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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성의(聖衣)로 물려주는 신앙(출애굽기 29:29, 30)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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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성의(聖衣)로 물려주는 신앙

출애굽기 29장 29, 30절

서론

저는 절기예배가 아니면 성의(聖衣)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의를 입으면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성의는 '거룩한 옷'이라는 그 의미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차라리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 이대로 설교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어느 분이 "제가 성의를 입지 않는 게 좋아서 등록했다"고 했습니다. 목사들이 가운을 입는 것은 권위의식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의를 입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목회자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의식이기에 성의를 착용하는 것이고, 저는 성의를 착용하지 않는 게 예배 인도하는데 더 자연스러워 착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의 착용이 권위의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의를 착용하는 분들이 더 경건하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의(聖衣)는 한국교회가 자체 개발해 낸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제사장들이 성의를 착용했습니다. 유대 신앙에서 제사장 직분은 선출직도 아니고 임명직도 아니라 세습직 입니다. 제사장의 아들이 나이 30세가 되어 제사장직을 세습할 때에는 전수식을 합니다.

 

이때 아버지 제사장은 아들에게 자기가 입었던 제사장 복장을 물려줍니다. 아버지 제사장은 자기가 평생 입었던, 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다시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신앙의 전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성의(聖衣) 전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삶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아버지의 성의를 물려받습니다. 성의는 히브리어로 '거룩한 옷들'을 뜻합니다. 한 벌이 아니라 여러 벌들이고 성의만 아니라 거기에 치장되는 장식품들까지 망라합니다. 제사장들의 성의에는 '속옷'으로 번역되어 있는 두루마기, 띠, 관, 고의(袴衣), 여기에 여호와의 뜻을 묻는 "우림"과 "둠밈"등의 장식물이 있습니다.

그 복장은 굉장히 값비싼 것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만약 경매시장에 내놓았다면 엄청난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물 단지를 물려준 것일까요? 아니지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물려준 것입니다.

 

아들 제사장은 전수식을 할 때 30절, 7일 동안을 성의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먹고 지내야 합니다. 내가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성의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7일 동안 세상과의 단절, 홀로 서서 회막(會幕) 안에서 제사장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할까요? 사방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는 곳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나는 하나님 앞에 있구나!"

 

하나님의 임재 의식, 하나님 앞에서의 삶, 숨을 쉬어도 밥을 먹어도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강한 영향력 속에 있게됩니다. 

 

이제부터 생애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취미생활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두루 시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성 프란시스. 그는 성자(聖者)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앗시스 상인의 부자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래서 한 때는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회심하고서 사람들에게 재산을 다 나눠주었습니다. 아버지가 화를 내니까 프란시스는 "아버지, 이것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입니다!"하면서 옷까지 싹 벗어두고 알몸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입니다. 비단 옷은 아니었지만 그 누더기가 바로 그에게는 성의였습니다.

 

프란시스가 나병 환자를 만났을 때 "형제여!"하면서 그를 끌어안았던 이야기, 새들에게 설교하고 새들이 설교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글라라'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물질에서는 자유로웠지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은 끊지 못했습니다. 육적인 사랑보다는 자기와의 결혼을 위해 살아온 글라라의 꿈을 파기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눈 오는 날, 프란시스는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동료 수도사가 숨어서 보니, 그는 여인과 아이들을 눈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한 시간 쯤 바라보며 거기 서 있습니다. 그리고 눈사람들을 삭삭 지우더니 자기의 장례식을 자기가 주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성의를 입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즐겨왔던 세상살이는 멀리 던져버리고 거룩한 옷에 걸 맞는 거룩한 사람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성의를 입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제 너의 생애는 네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라" 바로 이런 것을 가르치면서 그런 삶을 살라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제사장 아들이 그 성의를 넘겨받는다는 것은 단지 옷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게 아닙니다. 제사장직을 세습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생 헌신적 삶, 의존적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삶을 전수 받는 것입니다. 그런 결심으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성의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왔던 장로님들의 삶을 전수 받고 성가대원들의 삶을 전수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들의 본이 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2. 성의(聖衣)를 입는 것은 백성들을 무한정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새 제사장은 성의를 받아 입고 7일을 성막 안에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새 제사장은 성의 속에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죄인들을 위한 중보자입니다. 제사 드리러 나오는 백성들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죄를 가지고 나옵니다. 별의별 죄가 다 있습니다. 그들이 고백하는 죄를 들으면 가관입니다. 성의를 입은 제사장들은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만 봅니다. 죄와 그 사람을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실망, 경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서 저 죄를 옮겨버릴까, 그 죄 때문에 가책을 느끼며 무거운 삶을 살았던 고통에 연민을 느낍니다. 성의를 입은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죄만 봅니다.

