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은 가꾸어야 하는 정원이다!
에베소서 5:22~25
서론
메이어라는 유대인 랍비는 설교를 아주 잘 했습니다. 어느 부인이 설교를 듣다 귀가(歸家)가 늦었고 남편은 화가 났습니다. 남편은, 랍비의 얼굴에 침을 뱉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며 아내를 내쫓아버렸습니다. 부인이 친구 집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메이어 랍비가 들었습니다.
랍비는 부인을 불러 “눈병이 났으니 내 눈에 약(藥) 침을 뱉어달라” 했습니다. 부인은 존경하는 랍비를 도울 셈으로 눈에 침을 뱉었습니다. 메이어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오! 남편에게 랍비 얼굴에 침을 뱉었다 하시오. 남편은 용서해 줄 것이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랍비의 말보다 남편의 말을 더 청종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는 유대인의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숙명적인 이름으로 세상에 흩어져 살면서 핍박을 받을 때 믿고 기대고 의지할 곳은 가족밖에, 가정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찍 터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문명이 아직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로마제국 멸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이 망한 원인의 하나로 가정의 파괴를 들었습니다. 로마가 제국이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니 남자들은 가정을 팽개치고 전쟁과 사냥과 주연(酒宴)을 열어 흥청망청 거리고 부인들은 사치와 쾌락에 묻혀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에 가정이 파괴되면서 제국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70년도에 출판된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은 가족의 파괴, 가정의 해체를 예견했습니다. 시험관 아이들이 나오고 실험 결혼, 계약 결혼, 독신주의, 동성연애, 일부다처제 등이 법적으로 공인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정확하게 그 예언이 적중했고 예측대로 가정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가정주일을 지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론입니다.
교회론이면 대부분 주일성수하라, 십일조생활하라, 교회에서 봉사하라… 예배에 최선을 다하라… 이런 명령들이 주를 이루어야 하는데 뜻밖에도 에베소서의 교회론에는 가정에 관한 권면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건강한 국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를 이루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제도 중에서 결혼제도를 가장 먼저 만드셨고 인간의 기관 중에서 가정이라는 기관을 가장 먼저 만드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혼의 역사, 가정의 역사는 에덴에서 비롯됩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가정이요 부부결혼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에덴에 침투하면서 가정을 파괴하고 콩가루집안을 만들어 버립니다. 콩가루는 가벼운 데다가 서로 달라붙는 액체의 끈끈한 성질, 즉 점성이 없습니다. 점성(粘性)이란 차지고 끈끈한 성질입니다. 점성이 없기에 내부마찰이 일어나 콩가루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작은 바람에도 흩어지고 날아갑니다. 그래서 가족 간의 유대감도 사랑도 없고 질서도 없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복잡한 집안을 빗대는 말이 ‘콩가루 집안’입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 네 식구가 비행기에서 떨어졌는데 모두 살았습니다. 아빠는 제비족, 엄마는 치맛바람, 아들은 비행청소년, 딸은 날라리… 그래서 훨훨 날아 살았다는 콩가루 집안….
왜 형편없는 가정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까요? 콩가루집안은 가정 리더십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신분과 지위에 맞게 제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자리에서 제 일을 하고, 아내는 아내의 자리에서 제 일을 하고… 각자가 자기 신분에 맞게 자기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기독교 가정의 리더십은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까?
23절, “이는 남편은 아내의 머리됨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 합니다. 요즘 여성들은 이런 내용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여성을 하위개념으로 만들었다며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오해입니다. 23절을 오해하니 당연히 22절도 오해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유교의 여필종부(女必從夫) 개념으로 받습니다. 여필종부란,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 맹목적으로 떠 받들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남편을 여자의 머리라 할 때의 머리는 위와 아래라는 상하(上下)의 개념이 아닙니다. 상위(上位)개념도 아닙니다. 바울이 머리라는 단어를 쓸 때의 헬라어(케팔레)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통치자보다는 지도자의 뜻이 더 강합니다.
