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모교회, 초가예배당은 사라지고 새예배당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창세기 22장 9~19절
서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아브라함이라고 봅니다. 아브라함은 3대 민족의 조상입니다. 이스라엘(1,800만 명 정도), 20여국의 중동 국가들(4억 2천만명)과 이슬람을 믿는 아랍민족… 여기에다 믿음의 자손인 영적 이스라엘… 4천년을 모두 합하면 그 인구는 엄청납니다.
아브라함은 3대 종교의 시조입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도 포함됩니다. 신자만 해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합하면 57.2%, 유대교를 합하면 세계 인구 중 10명에 6명은 아브라함의 종교적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17절,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어떻게 이런 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단한 복을 받은 원인은 무엇일까요? 16절이 답입니다.
아브라함,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따로 남겨두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려고 챙겨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쓰려고 챙겨둔 것은 매우 귀한 것! 남을 줄 수 없는 거예요! 독자를 어떻게 남에게 줍니까? 자식들이 많아도 남에게 주라면… 그것도 지금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데 어떻게 내줍니까? 아브라함은 그 아까운 것을 내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감동을 먹(?)습니다.
12절,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16절에 반복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좋은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한 마디로 나옵니다.
“내가 쓰려고 아껴둔 것!” 그걸 하나님께서 달라 하시면 내어드리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려고 챙겨두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달라, 나를 위해 그 돈을 쓰려고 챙겨두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달라, 내 인생에 어떤 목표를 두고 챙겨두었는데 하나님이 그걸 달라는 것입니다. 있으나마나한 것을 드리면 작은 믿음이고 내가 쓰려고 챙겨두었던 정말 아까운 것을 아깝다 하지 않고 내어 드리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큰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인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집을 드리려던 다윗 왕(삼하 7:1-17). 태평성대를 이루니 나단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2절,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선지자는 3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최고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다윗의 마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건축에 아끼지 않고 바치겠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아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마음씀씀이에 감동이지만 그 마음만 받겠다. 그 대신에…
9절,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아끼던 것을 드리려 했더니 하나님께서 위대한 보상하시겠다! 그게 앞에 있는 큰 축복입니다.
땅을 드린 아라우나(삼하24:18~25).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오르난은 히브리식 표기 대상 21:15) 다윗 왕의 말년에 왕국의 위용을 자랑하려고 인구수를 계수하느라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재앙이 끝났을 때 갓 선지자가 조언을 하지요!
18절,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왕이 방문하고 사정을 말하자 아라우나는,
23절, “…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추수한 곡물의 겨나 지푸라기 등을 바람에 날려 보내야 하기에 대부분 높은 곳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동북편 언덕이니 땅값이 많이 나갑니다.
아라우나는 18절, ‘여부스 사람’, 예루살렘 성의 원주민입니다(5:6-8).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입니다. 그 땅을 남에게 양도하는 것은 조상님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팔라고 하자 공짜로 드리겠다, 합니다. 자기를 위해 아껴두었던 것이지만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게 하는 일이라면 돈도 받지 않고 아낌없이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겠어요? 이곳은 오래전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낌없이 바쳤던 모리아 산이고 아끼고 모아두었던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그 정신을 아라우나는 이어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성전건축을 허락받은 솔로몬 왕이 바로 이 땅에 성전을 건축합니다(대하 3:1). 내 땅에 성전이 세워지다니,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가문의 영광입니까?
인생을 드린 마리아(마26:6~13).
언니는 음식 만드느라 분주한데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말씀에 크게 은혜를 받고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주님에게 무언가 드리고 싶었습니다.
7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요한은 ‘지극히 비싼 향유’로 마가복음은 나드향이라 합니다. 나드향은 인도산 식물 나드의 뿌리에서 얻어지는 휘발성이 강한 향인데, 매우 귀하고 비싸서 왕과 같은 고귀한 이들에게 바쳐집니다. 에디오피아 왕에게 보낸 다섯 개 선물에 나드향이 포함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향유 한 옥합 가격이 ‘300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이기에 요즘 일당 10만원으로 계산하면 3천만 원 이상 됩니다. 대단한 액수입니다.
