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사냥꾼의 올무, 코로나 바이러스(시편 91:1~7)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11. 18.
반응형

 

사냥꾼의 올무, 코로나 바이러스

시편 91편 1~7절

 

서론 

코로나 바이러스의 꺼진 불씨가 되살아나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확진자들이 발생해서 다시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석 달 남짓 보내면서 코로나가 겨냥하는 것은 교회가 최종 목표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공격한 코로나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습니다.

 

순기능은, 신천지집단을 철저히 파헤친 것입니다. 기독교가 10년을 싸워도 안 될 일을 코로나는 한 달 만에 신천지집단을 반()사회적 이단으로 단죄함으로 복구불능의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이만희 교주가 90세입니다. 이번에 너무 놀라 활기찬 활동도 못하겠고 넙죽 절하는 그 모습에서 신천지신자들은 실망도 했을 거예요. 신천지는 교리 때문이 아니라 교주에 대한 신뢰 상실과 교주 사후에 교권 및 엄청난 재산 다툼으로 사분오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역기능은, 예배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신천지가 기독교 이단이라는 사실로 교회를 보는 의심의 눈길, 신천지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신자들과 그들과 연관된 신도들로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들이 나오자 교회가 수퍼 전파지가 되나 의심을 받을까봐 예배를 중단하는 초강수를 든 결과 지금 한국교회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끼친 악영향 중의 하나는 정부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강제적으로 예배를 폐하고 교회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입니다.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해도 교회는 어떤 법에도 호소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위에 국민들의 민심, 괘씸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전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교회가 전혀 다른 교회가 된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 감염질환입니다. 바이러스(virus) 병을 일으키는 작은 미생물 세균보다도 작은 전염성 병원체입니다. 라틴어로는 (poison)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입니다. 

전염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천연두로 3억 명이 죽었고,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했습니다.

본문에도 전염병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쎈 전염병입니다.

3, “심한 전염병에서

개역성경에는 극한 염병’, 개역개정판에서는 심한 전염병 직역하면 치명적인 염병입니다. 얼마나 치명적인지, 7절 왼쪽에서 천명이 죽어나가고 오른 쪽에서는 만 명이 죽어나갑니다. 그것도 시와 때를 가리지 않습니다.

5,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밤에도 찾아오고 낮에도 찾아오고

6, 어두울 때도 펴지고 밝을 때도 닥쳐오고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근래에 들어 가장 전염성이 강합니다. 감염자의 침방울(비말)이 호흡기나 눈··입의 점막으로 침투되어 전염됩니다. 통상 이동거리는 2m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을 통해 전염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2 19일 공기 중에 떠 있는 고체 또는 액체 미립자(에어로졸)에 의한 전파 가능성도 인정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누적 사망자는 5 21일 기준으로 326,752명입니다. 한국은 금요일 현재 확진자 11,142, 사망자는 264명입니다. 아시아 중에서 몽골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은 사망자 0이고, 홍콩이 4, 대만 7, 태국 56, 일본은 777, 중국은 4634명입니다. 유럽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탈리아는 가장 사망자가 많은 국가로 32,486명입니다. 강한 전염성에 비해 치사율은 높지 않지만 영국-이탈리아(14.4%) 스페인-네덜란드는 12%, 높은 수준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감염되면서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기에 쉽게 백신이 개발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감염 때문에 더욱 두려움에 떱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70인역)에는

3, 심한 전염병이라는 말을 파괴적인 전염병(혹은 말로)으로 번역합니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전의 유행병이었던 사스나 메르스, 신종풀루보다 훨씬 파괴적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나옵니다.

 

이런 쎈 전염병 앞에서 시편 91편 기자는,

6절 하반절, 두려워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지존자는 가장 높은 자로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어떤 풍파가 불고 대적들이 아무리 악한 음모를 꾸며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초월해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입니다.

은밀한 곳 비밀 장소로 누구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곳, 성전의 지성소를 암시하는 말로 어떤 영향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는 안전한 곳입니다.

 

또한 신자들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들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개로 덮는 어미 새의 품을 말합니다.

 

4, 그가 너를 날개깃으로 덮으시리니

그래서 어떤 전염병이 일어나도 6,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에 의지하기보다는 너무 정보에 의지했고 자녀들의 말에 신경을 쓰게 되고 결국 믿음의 휴업 기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라는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의 무대는 인구 20만의 오랑시(). 죽은 쥐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합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도시는 봉쇄됩니다. 모두가 독 안에 든 쥐가 됩니다.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면 환자는 강제로 입원되고 가족은 강제 격리됩니다. 식량보급 제한, 휘발유 배급 중단, 절전, 등화관제 로 오랑 시는 그야말로 생지옥입니다.

 

페스트 전염병 역병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도피적 태도입니다. 기자 랑베르는 취재차 우연히 들렀다가 발이 묶입니다. 그는 파리에 두고 온 젊은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초월적 태도입니다. 신부 파늘루는 이 재앙이 사악한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 규정하며, ‘아무리 잔인한 시련조차도 유익할 것이라 역설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적 입장입니다.

 

-반항적 태도입니다. 의사 리유는 최선을 다해 이 역병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체념하거나 신에 기대지 말고 인간 스스로 운명에 도전, 즉 반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유는 소설의 서술자(주인공)입니다.

