다. 기다림의 양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시며 겸손하게 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많이 기다리는 사람일수록 많이 도와주십니다. 

많이 기다린다는 것은 많이 의지한다는 것이고 많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많이 기다리면서 많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채워줍니다. 기다림의 그릇과 채워지는 능력과 축복의 그릇은 같이 갑니다. 많이 기다릴 때 많이 채워주십니다.

다윗은 오래 기다린 사람입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일찍 영웅이 됩니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예선됩니다. 그러나 왕직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에 의해 오랜 망명생활을 견딥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죽을 고비도 몇 번을 넘겼습니다. 미치광이처럼 블레셋 가드왕 앞에서 침을 흘려야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40 1~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그래서 새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기다림으로 얻은 승리며 간증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접(神接) 여인을 찾아가는 조급함을 보여 4부자(父子)가 몰살당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기다림은 길을 연다는 것! 기다리고 있으면 주님께서 가장 좋은 곳으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길을 내시고 문을 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신앙입니다.

결론

미국의 글로벌 대형 피자회사. 피자 헛, 도미노피자, 리틀 시저스가 독점하고 있는 피자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피자업체가 있었습니다. '파파 존스'입니다. 파파 존스는 36세의 젊은 슈내터가 창업하여, 매년 두 배의 시장점유율 증가를 보이고 있는 무서운 피자 체인입니다.

피자헛은 맛보다 다양성을, 도미노는 빠른 배달, 리틀 시저스는 싼 값을 강조하는 마케팅 기법을 광고했는데 이건 본질적인 요소 이외의 것들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피자는 맛이 중요하지 싸고 배달이 빠르고 종류가 다양하고 이건 피자의 본질이 아닙니다.

파파존스는 '맛과 질'에 승부를 걸어 가장 영양가 많은 피자라는 광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최고의 재료, 최고의 피자'였습니다. 본질이 진검승부입니다.

한국교회가 점점 대형화되고 백화점식 문화센터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번영신학에 물들고 교회를 통해 내가 얻을 것을 먼저 계산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보다 내가 어떤 일을 할까? 어떤 직분에 연연합니다. 자존심에 목숨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성급하고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성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기다림은 참음으로 옵니다. 기다림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기다림으로 길이 열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림이 우리를 성화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며 진검승부입니다. 기다리면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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