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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고난은 아프지만 유익도 있다!(시편 119:67~71)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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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아프지만 유익도 있다!

시편 119편 67~71절

 

서론

세계적인 외과의사로 50년을 미국과 인도의 나병환자들을 치료하는 사역을 했던 폴 브랜드 박사는 필립 얀시와 함께 공동집필한 고통이라는 선물에서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나병환자들에게 무()고통 무()통증은 최악입니다. 불을 만져 화상을 입고 살짐이 떨어져도 통증이 없어 모르고, 도대체 몸 관리가 안 됩니다. 통증을 느낄 때 비로소 살과 뼈들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폴박사에게 고통은 내 몸에, 정신에, 영혼에 이상이 생겼다는 통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회개하고 도와달라는 SOS를 치게 됩니다. 하나님과 데면데면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고통의 사다리를 통해 하나님으로 올라가니 고통은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 하기에는 당해본 사람들, 특히 암()이나 사별의 고통을 겪은 경험자들에게는 쉬운 말이 아닙니다. 설교에서, 책에서 쓰기에 딱 좋은 은혜로운 말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LA수정교회의 담임이었던 로버트 슐러 목사는 평소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늘 감사하라고 가르쳤지만 막상 딸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냥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분들에게 고통은 선물이다, 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장 자살 1위입니다. 하루 37~38명이 자살하는 나라입니다. 왜 자살할까요. 사는 것이 힘들어서 생명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힘들다고 모두 자살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견디어 내고 고난을 선물로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 박사는 인간의 능력을 말함에 지성도, 체력도, 감성지수도 모두 중요하지만 고난을 이겨내는 역경지수가 가장 중요하다, 밝힙니다. 그는 역경에 부딪친 사람의 반응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퀴터(Quitter). 힘든 문제만 부딪치면 포기하고 도망간다. 인구의 20%.

캠퍼(Camper). 도망가지는 않지만 자리에 앉아 현상유지만 하는 사람들로 인구의 60%.

클라이머(Climber). 모든 힘을 동원해서 장애물을 기어 올라가는 20%의 사람들.

스톨츠 박사는 클라이머 능력을 역경지수라고 불렀습니다. 역경지수가 높아야 고난을 이겨내는 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감당할까, 시련이 주는 긍정적 측면, 고난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원을 의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자원(資源)을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베드로는 핍박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라고 합니다. 그 앞에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도 이유 없는 고난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홍수, 태풍, 지진, 해일, 비행기 사고 , 이런 자연적 재해의 고난은 신자들 역시 자연의 세계 속에 있기에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물론 내 죄 때문에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야곱의 고난은 순전히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을 왜 허락하실까? 고난을 지켜주시고 막아주실 수도 있는데! 물론 하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막아주십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막아주신 재앙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우리가 검진하러 갔을 때 , 큰 병원에 가보세요!” 의사의 한 마디였다면 우리 인생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대부분, 그런 말 듣지 않고 잘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많은 재앙을 막아주시다 어떤 어려움을 허용하신 것은, 스스로의 자원(資源)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도덕적인 실수는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세계관을 이동하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나약함을 알게 됩니다. 죄성을 깨닫게 됩니다. 위기를 통해 내 믿음 수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헨리 블래커비는, “신앙의 위기가 닥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는지를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위기는 그가 제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위기 상황을 앞에 두고 내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그가 평소에 누구 중심의 삶을 살아왔는가를 드러내게 합니다.

