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아버지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창세기 27:5~14)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11. 16.
반응형
어버이주일

 

아버지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창세기 27장 5~14절

 

서론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설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하는 비율은 어떨까요? 아버지의 날은 20%, 어머니의 날은 80%의 비중? 어머니는 자잘한 수고를 하고 아버지는 큰 수고를 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들이 우리 마음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못합니다.

(2020년) 비()영어권 102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조사했더니 1위가 mother(마더) 2위가 passion(열정), 3 smile(미소), 4 love(사랑) father(아버지) 70번까지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늘 다정다감하고 아버지는 애정표현이 약합니다. 어머니의 돌봄과 사랑은 집안에서, 눈앞에 있고 아버지의 희생과 수고는 집밖에서, 눈 밖에서 일어납니다. 자식은 어머니의 태중(胎中)에서 열 달을 지냅니다. 출생하면서 탯줄은 끊기지만 심리적으로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그립고 미안하고 애틋합니다. 상대적으로 아버지 존재는 자식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배고팠던 보릿고개 시절, 36년 일본의 압제, 6.25 전쟁, 이산(離散)의 고통, 독재정권 이런 고통을 견디어낸 세대입니다. 대한민국이 번영해서 살만하니 자식들에게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느낌, 아버지 자리가 참 버겁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애환을 다룬 영화가 윤제균 감독,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주연의 <국제시장>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덕수의 꿈, 원양어선 선장이 되고 싶었으나 자식과 동생들 위해 선장을 포기하고 독일광부로, 베트남 파병용사가 되어 자식들을 키워내지만 살만하니 아버지의 고생과 수고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식들은 아버지는 안중에 없고 오직 어머니에게만 애틋한 사랑을 보입니다. 용돈을 드려도 아버지에게 드리지 않습니다. 손주들도 할머니에게만 달려갑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이가 없고 분하고 할아버지는 그만큼 외로운 것입니다.

 

우선 영화를 보시지요!(영화상영 8분. 늘빛교회 홈피에 들어가면 영화있음)

성경에서도 아버지들은 외롭습니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성공했으나 외롭고 자식들을 위해 온 몸으로 살았지만 자식들과 아내에게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부재(不在), 그 대표적 인물이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 하나님의 약속과 오랜 기도로 얻은 기대주 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청소년시절은 부모의 기대에 잘 성장했습니다. 성품으로는 온유함, 신앙으로는 모리아산에서 죽을 각오로 번제가 되고 농사를 짓되 백배를 얻을 만큼 수완이 좋았습니다(26:12, 13).

 

그런 이삭은 진정 행복한 아버지로 살았을까요? 남편으로, 아버지로 성공적 생애를 살았을까요? 화이트는 <믿음의 발휘>에서 이삭을, 이류(二流) 믿음이라 평합니다. 왜 일류로 출발해서 이류로 살아버렸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너무 걸출했습니다. 아버지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굉장한 모험가입니다. 국가의 건국자이면서 이스라엘-중동의 시조이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출발점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이삭은 위축되고 쫄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 야곱은 호걸입니다. 자유분방하고 수단 가리지 않고 성공해 열두 부족의 조상이 됩니다.

 

이삭은 이렇게 걸출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신세가 됩니다. 위에서, 아버지의 권위로 눌리고 아래, 아들은 너무도 대단해서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왜소해지고 소극적이 되고 2류 신앙, 2류 남편, 2류아버지, 인생도 2류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용두용두(龍頭龍頭), 아들 야곱은 사미용두(蛇尾龍頭), 이삭 자신은 용두사미(龍頭蛇尾), 이류인생입니다.

 

일류가 될 수도 있었던 이삭이 이류인생으로 전락한 것은 자신의 성품에서도 기인하지만 사실은 부모와 아내, 자식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신앙적으로는 굉장하지만 가정적인 남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마엘은 비록 후처가 낳은 아들이기는 해도 첫 아들이고 성향도 아브라함과 잘 맞습니다. 이삭은 성품이 온유한 사람으로 평화주의자입니다.(26:19~22). 큰 인물은 못된 그릇입니다.

