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필살기(必殺技)
출애굽기 1장 12~14절
서론
국민일보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2년여 동안 장로교 교단만 55만 명이 줄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하루 747명의 신자, 매일 6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해 2천 개 교회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교회에서 집단으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로 교회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고 내부적으로는 비대면예배로 성도들의 믿음이 약화된 까닭으로 분석됩니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교회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기독교, 한국교회에 대해 공격하고 폄훼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들을 보세요! 소설을 보세요. 한국교회를 좋게 보이는 작품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한국교회를 말살하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단들은 익명으로 그들과 합세합니다. 어느 때보다 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는데 정작 우리는 코로나 영향으로 가장 믿음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믿음의 열기를 1~100으로 볼 때 지금까지는 80이상입니다. 지금은 50이하로 내려앉았습니다. 중직자들, 특히 열심하던 분들에게서 눈에 띄게 믿음이 하락한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을 ‘한국교회의 필살기(必殺技)’로 정했습니다. 필살기 자체는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기술’이지만 그 의미에는 적의 공격에서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합니다. 지금은 대충 믿어 될 때가 아닙니다. 사방이 아군이 아니라 적군들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기독교의 지성 프란세스 쉐퍼 박사는 “지금은 연약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가 아닙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교회의 부흥과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나아가는 기독교인들의 필살기, 한국교회의 필살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생육과 번성을 명했습니다(창 1:28). 사람들로 땅에 충만 하는 번식과 번영을 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8주년 늘빛교회에 어떤 부흥을 원하실까? 결론적으로 전인 부흥입니다. 전인(全人)은,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지(知) 정(情) 의(意), 즉 지식 감성 의지가 동일한 33.3...%의 지분을 갖고 있는 균형 잡힌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 부흥도 어느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보십시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지혜가 자란 것은 지적 성장입니다. 키가 자란 것은 신체 성장입니다. 사람에게 사랑 받은 것은 사회적 성장이요 하나님에게 사랑 받은 것은 영적 성장으로 전인적 성장을 한 것입니다. 38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도 균형잡힌 성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 늘빛교회가 부흥되기 전에 성도들이 먼저 부흥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이니 성도가 바르게 부흥되면 교회가 바르게 부흥되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떠나간 민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넓게 성장해야 합니다. 양적 성장입니다.
성장하는 교회가 되려면 숫자적으로 부흥되어야 합니다. 숫자가 많아야 힘이 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기본적인 성장은 양적인 성장입니다.
이스라엘은 430여 년에 수적 성장을 했습니다. 5절,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70명으로 시작했지만 7절,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아브라함과 그 한 사람의 아들이 12아들로, 그 손자들이 70여명으로, 장정만 70명으로…
9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나중에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세는 말합니다.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신10:22).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천문학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에서 12명 제자로, 70명 제자로, 마가의 다락방 120명으로, 베드로의 설교에 3천명으로… 5천명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숫자적으로 부흥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이 성장해야 합니다. 자녀자손들의 수가 불어나고 재정적인 액수가 부흥해야 합니다.
깊게 성장해야 합니다. -질적 성장으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수적 번식, 물량적 번영만은 아닙니다. 애굽에 이주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깊이 뿌리는 내리는 성장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번식만 했을 뿐 하나님의 언약, 약속으로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애굽은 뿌리를 내릴 본향이 아닙니다. 인구의 부흥을 위해서만 필요한 땅입니다. 애굽으로 이주하지 않고 가나안에 살았으면 소수 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폭군이 마음만 먹으면 멸족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70여명 정도의 야곱 부족을 이주시킨 것입니다. 그곳에는 요셉이 먼저 가서 번식, 번영의 터를 닦아놓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총리요 처가는 제사장집안입니다. 애굽은 정치와 종교가 두 톱을 이룹니다. 정치가 그룹의 수장인 왕과 종교가 수장인 대제사장은 권력의 축(軸)을 이루면서 견제하고 협력합니다. 권력에서는 견제하고 기득권 유지에서는 윈윈입니다. 요셉은 정치와 종교 두 마리를 모두 잡은 셈입니다. 애굽에 정치적인 발판이 없던 신임 총리는 제사장의 딸과 결혼함으로 막강한 지지 세력을 얻습니다. 그러니 세력 있는 집안이 되고 이주한 형제들도 그 덕을 톡톡히 보면서 번영했습니다. 사는 것이 좋으니 가나안을 중심으로 이루어가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는 멀어졌습니다. 그들의 뿌리는 애굽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그들의 영원한 조국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뿌리를 뻗어나가야 합니다. 가나안의 약속까지 뻗어나가야 할 깊은 뿌리입니다. 애굽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더 큰 번영을 보아야 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사모하는 가나안의 언약신앙으로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곳이야 말로 민족대대로 뿌리를 내릴 약속의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린 뿌리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바로 왕을 세워 박해하게 만들고 가나안으로 이동시킬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제대로 된 교회성장을 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로 교회가 성장해야 합니다. 