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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추석 설교] 이리 될 걸 왜 제사로 기독교를 핍박했나요? (출애굽기 10:1~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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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진]

[추석명절]

이리 될 걸 왜 제사로 기독교를 핍박했나요? 

출애굽기 10:1~7

 

서론

추석 명절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급격하게 추석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조상제사를 격식대로 하지 않으면 불효니 어쩌니하던 사람들도 시대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끌혀를 차면서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유교의 성균관)

추석 귀성 대신 가족들과 호캉스(호텔+바캉스)를 택하고, 날씨가 선선한 강원 홍천으로 가족 여행을, 제주도 해수욕장 12곳엔 늦여름 피서객이 몰리고 있습니다. 해외로 떠나는 출국자 숫자는 역대 최다를 경신할 전망입니다.

추석 폭염은 명절 밥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추석 특산품인 송이버섯, 사과, 단감 농가가 폭염으로 수확이 저조하자 제사상에는 다른 과일들이 올라오고 추석 대목을 기대하던 농가들은 울상입니다.

추석빔을 제작하던 한복 업체들도 폭염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을 폭염으로 더워 죽겠는데 무슨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반바지로 고향을 찾습니다.

성균관유도회는 유학과 성균관 재건을 위해 만든 단체, 2022차례상 간소화 표준안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유도회가 권하는 제사상 구성은 과일 네 종류, 백김치, 구이(), 나물, 송편(또는 떡국), 술 등 아홉 가지입니다. 고사리 등이 없습니다. 송편은 조상님이 추석 차례상인지 몰라볼 것 같아 그대로 뒀습니다. 사실 송편이 추석 대표 음식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의 일로 송편은 오래전부터 사랑받은 떡으로 추석에만 먹지는 않았습니다. 1970년대 이후. 통일벼 개발로 쌀 생산량이 급증했고, TV 보급으로 추석에 송편이나 다른 떡을 만들지 않던 지역에서도 빚어 먹게 됐다고 합니다.

간소화 표준안 내용 중 주부들이 가장 환호한 대목은 전은 부치지 않아도 된다였습니다. 나이 지긋한 며느리들은 격렬하게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알려주냐. 성균관유도회는 “...그간 고생하신 며느님들 너무 늦어 정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차례상에 음식을 놓는 위치에 대해서도 상관없다했고 스파게티 같은 음식을 올려도 되느냐에는 권장을 못한다면서도 개인사정이나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귀신이 어딘들 못 가나. 해외에도 다 쫓아간다그러니까 해외 형편에 맞게 간소하게 차려 놓고 같이 조상을 기리고 가족과 화목을 다지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했습니다.(조선일보 2024.9.14 기사 참고)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추석 제사상에 대해 늘어놓는 것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을 왜 자기들 방식만이 부모효도의 전부인 것처럼 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불효막심하다 비난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들의 권력과 종교를 지켜내려는 종교적 속셈입니다.

  