 

제사장들은 선지자들과 달리 비판적인 심정을 가진 사람들은 안 됩니다. 남의 죄에 대해 연민을 갖는 마음들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남에 대한 연민은 자신에 대한 연민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은 죄인입니다. 비록 지금은 성의로 가려지고 백성들 앞에서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고 있지만 화려한 성의 안에는 온갖 죄와 약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보면 감히 나올 수가 없는 자이지만 성의를 걸치고 주님 앞에 나왔기에 죄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그들을 위해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그들을 생각합니다.

 

그는 결국 백성들의 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 자신의 죄를 위해 눈물 흘리게 되고 백성들에 대한 죄사함의 은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 고백할 때는 백성들과 하나가 되고, 죄사함을 선언 할 때는 하나님과 일치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맹 천수라는 집사가 쓴 <맹 집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 집사는 시골교회를 섬기는 분이었는데 임 집사라는 분이 갑자기 중풍으로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단짝이었던 맹 집사가 드나들면서 교회 소식을 알려줍니다. 그의 소원이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하자 맹 집사는 기도했습니다.

"휠체어 한 대만 생기면 평생 밀고 다니면서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예산을 세워서 사주었습니다. 맹 집사는 휠체어 봉사를 했습니다. 칭찬도 듣고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흥분과 감격은 순간이고 큰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스팔트 중심으로 제작된 휠체어는 비포장 도로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좀 빨리 죽지…" 그런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칭찬합니다.

"천사야…" 그 소리를 듣는데 도무지 예배당 안으로 못 들어가겠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살인자인데, 어떻게 들어갈까?" "용서하소서"

 

그 때 주님으로부터 깨달음이 왔습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구나 나의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주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그 안에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구나."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다" 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상태에 있음"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의를 입은 제사장은 하나님과 한 상태임을 절실히 느끼고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구속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성화 됩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천국이 되는 것이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이 땅은 우리의 작업장이 되는 것입니다.       

성의를 입고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사람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다시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그리스도와 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3. 성의(聖衣) 전수는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 제사장은 성의를 받아 입고 7일을 성막 안에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죄가 많았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점점 성숙해 가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새 제사장은 성의 속에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성의는 거룩한 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옷을 입었으니 이제는 속까지 거룩으로 채우라는 것이고, 아버지 제사장이 아들에게 성의를 물려주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면 그때부터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례 받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 받고 나서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합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결혼하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사장들이 거룩해서 성의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입혀지는 것입니다. 성의를 입고 나니까 거룩해 지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 옷에 걸 맞는 삶을 살려고 하다보니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성의는 일방적으로 받아 입고 그 다음부터 거룩한 사람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겉모양인 하드웨어와 속인 소프트웨어입니다. 진짜 컴퓨터의 성능은 외양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가 좋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런 게 아닐까요? 겉의 성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겉의 성의는 하드웨어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라는 직분은 하드웨어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것은 속마음이요, 속의 능력입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분에 걸맞아야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안 받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직분을 받고 나면 그때부터 완성인 줄로 알고 자기 노력을 게을리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섰다"생각하고 자만하다 넘어집니다. 바울은 잡은 줄로 생각하고 계속 잡기 위해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푯대를 세웠습니다. 그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그는 달려갔습니다. 그에게서 자기 완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도 다듬어져 갈 뿐입니다.

제사장 아들은 가까이는 아버지의 믿음을, 멀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정진하는 첫 출발점에 선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성의가 주는 은혜였습니다. 

결론

민수기 20장 25절에 보면, 아론이 세상을 떠날 때 호르산에 올라가 그 옷을 벗겨서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혔다고 했습니다. 아들 엘르아살은 성의 속에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의를 받아 입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이 옷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 은혜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무한정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은 우리들이 힘써야 할 사항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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