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누가복음 1:46~48)

by 강정훈말씀닷컴 2024. 1. 16.
반응형

 

참고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누가복음 1:46~48

 

서론

(2020년 설교) 코로나 여파로 2.5단계가 시행 중이고 예배는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장로님들 중심으로 20명 미만으로 예배 중입니다. 성도님들은 가정에서 영상을 보면서 예배함으로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성탄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성탄절 설교를 하는 마음이, ‘어찌 이런 일이 갑갑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배당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예수님이 없으신 것도 아니고 성탄절 공동체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하여 오신 그 분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는 성육신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인류사에 큰 기쁨이며 우리 개인들에게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 분으로 세상은 새로워졌고 우리는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방문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정현종은 시() ‘방문객에서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하략)

 

그래요! 예수님의 오심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방문의 1차 대상은 갈릴리의 순결한 처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냥 한 아기가 아니라 아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갖고 왔습니다. 하나님이셨고 사람이셨고 구세주의 신분으로, 장차는 심판주로 마리아를 방문했습니다. 이후 마리아는 전혀 다른 생애를 살게 됩니다. 오늘에는 인류 역사에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됩니다. 아기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습니다.

마리아. ()에서 그 분을 만나다!

마리아가 어마어마한 그 분을 만난 것은 눈에서보다, 손의 악수보다, 그 분의 가르침을 듣는 귀보다 태()가 먼저였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복중에서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복중에서 만난 그 아기는 어마어마한 아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6개월 된 태아(胎兒) 세례 요한이 벌써 복중에서 알아보고 팔짝 팔짝 뛰어 놀아 태동을 느끼게 했습니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였기에 아론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인 엘리사벳으로 성령 충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4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6개월짜리 태아(胎兒) 요한이나 엘레사벳에게도 그 아기의 방문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1개월짜리 태아 아기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고지(告知)와 엘리사벳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아기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분이 자기의 태를, 생애를 방문하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 날 이후 마리아의 삶은 아기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부모는 걱정하고, 이웃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만 마리아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아기만을 생각합니다. 단순한 미혼모의 아기였다면 불안하고 혼란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혹시 강제 임신을 했다면 수치심과 함께 아기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함으로 바짝 말라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누가 뭐라던 잘못이 없습니다. 그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임신 이후부터 아기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며 조심합니다.

물론 배가 불러 올수록 걱정도 두려움도 커집니다. 아무리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해도 누가 믿어줍니까? 요셉은 믿어주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기는 복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고 태어나면 더욱 구박덩이가 될 것입니다. 미혼모의 자식이라고, 사생아(私生兒)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겠지요. 요즘 같아서는 부모나 주변에서 낙태를 하라거나 출산해서 입양을 보내라는 권고도 받을 것입니다. 시댁이 될 부모로부터 그런 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음성을 기억하면서 태중의 아기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가! 걱정마라! 엄마가 지켜줄께!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지켜줄게~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분께서 내게 맡겨주신 내 아기니까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를 배속에 품고 아기를 생각하고 아기를 사모하고 자신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46~).

 

내 영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임신한 마리아는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니 점점 마리아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10개월을 견디어낸 것입니다.

그랬는데 출산하고 나서 되돌아보니 내가 아기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태중의 아기가 나를 지켜주었고 내 확신을 지켜주면서 믿음을 키워내고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게했더라는 것입니다. 출산이 되지 않아도 마리아는 이미 성탄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요! 성탄의 아기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코로나 시대에 맞이하는 성탄절 시즌, 내가 주님을 지켜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호하고 교회를 지키고 예배와 주일을 지킨다 생각했는데 성탄의 의미는 그게 아닙니다. 태중의 아기가 든든하게 마리아를 지켜준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었고 내가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일이 나를 지켜주었고 내가 예배를 사수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나를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성탄의 교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 시선(視線)에서 그 분을 만나다!

마리아는 열 달이 되었을 때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독점하고 싶었겠지요? 하나님을 품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자연의 순리를 좇아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아들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를 눈앞에서 보는 이들이 매일 매일 그녀에게는 성탄의 기쁨입니다!