추석 제사는 유교의 산물입니다. 추석은 원래 추수 전 곡식을 미리 걷어 차례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한다는 취지였는데 이렇게 정치와 종교에 이용하는 절기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국가의 축제, 명절을 조상제사와 결부시키는 국가는 중국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처음부터 조상 제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몇몇 부족들이 간간이 제사(祭祀)를 드려왔습니다. 이론적으로 제사에 대한 뒷받침을 한 것은 송나라 때 주희(주자)가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된다 강조하면서 입니다. 처음에는 정치가들이 왕실을 위한 충성의 표시로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다 고위직 벼슬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너네 조상은 조상이고 우리 조상은 조상이 아냐? 너에 조상에게 우리가 왜 제사를 드리냐? 나도 내 조상에게 드리자하면서 평민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 시작될 때 황제는 7개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큰 제후는 5, 작은 제후는 3, 재상은 2, 관원과 스승은 1, 평민은 사당을 짓지 못하게 하고 무덤에 가서 제사 지내도록 했습니다. 제사를 통해 계급의 차이를 둔 것입니다. 통치술로 이용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내용 때문입니다.
유교 창시자 공자 이전의 하()나라와 상()나라 때는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주나라 때는 제사가 성행했지만 한나라 때는 중국도 제사를 금지시켰습니다. 유교가 중국의 국교가 되면서 조상제사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갈라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내려가는데 하늘로 올라간 혼이 거처할 곳을 얻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다 후손들이 정성 다해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의 혼과 백이 연합해서 사후에도 안정된 삶을 어느 정도 지속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나무 신주를 놓고 제사 지냈는데 혼이 하늘에 올라가서 거처할 곳을 얻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후손들이 정성껏 제사를 지내면 신주를 거처로 삼아 사후에도 얼마동안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했습니다. 이것이 조상님들에 대한 최고의 효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신라, 고구려 때에 특별한 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하면서 제사를 폐지했습니다. 원래 불교는 제사제도가 없습니다. 나중에 절에서 49제니, 무슨 제니제사드리게 된 것은 무속과 섞이며 후대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후 이씨조선 시대 이태조가 성리학으로 종교를 바꾸면서 부활됩니다. 세종과 성종 때에는 제사가 성했지만 대원군 때는 제사 폐단이 많다 하여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습니다.

이처럼 제사(祭祀)의 기원을 보면 제사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입니다. 그것도 옛날부터 해오던 전통이 아니라 13세기 이후 억지로 왕들에 의하여 제사 지내기를 강요받았던 것입니다.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본래 한국 사람이 해 오던 버릇도 아닙니다. 단지 유교에서 들어 온 풍속, 그것을 정착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이걸 갖고 조상제사가 인간의 마땅한 도리, 자식의 마땅한 도리로 기준을 삼는 것은 하나의 종교이데올로기의 강요입니다.  

 

제사와 예배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유교에서는 조상제사는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합니다. 이것이 참이라면 우리가 왜 굳이 조상의 뜻을 거슬려가면서 제사를 안 드리겠습니까? 어머니주일, 어버이주일까지 만들어 부모 공경과 효도를 가르치며 기념하는 한국교회가 제사가 무어 그리 힘들다고 핍박을 받아가면서 거부하겠어요? 효도와 관계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상제사는 명목만이 그럴싸한 부모공경이지 사실은 유교가 기반을 넓히려 효도라는 인간의 기본도리를 종교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민족이 속아 넘어간 것입이다.

이걸 이용해서 중국 왕실이 다양한 부족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했습니다. 왕실제사를 통해 반역, 쿠데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왕실은 부모나 신과 같이 제사를 받아야 하는, 즉 경배와 영광을 받아야 하는 특수한 계층, 즉 하늘에서 내린 신과 대동한 가문임을 과시하고 그 앞에 충성하도록 강요하는 통치지배술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런 조상제사의 기원을 효도의 최고라 여기고 이것 아니면 불효자가 된 것처럼 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종교의 폐단입니다.

이제 유교의 제사(祭祀)와 기독교의 예배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진정으로 부모공경이고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인가를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사의 대상은 죽은 조상이지만 예배의 대상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효도이지만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서는 아무것도 올 수 없지만 살아있는 대상은 풍성한 삶을 줍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모가 살아계실 동안에는 최고를 다하려 합니다. 사후(死後)에도 부모님들을 기리며 추모의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는 것이 진짜 부모를 위한 것입니까? 제사를 드리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조상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살아있을 때에 대접을 잘 하고 죽은 후에 나를 기리며 가족끼리 예배하고 찬송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음식을 장만하는데 장남부부가 무슨 잘못이라고 혼자 그 수고의 짐을 다 걸머지고 음식 장만하고 이 일로 싸우고 얼굴에 근엄한 모습을 하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제사는 땅에서만 끝나지만 예배는 영생을 약속합니다. 제사는 땅에서 잘 되자는 것이며 부모의 은덕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부모들을 이용합니다. 그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복 주고 벌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열심을 내는 것은 앞서 말한 종교이데올로기에 우리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세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예배는 우리를 영생하게 할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못됩니다. 부모조차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사랑하고 효도하고 기릴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살아계셨을 때에도 우리와 같이 평범했던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없었던 능력이 생겨나서 우리에게 복과 벌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사는 과거지향적이지만 예배는 미래지향적입니다. 제사는 언제나 과거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래서 원한이 남아있고 부모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현실성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조상제사에 연연하는 국가들이 발전을 못합니다. 물론 지금 중국이 무섭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그건 해외 개방이지 조상 덕이 아니고 중국에서도 조상제사는 우리처럼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닙니다.    

