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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욥기열전7] 고난을 극복하려면?(욥기 10:1~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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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열전7]

고난을 극복하려면?

욥기 10장 1~7절

서론

우리는 주일마다 신수성득(神手聖得) 욥을 만나고 있습니다. 욥기 주제는 신수성의((神手成義) 신수성득(神手聖得)입니다. 욥에게 신수성득을 이루는 두 수단은 고난 논쟁입니다. 친구들은 의로움으로 출발하지만 논쟁 과정에서 욥에게 집중합니다.

 

욥을 쑤시니 뭐가 나오겠어요? 구정물이 나오지요! 그래서 판정패 합니다. 교회에서 충돌이 생기고 개인 간에 부부간에 문제가 생길 때 사람에게 집중하지 마세요! 같은 격()의 사람이 됩니다.욥은 진리와 진리가 부딪칠 때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친구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답답하니까 내 의로움을 호소하려 올라섰다가 하나님 앞에서 내 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고 신수성득을 이룹니다.

 

논쟁이 드러낸 진리를 욥은 붙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 간에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에게 집중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과 같은 품격(品格)의 성화된 사람이 됩니다.오늘부터는 논쟁이 아니라 고난을 살펴봅시다. 욥의 신수성득을 돕는데 1등 공신이 논쟁이라면 고난은 2등공신입니다. 논쟁과 고난이 합쳐져 욥의 신수성득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고난의 종류

사람 사는 세상을 불교적 용어로 고해(苦海)라 합니다. 고통의 세계,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요, 사람이 울며 태어나는 것은 생리적인 반응이지만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나가는 게 인생무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만큼 사람 사는 일이 고생입니다. 갈등하고, 돈으로 시달리고, 사별의 아픔으로 슬프고 고통입니다. 고통이 크면 고난이고 더 크면 환란입니다.성경에도 대표적 환란이 나옵니다.

 

야곱의 고난

야곱처럼 인생이 파란만장했던 사람도 드믑니다. 일찍부모를 떠나고 평생을 남들과 경쟁하며 살았습니다. 20년 객지생활, 외삼촌에게 받은 부당한 대우, 사랑했던 여인과의 사별(死別), 네 명의 부인에게서 태어난 이복자식들 간의 암투(暗鬪), 아들들에게 속임 당하는 아버지, 장남 르으벤의 탈선, 외동딸의 성폭행, 이웃과 적대적인 관계

 

고든 맥도날드는 이런 생애를 쫓아가는 삶, 쫓기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요 고난의 생애입니다. 오죽하면 바로 왕 앞에서 자기 생애를 험악한 세월이라 표현했을까요.

 

요셉의 고난

아들 요셉도 파란만장했어요. 소년기에 객지생활을 합니다. 이복형제들에 의해 채색 옷이 벗겨지고 구덩이에서 죽음 직전까지 갑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 은 20에 팔리고 애굽에서 종살이 신세, 보디발 집에서 성폭자라는 억울한 누명, 감옥에서 배신 모든 사건들은 요셉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고난에 못지않게 아들도 엄청 고난을 당합니다.

 

욥의 고난

욥은 부자로서는 드물게 깨끗한 사람입니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무고한 사람에게 최악의 불행이 닥칩니다. 재산을 잃고 장남 집에서 식사하던 열 명 자식들이 지붕이 무너지면서 떼죽음을 당합니다. 욥 자신도 몸에 악창이 나서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죽했으면 부인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까요.

 

교우 여러분! 누구의 삶이 가장 힘듭니까? 욥의 고난이지요. 아들 열이 죽었는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 야곱도 2등하라면 서럽습니다. 인생에서 야반도주를 두 번 합니다. 한번은 형을 속였다 죽을 뻔해서 도망가고 또 한 번은 가족을 데리고 도망 나옵니다. 요셉은 하지 않아도 될 고난입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 떠나면서 고생을 하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 중에 누구 고난이 더하고 덜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 입장에서는 모두 힘들게 살아온 세월입니다, 모두 억울하다고 내가 힘들었다고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겪었던 이야기, 겪고 있는 이야기, 언제 겪을지도 모르는 고난이라는데 인생은 고해(苦海)입니다.

