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십 년 동안에
신명기 8장 1~4절
서론
1800년대 초, 세관(稅官)에서 일하던 30대의 미국청년이 직장에서 해고됩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해고당한 사실을 알리고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소"라며 괴로워하자 아내 소피아가 남편을 격려합니다.
"당신은 원래 소설을 쓰기를 원했잖아요? 이제부터 소설을 쓰세요"
"생활은 어떻게 하고?"
"제가 그 동안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아놓은 돈이 있어요. 그 돈이면 1년은 생활할 수 있을 거예요"
"1년 안에 잘 팔리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 해 그는 <두 번 들려준 이야기>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소설을 발표합니다. 그 소설은 대 히트를 칩니다.
소설의 제목은 <주홍글씨>, 그의 이름은 나다나엘 호오돈입니다. 직장에서의 해고가, 인생의 실패가 한 무명의 사람으로 하여금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도록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성 여러분, 직장 그만 두고 소설 쓴답시고 요란 떨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 교회 여 집사님들에게 내가 몰매 맞아요.
제가 어디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마누라도 마누라 나름이죠. 1년 생활비를 저축해 놓은 것은 고사하고 매일 돈 내놓으라고 바가지예요"
지금 우리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는 고통의 길을 먼저 걸어갔던 사람들의 행적을 더듬어보며 잘 넘어갈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 모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입니다.
1. 이스라엘은 왜 광야를 방황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땅을 찾아 행진했던 큰 광야, 그것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로의 전부가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면 빠른 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을까요? 그리고 40년을 방황토록 하셨을까요?
그 까닭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백성들을 괴롭히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을 보면 애굽으로 달아날까봐(출13:17).
*국경 지대에서 애굽 군대를 만날까봐.
그보다는, 하나님은 광야에서 당신 자신을 더욱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백년을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조상의 신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는 여호와를 가르치는 종교교육이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학교에서 백성들에게 자신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바른 신관(神觀)을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가나안과 혼합되지 않고 여호와의 왕국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40년의 세월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놓쳐버리면,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만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경배할 수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나라에 아이엠에프의 경제 광야로 들어가도록 하실까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요.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 관리들의 정책 과오.
*생산성보다 소비성에 치중.
*국민들의 과소비.
*재벌들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
이 모든 것들이 경제 한파를 불러오게 한 주범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가운데 `경제의 광야'로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도덕과 사치에 대해 진노하심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십자가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부해지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하나님을 향한 깨끗한 믿음들을 상실해갔습니다.
하나님은 부자 되게 하시는 분, 하나님은 병 고쳐주시는 분,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 운동권은 운동권대로 하나님을 왜곡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어느 한 부분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호와는 그보다 훨씬 더 고상하시고 거룩하시고 진실하시고... 이런 하나님을 한국교회는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로 시작되는 다윗의 목가적인 신앙고백들을 놓쳐버리고 우리의 신앙심은 점점 세속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른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경제의 광야로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서 백성들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지기는 했어도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하지는 못했습니다.
출애굽시 열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로, 40년의 훈련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역사를 목도.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고,
*메추라기와 만나의 양식을 목격했고 체험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고…
만약 그들에게 광야가 없이 홀딱 가나안 입성을 했다면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무의미하게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신앙심으로 어떻게 가나안 지경의 부족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광야가 있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40년이나 계속되었기에 그만큼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광야에서 성장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경제의 광야를 만났습니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가난했던 어떤 소년이 겨우 여비를 마련하고 미국 행 배를 탔습니다. 뱃삯을 지불하고 나니까 그의 수중에는 겨우 몇 만원밖에 없었습니다. 배 안에는 좋은 식당도 있고 영화관도 있었습니다. 그는 배가 고팠고 지루해서 영화라도 보고 싶었지만 돈을 생각해서 꾹 참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니까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길을 1주일 걸렸습니다. 1주일을 참다가 도무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여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을 만한 것을 시키고 돈을 지불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배 안에서는 모든 게 공짜랍니다. 뱃삯에 다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한가요? 몇 시간 후에는 항구에 도착했으니 더 먹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런 억울함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누리도록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국행인 늘빛 호를 타고 가면서도 하나님을 누리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이 따분하고 억지가 되고 속박을 당한다 생각합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쓰십시오.
하나님을 충분히 누렸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세상에 33년 계시는 동안 하나님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사용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벳새다의 이적
*죄 사함의 은총을
이 모든 게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감히 그것들을 가져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죠지 뮬러는 5만 번의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갖다 썼습니다.
금요일 철야시, 성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는 3조에 해당되는 돈을 갖다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왜 아무 것도 갖다 쓸 수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제의 폭풍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생에 있지 않습니다. 이 고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못하던 새벽기도에도 힘쓰고, 십일조생활들 바로 하고, 집안을 믿음으로 일으켜 세우려는 결심과 새로운 마음으로 분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헛고생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기간을 통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에게는 갖다 쓸 수만 가지의 지혜가 있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이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그 지혜와 능력을 얻으십시오.
교회 다니는 집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돈버는 재미에 교회 출석을 중단했습니다. 그들에게 부자 사촌이 있었습니다. 부자 사촌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성경책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꺼내보지도 않고 지하실에 처박아 버렸습니다.
그들의 사업이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졌습니다. 그들은 지하실에서 성경을 찾아내고 펼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책 페이지마다 25달러의 수표가 끼워있었습니다. 다른 성경 속에도 페이지마다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재기했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이 광야시절에 성경으로 눈을 돌리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결심을 새롭게 굳히십시오.
성경은 바로 보고이며 은혜의 보고이며 축복의 보물창고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는 광야의 길에 놓여있습니다. 이 광야 길은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모릅니다.
대통령은 1년 반 만에 끝내게 해준다고 약속했지만 어떤 이들은 지금 대통령 재임 기간에만 끝나도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이 40년 동안에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모세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에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도록, 발이 부릍지 아니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그들을 광야에서 교육시키신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 바로 40년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아무쪼록 경제 광야에서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교훈의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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