지도자, 리더(leader)는 ‘집단의 통일을 유지하고 성원이 행동하는 데 있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가정 지도자는 기능보다는 신분으로 그 자격이 주어집니다. 집안에서 누군가는 지도적 기능을 가진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가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남편, 즉 남자의 종자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남자가 여성보다 먼저 창조되었고 여성은 남자에게서 나왔기에 자식이 부모에게서 나와 부모의 지도권을 인정하듯이 아내도 남편을 그런 개념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성경>은
23절, 남편의 아내의 머리됨이…, 이를 ‘남편이 지도력을 발휘하면…’
22절,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자기 남편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라고 해석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가정 리더십의 우선순위를 분명의 정리합니다. 누구에 앞서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버지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아브라함 집안의 리더십은 남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머리로서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낸 것은 아닙니다. 사라 부인의 청이기는 해도 여종 신분의 하갈을 후처로 취했고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 집안은 사라와 하갈이 싸우고 이스라멜이 이삭을 학대하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누구 편도 될 수 없어 수수방관했습니다. 집안에서 교통정리를 해주지 못한 것입니다. 콩가루집안입니다.
사라는 남편에 어찌 행동합니까?
베드로전서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사라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주’라 호칭했습니다. 여기서 ‘주’는 나의 남편,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라가 속상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서 가출하지 못하고 입술로만 주인이라 호칭한 것은 아닙니다. 참 마음으로 남편을 존경하고 이해하고 지지한 것입니다. 남편의 리더십, 아버지의 리더십을 아내가, 안주인이 세워주었기에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심히 애곡하였고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삭과 이스마엘이 사이좋게 장례식을 잘 치렀음을 보여줍니다. 콩가루집안이 아니라 잘 비벼진 비빔밥 집안이 된 것입니다.
그 아들 대(代), 이삭은 달랐습니다. 이삭의 집안은 남편의 리더십, 아버지의 리더십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순둥이고 나이가 들어 눈까지 멀자 아내 리브가가 남편을 우습게 알고 어머니가 우습게 여기는 것을 아들이 따라서 아버지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너무 똑똑하고 야망이 넘치는 여인입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오라비가 동생을 이삭에게로 보내면서 “천만인의 어미가 되라!”는 축원을 했겠어요! 그만큼 리브가는 똑똑하고 활동적인 여인입니다. 그래서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시어미는 이미 돌아가시고 남편은 너무 순하니 자신이 주도권을 잡습니다. 아브라함 집안에 내려오는 대민족의 꿈을 이루고 자신 역시 천만인의 어미가 되는 축복을 누리려고 답답한 남편을 제쳐놓고 주도권을 잡습니다. 남편 리더십, 아버지 리더십을 세워주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집안의 머리 노릇을 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찌되었나요? 장남은 하나님의 언약을 헌고무신처럼 여기고 차남과 어미는 합작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그야말로 콩가루집안입니다. 결국 네 가족 모두 불행하게 끝나고 맙니다. 남편이, 아버지가 리더십을 상실하고 아내가 남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집안이 얼마나 우습게 끝나는가를 이삭의 집안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아들 야곱은 어찌되었나요? 야곱은 아버지 리더십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냥 헤드십만 있습니다. 리더십이 지도력이라면 헤드십(headship)은 (조직의) 책임자 자리를 말합니다. 내가 남편인데, 아버지인데… 누가 감히… 이런 독재적 권위주의, 유교의 헤드십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유교문화 가부장제도 하에서 아버지 영향을 받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뭐라고 의견을 표현하면 “시꺼!”. 한마디로 3초 안에 사태를 평정하는 강압적 권위자입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를 카피합니다. 결혼해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남편이 되는 훈련도 받지 못했고 아버지 훈련도 받은 게 없어요. 받은 것이라곤 “시꺼!” 3초 만에 어떤 의견도 묵살해버리는 강압적인 권위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돌팔이 남편, 돌팔이 아빠가 되고 이런 아버지 남편이 돌팔이 가정을 만들고 가장(家長)이 되면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한글사전은, 가정이 뭐냐?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공동생활체라 합니다. 사랑의 대화, 격려, 용서… 이런 것은 가정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이런 표현이 없기에 외톨이가 되고 콩가루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내는 22절,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은 인정입니다. 남편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25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표현입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되면 오해가 쌓이고 불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은 정원과 같습니다. 정원은 자연이나 환경이 아니라 주인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잘 돌보고 가꾸고 다듬어주느냐, 그 중에서도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 에 달려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정원은 부부간에, 가족 구성원 간에 수고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50대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 4가지는, 돈, 딸, 친구, 찜질방입니다. 50대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4가지는, 아내, 부인, 처, 마누라입니다. 50대가 넘으면 궁합이 안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해야 우리 가정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어느 분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네 가지 ‘L’로 설명합니다.