 

그때부터 33. 마리아는 태중(胎中)의 아기가 아니라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기쁨과 감동과 자랑스러움과 신비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슬픔도 많았습니다. 아들이 12세 때에 3일을 잊어버리고 아들이 이단이라, 귀신에 속했다 비난 받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앞에서 울어야 하고 참 다사다난(多事多難) 33년입니다.

 

그래도 아들 때문에 33년 동안 행복하고 자랑스럽고 기뻤습니다. 아들은 30년을 부모를 위해 일을 했습니다. 엄마 마리아를 위해 가장 멋진 식탁을 만들고 아늑한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엄마 키높이의 싱크대를 만들어드렸습니다. 효성스런 아들입니다. 나머지 3년은 세상을 위해 일했습니다. 보리떡과 물고기로 5천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고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해서 이기고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칭송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 11:27)

예수님을 열 달 동안 태에서 가졌던 마리아! 젖을 물렸던 여인이 마리아!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능력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마리아는 지금 곧 아기 예수를 낳은 기분으로 행복해 합니다. 그녀에게는 매일이 성탄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내 눈앞에,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아들은 내가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열 달 동안 참고 견디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 키웠고 해산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태를 빌려 세상에 오신 성육신 아들입니다. 아들이 가르침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아들이 행하는 능력 앞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마리아는 그동안의 수고와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사를 바꾸어 찬양했을 것입니다.

 

내 영이 주님께 감사합니다! 내 영이”(46절 개사)

성도 여러분! 내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 속에서 함께 하면서 세상에 보여주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직도 예수님을 내 속에서 숨겨두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세상에 예수님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역사와 교훈과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제대로 예수님을 믿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 소망(所望)으로 그 분을 만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세상을 떠나자 마리아의 일생은 다시 예수님 없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내고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요? 수십 년은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마리아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33년 전의 아기 예수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보여주었던 예수님의 이적과 교훈의 향수에 젖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예수를 아들이 아니라 재림주로서 심판주로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들 생일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성탄보다는 재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리 찬양했을 것입니다.

 

내 영이 재림을 기다립니다! 내 영이”(46절 개사)

 

천사의 고지(告知)로 열 달을 기다렸던 것처럼 마리아는 재림을 고대하며 살았기에 매일 매일 성탄이 주는 축복의 세월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정신을 초대교회가 3백 년 동안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성탄절을 성대히 지켰다면 성경에 기록이 나왔을 것입니다. 성경에 성탄절에 관한 내용이 없음을 보면 거의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탄절은 언제부터 지켜졌을까요? 우리가 지키는 12 25일 성탄절은 로마교회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태양신 축제 농신제(Satunalia) 25일에 열렸습니다. 서로 방문하고 가면을 쓴 채 길거리에서 술잔치를 거하게 벌였습니다. 축제 명목으로 온갖 방탕과 죄악이 무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두면 교인들이 세속화 영향을 받겠다, 이 날을 예수님의 성탄일로 하자 소위 맞짱 뜬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축제문화에 들어가 변화시키려 했고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성탄절 날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탄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임마누엘이 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재림이 없는 초림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탄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일으켜 세우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재림절이 되어야 합니다. 재림신앙으로 성탄절을 맞아야 진짜 성탄절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구한말 무너지는 대한제국을 그린 드라마 중에 <미스터 션사인>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무너지는 조선을 지키려 있습니다. 어떤 이는 총으로 어떤 이는 칼로 어떤 이는 붓으로 조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나름대로 애국한다 했지만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었습니다. 당시와 상황을 조선 최고 명문가 애기씨 여주인공 고애신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그래요! 지금은 영적으로 구한말 같은 상황 같아요! 코로나만이 아닙니다. 동성애 문제, 차별금지법 통과로 인한 종교 간의 분쟁, 이념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은 더욱 격변하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런 때에 한 사람이 아기 예수가 들어옴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대한민국에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수용하고 서로 박수를 쳐주게 하시는 어마어마하신 분을 맞이하는 성탄절로 만들어야 합니다.

 

2천 년 전에 마리아에게 한 사람이 들어왔을 때 아기 예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들어왔습니다. 어마어마한 아기와 함께 했던 삶은 한 여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부서지기 쉬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마리아는 매일매일이 아들이 주는 어마어마한 성탄절이 되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고대하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33년은 어느 한 날도 눈부시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로 살았던 33년의 모든 날이 내게는 소중했던 시간들입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리고 내 아들이시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