제사에 비해 예배를 드리는 민족은 훨씬 과학적이고 진취적이고 정열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은 로마처럼 타락했던 국가가 신성로마제국이 되고 바이킹의 영국이 신사의 나라가 되고 미국처럼 250년 만에 세계최강대국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래지향적이고, 죽은 조상이 아닌 살아계신 신을 숭배했기에 그 에너지라는 것은 엄청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흥할 수밖에 없고 생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상제사에 연연하고 유교 교리에 충실하던 국가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오지 못할 때 기독교는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 하나님의 일이기에라는 노동관을 제시함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인생을 맡기겠습니까?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종교 집안 아론의 아들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네 명 중에 두 명이 제사드리다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해 놓으신 불이 아니라 다른 불을 드렸다가 죽은 것입니다. 정성도 중요하지만 대상, 방법도 중요합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천주교의 경우, 1715년과 1742년 두 번에 걸쳐 교황 베네딕투스 14세가 교서를 발표했는데 특히 1742년에 유교적 조상 숭배는 성경의 교훈과 어긋나기 때문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1790년경 북경 주교인 알렉산더 고베아에게 조선 천주교회가 제사에 대한 자문을 구했는데, 그의 회답은 조상숭배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에 금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교시로 1791년 전라도의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순교합니다. 이를 신해(辛亥)박해사건이라고 합니다

윤지충은 나는 천주를 나의 대 부모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천주의 명을 어길 수가 없소. 천주의 종교는 신주를 만드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땅을 파고 묻었소. 나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에게 잘못을 할지언정 천주에게 잘못할 수가 없소.”라면서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어간 자가 공식적인 기록에만 1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19391218일 로마 교황 피우스 12세는 교서를 통해 현대에 와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습관의 의미가 많이 바뀌어졌기 때문에 유교에서 조상숭배하는 것은 하나의 시민적 의식(civil rite)일 뿐 종교적인 의식은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으로 지난 80여 년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는 헛죽음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입장은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히 있었던 것으로 이 당시 이탈리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일본의 압력에 의해서 로마교황청이 신사참배나 조상숭배 의식은 종교적 의미가 없는 하나의 시민적인 행사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1965년부터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회에서도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의식을 용납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또한 연옥사상에 근거해서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유교의 죽은 조상을 위해 제사지내는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로마가톨릭교회는 시체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 향을 피우는 것,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것을 허용합니다. 그래서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3일째 위친의 날, 7일째, 30일째 위친의 미사를 지내고, 매년 112일을 모든 죽은 자를 위로하는 위령의 날로 정하고 위령의 미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9:60)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중생하지 못한 천연적인 생명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부모밖에 없기에 죽은 후에도 그 부모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경배해야 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참 경배자요, 예배할 대상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고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영원한 부모에게 먼저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인들에게 조상제사 문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런 뜨거운 감자 속에서 저는 어린 시절과 성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집안에서는 본의 아니게 불효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부모를 효도하고 가문을 위하는 일인가, 점점 우리 집안이 믿음의 가문이 되고 조상제사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문에 복음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워주실 미래지향적인 하나님을 기대하면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따르기로 약속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복 받고 우리 자손들이 복을 받는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생활은 최고의 유산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조상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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