소설 속의 인물을 통해 까뮈는 고발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은 환자, 페스트 환자다!”

 

구약의 히브리인들은 전염병이 왔을 때 91편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숨어들었는데

전염병을 마주했던 초대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이 내용은, 이상규 교수님의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3세기 동안 기독교 초기교회는 크게 두 차례의 대() 전염병이 발병합니다.

첫 번째는 2세기 중엽,  165년 겨울에 발생한 역병입니다. 로마제국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에 군부대에서 발병한 이 역병은 15년간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병으로 황제도 사망했습니다.

 

두 번째 역병은 249년 시작되어 262년까지 계속된 전염병으로 홍역으로 보입니다. 로마시에서만 하루에 5천명,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했다고, 추정합니다.

 

이런 역병이 창궐했을 때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전염병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당시 대() 역병의 상황에서 종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재앙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자연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오늘에는 전염병 상황을 종교가 답해야 할 책임은 없지만 초대교회 당시, 1세기~3세기에는 이런 고난과 자연재해에 대해 종교가 답해야 한다, 믿고 있었습니다.

이방 종교는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해답은, 도피였습니다. 사제들은 피신했고, 고위층 관리들이나 부유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숨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버렸고, 자녀도 부모를 버렸습니다. 병든 자녀들과 부모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두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 why?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교회는 재앙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 how? “재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건 도피가 최상이 아니라 보살핌과 배려라는 사랑으로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 가르쳤습니다. 이교도들은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가족과 친지들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버려지고 매장하지 않는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만 살아남으려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병의 현장에서 감염된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고 소생하도록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교회는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사랑과 용서, 희생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들은 기독교신자들을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파라볼라노이)라 불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장에서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기록입니다.

 

결국 역병은 인구감소와 식량부족으로 로마제국의 멸망을 앞당겼지만 기독교는 오히려 부흥해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센 전염병을 맞는 위기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믿음의 성숙을 더 키워낸 시편 91편의 저자처럼 초대교회는 역병을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명을 주관한다는 생사관과 원수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 주므로 전도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영국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정립한 곳은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실이 아닙니다. 흑사병으로 대학 휴교령이 내려진 탓에 2년간 강단을 떠나 시골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뉴턴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진 발견의 전성기라고 회고했습니다. 전염병이 강제한 한 천재의 자가 격리가 결국에는 인류 문명에 큰 선물을 안긴 셈입니다.

중세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흑사병은 농노이탈로 봉건제 붕괴를 촉발했고 농노들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근대 자본주의 토양이 만들어집니다.

 

1920년대 스페인 독감 창궐은 미국의 산업 발전에 기여합니다. 노동력 감소를 벌충하려고 설비 투자를 급히 늘린 덕에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글로벌 산업 패권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지나치게 두려워 말고, 보건적인 예방과 방역에만 몰두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정결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자숙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없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하나님보다 과학을 믿고 물질과 쾌락 만능주의에 빠져 살지는 않았나, 자녀가 내 우상이고, 취미가 내 우상이고, 재물이 내 우상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강하고 능한 것 같아도 바이러스 하나에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무릎 꿇고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해야 합니다. 신분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확진자 1명으로 천여 명이 떨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그 한 사람들 그 한 사람의 선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많은 환자들을 구해냈고 코로나19로 오히려 한국의 대처방법이 세계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되지 않고 글자를 살짝 바꾸면 '복'이 됩니다. 그것이 복어()가 '독국'이 될 수도 있고 '복국'이 될 수도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결론 

루마니아 태생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는 공산통치 하에서 정식재판도 없이 14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하다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성경에 '걱정마라, 두려워 말라, 염려마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지 알고 있느냐?"

 

범브란트는 성경에서 찾았더니 '두려워 말라'는 류가 366번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걱정말라,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 는 말을 366번 기록한 뜻을 알겠느냐? 1 365일 하루도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나의 권면이니라!"

"그런데, 하나님! 1년은 365일인데 왜 366번입니까?"

"4년마다 윤년이 돌아오면 2 29일이 되어 그 해는 366일이 되지 않느냐?"

 

그때에 범브란트 목사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치고 감사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계속 닥쳐오는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나 여러 전염 역병들은 사탄의 올무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믿음을 날마다 무너뜨리려 들 것입니다. 인간은 작은 전염병 하나에도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밤의 공포와 낮의 재앙으로 우리는 항상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예배를 중단하고 숨을 것입니까? 이런 경우를 3절은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는 일이라 단정합니다. 올무는 올가미입니다. 사탄은 코로나라는 올가미를 우리에게 덫을 놓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배를 중단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두려워해서만 될 일이 아닙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예배로 나가야 합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세상을 향해 쎄게 나가기도 해야 합니다. 막사에 숨은 사울과 그의 군사처럼 떨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생쥐 심장이 되면 항상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시편 11편의 새들처럼 화들짝 놀라며 산으로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면 단단한 신앙인이 되겠습니까? 어려울 때 하나님만이 나의 은밀한 처소이며 전능하신 그 날개 그늘에 피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술대 위에서도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을 가리켜 세상은, 우리를 파라볼라노이,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칭호를 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인 것입니다   

코로나의 올무에서도 하나님의 긍휼로 끝까지 잘 견디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