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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세상에서의 상급(누가복음 16:19~25)

by 강정훈말씀닷컴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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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세상에서의 상급

누가복음 16장 19~25절

서론

어느 장로님이 죽어 천국으로 갔습니다. 장로님은 셀프 서비스로 음식을 갖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앞서 올라오신 목사님은 어디에 갔냐고 했더니 배달을 나갔답니다.

이 부질없는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을까요?

*천국에는 대우가 다르다.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성경은, 천국에서의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상급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까요?

천국에 다녀와서 속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조심스레 접근할 수밖에는 없지만 성경의 원리를 좇아 어느 정도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1. 세상에서의 삶을 기준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상을 받는다면 뭔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의 상은 "이 세상"을 근거로 시상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무슨 일을 했는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가?

세상은 이처럼 천국 상급이 결정되는 곳이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죄 많은 곳이요 있을 곳이 못되는 장소가 아닙니다.

 

세상은 천국의 상급을 얻는 장소이기에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작업장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상(賞)이 되는 세상의 일은 어떤 것일까요? 종교적인 열심, 자선, 선행… 물론 그런 것들도 다 상을 받을만한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큰상은 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자가 과히 나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부자 된 게 나쁜 방법으로 되었거나 사기를 쳤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는 성실하게 돈을 벌었고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돈이 많다는 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젊은 날에 고생하여 돈을 모았고 이제 그 돈으로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한다는 게 나쁠 게 없습니다.

 

본문의 흐름으로 보아 그 사람은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혈통이었고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종교심도 있었습니다. 수재의연금을 냈다고 그의 이름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도 나오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옥에 가 있습니다. 지옥에서 고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이 보고 싶은 형제들, 자식들까지도 천국으로 보내고 싶을 만큼 큰 고민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어 내세에서 상급은커녕 지옥의 형벌을 당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삶이 없었습니다. 성전 출입을 했다고, 이웃에게 선심 쓰듯 자선을 베풀었다고 하나님과 살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들에게 눈을 돌리며 하나님으로 호흡하며.... 세상에서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호화로이 살아갈 줄만 알았지 자기의 영혼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삶, 질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인생은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생활도 즐김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상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기를 즐겼습니다. 

오늘도 그는 조찬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10명의 이웃들과 둘러앉았습니다. 8명의 접시에는 생선 한 마리씩 담겨있는 데 두 사람의 쟁반은 달랐습니다. 가난한 이웃의 쟁반은 비어있었고 부자의 쟁반에는 두 마리의 생선이 담겨있었습니다.

 

부자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없어 굶고 있는 가난한 형제를 위해 기도합시다."

부자의 기도는 간절했고 경건했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난한 형제의 빈 그릇을 채워달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모두들 "아멘!"하며 눈을 떴을 때 가난한 형제의 빈 접시는 아직도 비어있었습니다. 부자는 기도가 부족하다 하여 매일 기도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본문의 부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이런 부자들이, 몇 천, 몇억의 수재의연금을 내는 부자들 중에, 크리스천 중에서도 많을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서 상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영화를 누릴 것입니까? 단순히 교회 직분이 아닙니다.  그 부자가 교회의 장로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라는 것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거나 상급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천국에서 우리를 맡아주실 것이며 영화로운 상을 수여하실 것입니다.

2. 세상에서 하나님을 누린 것만큼 비례합니다.

부자는 세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의 영광만을 누렸을 뿐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누렸습니다.

 

본문에는 비참하게 묘사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매일 죽기만을 바라고, 천국의 상급만 사모하며 패배적인 삶을 살았을까요? 아니겠지요.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누리며 살았습니다.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려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셔들이고 이 땅을 하나님의 작업장으로 만들려 애썼을 것입니다. 부자가 날마다 연락하며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는 그 시간에 나사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위로가 컸던 것처럼 하늘나라의 위로는 거기에 수백 수천 배의 위로가 가산될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25절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네 좋은 것? 그의 부, 명예, 명성, 즐거움…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소유입니다. 세상의 소유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소유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시들어 버릴 면류관입니다. 허무합니다.

 

부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번도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살아왔고 자기의 힘으로 영광을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떠나 저승에 와보니 위로 받을 건더기가 없습니다.

하늘의 위로는 세상에서의 위로에 덧붙여지는 것인데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위로가 컸던 만큼 하늘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광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세상 영광은 다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을 때 그는 노래합니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그러나 바람을 잡는 것과 같도다"

 

그는 위로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위로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곤고함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 위로가 필요합니까? 바로 그 위로 때문에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그 위로는 하늘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 위로에 계산하여 천국의 상급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의 위로가 없다하여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위로는 잠시 잠간입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십시오. 천국에서의 영화로운 위로가 덧붙여 질 것입니다.

3. 하늘의 위로가 약속되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잊어버리고 삽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너무 천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신앙적인 사람들, 신령한 사람들의 기준이 천국에 대한 열정, 상급을 사모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정말 천국을 바라보는 이들은,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이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기에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행복을 누립니다.

 

하늘의 위로에 너무 취해있는 사람,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람들, 그들의 종교적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실도피자거나 종교적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정말 하늘에 상급이 가득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하늘의 상급을 확신하기는 해도 그 상급에 매어 달리지 않습니다.

 

하늘 상급에 매달리어 교회 중심, 눈에 보이는 업적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험한 세상에서 붙들어 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용기 주신 그 자체에 대해 항상 만족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상급은 하나님에게 맡깁니다. 우리가 그 큰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더 하나님에게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현명하고 어진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주기적으로 변장을 하고 민가로 내려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날 왕은 허름하게 차려입고 대중목욕탕을 찾았습니다. 목욕물은 지하실에 설치된 화로에 의해 데워졌는데 화부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은 지하실로 내려가 그 화부와 벗 삼아 놀아주었습니다. 화부가 준비해 온 밥을 먹으며 친밀감을 쌓아갔습니다.

화부는 이 낮선 방문객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찾아와 주지 않은 지하실로 내려와 그토록 관심을 보여준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왕은 내심 그동안 쌓은 우정을 빌미로 화부가 특별한 부탁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화부는 왕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습니다.

 

"편안한 궁궐을 놔두고 저를 만나기 위해 이처럼 뜨겁고 더러운 곳을 방문하시다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거친 음식도 함께 잡수면서 제게 진심으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전 이미 너무나 훌륭한 선물을 폐하로부터 받았습니다. 폐하 자신을 제게 주셨으니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과 상급을 받으며 사는 데 무엇을 더 욕심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시는 것도 다 챙기지 못하면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부터 최선을 다해 누리며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사로는 이런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가 천국의 상급을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 받지 못하면 천국에서 무엇을 더 원할 것입니까?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천국관입니다. 천국에서 큰 상급을 누릴 이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심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살며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결론

승동교회의 첫 장로는 박성춘이라는 백정 출신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 그는 천국만을 바라보며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국적으로 다니며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백정들의 천국으로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과 상급을 받으며 사는 데 무엇을 더 욕심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시는 것도 다 챙기지 못하면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부터 최선을 다해 누리며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 천국과 땅의 천국. 우리는 두 천국을 다 소중히 여깁시다. 두 천국의 상급을 다 소중히 바라봅시다.

여러분들은 하늘나라의 상급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많은 상급과 영화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위로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으로서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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