복음을 몰랐던 사람들이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회심의 역사를 통해 진짜 예수쟁이들이 되고 사랑이 없던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고 용서가 없던 사람들이 용서하게 될 때 교회는 질적으로 제대로 깊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은 남의 것을 베끼는 짝퉁 기술로 웃음거리였지만 지금 중국은 더 이상 짝퉁의 대명사가 아닙니다. 중국은 짝퉁이라는 오명을 버리고 진품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인구라는 숫자로만 승부를 건다, 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은 미국과 함께 경쟁하는 강한 세계 2위의 중국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지만 ‘무리들’이라는 숫자는 이익을 따라다니는 익명의 군중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사명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12제자를 선택해서 훈련시키고 질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소수였지만 구원의 확신으로 가득 찬 진품 제자들이 기독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공자는 3천명 제자를 거느렸지만 뜻을 제대로 따른 사람은 72명입니다. 그들을 72현(賢)이라 합니다. 3천명, 4천명이 있다 해도 진정한 부흥은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엄청한 박해를 받아 300여년을 소수의 교단으로 살았지만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입교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거듭나지 못한 짝퉁입니다. 구원을 몰랐고 믿음을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는 카타콤에서 나오면서 엄청난 세력과 교세의 부흥을 이루었지만 수적 부흥이 오히려 로마교회, 훗날 유럽교회를 망쳤습니다. 하나님께 깊게 뿌리를 내린 구원 신앙이 아니라 자기이익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한 부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고백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떻게 세상에서 부귀와 영광을 얻을까, 옆으로의 성장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수적인 성공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독교였습니다.
한국교회도 코로나19로 인한 교인들의 하락세에서 진품으로 승부를 가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떠납니다. 깊은 자성과 반성도 있어야 하지만 너무 겁먹지 맙시다! 기드온에게 나온 사람들도 3백명만 남고 32,000명은 떠났습니다. 진품만 남은 것입니다. 그들로 승리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 안에서 코로나를 보내 알곡을 가리는 작업을 하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품 기독교를 만들어 한국교회를 명품으로 만들려 하십니다. 그러니 가라지, 쭉정이가 아니라 알곡으로, 무리들 군중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사도로 진품성도로 승부를 가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질적인 성장,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난 구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성도님들로 우리교회가 더 깊게 부흥하기를 기대합니다.
높게 성장해야 합니다. -도덕적 성장입니다.
히브리인들이 고센에서, 애굽 땅에서만 7절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9절 숫자가 애굽인들보다 많고… 12절,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기만 했다면… 20절, 번성하고 강하기만 했다면… 21절, 집안이 흥왕하기만 했다면… 성공으로 보이지만 애굽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조상과 맺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가 되심을 계시하셨고(출3:14) 40년을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여호와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던 수준이었지만 지도자로 선택 받고 광야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로 높게 더 높게 계속 성장합니다. 시내산 정상에서 40일을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으로까지 성장합니다(출24장. 34장). 얼굴 피부에 하나님의 광채가 납니다(출34:29). 하나님의 영광의 높이까지 성장하니 하나님이 거룩한 빛이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6) 하셨는데 정말 그리 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서 높게 성장해야 합니까? 높은 곳으로의 성장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그 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4:·15)고 합니다. 우리의 거룩의 목표가 술, 담배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교리로만 주님을 이해하지 말고 주님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인인격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삼강오륜을 뛰어넘고 높은 인격과 따뜻한 성품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높이 더 높이 성장하며 우리에게도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거룩의 광채가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크게 성장해야 합니다. -사회적 영향력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지 않았다면 고센 땅에서 번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자손들은 애굽 전역에서 번영했겠지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고작 애굽에 불과합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더 크게 성장하려면 애굽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큰 성장을 위해 출애굽을 해야 합니다. 출애굽을 포기했다면 고센에서 소수민족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선민굴레에서 저희들끼리 잘난 멋에 살았겠지요. 그것이야말로 ‘게토’입니다. 게토(GetO)는, 중세 이후 유대인을 강제 격리시킨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비롯된 말로, 주로 특정 인종이나 종족, 종교집단에 대해 외부와 격리시켜 살도록 한 거주 지역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센이라는 게토, 이스라엘인이라는 게토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행군을 통해 계속 하나님께로 높이 더 높이 성장합니다. 광야에서 바라보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 반석에서의 물… 그 모든 것들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이며 능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계속 위로 성장합니다. 그러자 더 이상 애굽의 노예민족이 아니라 가나안의 간담을 녹이는 강력한 민족이 됩니다(수2:9, 11, 24).