 

이런 성품이니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에 대한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고 활달한 형과 비교 당함으로 오는 자격지심을 이삭은 느끼면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동적입니다.

 

어머니 사라도 늙어 얻은 아들이라 품안에서 키웁니다.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희롱 당하는 것을 보고 뚜껑이 열려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정없이 쫓아버릴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고 그 어머니 치마폭에서 이삭은 남성다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과는 완전히 성향이 다릅니다. 한마디로 여장부입니다. 집안의 대소사 등을 혼자 처리합니다. 남편에게 선택이나 결정권을 주지 않습니다. 혼자 독점하고 남편을 조종합니다. 그러니 이삭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삭이 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집안의 모든 일은 부인에게 맡겨놓고 음식이나 탐을 내는 노인으로 늙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1절 눈이 어두워 사방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부인에게 놀아나고 맙니다.

리브가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그녀의 관심은 시아버지에게 내려오는 엄청난 축복-땅과 대민족과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이 전부입니다. 그걸 얻으려 시집을 왔고 그걸 얻기 위해서는 누구를 요리하던 어떤 수단을 동원하던 손에 놓고야 마는 성공지향의 여성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서는 둘째 아들과 작당하여 남편을 속일 수도 있는 여인입니다. 그게 본문입니다.

 

6,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차 저차, 하라는 것입니다.

남편 알기를 우습게 여깁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 아니라 눈이 멀고 분별력도 잃었으니 음식이나 입에 넣어주면 그만인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버지 이삭은 얼마든지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젊은 날, 모리아산에서 죽기를 각오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빛내주었던 믿음이 좋은 청소년입니다. 가업을 물려받아 100배나 수익을 올리는 성공적인 경영인 CEO입니다. 그런데 부인에 눌려 우스운 아버지로 전락합니다. 부인에게 속아 장남에게 가야할 축복을 차남에게 해버리고 마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 일로 형제는 원수가 되고, 에서는 어깃장 결혼으로 부모의 근심거리로 자처합니다.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하여 야반도주를 했는데 그것이 어머니와의 생이별이 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삽니다. 먹고 사느라 고생도 고생이지만 자식들에게 배신당하고 자식들끼리 반목으로 불행한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샌더스는 이삭은 지도자라기보다는 추종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불행했던 아버지 이삭의 생애이면서 오늘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생애이기도 합니다.

정치컨설트 박성민는 그의 인용글에서, 3세대를 논합니다.

1950~1970년대 생존의 시대,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산업화 역군의 자부심 세대

1980년대 민주의 시대,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민주화 자부심이 있는 세대

1990년대는 개방의 시대, “우리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자부심이 있는 시대.

 

여기서 3세대 간의 세대갈등이 나오고 당연히 역동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산업화세대는 밀립니다. 산업화 세대 아버지들은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켰다! 는 자부심 하나로 견디어 왔는데 지금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감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 시대의 사람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아들세대가 아버지의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기에 아버지들의 업적을 우습게 아는 것입니다.

 

어른으로서의 권위는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투표용지가 전혀 대한민국을 바꾸지 못하고 꼰대라는 비아냥이나 듣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산업화를 자손대대로 기억해야 할 레거시(유산)로 생각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자랑스러운 업적은 그것들보다 민주화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더 큰 업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화병으로 불행한 날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는 제대로 대우 받고 있나요? 평생을 일벌레로 살면서 고생했는데 은퇴이후는 애물단지는 아니어도 구박덩어리 신세로 전락된 대한민국의 아버지. 그래서 실없는 농담의 대상으로 희화화(戲畫化) 됩니다. 밥을 달랬다고 때리고, 외출하는 아내에게 어디 가냐 물었다고 때리고, 아침에는 아직도 살아있느냐 때리고 거기에 이식(二食)이니 삼식(三食)이니 하는 농()을 들으면 신세가 처량해 집니다. 돈은 내가 벌고 내가 내 밥을 먹는데, 얻어먹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오늘도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처럼 자조(自嘲) 섞인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니? 꿈이 많던 덕수는 어디로 가고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노인네만 여기에 있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다 정작 내 인생은 놓치고 말았던 대한민국 꼰대 아버지들의 탄식입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고 대한민국의 조롱거리가 되니 기가 막힙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자리도 부재(不在)입니다! 마리아는 성모(聖母)자리를 얻었지만 요셉의 자리는 성부(聖父) 자리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 생애 내내 함께 하지만 아버지 요셉의 자리는 부재(不在)입니다. 그게 아버지의 숙명인가요? 아니면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늘 외딴섬처럼 떠돌고 있을까요?