고난의 이유

야곱, 요셉, . 모두 고난당합니다. 그러나 왜 고난당했느냐, 원인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이 왔을 때 내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이 고난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이 고난의 풍랑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고난을 제대로 졸업하면 하나님은 어떤 보상을 주실까?’

 

사업가들이 면밀히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제조업자들이 자기 물건에 대해 연구하듯 우리는 고난이 왔을 때 묵상으로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고난학교를 졸업하고 더 많이 유익한 것들을 얻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빨리 잠재우고 고난에서 많은 것을 배우려면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이 오고 있는가,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잔잔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야곱 요셉 욥의 고난은 원인이 각각 다릅니다.

 

야곱

야곱은 자기 죄와 기질 때문에 쫓고 쫓기는 스트레스 삶을 살았습니다. 욕심, 거짓, 교활, 경쟁심, 고집 이런 것들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지나친 욕심과 경쟁심이 없었다면 왜 야반도주를 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을까요? 험악한 세월은 삶의 방식, 기질로 온 것입니다.

 

이런 야곱식 환란은 누구를 탓할 것 없습니다. 내 죄로 오는 고난이고 환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오랜 세월을 내 탓으로, 내 성질 때문에 오는 고난임을 몰랐습니다. 추격하고 추격당하는 삶, 남들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 생각하고 남을 탓한 것입니다. 그러니 허구한 날 두들겨 맞습니다!

 

요셉

바른생활표 요셉은 자기 죄가 아니라 남의 죄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가 부른 희생입니다. 형들 시기로 힘들었습니다. 감옥행도 여주인의 농간으로 인한 오해였습니다. 감옥에서도 술관원장의 배은망덕으로 2년을 보냅니다.

모두 이웃의 모함과 오해가 부른 것입니다. 어쩜 그의 주변에는 그렇게도 가해자들만 있었을까요? 이처럼 요셉은 내 죄가 아니라 남의 탓으로 억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은 자기 죄 때문도 아니고 남들 탓도 아닙니다. 욥은 사단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사단이 욥을 탐한 것입니다.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니까 사단이 주장합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축복을 거두어 보세요,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 같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허락하셨고 욥은 영문도 모른 체 고난당합니다. 욥의 고난의 원인은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사단이 주는 고난도 없었을 것입니다. 욥은 아직 하늘까지의 믿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1~2).

 

하늘에서 벌어진 일을 땅에서 어떻게 압니까? 그래서 욥과 세 친구들은 자기들 식으로 고난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세 친구들은 야곱식 원인을 주장합니다. 인과응보, 죄 때문에 고난이 왔다는 것입니다. 네 죄를 알렸다! 이에 대해 욥은 요셉식으로 맞섭니다. 남들이 잘못했지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 죄가 있다면 말해봐라!

 

모두들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반쪽짜리 진리였습니다. 어느 한쪽의 지식만을 갖고 상대방에 들이댄 것입니다. 그러니 밤새도록 논쟁을 해도 해결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원인을 제대로 모르기에 치료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고난의 세월입니까? 그 고난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됩니까? 고난 자체만 보지 말고 어디서 고난이 오는가? 왜 나의 삶이 이처럼 힘든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사물을 들여다보는 안경이 있는 것처럼 고난도 그 원인을 살필 안경이 있습니다.

 

누구나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죄와 관계없이 오는 고난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남의 고난에 함부로 간섭하여 결론내리고 정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의 해결법

내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야곱식 환란, 남의 죄로 인해 고난당하는 요셉의 환란, 믿음 때문에 당하는 욥의 환란. 은 해결의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야곱에게 요셉식 해결방식을 요구하거나 욥에게 야곱식 해결방식을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이런 면에서 반쪽진리에 사로잡혀 재난을 주는 위로자(16:2), 쓸모없는 의원(13:4)이 되었습니다.