가나안의 부족들은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수5:1). 하나님의 영광까지 높이 더 높이 올라갔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까지 오르고 또 올랐더니 능력 있는 민족, 군대가 된 것입니다. 광야에서 받은 십계명으로 저들은 하나님께서 더 높이 성장하면서 점점 성민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크게 더 크게 성장한다는 것은 강력한 믿음을 말합니다. 강력함은 영향력입니다. 영향력이 없이 그냥 자라는 것은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오합지졸은 힘이 되지 못합니다.
삼손은 성결을 잃게 될 때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여인의 노리개, 이방인들의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괴력의 소유자였지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맷돌을 돌리는 어릿광대짓을 보면서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영향력은 직분, 지위가 아닙니다. 돈도 영향력의 전부가 아닙니다. 진짜 영향력은 도덕적인 감화력입니다. 말을 많이 해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말이 많지 않아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화력입니다.
한국교회는 작년 기준으로 여전히 1위, 주류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감화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 빨이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한 트럭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크게 성장하려면 감화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더 크게 성장해야 합니다. 숫자 숫자 1위만이 아니라 영향력 1위의 한국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길게 성장해야 합니다. -계속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성장합니다. 배도와 침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성장해 갑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주시면서 성장시킵니다. 어느 정도로 성장시키려는가, 온 세상의 제사장 국가입니다. 그들은 애굽 백성도 아니고 가나안 맹주(盟主)로 만족할 민족도 아닙니다. 그들은 제사장 국가 신민으로 선택받았습니다. 그러니 애굽을 넘어 가나안을 넘어 세계로 길게 더 멀리 성장해야 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트 토인비(1889~1975)는 인류 역사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인데 그 중에 이집트문화, 로마문화 그리스문화…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남아있는 10개 중에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천 년을 죽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문명은 유대문명 하나라고 밝힙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히브리민족은 길게 더 길게 성장해서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의 성공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니 길게 멀리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을 멈추면 죽은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성장하지 않았기에 굳어버리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게토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수용할 크고 넓은 그릇으로 성장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리더의 자질들이 부족했지만 성장했습니다. 배운 것만큼 성장했습니다. 나중에 자갈이 반석이 되고 사도들이 됩니다. 한국인의 단점은 머리도 좋고 열정도 있는데 뒷심이 부족합니다. 대학 갈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는데 대학에 가면 공부를 멈추어 버립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학교만 끝나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립니다. 그러니 자라지 않고 자라지 못하니 싸움박질이나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계속 자라는 사람입니다. 평생 학습자가 매일매일 자신의 사진을 새롭게 뽀샵합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노인들이 아름답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석화됩니다. 그러면 남의 성장과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어 교회를 성장시켜 왔습니다. 여기가 우리의 끝자락이 아닙니다. 더욱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 나의 성장은 하나님의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은 소유욕이 강한 부친의 억압과 학대로 유년이 짓밟힌 호주의 유대인 음악천재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욕심을 좇아 자랐습니다. 성공도 했고 천재음악가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더 이상 긴장을 못 견디고 나사처럼 풀리면서 정신병원 신세를 지냅니다. 아내(길리언)의 정성으로 상태가 좋아졌을때 고백합니다.
“나는 위로 성장한 것 같지 않고 아래로 자란 것 같다!”
아래로 옆으로 자라면, 애굽에서는 번영이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출애굽과 가나안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로 자라고, 약속성취로 자라야 진정한 성장이고 부흥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숫자 하락을 지나치게 비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숫자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언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수였던 적이 있습니까? 초대교회가 다수였던 적이 있습니까? 초대한국교회가 조선의 대안이었던 근세에 다수였습니까? 소수, 창조적 소수였습니다. 창조적 소수를 우리는 제자, 혹은 알곡신자라 합니다.
뱃세다 들판에서 기적의 떡을 얻어먹은 유대 군중들은 계속해서 기적을 보여주지 않자 많이 떠났습니다(요 6:66).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겠느냐” 묻자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절) 답하며 이런 신앙고백을 합니다.
69절,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코로나의 위기에서 주님은 “너희도 가겠느냐?” 물으십니다. 우리는 이리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이 여기 계신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이것이 140년 한국 교회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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