어머니의 사랑이 가슴으로 온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온 몸으로 옵니다. 

어머니는 가슴으로 울고 웃고 눈으로 입으로 울고 웃지만 아버지는 온 몸으로 울고 온 몸으로 웃습니다.

 

하청호는 아버지의 등이라는 시()에서 아버지를 이렇게 추억합니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우리 아버지들은 애정표현에 서툴러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부성애(父性愛)는 어머니의 모성애와는 또 다릅니다.

 

생명을 낳기 위해 얼음 절벽으로 몰려든 황제 펭귄. 영하 50도의 한파 속에서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암컷은 알을 낳아 수컷의 발 위에 올려줍니다. 추위가 만들어낸 부부사랑입니다.

등의 털로 알을 품은 수컷들은 몇 초만 드러나도 얼음이 되어버릴 알을 지키기 위해서 부동자세를 취합니다. 알이 부화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먼 바다로 떠난 암컷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몸무게가 15kg까지 줄어드는 굶주림과 긴 기다림의 부성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새끼가 부화를 해도 먹이를 구하러 간 어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펭귄 아버지는 비상수단을 씁니다. 가뜩이나 굶주린 자신의 위벽(胃壁)이나 식도(食道)의 점막을 녹여 토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펭귄 밀크라 부르는 아버지의 젖입니다.

 

<버티칼 리미트>도 부성애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여러 자녀와 함께 등산하던 아버지는 한 아들의 줄이 끊어지면서 아버지의 줄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로프는 사람들의 무게를 다 감당하지 못합니다. 맨 밑에 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로프를 끓어버립니다. 자식들은 줄을 끊으면 안 된다고 울부짖지만 아버지는 산을 타는 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이 기쁨이다!”라면서 목숨을 마감합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자식을 살리는 살신성인의 부성애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자식사랑은 따뜻하지는 않지만 의연합니다. 그러기에 자식들은 깊은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몰라, 아버지에게서 따듯한 사랑을 받은 기억도 없기에 어색해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 당신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기질을 이루는 대부분의 성품은 할아버지 이삭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삭의 성품은 순종과 인내와 온유함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아버지를 따라 모리아산 정상에 올라가 드러 눕던 순종, 아버지가 짝을 찾아 주실 때까지 40년을 신부를 기다리던 인내, 이웃들과의 분쟁을 피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조건없이 주고 떠나는 평화와 온유함은 요셉의 생애에 놀라우리만큼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요셉의 멘토(Mentor)는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야곱보다 오히려 할아버지 이삭입니다. 인생의 시련 가운데서 가장 많은 힘을 얻은 사람은 이삭 할아버지였습니다. 남들이 할아버지를 싱거운 이류인생으로 치부했다 해도 요셉은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순종과 인내와 온유함, 그것을 붙잡으면서 인생의 시련기를 견디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수동적이면서도 '특징이 없는 게 특징'(오스왈드 샌더스)이었던 이삭이 일류인생이 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결론

언젠가, 어버이날에 두 아들이 편지와 문자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같은 말을 썼습니다!

아버지가 있어 행복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미안하면서도 행복합니다! 잘 커주어서 고맙고.

 

이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가 있어주어서 행복해요~ 그 한 마디면 최고의 효도이자 공경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그 한 마디를 기대합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를 살았던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산업화시대의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대접 받아도 됩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대상으로, 남편을 대상으로는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농담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웃어야 대한민국이 웃고 아버지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산업화의 역군들을 꼰대라 울려놓고 자식세대들은 웃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웃음은 진짜가 아닙니다.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줄 때 그것이 진정 대한민국이 선진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여 축복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