여인의 향유는 7절 옥합에 들어있습니다. 옥합은 몸체가 둥글고 목이 긴 모양으로 인봉(印封)한 주둥이를 깨고 모든 향유를 꺼내려면 옥합을 깨트려야 합니다. 향유는 여인에게 재산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식 초야에 이걸 바르고 신랑을 맞이하던지, 신랑의 몸을 이 향유로 바르고… 첫날 밤을 보낼 생각으로 아끼고 아껴왔던 것일까요, 여인은 이걸 깨버린 것입니다.
그건 바로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치는 행위와 같습니다. 자기 인생의 뭔가를 목표하고 아껴두었던 자산이었던지 결혼을 준비용의 향유든지… 자기를 위해 아껴두었던 천만원짜리 적금을 아낌없이 깨어 주님에게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매우 기쁘게 이를 받으셨습니다.
13절,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개역성경에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다 기념하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으면 당신의 피와 살을 기념하라는 것처럼 같은 선상에서 여인의 사랑, 희생, 자신을 위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을 내 드리는 그 마음을 널리 전하라 하셨겠습니까?
새 무덤 드린 요셉(마27:57~61). 요셉은 죽으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을 내드립니다.
59절,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절,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세마포는 자기 죽음을 위해 아껴두었던 것입니다. 무덤도 자기 죽음을 위해 아껴두었던 새무덤입니다.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를 위해 쓰려고 아껴두었던 수의(壽衣)와 새 무덤을 기쁘게 주님께 드렸습니다. 결과는, 자기 무덤이 부활 무덤이 됩니다. 자기가 죽으면 그 무덤에 묻힐 텐데 주님의 부활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방문할 것입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에 사람들이 환영하면 나귀도 덩달아 환영을 받는 것처럼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영광과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인가? 내가 쓰려고 했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요 헌신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말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예배형식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를 위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요 행위입니다.
선교사들은 아낌없이 그들의 생애를 드렸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예배당들은 자기를 위해 아껴두었던 것을 바친 분들의 헌물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주일성수의 믿음은 자기를 위해 아껴두었던 시간들을 주님을 위해 바친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의 역사입니다. 십일조 역시 자기를 위해 아껴두었던 물질을 주님을 위해 드린 사람들의 자기 포기의 산물입니다.
그러면 영원 전부터 아껴두었던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얼마나 좋은 내세를 준비하고 상급으로 주시겠습니까? 그것을 믿고 행동을 보이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 진짜 믿음입니다. 그걸 체험해야 제대로 믿음이 나옵니다.
살다보면 인생에 위기가 있는 것처럼, 목회의 위기도 몇 번은 찾아옵니다. 내 경우에도 인생에서 큰 거 얻어맞아 비틀거렸고 교회도 개척 이후에 알게 모르게 시련과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위기를 넘기게 해주셨고 견디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내가 힘들 때는 내 옆에 항상 여러분들이 있었습니다. 일찍 고향을 떠나고 내 부모도 없는 슬픔의 현장에는 여러분들이 있어 믿어주고 힘이 되고 견디어 주어 잘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아시잖습니까? 사람의 도움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음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절묘하게 받을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에게는, 12절,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아끼지 않고 주시겠다! 그것이 바로 3대민족의 조상으로 3대종교의 시조(始祖)라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받아 아낌없이 내주신 것입니다.
결론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요?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은 결혼식의 신랑자리, 목사 안수와 늘빛교회의 창립과 위임목사의 자리도, 신춘문예 당선의 날도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은 10살 유년의 시절, 바로 그 날입니다.
제주도에 태풍이 몰려와 시골 초가예배당 억새지붕이 날아갈 때, 교역자도 없이 누구도 돌보지 못한 예배당을 생각하면서 10살 남짓한 초등학생이 거기가 어디라고 그 지붕에 올라가 우리 예배당이 날려가지 못하게 억새 지붕을 붙들고 예배당을 지켜달라고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도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부모님께 야단만 맞았지만 이후로 내 인생에서, 위기에서 하나님은 늘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아끼지 않았으니 나도 너를 위해 아끼지 않겠다!”
“네가 나의 집을 지켜주었으니 나도 네 집을 지켜주겠다!”
“네가 나의 예배당을 지켜주었으니 나도 네 예배당을 지켜주겠다!”
그거 하나로 살아왔고 견디어 왔습니다. 나는 한 번만 드렸는데 하나님은 평생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나는 조금만 드렸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그 자손이 되는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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