 

야곱-회개

내 죄로 온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품을 고쳐야 합니다. 남을 이용하고 해롭게 하는 이기적인 성품을 회개하지 않으면 더 오랜 세월을 험악한 세월을 보낼 것입니다. 험악(險惡)은 자기 인생은 험하고 남에게는 악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식들에게 어려움이 생길 때 아버지 자기 때문에 생기는 우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아버지 때문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아버지 야곱은 모두가 다 나를 해롭게 하는도다 인생의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자처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요? 계속 얻어터집니다. 자기만 얻어터집니까? 그런 와중에서 자식들이 피해를 봅니다. 결국은 외동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제야 야곱은 손을 듭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벧엘에서 나를 만나주시고 나에게 축복을 보장해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산다! 회개한 것입니다. 20년만의 일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의 환란은 차츰 수그러집니다. 회개가 환란을 잠재웠던 것입니다.

 

요셉-인내

내 죄가 아니라 남의 죄로 온 것입니다. 아버지의 편애, 형들의 시기심, 보디발 아내의 연정 이런 것들로 오해 받고 추방당하고 옥에 갇히고 죽음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란은 멈춥니까? 회개?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입니까? 내 잘못이 없는데.

 

요셉의 환란을 잠재우는 길은 회개가 아닙니다. 견디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오해를 풀어주실 때까지 묵묵히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찬송)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보기. 이것밖에 없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누가 오해해도 누가 나를 힘들게 해도 묵묵히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환란을 끝내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

욥의 환란은 믿음 때문에 온 것입니다. 어떤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까? 욥의 경외심이 까닭 없이 조건 없이 섬기는 순수한 신앙인가, 아니면 축복해주시니 더 많은 축복을 받으려고 믿는 기복적 신앙, 거래적인 믿음인가, 그걸 드러내기 위해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내가 뭐 잘못했습니까? 고통의 이유와 원인을 찾아 하나님과 씨름할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까닭 없이도 믿는 그 믿음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욥과 친구들은 각자 오해를 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야곱식 환란을 들이대었고 욥은 요셉식의 환란을 당하고 있노라고 억울해 합니다. 다 틀렸어요! 욥은 자기 죄도 아니고 남의 죄도 아니고 훌륭한 믿음 때문에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맞는 해결방법이 필요했는데 논쟁을 하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욥은 논쟁을 통해 더 큰 믿음, 큰 진리-중보자사상과 구속자사상까지 올라가 신수성득의 큰 믿음을 얻었고 세 친구들은 논쟁을 통해서도 반쪽짜리 진리-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던 것입니다.

 

결론

17세기, 음악 신동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궁중음악가 안토니오 샬리에르는 독실한 신자로 불후의 찬미곡을 만들고 싶었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재적 영감과 은사를 믿음도 없고 천박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게 부어주심에 분노합니다. 아마데우스는, 라틴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어떻게 악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는 고민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지면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한테 벌주시는 이유를 몰라 고민했다면 샬리에르는 하나님이 자격 미달의 애송이한테 상을 주시는 까닭을 놓고 고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상을 줄 사람에게는 고난을 주시고 벌을 줄 사람에게는 형통을 주시는가. 그것이 샬리에르의 고민이며 욥의 의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누구식의 고난입니까?

야곱의 환란입니까? 그것은 내 죄 때문에 기질 때문에 험한 것입니다. 방법은 없어요, 회개하세요! 내 성품을 고치세요. 그러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내가 지금 요셉의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까? 남들 때문에 내가 힘든 것입니다. 방법은 없어요, 참으세요. 오해를 받아도 속상해도 참으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날 옵니다.

 

내가 지금 욥의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건 내 죄도 아니고 남의 탓도 아닙니다. 내 믿음을 1등품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회개해서도 안 되고 참아서도 안 됩니다. 믿음으로 솟아올라야 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솟아오르게 한다면 우리 믿음은 정금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수성의(神手成義) 신수성득(神手聖得)입니다. 이걸 위해 <욥기>는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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