사랑(love). 사랑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서로를 믿어주고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손해를 보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호감(like). 서로에 대해 갖는 좋은 감정입니다.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호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호감은 상대방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들음(listen). 잘 들어주는 것, 경청. 존경하는 마음으로 귀로 경청(敬聽), 눈으로 시청(視聽), 마음으로 심청(心聽), 조용히 듣는 정청(靜聽), 21세기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경청입니다.
웃음(laugh). “여자는 계획을 가진 남자를 좋아 하고, 남자는 미소를 가진 여자를 좋아 한다.”미소가 행복비타민입니다. 그것은 어느 것보다 상대방에게 힘을 주는 원기소입니다. 그러기에 나름대로 잘 웃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웃음의 지침을 세워봅시다!
-더 크게 웃으세요. 평소 웃을 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더 크게, 더 오랫동안 온몸으로 웃읍시다. 자꾸 의식하다 보면 크게 웃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작은 부분을 놓치지 마세요.
-시간이나 양을 정해 놓고 웃읍시다. 운동을 하듯 하루에 시간이나 양을 정해 놓고 웃읍시다. 생각보다 더 자주 웃을 수 있습니다.
-웃음 친구를 만드세요. 상대를 정해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잊지 않고 통화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어 보세요.
-스마일 라인 정하기. 집을 나설 때, 차에 탈 때 등 스마일 라인을 정해 놓고, 그 선을 넘으면 웃는 식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스마일 라인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 웃기. 웃음 공간을 정하고 그곳에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 모여 웃어 보세요. 현관을 웃음 공간으로 정했다면 남편이 출근하거나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온 가족이 모여, 서로 꼭 안아주거나 “사랑한다”고 해 보세요.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그만큼 하루가 즐거워집니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어디입니까? 교인들이 그냥 있자 목사님은 썰렁해(海)! 하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입니까? 다시 질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가만히 있자 “사랑해(海)!”라고 답했습니다.
여집사님이 너무 재미있고 의미도 있어서 주일날 집지킴이 과묵한 남편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여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어디게?” 남편이 “몰라!” 퉁명스럽게 끝냅니다. “당신 정말 썰렁해!~” 남편이 알아듣지 못해요. 또 물어요.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게?” 남편이 머뭇거리자 “당신이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얼굴을 붉히면서 “정말 열~바다!” 애정표현이 없거나 서로 간에 열 받게 하면 콩가루집안입니다.
가정은 표현하는 곳이고 가족은 표현하는 대상들입니다. 누가 먼저 표현해야 합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리표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격이 안 된다고요? 아닙니다. 배운 것이 그것밖에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상호의존적이 되시며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기자기한 사랑의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구속이 나오고 교회가 태동된 것입니다.
결론
로버트 슐러 목사는 가정에 대해 “가정은 작은… 왕국이다. 아버지는 왕이고 어머니는 왕비이며 아들은 왕자이고 딸은 왕녀다. 가정마다 고귀한 왕궁이다.”라고 말합니다.
소설가 김형경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책에서 “마누라는 구두와 같다. 발에 맞으면 편하지만 안 맞으면 평생 애물단지다”고 했습니다.
가정 역시도 구두와 같습니다. 발에 맞으면 한 사람의 생애에 너무도 편한 곳이 되고 행복 비타민을 공급하는 곳이 되지만 맞지 않으면 평생토록 애물단지입니다.
우리 가정을 건강한 정원으로 가꾸어 나갑시다! 행복의 비타민을 공급받는 곳으로 돌보아 갑시다! 그럴 때에 우리 가정은 에덴정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 가꾸어진 정원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교회를 만들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생명나무의 성령열매① - 성령나무에 성령열매가 맺힌다! (1) | 2023.10.08 |
---|---|
뱀같이 영리하기(마태복음 10:16) (2) | 2023.10.07 |
하나님의 던지심과 건지심(출2:1~10, 11~15, 신34:1-6) (2) | 2023.10.07 |
모두가 학생이고 누구나 스승이다(창세기 49:1, 2) (2) | 2023.10.06 |
효도, 서로가 잘해야 한다!(창세기 9:20~29) (1) | 2023.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