또한 불같은 고난은 힘겨운 시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합니다. 고난이 아니면 그냥 넘겨버릴 하나님의 속성과 사랑이 고난을 통해 알게 됩니다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성찰의 기회

고난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하기 전에는, , ‘비천해지기 전에는 그릇 행했다! 말씀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내 중심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자기성찰(省察)입니다. 자기성찰은 외부를 향하던 눈과 관심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성찰해보면 내 안에 의로움이, 거룩이 너무 빈약함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에 가슴 치게 될 때 비로소 거룩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성화는 점진적입니다. 다투기, 용서하기, 넘어가기, 죄 짓기, 회개하기 이런 과정을 반복해가면서 성화되어 나갑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2:12)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화는 열성과 정성을 다해서 이루어가야 할 목표입니다아프지만 이게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아름다운 성품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두 꽃병이 특별히 전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두 꽃병들은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고 같은 스타일과 무늬로 만들어졌으나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 있는 예술품의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흐릿한 빛을 낸 체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관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또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전시한 것입니다

 

고난의 불은 성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빛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곡식을 방아에 넣고 찧는 것과 같습니다. 방아를 찧는 목적, 곡식을 넣고 맷돌을 가는 까닭은 겉껍질을 없애고 알곡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알곡을 파괴하려고 방아를 찧는 농부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알곡 신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성결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이 커지면 고난을 견디는 힘도 커집니다. 고난의 상황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믿음이 단단해집니다.

공동체의 연합과 결속

초대교회는 시련이 있기 전 열두 제자 중심의 작은 교단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의 불을 받고 났을 때 열정 집단으로 무장했습니다. 불시험이라는 핍박이 닥치자 불이 붙었고 폭발했습니다. 교회의 성장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세포가 분열해 나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시련을 통해서 구슬처럼 하나로 꿰어졌습니다. 서로가 도왔고 박해를 피해 달아난 사람은 어디서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른 교인들이 돌보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순교하면 다른 교인들이 내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그러니 순교도 할 수 있었습니다. 시련을 통해 그들은 단결했습니다.

우리도 시련을 만나기 전에는 교회는 단순한 종교그룹입니다. 소속감이 별로 없습니다. 시련을 겪어보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신자들 간에 더 큰 연합과 사랑으로 결속하게 됩니다병든 자들을 놓고 기도할 때 교회는 결속됩니다.

 

철학자 파인버그는 아내의 질병으로 오랜 세월 슬퍼하며 지냈던 경험에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가 견딜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다른 신자들이 정말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것 같고 무력한 감정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과 다른 신자들이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러기에 시련은 서로를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느끼게 해 줍니다. 믿음은 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서 성장하려면 너무 더딥니다.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좋은 것을 공급해 줍니다고난 중에 다른 신자들과의 우정이 더 깊어지고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선한 역사들이 나타남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튼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으로 학생 열두 명과 교사가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난사한 총에 죽었습니다. 그 중의 한 여학생은 머리에 총을 겨누고 하나님을 믿느냐? 라는 질문에 믿는다, 용감히 대답했고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대할 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해석과 미래지향적인 해석입니다. 과거지향은 ! 왜 이럴 수가!” 여기에 매달립니다. 그러다보면 믿음이 떨어지고 약화됩니다. 미래지향적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더 큰 것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일로 지역 교회 청년들의 모임이 활성화되었고, 교사들은 온전한 크리스천이 되지 못했음을 학생들에게 사과했고 죽음 당한 학생의 한 아버지는 전도자로, 다른 아버지는 총기 규제 운동가로 변신했습니다. 악한 행동을 통해서도 선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결론

어린 소녀가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손가락이 아픈 것만큼 튼튼해지기도 한단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선생님!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아픈 것 같군요.”

 

고통은 아픈 것만큼 단단해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모두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평탄했던 삶이 무너지고 오랜 방황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고통의 이유를 알기까지 세월이 많이 걸리면 때로는 삶이 위태롭고 버겁습니다. 불행이 선()의 모양새로 나타나기까지는 이외로 긴 시간이 흐를 수 있습니다. 평생을 아예 답을 얻지 못하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해 준다는 말은 때로는 공허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게 고난이 누군가에게는 유익도 될 수 있습니다. 내 고난을 통해 누군가는 믿음이 바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리처드 로어의 말로 설교를 마칩니다.

 

해답을 가졌다는 것이 믿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무런 해답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조금만들 더 견디어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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