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아침,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마태복음 28장 1~10절
서론
2천 년 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살아나신 부활절입니다. 인간 역사에 많은 종교들이 있어왔지만 부활을 믿고 부활절을 지키는 사람들은 기독교신앙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무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닫힌 무덤이 아니라 열린 무덤, 가득 채워진 무덤이 아니라 텅~ 비어있는 무덤을 전합니다.
성경의 교훈적 부분들은 다른 종교에도 있습니다.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 심신을 깨끗이 하라… 등등, 그러나 십자가로 죄를 해결하고, 부활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세상 종교들은 왜 부활이라는 강렬한 교리를 주장하지 않을까요? 부활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 실적이 없기에 유교는 공자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 자랑으로 삼으며 불교는 석가의 사리(舍利)를 진열해 놓고 자랑합니다. 기독교는 그런 자랑할 무덤이 아예 없어요. 굳이 무덤을 자랑하라면,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주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없지요! 이런 희망적인 부활의 종교,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 부활의 수혜자(受惠者), 부활로 혜택을 크게 받은 사람, 우리말로 수지맞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활을 기다리던 모두 다 수혜자요, 수지맞은 사람들입니다.
1절, …막달라 마리아… 이 여인들이 가장 수지맞은 사람들입니다. 최초의 부활 증인들이니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한 모두가 수지맞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대박을 쳤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았던 교권자들과 정치가들은 쪽박 찬 사람들입니다. 특히 빌라도는,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가장 불행하고도 원통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활절 당일 아침,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대박 터트리고 축하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부활로 대박친 사람1. 막달라 마리아(26:6~13)
1절,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는 부활 현장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서쪽 막달라 출신으로 일곱 악령(귀신)에 시달리다 예수님에게 고침 받고 열렬한 신자가 됩니다(눅8:2). 여성을 상징하는 우아함, 정결함, 단정, 순결함…을 상실하고 일곱귀신에 들렸으니 막~ 달라! 맨날 달라고만 합니다. 술 달라, 밥 달라, 돈 달라, 엔조이 달라… 막~달라! 이처럼 여성성을 잃은 불행한 여인이 고침 받았으니 예수님은 은인입니다.
26장 7절, ‘한 여자',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누이요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라 밝힙니다(12:3).
막달라 마리아이든 베다니 마리아이든 주님은 너무도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베다니 나병환자의 집에 있을 때에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인도산 식물 나드의 뿌리에서 얻어지는 휘발성 강한 ‘나드’향이라 해요(14:3). 나드향은 매우 귀하고 비싸서 주로 왕과 같은 신분에게 바쳐지는 향료입니다. 여인이 바친 향유의 값은 300데나리온(요12:5), 1데나리온은 일반노동자나 군인 일당이니 3,500만원 이상입니다.
여인에게는 재산의 전부입니다. 여성으로 자기의 향유를 부어드렸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어떤 이들의 눈에는 일종의 지아비로 인정하는, 품행이 좋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은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올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지 못하면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면 여인의 꼴도 얼마나 우습겠어요? 세상이 예수님에 대해 비판적인데 공개적으로 그런 행동을 보였으니 일가친척들이 얼마나 나무랐겠어요? 제자들조차 8절, 허비 한다 비난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자 여인도 인생이 끝난 것입니다. 소신적인 행동이기에 수치스럽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던질 돌멩이가 얼마나 많겠어요? 부활 아침까지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모두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여인들, 부활소식이 예루살렘 도성에 전해지면서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요즘이라면 전화하고 문자하고 방문하고… 난리 났을 것입니다.
여인의 희생과 그동안 받았던 오명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향유를 부은 행위는 주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구속사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셈이 된 것입니다. 여인은 너무너무 행복했고 주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에서 존경을 받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총독자리에 연연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내 준 비겁쟁이로 기억되지만 여인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기억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부활이 아니었다면 파 묻혀 버리고 부끄러움으로 남겨질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공동체에 성자, 성녀(聖女)가 된 것입니다. 귀신에 들려 제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여인이 성녀라니 엄청 수지를 맞은 것입니다.
부활로 대박친 사람2. 구레네 시몬(27:32)
여기 또 한 사람, 행운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행운이요 축복인 줄은 몰랐습니다.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던 때입니다. 시내를 통과함으로 의도적으로 욕보입니다. 그래야 대중들이 예수님에 대한 존경이나 기대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심한 매질로 기진맥진해서(요19:17) 형장에까지 나아갈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 현장에 그 사람,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이 구경꾼으로 우연히 있게 되었습니다. 리비아 서북편 구레네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일원으로 보입니다. 구레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회당을 갖고 있었으며, 시몬은 이때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입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시몬에게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법을 집행하던 로마병정과 눈이 마주쳤는지, 아니면 그의 어깨가 듬직했던지 대신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려면 그 자체가 고생이고 두고두고 집안 망신입니다. 자식들의 결혼 줄까지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시몬은 32절, ‘억지로’ 십자가를 집니다. 거칠게 거절하고 거부하고 항의하다 공권력에 굴복당해 억지로 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가면서 앞이 깜깜했을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자신을 얼마나 후회하고 저주까지 했을까요? 동명인 베드로에 대해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무게도 힘들었지만 십자가를 지게 된 이후의 삶! 그것도 예수라는 신성모독자의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치욕적인 불명예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3일 동안 어디 창피해서 칩거하며 부활로 정해진 일요일을 혹시나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새벽에 누가 대문을 두들겼을까요? 누구지? 체포하러 온 로마병정인가, 유대공동체에서 호출명령이 내렸을까?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생각나면서 또한 예수님을 원망했던 자신을 회개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감히 자신이 대신 졌다는 감격에 겨워 펑펑 울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은 한 시간도 안 되었고 십자가의 무게는 나름대로 무거웠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후 평상 자신의 십자가를 져 주시는 느낌 가운데 살았습니다. 힘들 때 오히려 아직도 뒤에 묵직한 십자가를 느끼며 견디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구레네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소개하고(15:21), 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가 내 어머니라”(롬16:13)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인연으로 시몬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것도 훌륭한 사역자 집안이 되었습니다. 비록 억지로 지기는 했지만 주님을 위한 희생은 3일만의 부활로 수치가 영광이 되었고 무게가 날개가 되어준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고마워하시고 너무도 넉넉하게 보상하시고 크게 집안의 복을 내린 것입니다. 시몬은 부활로 대형 로또에 당첨된 것입니다.
부활로 대박친 사람3. 아리마대 요셉(27:57~61)
57절, 저물었을 때에…. 유대인들의 관습에 시신(屍身)은 밤새도록 십자가에 달린 채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신21:22, 23). 특히 다음날이 안식일과 큰 명절 유월절이 겹치는 거룩한 날이기에 서둘러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로마의 관습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시신은 짐승에게 뜯겨 먹히거나 부패할 때까지 그대로 달아 놓아야 합니다. 장사하려면 로마의 지방행정관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허락을 청할 자격은 죽은 자의 친척이나 친척이며 대역죄는 불가합니다.
이런 애매한 사정에 아리마대 출신 부자 요셉이 나섭니다. 요셉은 산헤드린 공의회 위원으로(눅23:50,51) 십자가 처형에 대한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익명으로 있던 요셉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구약예언들이 성취되는 것과 십자가에서 보였던 언행을 보고 메시야임을 확신하고, 마가복음은 ‘당돌히’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다고 합니다(15:43).
이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자기 지위와 명예에 치명적 손실이 오는 것은 뻔합니다. 3년을 배우고 따르던 제자들도 배신하고 부인하고 도망을 쳤는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것입니까?
언제 유머로 이야기했지요?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날, 친구가 요셉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요셉! 너 미쳤어?” “왜에?”
“비싼 돈을 들여 만든 고급 새무덤을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에게 내주다니…. 미친 짓 아니냐? 지금이 어느 때라고? 네 신분도 생각하고 집안의 명예도 생각해야지? 처신 잘해야 해?”
아리마대 사람 요셉,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괜찮아. 예수님은 주말에만 무덤을 잠깐 쓰고 돌려주겠다고 하셨거든.”
그래요! 성경에는 없지만 예수님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새벽까지 주말(週末)에만 잠깐 무덤을 사용하시고 다시 요셉에게 돌려주셨습니다. 훗날, 그 부활의 무덤에 요셉이 묻히게 되었으니…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서 가장 수지맞은 사람이 요셉이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
성경을 읽는다고, 신학자라고 다 몸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2020. 4. 11일) 천주교 석학이라는 정양모 신부는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했습니다. 육체부활은 ‘시신소생’처럼 느껴진다며 그가 믿는 부활은 “예수의 인생을 추수해 가는 것” 즉 예수님의 정신대로 사는 자체를 부활이라 본다 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그런 주장은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활신앙을 굳세게 붙잡아야 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은 사기꾼이고, 그런 사기꾼의 가르침, 정신을 따르는 것이 부활이라면 그런 기독교에 일생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기독교를 종교학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들의 소리에 현혹하지 말고, 부활절에 최고로 수지를 맞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수지(收支)는 수입과 지출의 거래관계에서 얻는 이익을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던 귀녀(鬼女)였지만 주님에게 향유를 드리고 헌신함으로 평생을 성녀(聖女)로 추앙받으며 살다갔습니다. 부활이 주는 최고의 수혜자이지요!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 일로 주님은 그의 짐들을 대신 져주셨고 아내와 두 아들은 훌륭한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부활이 주는 최고의 수혜자이지요!
아리마대 요셉은 잠시 인간 권력을 누리다 허무하게 끝날 인생이지만 새무덤을 주님에게 딱 3일 무료 대여해 드렸다가 그 성스런 장소에 묻힙니다. 부활이 주는 최고의 수혜자이지요!
오늘 부활주일. 우리가 부활로 얻은 선물들은 무엇일까요?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그리고 영생~ 이 정도라면 우리 인생에서 얻은 어떤 이익보다 대박을 치는 로또 거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세상이 우리를 적대하지만 쫄지 말고 담대해 부활의 믿음을 선포하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부활의 수혜자이기에 마땅히 부활을 위해 핍박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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